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사
금산읍에서 약 6km 떨어진 진악산 (732m)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2년(866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깊은 절이다.
교종의 대본산이며 한국불교 31본산의 하나로 지난 날 전라북도 불교의 이사중추기관이었고 현재는 충남 교구 산하로 되었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주조하였다는 데서 이름지어졌다.
사찰에 들면, 울창한 숲과 암석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있어서, 속세를 떠난 듯하다.
절 안에는 대웅전, 기허당, 의선각,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으며, 인근에는 절경
의 12폭포가 있다. 특히 높이 40m, 둘레가 10.4m나 되는 1,1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가 있어 좋은 휴식처를 제공해 주며, 200~300미터 정도의 전나무길이 나 있어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보석사 일주문
의병 승장비
문화재자료 제23호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 되어 나라를 구하려다 전사한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고 있는 비이다.
영규대사(?∼1592)는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3일 동안 통곡한 후 스스로 승병장이 되었다. 승병 수백 명을 모아 관군과 더불어 청주성의 왜적을 쳤고, 이어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 일은 이후 전국적으로 승병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숙종 5년(1839) 5월 금산군수 조취영이 세운 비로, 일제가 1940년 비를 보호하던 비각을 부수고 비를 묻어놓았던 것을, 해방 후 다시 꺼내 세워놓은 것이다.
보석사 200~300미터의 전나무 숲길
사찰로 들어가는 두개의 다리.
돌다리와 나무다리
보석사 범종각
보석사 등운선원
보석사 요사
보석사 요사
옛 이곳 요사 사이에 있는 문을 들어서야 대웅전이 나온 듯, 이제는 시급히
보수가 필요한듯.
보석사 대웅전
보석사 대웅전
유형문화재 제143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지어졌다. 그 안에는 석가모니불, 관세음불, 대세지보살 등 3기의 불상이 봉안돼 있다.
보석사 대웅전 현판
대웅전내의 삼존불
보석사 석등
보석사 기허당
영규대사의 진영을 모셔놓은 곳
보석사 의선각
충남 문화재자료 제29호
보석사 대웅전 앞에 있는 건물로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산의 갑사와 보석사를 내왕하며 도를 닦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
여 중봉의 의병과 합세하여 금산이 왜적을 격퇴하려다가 700 의사와 함께 전사한 분으로 그 용맹과 담력은 출중하여 싸움마다 크게 공을 세웠던 것이다. 의선각은 영규대사가 보석사에 계실때 우거하던 곳으로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석사 수조
은행나무에서 보석사 들어가는 나무다리
보석사 산신각
산신각 산신탱화
보석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65호
1,1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높이 40m, 둘레 10.4m의 은행나무는 조구 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6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들이 하나가 됐다고 한다.
땅속으로 뻗어 내린 뿌리만 100여평. 위로 뻗은 가지가 땅으로 내려와 다시 하늘로 치솟은 형상이 이채로운 은행나무는 마을이나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어 재난을 예비토록 했다고 전해진다.
보석사 찾아가는 길
충남 금산 시내에서 약 15분 거리의 진악산에 자리하고 있고, 곳곳에 이정표가 자세히 설치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