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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
정 성 식
(왕궁초등학교 교사)
1. 교사, 교육과정을 말하다
초등교사는 해마다 책 한 권씩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하지만 아무도 이 책에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묵묵하게 만들어 내니 참으로 인내심이 대단한 작가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책은 다름 아닌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대학교수의 강의계획서는 A4 한 장 분량인데 반하여 초등교사의 교육계획서(교육과정)는 책 한 권 분량이다. 초등교사가 이 책 한 권 분량의 교육과정을 만드는 작업은 학년말에 교육과정평가를 시작으로 하여 이듬해 3월까지 교원 인사이동이 끝나고 나서도 이어진다.
3월,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관계 맺기를 시작할 중요한 때이지만 정작 교사들은 교육과정 수립에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며 교육과정이라는 책을 만드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육과정은 국가수준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전국의 모든 학교가 학사일정, 행사시수 등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하다. 이런 책을 만들어 제본하기 위해 단위학교에서 평균 50만원 정도의 예산이 쓰여지고 있으니 전북에서만 어림잡아 5억원 정도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을 투자하여 만든 책은 교실 책꽂이나 교무실 캐비닛에 사장되어 먼지만 쌓여간다. 이런 캐비닛 교육과정(Cabinet Curriculum)1)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그토록 공을 들였던 것일까?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놓고 이를 읽어본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이렇게 만든 교육과정대로 교육을 했는가? 이 교육과정에 우리들의 삶이 담겨 있는가?
해마다 교육과정을 만들었지만 그 결과물 중에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오히려 2월이 되면 캐비닛과 책꽂이에 수북하게 꽂혀있던 해묵은 교육과정을 묶어서 버리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다. 이런 교육과정은 나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이런 교육과정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걸까? 교사에게 교육과정이란 무엇일까?
2. 캐비닛 교육과정을 왜 만드는가?
초․중등교육법 제23조제1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이미 단위학교는 NEIS와 정보공시시스템을 이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즉 연간학사일정, 교과 편제 및 시수, 수업공개계획, 학생평가계획, 진도표, 예산계획서 등등 학교교육과정의 모든 내용을 시스템에 등록하여 대국민서비스까지 하고 있다. 학교는 법에서 밝히고 있는 교육과정을 시스템을 통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책자 형태의 교육과정을 또 만들며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NEIS를 도입할 당시 정부는 ‘교육행정의 정보화를 통하여 교육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교원들의 업무를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목적을 밝혔다. 이 제도의 시행과 관련하여 사회적 논란이 있었지만 전자정부법 제8조(전자적 처리의 원칙), 교육기본법 제23조 제2항(학교 및 교육행정기관업무의 전자화), 초․중등교육법 제25조 제5항(정보시스템에 의한 업무처리)항이 제정됨으로써 학교는 2003년부터 NEIS에 의하여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학교의 교육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학교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학교 전반의 주요 정보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이 만들어짐에 따라 2008년 12월부터 학교는 64개 항목의 학교 교육에 대한 정보를 매년 1회 이상 ‘학교알리미’에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청의 교육과정 관련 행정은 이 법률과 규정들이 만들어 지기 이전의 행정 관행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교육청의 이와 같은 행정 관행으로 인하여 학교는 똑같은 내용을 시스템에도 입력하고 종이문서로도 만들어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고 있다. 즉 NEIS와 정보공시시스템에 교육과정을 입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책자 형태의 교육과정을 별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육활동에 전념해야 할 교사에게 행정업무로 인한 이중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각 시・도교육청이 밝히고 있는 <교원업무경감계획>을 보면 “종이문서와 함께 전자문서로 이중 관리되고 있는 학교장 장부를 전자문서로 단일화하여 교사의 업무경감 및 예산 절감을 꾀하고자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과정을 NEIS와 정보공시시스템에 입력하여 운영하고 있는 학교의 상황에서 보면 교육청에서 별도의 교육과정을 책자 형태든 파일 형태로든 추가로 제출 요구하는 것은 이 계획과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들은 왜 이렇게 공을 들이며 교육과정을 두툼하게 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제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전북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교육과정 제본 제출을 요구하는 법률적 근거를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물었더니 전북교육청은 “제출 요구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답변을 하였다. 그렇다면 법률적 근거가 없는 교육과정을 단위학교에 제출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교육행정은 법치주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교육청에서 책자형태의 교육과정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의해 일선학교에서 교사들이 감당하고 있는 부담은 너무 크다. 즉 정보공시 따로, NEIS 따로, 교육과정 파일 제출이 따로 이루어짐으로써 일선학교 교사들은 시스템 도입 취지와 어긋나게 업무폭증 상태이다.
교육청에서는 단위학교의 모든 교육활동을 나이스와 학교알리미를 통해 확인 및 지도 감독이 가능한 상황이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대국민서비스 차원에서 공개되고 있는 교육활동계획과 결과를 만들기에도 교사는 버겁다. 따라서 교사의 업무 부담을 간소화하기 위하여 도입한 NEIS와 정보공시시스템을 시행하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법률적 근거가 없는 행정 관행은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형식보다 내용에 충실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행정의 틀은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에 학교 특색을 살린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교육과정 재구성이 문서의 틀에 갇히지 않고 내용을 담아 실제 교육을 통해 구현되지 않을까?
3. 이지에듀 교육과정과 아이스크림 교육, 정녕 쉽고 달콤한가?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여 학교알리미 사이트에서 전국의 학교를 표본 추출하여 진도표를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놀랍게도 교육과정 작성을 지원하는 모 회사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진도표를 올린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타와 음영 비율마저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가 계획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 불편한 진실이지만 드러내놓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민망한 현실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살며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교육과정 재구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설업체 배만 불리며 도대체 이 노릇을 왜 우리는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답인지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항변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바쁜 3월에 도저히 못 버텨낸다고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교육과정을 시간과 예산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업은 이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은 요일별, 차시별로 일목요연하게 작성해놓았지만 정작 수업은 이와는 별개로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사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시수 중심의 교육과정 편제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시수 따지느라 정작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수 맞추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하여 사설업체 프로그램에 의지하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획서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지만 이 과정에 우리는 정작 교과서와 지도서를 몇 번이나 읽어보고 있는가? 실제 수업이 이루어지는 수업 상황에 맞추어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을까? 교육과정은 이지에듀로 만들고, 수업은 아이스크림으로 하는데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은 쉽지도 않고, 교육은 달콤하지도 않다. 애초에 우리가 바라던 교육이 이런 것이었을까?
4. 교육과정 다이어트_ 무엇을 어떻게 덜어낼까?
캐비닛에 잠자고 있던 교육과정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어보자. 분량도 만만치 않은 이 책을 읽어내기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그냥 읽지 말고 이 대목이 꼭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며 일단 분량이라도 줄일 수 없는지 생각하며 읽어 보자. 그러면서 교육과정에 낀 거품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1) 학교장 경영관
어느 학교건 교육과정의 한 두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곳이 학교장 경영관이다. 이는 과감하게 덜어내야 하지 않을까? 국가수준교육과정에 교육부장관 경영관이 들어있지 않고 시도교육청 편성운영지침에 교육감 경영관이 들어있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학교는 교장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의 체계가 바뀐다. 이 논리대로라면 학교장이 바뀌면 학교 교육이 바뀐다는 것인데 이래가지고는 교육민주화의 시대적 요구에 맞지 않는 것이다. 집으로 하면 가훈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학교로 말하면 교훈이 있으면 되는 된다. 학교장 경영관이 아니라 학교구성원이 합의한 학교교육목표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
2) 특색사업, 역점사업(노력중점)
대한민국 초중고, 특수학교가 2013년 기준으로 11,564개이다. 이 많은 학교들이 하나씩(욕심 많은 학교는 두세 개씩) 특색사업을 내걸고 있는데 도대체 이런 특색사업은 어디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일까? 이 아이들의 특색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나 같이 똑같은 교실에 붙들어 두고 시험 준비나 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교육기관인 학교가 업소도 아닌데 무슨 사업이 그리 많은지 용어부터 마음에 안 든다. 사업의 홍수 속에서 교사가 아니라 무슨 업자가 된 기분이다. 사업이란 말 대신 교육이란 말로 바꾸면 안 될까? 특색교육과 역점교육, 뭐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이 말도 별로 마음에 안 든다. 한 가지를 정해서 거기에 맞추려고 무리하게 애쓰기보다 각양각색의 아이들의 색깔에 맞추어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특색사업의 실적을 만들어 내느라 거꾸로 아이들을 거기에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대부분 이 특색사업이 문제가 많다. 교육부의 특별사업만 보아도 그렇다. 사업이 편성된 뚜렷한 기준도 없고 예산은 또 말 잘 듣는 시도교육청에 퍼주느라 쓰고 있는 형국이다. 특색사업, 역점사업 구상하고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그에 따른 실적 만들어 내느라 고생하고 아이들 고생시킬 것이 아니라 그냥 없애면 어떨까? 특색사업 없는 학교, 이 속에서 아이들의 특색은 살아나지 않을까?
3) 교육과정 편성의 기저
어떤 사상이나 생각 따위의 기반이 되는 생각을 기저(基底)라고 하니 이는 무척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30여 쪽을 할애하며 교육과정에 담아내는 편성의 기저라는 것이 대부분 법적 근거이거나 상위기관의 운영 방향이나 지침을 그대로 복사해서 옮겨 붙인 것이 대부분이다. 심한 경우는 학급교육과정에까지 이 편성의 기저라는 부분이 복사되어 그대로 덧붙여지는 경우도 많다.
교육과정이 법으로 정해져서 운영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 이런 교육과정 체제는 학자들의 논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연구자들은 보통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이 주제에 맞는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행연구를 검토하여 이론적 배경을 구축한다. 그래야만 탄탄한 연구의 축이 갖추어진다고 하니 이 이론적 배경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며 공을 들인다.
교육과정이 이런 연구논문의 틀을 굳이 따르는 이유는 아무래도 폼 내기 위함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23조 1항에서는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을 "학교는 교육과정을 폼 나는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해마다 도교육청에서 펴내는 교원업무경감계획에 따르면 "종이문서와 함께 전자문서로 이중 관리되고 있는 학교장 장부를 전자문서로 단일화하여 교사의 업무경감 및 예산 절감을 꾀하고자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육과정은 학교장 장부이다. 폼 내려고 두툼한 책을 만드느라 정성을 쏟을수록 나이스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한 법률과 이 지침을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 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된 교육과정을 꼭 만들어야겠다면 법적 기반과 상위기관 운영 방침 복사해서 붙이며 두툼하게 폼 내지 말고 단 한 쪽이라도 좋으니 '우리가 바라는 학교'를 실어보면 어떨까? 이것도 연구부장 혼자 멋진 말로 구상할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말이다.
4) 친절한 시수 편제
함박눈이 오는 날이면 한 시간쯤은 아이들과 눈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교사들이 많다. 그러면 이 한 시간의 시간 배당은 어떻게 할까? 좀 생뚱맞은 질문이지만 사실 이런 활동 계획을 담아내는 것이 교육과정이다. 아마 대부분 나이스 편제와 시간 배당은 손을 안 대고 반별시간표를 그대로 두고 한 시간 정도 자연 속에서 배움을 갖게 된다.
정작 실제 배움의 현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 시수에 교육부는 왜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몇 째 시간엔 뭐를 몇 차시로 가르치라고 친절해도 너무 친절하게 안내한다. 문제는 이 꼼꼼함을 학교도 배워서 유감없이 솜씨를 발휘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수를 학교교육과정에 몇 학년 뭐하는 데 몇 시간으로 정해버리니 학급 특색을 살린 교육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인데 창체를 일컬어 '교육과정의 꽃'이라고 하는 말이 현장교사에게 곱게 들리겠는가? 교육부도 시수 가지고 노는 숫자놀이 교육과정 좀 덜어내고 학교도 창체 시수마저 학교교육과정에서 너무 세세하게 안내해주는 과잉친절은 좀 덜어내면 안 될까? 규제 완화는 교육과정에서부터 필요한 것은 아닐까?
5. 교육과정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1) 다니고 싶은 학교를 상상하라
언젠가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는데 아들이 책 제목을 유심히 보더니 “아빠는 학교가 좋아?”하고 물었다.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있지”라고 대답을 했더니 “선생님이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데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라는 말을 했다. 아들은 웃고 있는데 내 머리에는 강한 충격이 왔다. 매일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는 왜 다니는지, 언제까지 학교를 다닐 것인지, 학교에 다니며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놀랐다.
학교는 왜 다니는 것일까? 언제까지 우리는 학교를 다닐까? 학교에 다니면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까지 기본 12년을 다니고 전문대학에서부터 대학원까지 포함하면 14년부터 많게는 20년 이상을 학교에 다닌다. 특히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이렇게 학교를 마치고도 신분이 바뀌어 30년을 또 학교를 다닌다.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는 어떤 학교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린이회의 시간에 찾아가 포스트잇을 한 장씩 나눠주고 각자 자기가 다니고 싶은 학교는 어떤 학교인지를 적어보게 하고 사연을 곁들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교육과정워크숍을 통해서 교직원들에게도 같은 사연을 들어보았다. 마찬가지로 연말에 교육과정평가회를 겸한 학부모간담회에서 학부모들의 사연도 들어보았다. 아래는 학교구성원들이 대답한 사연을 토대로 하여 유형별로 정리하여 학교교육의 목표를 도출한 우리가 다니고 싶은 학교의 모습이다.
배움이 즐거운 학교 |
| 가르침이 보람된 학교 |
• 닌텐도 학교 • 캠핑하는 학교 • 숙제 없는 학교 • 동물 키우는 학교 • 요리하는 특기학교 • 학생 수 적은 학교 • 인생 공부하는 학교 • 놀면서 공부하는 학교 • 현장체험학습 많이 하는 학교 • 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학교 |
| • 요리하는 학교 • 자유로운 학교 • 여행하는 학교 • 체육 있는 학교 • 교과서 없는 학교 • 춤 알려주는 학교 •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학교 •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학교 • 아이들 문제 공감하는 학교 • 착한 아이들이 많은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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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는 학교 |
| 사계절 행복한 학교 |
• 친절한 학교 • 칭찬 주고받는 학교 • 소통이 잘 되는 학교 • 함께 차 마시는 학교 • 아빠가 있는 천안학교 •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는 학교 •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학교 •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 나를 믿어주는 마음이 편안한 학교 • 입담 좋은 직원이 있는 재미있는 학교 |
| • 초능력 학교 • 라면 먹는 학교 • 공부 안하는 학교 • 괴롬힘 없는 학교 • 선생님 없는 학교 • 내 마음대로 하는 학교 • 평화롭고 재미있는 학교 • 꽃이 가득 피어있는 학교 • 웃으며 인사 나누는 학교 • 목공교실, 수영교실이 열리는 학교 |
2) 선택하라, 그리고 집중하라
“행사가 많다” 교육과정 평가회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다. 그래, 학교는 연중 행사의 연속이다. 교내 행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원되어야 하는 교육청 행사도 많다. 행사의 교육적 의미는 논외로 치더라도 연중 나열되는 행사로 학교가 늘 어수선하다. 양질의 행사를 선택하고 이를 집중 운영하면 이런 폐단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가 있다. 교육적 효과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교원의 업무 또한 경감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먼저 행사에 학교구성원의 성찰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보자.
1) 교육인 것
2) 교육이 아닌 것
3) 교육은 아니지만 해야 할 것
4) 교육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될 것
1년 동안 교사들이 해왔던 모든 활동들을 포스트잇에 적어본 다음 이를 위 네 가지 기준에 맞추어 분류해보자. 그런 다음 스티커 투표를 해 보자. 1)은 파란색을 붙이고, 2)와 4)는 빨간색을 붙이고 3)은 노란색을 붙이도록 하자.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사람의 생각이랑 대부분 비슷하다. 같은 일에 같은 색상의 스티커가 붙게 된다. 투표 결과에 따라 1)은 보장하고, 2)와 4)은 제거하고, 3)은 인정해주면 된다. 이런 논의 과정을 거치면 그 많은 학교행사들을 일정 정도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이렇게 선택을 했으면 집중이 필요하다. 남아있는 활동들을 주제중심으로 묶어 특정 기간을 설정하여 이런 행사들을 집중 운영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계절행복학교’라 이름 붙이고 이를 다시 계절별로 1주일 씩 행사주간을 선정하고 그 기간에만 행사를 하기로 하고, 학생에게는 책 가방 없이 등교하도록 안내했다. 더구나 이 기간에는 방과후학교도 운영하지 않으면서 학생에게 놀 틈과 생각할 틈을 주기로 했다. 기존에 개별 교사가 세우던 각각의 행사 계획은 일주일간의 공동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논의된 내용은 한 개의 문서로 간단히 정리하여 내부결재 문서를 만들었다. 현수막도 하나만 걸면 되니 예산도 절감되고, 공문도 줄게 되고, 교사공동체가 돈독해지고, 학생들의 교육만족도는 높아진다. 교사들의 협업을 통한 선택과 집중의 교육활동 운영은 학교의 변화를 가져온다.
3) 교육과정 워크숍, 교육을 이야기하라
"이런 워크숍 처음이야!"
교육과정워크숍이 끝나자 올 초에 우리 학교로 전입해 온 교사가 이런 말을 하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서로 할 얘기 다 하는 워크숍은 처음이에요."라고 말을 한다. 전입교사는 왜 이런 말을 한 걸까?
학교마다 12월이면 교육과정워크숍이란 이름으로 하루나 이틀 정도 직원여행을 겸하여 나들이를 간다. 물론 학교에서도 할 수 있으나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자는 취지이니 이렇게 여행과 어우러지면 더 맛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렇게 떠나는 여행에 말만 그럴싸하게 교육과정워크숍이라 붙이고 대부분 그저 관광에 그치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연구부가 아닌 친목회에서 이 행사를 주관하고는 했다. 이러다보니 여행의 추억은 담아오지만 정작 학교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반성에서 출발하여 학교 이야기를 나누는 교육과정 워크숍을 준비하면 된다. 딱 하나만 추가하면 된다. 바로 워크숍에서 나눌 이야깃거리이다.
4) 교육과정을 아이의 눈으로 써라
28쪽 학교교육과정이라 스템플러로 찝어두려 했지만 귀한 생각을 나눠준 아이들, 선생님들, 학부모님들께 선물을 드리려고 퇴근길에 복사집에 들러 몇 부를 묶었다. 2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만드느라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시간을 덜어내고 나니 28쪽짜리에는 사업(업무)이 아닌 교육이 남았다. 얇다보니 직원들이 문구 하나까지 같이 살펴 주었다. 참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얇은 학교교육과정에는 그래도 제법 얼개가 있다. 우아한 거짓말들 조금 덜어내고나니 이제 나머지는 삶으로 채워가려는마음이
여는 글 : 왕궁가족의 약속(1쪽) 1. 우리 학교를 소개합니다(1쪽) 2. 우리가 다니고 싶은 학교는 어떤 학교일까요?(1쪽) 3. 학교에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1쪽) 4. 왕궁교육의 짜임새는 튼튼해요(1쪽) 5.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요(9쪽) 6. 교과는 핵심을 놓치지 않아요(3쪽) 7.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깊어져요(1쪽) 8. 평가는 재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돕는 거예요(1쪽) 9. 방과후학교로 나를 채워요(1쪽) 10. (사업을 덜어내자는 취지로) 아이들과 교육이 중요해요(8쪽) |
생긴다.
5) 교육과정과 학교회계를 일치하라
학교회계는 업무 중심, 사업 중심으로 편성한다. 꼭 이래야만 할까? 업무가 아닌 수업, 학년, 교과 중심으로 예산 편성을 할 수는 없을까? 3월 한 달을 돌아보자. 각종 계획서 작성에 정신없는 때이지만 도서, 학습준비물, 환경 물품, 청소도구, 실험실습재료 등등 각 계에서 제출을 요구하는 서류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메신저를 통해 들어온다. 이러다보니 그 바쁜 3월에 마감 기한에 쫒겨 별다른 고민 없이 양식을 채워 담당 계로 회신을 하곤 한다.
이런 예산을 업무 담당교사에게 줄 것이 아니라 개별 교사에게 나누어주고 1년 동안 수업, 생활지도, 학급운영 등과 연관 지어 사용하게 하자. 효율적인 예산 집행은 예산 낭비도 막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더구나 이런 업무를 맡았던 담당교사가 없어지고 공동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고 하니 문제가 있다. 에듀파인 시스템에 업무 중심으로 사업자 코드만 널려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학년과 교과 중심의 예산 편성은 없다. 학교회계가 사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업과 연관 짓도록 하기 위해서는 에듀파인 시스템의 개선도 꼭 필요하다.
6) 계획과 실적 대신 공감을 기록하라
1년에 학교에서 몇 건의 공문서를 처리할까? 많아야 몇 백 건 정도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오산이다. 2013년 12월 3일자를 기준으로 업무포털 조회를 해보니 1년간 총 10,892건(접수문서 5,174, 생산문서 5,718건)에다 자료집계 810건을 더하니 11,702건이나 된다. 연말에 폭증하는 공문을 더하면 아마 12,000건은 쉽게 넘을 것 같다. 놀랍지 않은가? 이 문서들은 왜 만드는 걸까? 제출용 공문도 양과 종류가 많지만 내부결재용으로 만들어지는 공문도 차고 넘친다.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렇게 누군가가 만든 문서를 자신이 열람한 적이 과연 몇 건이나 되는가?
이 공문들의 대부분은 수량화한 계획과 실적들이다. 그 속에 학교구성원의 생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교육과정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서 기존에 어떻게 했는지 찾아보아도 결과는 자명하다. 거창한 목적과 방침에 이어 세부추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행선지와 일자는 남아있는데 그 속에서 구성원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결과는 남아있지가 않다.
교육과정도 이렇게 누구도 관심이 없는 계획과 수치들을 나열하는데 여념이 없다. 오히려 각종업무계획까지 내용에 포함시키다보니 정작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인데 눈치가 보여 공란으로 둘 수는 없으니 자꾸 불필요한 교육활동과 업무를 끼워넣게 되고 이에 따라 공문도 늘어간다.
엊그제 교육과정워크숍을 다녀온 과정과 그 속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교육과정워크숍에서 나누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내부결재를 올렸다. 누가 하라하지 않았지만 다음 이 자리에 올 누군가에게 우리들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애초에 교육과정이 이렇게 두툼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1년 학교살이가 담긴 학사일정에 수업 내용을 담아내는 정도였다. 교육과정은 이 정도면 된다. 자꾸 끼워 넣으려 하면 할수록 거짓을 꾸미게 된다. 계획과 실적이라는 꾸밈을 덜어내면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채워져서 삶이 있는 과정과 생각을 남기게 된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교육과정의 몫이다.
6. ‘여럿이 함께’, ‘따로 또 같이’, 교사공동체가 답이다.
누구나 교육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교육의 종류도 정말 많다. 정규 교과교육 이외에도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여 정말 많은 교육을 하면서도 왜 우리들은 삶은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많을까? 형복지수는 OECD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정녕 우리들의 교육 속에 삶이 있기는 한 것일까? 삶이 유리된 껍데기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 속에 삶을 담을 수는 없을까? 우리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의 ‘다시’ 전문
박노해는 이야기 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그렇다. 우리 주위에 함께 땀을 흘리고 있는 동료교사들이 바로 희망이다. 그들과 함께 힘을 모아 찾는 길을 분명 새 길이며 그런 사람은 이미 좋은 교사이다. 여럿이 함께, 따로 또 같이 부대끼며 공감을 키워갈 때 ‘가고 싶은 학교’,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교육과정 재구성’이 특정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와 미사여구로 두툼한 문서로 담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업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만남의 힘을 돋우는 것, 그것은 바로 교사학습공동체이다. 동학년 모임, 독서토론, 지역교사공동체, 교사연구동아리 등에 참여하며 공감력을 키워가는 것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 아래는 이를 지역차원에서 함께 실천하고 있는 희망교실네트워크의 운영 사례이다.
희망교실네트워크는 지역 차원의 동학년 모임을 꾸리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동료교사와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지역교사들이 함께 뜻을 모아 만든 지역교사공동체였다.
지역교사들과 함께 교실 문을 열고 [열린교실] 수업친구가 되어 함께 배우며 [배움교실] 교실문화를 나누며 성장하는 [나눔교실] 지역교사공동체이다. |
희망교실네트워크는? |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어울려 의견을 나누고 익숙해져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학교라는 곳이 여러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지만 한 울타리에서 무엇인가를 함께 하지 않으면 각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닫혀지내는 폐쇄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교실네트워크는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눈에 보이는 우리 학교와 우리 교실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에서 생활하시는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초등 교육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다리라고 말입니다.
함께 나누고 서로 엮어가면서 외롭고 위태로운 외나무다리가 아닌 여럿이 함께 놓아 튼튼한 다리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위 글은 지난해에 희망교실네트워크 활동에 참여한 어느 선생님이 보내온 글이다. 초보적인 수준의 지역교사공동체 활동이었지만 나 또한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맛보았다.
<희망교실네트워크 활동 내용>
여럿이 | 함께 | |
교실문화 나눔 | ‣ 지역차원의 자발적인 교사네트워크 구성 ∘30개 학교 60여명 참여 ∘주제별, 학년별 모임을 현장연수와 연계 ‣ 일상적인 수업과 교실문화 나눔 ∘주제별 이야기 모임 - 1학기 13모둠 13주제로 26회 운영(65명 참여) - 주제 이야기 자료집 발간(1학기 1회) ∘학년별 이야기 모임 - 2학기 7모둠 7주제로 2회 운영(55명 참여) | |
동학년 커뮤니티 | ‣ 학년․지역 특색에 맞는 교육과정 재구성 탐구 ∘학년별로 소모임 운영(7개 소모임) - 월 1회 정기적인 학년별 모임(총 10시간) ‣ 동학년 수업 나눔 ∘학년별로 2회 자발적인 일상수업 나눔(7개 소모임) - 동학년 커뮤니티 자료집 발간(2학기, 1회) | |
희망교실네트워크 워크숍 및 이야기 마당 개최 | ‣ 상반기, 하반기 워크숍 개최 ∘1학기 워크숍 - 학교혁신 주제 특강 및 1학기 운영 평가(1박 2일) - 모둠별 나누었던 주제 이야기 공감 ∘2학기 워크숍 - 교사의 성찰 및 교육과정 재구성 특강(1일) - 동학년 커뮤니티 공감 ‣ 희망교실 이야기 마당 개최(연말, 1회) ∘1년 운영 내용을 평가하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 |
삶이 담긴 교육이어야 외롭지 않고 공허하지 않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교단을 걸어갈 수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있던 숫자와 문서들을 내려놓고 다시 붙들어 보자. 예비교사 때부터 꿈꾸던 우리들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