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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천시[順天市]
역사
구석기 유적으로는 송광면 신평리·덕산리·우산리 등에서 200여 점의 뗀석기가 발견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시의 북방에서도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뗀석기를 발견했다는 미국인 모어(Mohr. A)의 보고가 있었으나(1965년) 공인받지는 못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송광면 대곡리, 황전면 대치리 등지에서 빗살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가곡동·용당동·왕지동·조례동 등과 서면·별량면·상사면·송광면·해룡면·주암면·승주읍 등에 고인돌군이 집중 분포되어 있고, 인접지역에서 돌칼·돌창·주거지 유적 등이 발견되고 있어 순천지역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문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 준다. 마한의 여러 소국들 중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또는 신분활국(臣濆活國)이 낙안·벌교 지역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백제시대에는 감평군(欿平郡) 또는 사평(沙平), 무평(武平)이라 불렀고 주암면 지역에는 둔지현(遁支縣), 낙안면 지역에는 분차군(分嵯郡)이 있었다.
757년(경덕왕 16)에 감평군은 승평군(昇平郡)으로, 둔지현은 부유현(富有縣)으로, 분차군은 분령군(分嶺郡)으로 개칭되었으며 승평군은 예하에 부유현과 지금의 여수·돌산 지역까지 영속하였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을 때 그의 사위 박영규(朴英規)가 이 지역의 성주로 군림했고, 뒷날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의 통일 사업에 크게 협력하였다. 983년(성종 2) 12목 설치 당시 승주목이 되어 외관이 파견되었고, 996년에 연해군절도사(兗海軍節度使)가 되었는데 일명 승화(承化)라고도 하였다. 1036년(정종 2)에 다시 승평군으로 복구되었으며 1309년(충선왕 1)에 다시 승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듬 해 다시 순천부로 강등되었는데, 이 때 처음으로 순천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순천부는 여수현·돌산현·부유현 등을 속현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한편 낙안지역에는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나주의 속군에서 벗어나 주현으로 독립하였다. 무인정권이 성립되었을 무렵 보조국사 지눌(知訥)은 조계산 수선사(修禪社)를 중심으로 조계종의 결사 운동을 일으켜 불교사상의 개혁을 꾀했으며, 이 수선 결사가 송광사(松廣寺)로 발전하였다. 한편 충렬왕 때 승평부사 최석(崔碩)이 선정을 베푼 뒤 교체되어 떠날 때 군민이 정표로서 바친 8필의 말을 되돌려 보냄으로써 청백리(淸白吏)의 표징을 나타내는 팔마비(八馬碑)가 건립되어 순천의 중요한 정신적 지표가 되고 있다.
1413년(태종 13)에 순천도호부가 되고 세조 때 편제된 진관체제에 따라 주진으로서 전라도 동남부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 순천의 행정영역은 현재의 순천시 전역과 여수반도 전역의 영역이었다. 그 뒤 효종 때 순천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얼마 후 도호부로 복구되었으며 1786년(정조 10)에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 해 복구되었다.
1597년의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 때 선암사가 소실되었다. 왜군들은 해룡면 신성리 부근에 성을 쌓고 장기 주둔을 꾀했는데, 그 흔적이 남아 오늘날 왜성대(倭城臺) 또는 망해대(望海臺)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광해군 때 부사로 부임한 이수광(李睟光)은 『승평지(昇平志)』를 저술해 이 지방의 문물을 보존해 주었다. 영조 때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순천은 전주·나주 다음가는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혁으로 순천군이 되었으며, 이듬해율촌면 이남의 여수반도와 섬 지역들이 여수군과 돌산군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1909년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예하의 7개 면과 곡성군의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다. 1911년소안면과 장평면이 합쳐져 순천면이 되었으며, 1931년에 순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한편, 1929년에 동초면을 없애고 그 지역을 이웃의 낙안·벌교·별량 지역으로 분속시켰다. 1919년 3·1운동 때는 순천시 지역은 박항래(朴恒來)가 연자루에서, 그리고 낙안 지역에서는 안호형(安鎬瀅)·김종주(金鍾胄)등 33명이 벌교시장에서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했으며, 서면 일대에서 박병두(朴炳斗)를 시작으로 해 일어난 소작 쟁의가 벌교 등지를 비롯, 전국 각지로 퍼져 1920년대 소작쟁의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1948년여수에서 일어난 국군 14연대의 반란세력이 순천시를 점령함으로써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1949년에 순천읍과 도사면 일부, 해룡면 일부를 합쳐 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나머지 지역은 승주군이라 개칭되어 순천시와 승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62년 8월 27일순천 시내의 동천제방이 붕괴되면서 대홍수가 발생해 200여 명이 사망하는 큰 재해를 입기도 하였다. 1973년보성군 문덕면 한천리가 송광면에 편입되었고, 1983년에는 주암댐과 상사호 공사가 시작됨에 따라 주암면·송광면·상사면 및 승주읍 지역의 여러 마을들이 수몰되어 많은 주민들이 이주하였다. 1985년쌍암면이 승주읍으로 개칭, 승격되었고 1987년에는 해룡면 복성리 일부가 광양읍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어 순천시가 되었다. 같은 해 8월 10일에는 주암면 풍교리가 문길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8년 1월 15일에 해룡면의 일부가 조례동에, 생목동 일부가 조곡동에, 조곡동 일부가 생목동에, 풍덕동 일부가 조곡동과 장천동에 각각 편입되었다. 또 1999년 8월 16일에는 해룡면의 일부가 연향동에, 연향동 일부가 해룡면에 편입되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 기관으로는 순천향교와 낙안향교 등이 있다. 1407년(태종 7) 성(城) 동쪽 7리 지점에 순천향교를 창건했는데 5차례 이건한 후 1801년(순조 1)금곡동의 위치로 옮겼다. 낙안향교는 창건 연대가 확실치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군(郡) 북쪽 1리에 향교가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1658년(효종9)에 농암등(籠巖嶝)에서 현재의 낙안면 교촌리로 이건하였다. 1777년(정조 1)에는 향교 곁에 따로 양사재가 건립되었다. 옥천동의 옥천서원은 1564년(명종 19)에 김굉필을 배향하고자 설립한 것으로, 이황이 옥천정사라는 이름을 짓고 현판을 써 주었다. 이어 저전동의 정충사, 금곡동의 청수서원·용강서원, 연향동의 옥계서원, 별량면의 송천서원과 율봉서원, 상사면 흘산리의 이천서원, 조례동의 충렬사, 그 밖에 곡수서원, 겸천사 등의 설립이 이어지면서 중기 이후 유림 문화의 구심점을 형성하였다. 이 가운데 사액된 곳은 옥천서원을 포함해 정충사·청수서원 세 곳이다. 근대 교육의 발단은 1896년에 공립순천심상소학교를 설립한다는 당시 관보의 기사로부터 추적할 수 있으나 역사적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1906년에는 사립 승명학교(昇明學校)가 개교되었으나 1910년 보조 지정 인가 후 공립 순천보통학교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1913년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사립 원성학교를 설립했는데, 종교 교육을 둘러싸고 일제와 마찰이 있어 1916년에 폐교했다가 1921년 매산학교로 복설했으며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 광복 후 다시 복교되었다.
그밖의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7년에 개교한 낙안면 낙안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1920년황전면에 황전공립보통학교, 1921년주암면 구산리에 주암공립보통학교, 1922년 별양면에 별양공립보통학교, 1923년 송광면에 송광공립보통학교, 1924년 승주읍에 쌍암공립보통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또 1935년에 공립순천농업학교가 설치되고, 1938년에 순천공립고등보통학교, 1940년에 순천공립고등여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이어서 광복후 1952년에는 주암면 창촌리에 주암중학교가 설립되었고, 1971년주암면 구산리에 주암고등학교가 세워졌다가 지금은 주암종합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1개교, 중학교 21개교, 고등학교 16개교, 순천청암대학·순천제일대학·순천대학교가 있다. 문화·복지 시설로는 공공 도서관 3개소, 일반 공연장 1개소, 영화관 6개소, 시민 회관 2개소, 복지 회관 1개소, 청소년 회관 2개소, 문화원 1개소가 있으며, 라디오와 TV 방송국 각 1개소의 언론 기관이 있다. 문화제 행사로는 팔마제와 함께 10월 중순에 낙안읍성에서 남도음식축제가 열린다.
산업·교통
순천시는 산지가 많아 경지 면적은 20%에 불과하나, 경지 면적 중 논밭의 비율이 2 : 1로 논농사가 중심을 이룬다. 큰 댐인 주암댐과 상사조정지댐이 있어 이 지방의 농업 용수, 생활 용수, 공업 용수와 수해 예방에 도움을 주며, 상사조정지댐에서는 적은 양의 전력도 생산한다. 그리고 주암면의 행정저수지와 별량면의 운천저수지는 이 지역의 농업 용수 공급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기온이 따뜻하고 연중 강수량이 많아 논농사에 유리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팥·고구마 등이며, 특용 작물로는 대마·참깨·들깨·잎담배·차나무·인삼 등이 재배되는데 남부 해안지역에서는 인삼 재배도 한다. 과일로는 특히 단감이 많이 나며 배·사과도 소량 생산한다. 겨울철에 따뜻하고 해동이 서울에 비해 15일 정도 빨라 고등 원예 채소를 재배하는 데 적지이다. 겨울철 기온이 온난해 비닐 하우스를 이용한 고등 원예 재배가 늘어남에 따라 고추·마늘·오이·채소·토마토·딸기·화초·느타리버섯 등이 호남·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대량 출하되며, 정원수도 많이 재배한다. 산림 면적이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지만, 침엽수림의 소나무가 대부분이어서 목재 생산은 낮은 편이다. 승주읍과 황전면·주암면·송광면 일대에 용재림(用材林)이 조성되어 있으며, 임산물로는 표고버섯의 생산이 많고 밤·대추·도토리·은행 등이 많이 난다. 순천만에서 멸치·전어·문어·쥐치 등이 잡히며, 연안은 어패류 양식의 적지로 고막·바지락·맛·우럭·소라 등이 양식된다. 특히 별량면과 해룡면에서의 고막·새고막·굴 양식은 이 지방 수산업의 중심을 이룬다. 내수면의 담수어 양식도 활발하고, 동천과 이사천 하류에서는 실뱀장어가 많이 잡힌다.
2차 산업은 매우 부진하며 비교적 큰 제조업체로는 식품 공장과 주정(酒精) 공장이 있다. 이 밖에 사료공장, 콘크리트공장, 쥐포생산공장, 정미공장 등이 있다. 서면 압곡리에는 순천산업단지가 있으나 입주 업체가 적어 거의 방치된 상태이며, 주암면에는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각종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예로부터 인접지역의 농산물 집산지로서 발전해 온 이곳에는 상당한 규모의 상설 및 정기 시장과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있으며, 13개의 일반 시장과 8개의 정기시장이 있다. 순천 시내의 4개 시장 중 중앙시장은 상설시장으로 민영화되었으며, 역 앞의 역전시장도 상설시장으로 주로 아침에 수산물 거래가 이루어진다. 북쪽에는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겸한 북부시장(일명 웃시장)이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는 2·7일에 개시했으나 1944년에 남부시장이 개설되면서 개시일이 5·10일로 바뀌었다. 남부시장(일명 아랫시장)은 2·4·7·9일에 더 성황을 이루는 상설 시장으로, 북부시장과 달리 가축 시장도 겸하고 있다. 남부시장은 순천·광양·구례 및 여수 일대 농수산물의 총집산지가 되고 있다. 남부·북부 두 시장에서 공산품 판매는 고정 점포를 가진 상인들이 담당하지만, 농수산물은 도매상인들이 산지로부터 보급하고 판매는 소매상인들이 전담한다. 순천 인접지역 농민들은 농수산물 판매를 목적으로 순천의 정기 시장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농촌의 작은 시장에서 구입하기 힘든 물건이나 대량의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이곳을 이용한다. 순천의 시장이 도시의 장(場)이면서 정기 시장으로 운영되는 것은 이처럼 농민과 소매 상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6개의 정기 시장으로 황전면의 괴목장이 4·9일, 승주읍의 승주장이 1·6일, 주암면의 광천장이 3·8일 그리고 창촌장이 2·7일, 송광면의 송광장이 1·6일, 별량면의 별량장이 3·8일에 열린다. 해룡면 월전리에는 대규모 도매시장인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이 있다.
명물로는 송광사능혈버섯·도사장어(道沙長魚)·고들빼기 등을 들 수 있다. 능혈버섯은 조계산·모후산 일대와 월등면·황전면에 자연 분포하는 버섯으로 향버섯 또는 능이(能栮)버섯이라고도 하는데, 식용 버섯으로 마르면 강한 향기가 난다. 도사장어는 이 지방에서 잡히는 민물장어로 몸이 가늘고 길이가 60㎝ 정도 되며, 배지느러미가 없고 뒷지러미·등지느러미·꼬리지느러미가 완전히 붙어 있다. 순천만·도사천·이사천·보성강 일대에서 많이 잡히며, 이곳에서 잡힌 실뱀장어는 일본 등지로 수출도 한다. 순천에서 생산되는 고들빼기는 이 지방의 특산 명물로서 옛날부터 이름이 높다. 길이 12∼80㎜인 2년생 초목으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자줏빛이 나며 털이 없다. 식용으로 쓰이며 봄철에 나는 어린잎을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이 지방에서는 가을철에 뿌리·잎을 포함해 통째로 김치를 담그는데, 이 고들빼기김치가 입맛을 돋우는 구실을 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낙안면에서는 더덕으로 담근 사삼주가 주산품이다. 교통은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하고, 호남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가 통과하며, 국도도 이곳을 기점으로 부산·여수·광주·전주·목포로 연결되어 있어 동부 전라남도의 교통의 요지이다. 1930년에 송정리∼여수간 철도가 처음 등장했고, 1936년에 익산∼순천간의 전라선이 개통되어 일찍부터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68년에 진주∼순천간의 경전선이 개통되어 영·호남을 연결하는 길목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전주에서 여수로 이어지는 17번 국도와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2번 국도의 교차점이다.
관광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승보 사찰인 송광사와 조계산,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다. 선암사의 가람 배치는 조계산의 풍광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화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입구의 무지개 다리인 승선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송광사는 장군봉·조계봉·만수봉이 사찰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계곡에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고 울창한 노송이 들어서 있어 경내가 절경을 이룬다. 송광사의 세 가지 명물로는 쌀 7가마분인 4,000명분의 밥을 담았다고 하는 비사리구시, 정교한 수공예 접시인 능견난사(能見難思), 나무 전체가 꼬여 있고 보조국사 지눌과 얽힌 유래가 전해 오는 쌍향수가 있다. 불교 공부를 하기 위해 외국에서 온 벽안의 스님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계산은 도립공원과 명승 제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쪽의 선암사와 서쪽의 송광사를 잇는 등산 코스가 지리산·내장산·백암산·한려수도의 국립공원으로 연결되어 천혜의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조계산과 송광사 사이의 계곡에 있는 비룡폭포(飛龍瀑布) 일대는 조계산 제일의 명승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가을 단풍은 폭포와 함께 절경을 이루어 찾는 이가 많다. 주암호와 그 물길을 따른 관광 길은 주변의 토속적 시골 풍경을 즐기며 구경하기에 적합한 곳일 뿐만 아니라, 주암댐 조성으로 수몰된 지역에서 수백 기의 고인돌을 모아 만든 전국 최초의 고인돌공원이 송광면에 접해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다.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은 민속 마을로 약 500여 년 전에 우리 서민들이 살아 왔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민속 행사도 많이 하는데 주말이나 공휴일의 전통 혼례식, 정월 보름의 달집태우기, 성곽돌기, 매년 10월 1일부터 5일 동안 벌어지는 남도음식대축제, 전국대학생풍물놀이 등이 펼쳐진다. 순천 시가지 내에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관광지는 없으나 도시 공원을 비롯해 깨끗한 하천의 경관 및 많은 문화재 등 자연적·문화적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다. 시의 동쪽에 시가지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죽도봉(竹島峰)공원이 있고, 그 주위에 강남정·팔마탑·연자루 등이 있다. 시내로 들어서면 팔마비와 임청대 등의 문화재가 있다. 조비골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비봉산 기슭에 아담한 고찰인 향림사가 있으며, 그 위쪽에는 숲이 울창하고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운 석현산장과 조비골유원지가 있다. 화엄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차나무를 처음 심은 곳으로 알려진 향림사에서는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종류로는 곡우를 전후로 해 음력 4월까지 아주 작은 새순을 따서 만든 최고급품인 작설차와 세차(細茶)가 있다. 옛날에는 차를 압축해서 엽전처럼 만들어 여행 때나 군용으로 사용했던 전차(錢茶, 團茶), 가루로 만든 말차(抹茶) 등도 있었다고 한다.
이 차들은 차나무에서 잎을 따서 시루에 넣고 수증기로 찐 다음 적당히 말려 손으로 4, 5회 비비고 그늘에 말려 만든다. 옛날에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중국에까지 널리 수출되던 이름 있는 차이다. 이곳의 향토 특산으로는 조계산·지리산 등에 자생하는 야생더덕으로 담근 전통 약청주인 사삼주가 있다. 또 널리 알려진 향토 음식으로 순천백반이 있다. 흰쌀밥과 연한 시래기가 듬뿍 들어 있는 된장국을 기본으로 여러 종류의 반찬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무 및 배추김치, 고들빼기김치, 각종 산채 나물 등 식물성 반찬과 생선 소금구이, 생선 졸임, 육류 요리 등 동물성 반찬, 그리고 장아찌·깻잎 등의 밑반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찬 수가 12가지가 넘는다. 값이 싸고 맛도 좋아서 여행객들에게 큰 인기가 있다. 한번 맛을 본 외부인들은 일부러 백반을 먹기 위해 점심때에 맞추어 여행을 오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다. 또 가을철엔 순천만 일대에 널리 분포하는 짱뚱어를 재료로 탕을 많이 만드는데, 추어탕과 함께 그 맛이 일품이어서 이 지방 사람들은 물론 여행객의 구미를 당기는 향토 음식이다. 그리고 별량면에는 승주골프장이 있어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주요 축제로는 낙안읍성축제·팔마문화제·순천만갈대축제 등이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11-17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