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수업료
조 나 영
음식을 문화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즐겼던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와 괴짜 화가 달리는 독특한 미식가였다는데, 바람둥이도 화가도 아닌 나는 맛을 즐기기보다는 몸에 좋다면 원정도 서슴지않는 편이다. 심각한 고통을 초래하는 질환에서 벗어나고 싶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노년에 이르러 보다 젊고 활기찬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다면 지금의 투자는 헛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조선시대 서민의 식사가 가장 이상적이었다는 학자도 있지만 외식할 때면 좋은 곳, 특이한 곳은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찾아다니곤 하는데 웃지못할 일도 더러 있다.
-민물장어-
자연산 민물장어를 사기 위해 새벽에 가락시장 단골집에 갔다. 양식은 색깔이 검고 자연산은 회색이다. 큼직한 그놈을 냄비에 넣어 뚜껑을 덮고 가스불을 켰다. 냄비가 달궈지기 시작하니 뚜껑을 들치고 뛰쳐나와 난리가 났다. 부엌바닥은 물론 온 마루를 휘저으며 도망을 다녔다. 그러다 소파 뒤에 숨어 버렸다. 배가 터지고 희끗희끗 껍질이 벗겨진 그놈을 비닐봉지로 막아 겨우 잡았다. 그 흉물스런 꼴이라니. 한 번 헹궈서 다시 냄비에 넣고 뚜껑 위에 무거운 대접을 올려놓았더니 잠자코 있었다. 몇 시간을 푹 고았다. 사골처럼 뽀얀 국물 한 공기 정도가 되게 만들어 단숨에 마셨다. 고단백과 기름 때문인지 다음날까지 배탈이 나서 혼났다.
-고로쇠액-
입춘 전후에 약효가 좋은 시기라고 해서, 친정 자매들이 모두 지리산 콘도에 모였다. 고로쇠액은 이뇨작용을 도와 위의 노폐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철분, 칼슘 등이 풍부하며 위장병, 고혈압에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3대째 내려오는 토박이 아저씨가 하루 전부터 나무에 링거처럼 수액줄을 꽂아놓고 새벽에 수거해 곧바로 배달해 주었다. 그것을 마시기 위해서 항아리를 방가운데 놓고 모두 빙 둘러 앉았다. 짠 걸 먹어야 많이 마시게 된다며 오징어와 굴비장아찌, 어란을 안주 삼았다. 설탕을 연하게 풀어 놓은 듯 나무 향이 밴 맛이 참 부드러웠다.
우린 배가 부르게 마시면서 백 원짜리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돌아가며 한 사발 들이키고 한마디 훈수드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몸에 좋다면 아무리 맛이 이상해도 먹는 나는 누구보다도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열심히 마셔댔다. 한 동이를 거의 비웠다. 남은 것은 식구들에게 먹이려고 물통에 담아왔다.
서울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답답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숨이 헐떡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쪼그리고 앉아 보았으나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언니가 불안해하며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환을 꺼내주며 먹으라고 했다. 그것을 먹고도 안 되어 이번에는 바늘로 손끝을 땄다. 고생고생하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
-약수-
분당 율동공원 바로 옆 친구네 농장에 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물을 떠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엔 약수가 나온다. 너무 열심히 떠 나르는 나에게 천년은 살겠다고 친구들이 놀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임에 나간 김에 물김치를 담그기 위해 떠온 물통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물통을 운전석 옆에 두고 뒷좌석에 앉았다. 그때였다. 차가 급커브를 돌면서 물통이 내동댕이쳐졌다. 출입문에 꽝하고 부딪쳐서 그만 유리에 금이 가고 말았다. 내가 정장차림을 한 탓인지 그 모양에 웬물통이냐는 듯 탈 때부터 흘끔흘끔 쳐다보던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되었다. 부끄럽고 무안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기사에게 걸어갔다. “종점에 가서 이야기하죠” 그에게 조용히 말하고 물통을 집어들어 옆에 갖다 놓고 앉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걸. 유리 값이 비쌀 텐데 라고 생각하니 속이 탔다. 유리 값은 과연 거금 8만원이었다.
-오리피, 염소피-
지금처럼 먹기 좋게 팩으로 만드는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진짜 흑염소를 구하려고 아는 집에 어머니와 함께 갔다. 그 집에서 직접 흑염소를 잡아 살코기는 약초를 넣고 고아서 가지고 왔다. 주인이 시킨 대로 염소의 목에서 피를 받아 굳지 않도록 활명수를 타서 얼른마셨다. 몸이 약한 어머니가 마시니 맛도 모르고 그저 엉겁결에 나도 따라 마신 것이다. 피라서 그런지 토할듯 속이 울렁거렸다. 한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가끔은 오리피, 사슴피도 마셨는데 기생충과 벌레가 득실거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보신탕-
결혼 전, 직장동료들이 산에서 가마솥을 걸고 황구를 잡아 보신탕 파티를 했다. 남자들 10여 명에 여자는 나 혼자였다. 껍질만 골라 들깨 양념만 듬뿍 묻혔더니 먹을만했다. 그 뒤, 통일로 가는 길목의 잘한다는 집까지 찾아가 몇 번 먹어 보았다.
올 여름 말복에 식구들과 청계산 근처 숲 속에 있는 사철탕 집에 갔다. 그 많은 방이 사람들로 가득 차, 마루에서 소고기보다 배 이상 비싼 수육껍질 몇 점을 먹었다. 옆자리 손님들은 소주와 곁들여 먹는데 우리는 내가 담근 독한 매실주를 곁들였다. 술 한 잔에 수육 껍질 한 점인데 다섯 점을 먹고 나니 취해서 비틀비틀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애를 먹었다.
-옥수수-
여름방학 직전의 교생실습 때였다. 음악 공개수업인데 그날 부를 노래는 <옥수수 하모니카>였다. 수업자료로 쓰려고 전날 밤에 삶아 둔 옥수수 다섯 개를 비닐에 싸가지고 출근했다.
냉장고가 없던 때 날씨는 찌는 듯이 무더웠다. 2교시부터 어디선가 쉰 냄새가 온 교실에 진동했다. 내 가방을 열자마자 옥수수 썩은 냄새가 독까스처럼 확 끼쳤다. 얼른 쓰레기통에 버리고 확대 악보만 칠판에 걸어놓고 허둥지둥 수업을 마쳤다.
찐옥수수에는 심장병과 암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 항산화(抗酸化)) 물질이 듬뿍 들어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새벽 도매시장에서 대학찰옥수수를 자루로 사와 한꺼번에 너댓개씩 먹는다. 옥수수는 그날 딴 것이 부드럽다. 꼭지가 마르지 않고 파랗고 연해야 좋다. 온도에 민감해 즉시 삶아 냉동실에 보관했다 다시 쪄먹는다. 한 자루를 다용도실에 두고 먹을 때마다 삶았더니, 아무리 오래 쪄도 딱딱하고 맛이 없어져 몇 날을 말려 팝콘처럼 튀겨보았지만 타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튀밥으로 만들어 나눠 먹었다. 10월에 사온 것은 100% 끝물 강원도 찰옥수수다.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중간크기의 가장 맛있는 것들이 지금 냉동칸에 가득 차있다. 내년까지 먹을 것이다.
훔친오리, 낙타의 등고기, 모기눈알튀김, 물고기 100마리 수염으로 만든 요리, 샤토 페트뤼스(Petrus)와인 등 미식가를 위한 것들이 있다고 하나, 건강은 자기의 생활습관에 달렸다. 자연과의 친화력을 높일 수 있게 등푸른 생선, 제철에 나온 야채와 신선한 과일을 많이 먹고, 밥을 적게 먹으며 운동을 해야겠다.
한의학 교과서 중의 하나인 <<황제내경>>에서도 건강을 지키는 비결로 계절에 따른 변화에 잘 적응하고, 몸에 해로운 6가지 기운 풍(風), 한(寒), 습(濕), 조(燥), 서(暑). 화(火)를 피하여 자연의 이치에 잘 따르며, 음식을 섭취함에 절도가 있도록 하고, 지나친 감정의 치우침을 피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병장수와 노화방지는 누구나의 희망사항이다. 나는 적당히, 균형 있게,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을 비싼 수업료를 내가며 깨달은 셈이다. 작은 실수는 예방주사와도 같다니, 시행착오는 결코 낭비가 아니다.
첫댓글 쉽게 보이기 위해소 놂겨 놓으니 양해하세요. 선악이 개오사 곧 선과 악이 다 나의 스승이니 수험료가 바싸도 그게 인생수업이지요.
'종점에 가서 이야기 하죠' ㅎㅎㅎ 반장님 답습니다. 그래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저도 장어구이며 보신탕 등등 가리지 않고 먹는답니다. 갑자기 장어구이가 먹고 싶어지네요. 쩝...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나느데요.....어디서 봤을까요?!
오랜만이네요. 미국생활에 익숙해졌는지? 외국 생활에서 1년이라도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나는 갓난애 때문에 아기 보느라고 그쪽 생활만 배워왔지요. 한양수필을 고맙게도 열심히 읽으셨네요.
하하하하~~~~~~<민물장어----그 흉물스런 꼴이라니. >,<고로쇠액----고생고생하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 <약수----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기사에게 걸어갔다. “종점에 가서 이야기하죠” 그에게 조용히 말하고 물통을 집어들어 옆에 갖다 놓고 앉았다.><보신탕----껍질만 골라 들깨 양념만 듬뿍 묻혔더니 먹을만했다. ><옥수수----2교시부터 어디선가 쉰 냄새가 온 교실에 진동했다>--------------<작은 실수는 예방주사와도 같다니, 시행착오는 결코 낭비가 아니다>---------오우~~~GOOD~~~~ㅎ
하이고! 우리 반장님 몸은 날씬해가지고설랑 자시는 것은 엄청 잘 자시나봐유. 글 재미나게 잘 읽고 한참을 웃다 갑니다.
60kg을 날씬하다니 감사할뿐이지요. 몇달만에 얼굴보겠네요.(목요일)
보신탕도 하시나요. 깜짝, 강남 포스코빌딩 근처에 "안동댁"이라고 기찬데요. 나중에 귀띰이라도, 아니면 함께.. 하하하
요즘은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세균덩어리에 마이신을 대량 먹인다기에 안먹습니다만 미용에 좋다면 지렁이까지도 먹었으니까요. 영동전화국 뒤에도 잘하는 집이있어요. 날잡아서 문창반원들과 함께 안동댁에 가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