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 칼럼: 모든 것에는 ‘관성’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관성,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의 방향성을 지속하려는 속성’을 말한다. 한 번 운동을 시작하고 그 맛에 빠진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운동을 지속하려한다. 그래서 그 더운 폭염에도 자전거를 끌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내가 그렇다.) 온 몸이 땀에 절여지고 숨이 턱까지 차는 데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험하고 싶은 관성 때문이다. 반대로 운동하지 않던 사람들은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산을 들어 움직이는 결단과 각오가 필요하다. 운동하려고 하면 운동하면 안 되는 백 가지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운동뿐만 아니다. 마음에도 관성이 있다. 한 번 우울해지기 시작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우울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쉽게 우울해지고, 또 그 기분에 갇혀서 잘 빠져 나오지도 못한다. 이것이 ‘심리적 관성’이다.
그러므로 이 관성을 잘 이용해야, 몸도 마음도 편해질 수 있다. 몸이 건강하려면 잘 먹고, 운동도 잘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서 그 좋은 관성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를 잊어버리거나 놓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그래야 육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한번 놓친 운동 관성은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늘 기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작은 일에도 기뻐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잘 웃는 사람이 항상 잘 웃는다. 웃지 못하는 사람은 웃을 일이 생겨도 그것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웃을 일이 있어야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웃을 일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 일 없어도, 웃자! 그러면 그 관성을 지키려고, 작은 일에도 웃고 행복하려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반대로 늘 짜증과 고통을 부적처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좋은 일도 가장 부정적으로 해석해버린다. ‘내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겠는가?’ ‘이 일이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영도 똑같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늘 삶에서 주님을 고백하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삶의 고통과 고난의 마디에서 항상 주님을 생각한다. 그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된다. 이미 그에게는 ‘영적 관성’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육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이런 귀하고 행복한 관성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