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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아프리카 5개국 문학기행
일시:2008년 4월 10일 목요일~4월 23일 수요일 12박 14일
여행 국가: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아프리카 남아공
2008년 4월 10일 목요일 인천, 홍콩
인천공항 출발, 홍콩공항 도착, 홍콩공항 출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
* 인천공항 출발
집에서 오후 1시 30분에 콜택시로 나왔다. 내일 오후 2시경(한국시간) 남아공에 도착한다. 24시간을 상공에서 보내는 셈이다.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13시간 20분 소요된다. 남아공 시간으로 4월 11일 내일 아침 오전 7시 20분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 예정이다. 저녁과 아침 두 끼를 기내식으로 한다.
이번 여행은 깊은 의미가 있다. 내가 다녀온 지구상의 길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영국, 캐나다까지 날아다녔는데 이제 그 반대편 하늘길을 날아가는 것이다. 즉 지구를 한바퀴 완전히 도는 것이다. 행복하고 보람된 여정이다.
인천공항에서 하나투어 최준영 가이드를 만났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미리 강조한다. 홍콩에서 남아공 비행기로 환승할 때 시간이 없으니 기내에서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짐은 남아공에서 찾는다. 마일리지 적립은 한국에 와서 한다. 짐꼬리표, 출입국표 등 한 장도 버리면 안 된다. 아르헨티나는 입국표가 없으면 100불을 내야 한다. 남미는 시스템 미비로 개별 탁송이며 비행기표 좌석이 모두 분산된다. 부부가 항상 함께 움직여야 수속이 빠르다. 비행기 내리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에 가야 한다. 남아공에서 남미까지는 비행시간 10시간이다. 짐검사시 청색은 통과, 적색은 검열 대상이다. 먼 여행길이기에 모두들 신중히 듣고 기억시킨다.
오후 7시 55분 아시아나 홍콩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좌석은 33A, 남편은 33B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723 아시아나 항공은 정시에 이륙했다. 홍콩과 한국의 시차는 1시간, 한국은 지금 오후 8시인데 홍콩은 오후 7시라고 기내 모니터에 뜬다.
홍콩까지는 3시간 50분 소요다. 22시 35분에 도착하여 23시 50분 SA 항공으로 밤새 남아공으로 간다. 장엄한 비행이다.
* 홍콩공항 도착
밤 10시 50분, 홍콩 시가지 야경이 들어온다. 기장은 잠시 후 도착한다고 방송한다. 밤하늘 무수한 별만 보다가 홍콩의 화려한 불빛에 황홀하다. 갖가지 적색, 초록, 청색 등 네온사인 불빛이 화사하다.
거대한 구름층을 뚫고 고도가 점점 낮아진다. 내리면 바삐 움직여 23시 50분의 요하네스버그행으로 환승 탑승해야 한다.
공항 안내원이 나와 입출국데스크로 인도해주어 쉽게 수속했다. South African Airways, 즉 남아프리카 항공으로 환승하기 위해서다. 북경, 향포(홍콩) 한문 글씨가 보인다.
홍콩 공항은 인천 공항보다 낡고 어둡다. 3A 항공은 아시아나 항공 제휴사로 마일리지가 아시아나로 적립된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1600마일,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6500마일, 그것만도 총 8100마일이다. 왕복이면 16200 마일이다. 또 요하네스버그에서 브라질 갈 때 SA 항공이면 더 늘어난다. 총 합하여 23000마일 적립 예정이다. 원래는 공항 곳곳에서 적립해야 하는데 노련한 최준영 실장이 한국에서 모두 신고하여 우리 일행 21명은 항공표만 잘 보관하여 한국에 돌아가 인천공항에서 한 번에 적립하면 된다.
홍콩공항 경유도 의미있다. 이곳이 어디인가. 영국이 지배했던 중국 땅, 그래서일까. 중국보다 유럽 향기가 난다.
* 홍콩공항 출발
SA 항공에 탑승했다. 26게이트에서다. 공항천정이 웅장하다. 영국 지배시 이룬 느낌이 온다.
기내에 오르자 2,4,2명 좌석 배치 중 나는 73K, 남편은 73F 우리 일행이라서 나란히 창가 73H, 73K로 바꿔 앉았다.
3A 항공 직원이 모두 흑인이다. 아프리카 항공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눈 안대와 칫솔, 치약이 든 주머니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요하네스버그까지 긴 여정의 13시간 20분 밤비행이라서 잠을 자며 가란 뜻이다. 밤새 날아서 내일 새벽 7시 20분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다. 정말 자야 한다. 곧바로 사파리 동물원 관람을 시작하는 낮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흑인 남자 직원은 모기약인 듯 스프레이로 짐칸 쪽 양켠에 약을 분사하며 지나간다. 냄새가 내려온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베푸는 일상일 것이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는 그렇게 신기한 것들이 있다.
홍콩은 HKG, 요하네스버그는 JNB로 의자 등받이에 붙은 모니터 자막에 뜬다. HKG에서 JNB로 가는 항공노선에 비행기가 있다. 이륙하고자 활주로로 이동한다. 긴 날개가 창공으로 솟자, 어둠 속에서 홍콩 야경이 전개된다.
TV에서 보던 그 해변가의 고층건물과 즐비한 해안의 건물들 야경이 황홀하다. 홍콩공항도 상당히 크고 발달되어 있다. 드넓은 활주로와 격납고가 웅장하다. 모두 영국이 이룬 소산이리라.
*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
기내시설이 좋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날개도 아주 길다. 타이완과 필리핀을 지나 베트남과 태국을 지나 날아간다. 개인별로 볼 수 있는 눈 앞의 모니터에 항공로가 뜬다. 창 밖은 캄캄하다. 바다를 지날 때면 고기잡이 배인 듯 불빛이 군데군데 떠 있다.
흑인 남자가 쥬스와 물을 서빙한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전등불이 꺼지고 잠을 청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손을 감싸고, 이불을 덮고 불편한 자리지만 곱게 잤다.
한잠 자고는 ‘P.S I love you' 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어로 나온다. 두 남녀가 싸우다가 아름다운 포옹으로 사랑의 꼬리표를 단다. 한국의 성악가 조수미의 성악곡을 들었다. 뮤직코너에 우리 대한의 여인 조수미 음악이 삽입되어 있다니 큰 감격이다. 그녀의 개인적인 실력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높은 위상이다.
그 외 모니터 자막에는 계속 비행기 길과 남은 거리, 밤 하늘의 지역 등이 뜬다. 아프리카의 비행기 SA 항공은 상당히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간간이 기내를 돌며 몸을 풀었다. 참으로 긴 비행이다.
2008년 4월 11일 금요일 아프리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아프리카의 여명,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공항 도착, 아프리카 여행 주의사항, 남아공의 수도, 경제도시 요하네스버그, 남아공의 한국교민,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흑인 대통령 만델라, 흑인의 한계, 아프리카의 미국 남아공,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남아공의 날씨와 농사, 하얀 언덕산 금광, 사파리 투어, 사파리 투어장, 남아공의 역사, 드넓은 땅, 전쟁기념 박물관, 프리토리아 시가지, 프리토리아 교외광장, 프리토리아 가로수 자카란다, 남아공의 미니 축구장, 남아공의 자동차, 대통령 집무실 유니온궁 빌딩, 요하네스버그 호텔 투숙
* 아프리카의 여명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 한국시간으로 낮 12시, 하늘에 빛이 고인다. 동녘에서부터 내 조국 하늘을 열고, 태양은 힘차게 달려와 아프리카를 연다. 힘찬 여명이다.
밤새 고단한 날개로 달려온 비행기인데 창공을 향해 뻗은 비상의 날개가 위대하다. 바다, 태평양을 건너 이제 아프리카 땅 위로 진입한다. 지상에는 초지와 산, 강이 보이고 그 위로 흰 구름이 떠 있다.
기내 조식이 6시에 나왔다. 스파게티와 빵, 요플레, 쥬스, 파인애플, 수박 등이다. 맛있게 먹고,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고 오늘의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했다. 힘찬 출발이다.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공항 도착
기장의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온다. 오전 7시다. 요하네스버그의 지상은 아까보다는 훨씬 삶의 흔적이 보인다. 잘 일군 토지와 산악지대, 강이 겸해 있다. 뭉쳐진 시가지도 보인다. 고도는 점점 낮아진다.
구름밭이 장관이다. 구름 사이로 큰 호수도 보인다. 지구 끝의 지평선과 창공이 아름답다. 참으로 예쁜 땅이다. 집도, 들녘도, 초지도, 조각조각 곱게 전개된다.
오전 7시 25분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17년차 이민 동포 가이드 여인을 만났다. 입국 수속은 쉽다. 화창한 날씨다. 현재 온도 17도 쾌적하다.
* 아프리카 여행 주의사항
곧바로 사파리 투어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1시간 소요된다. 사파리 투어 후 중식을 하고, 프레토리아,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호텔에 투숙하는 일정이다. 버스 안에서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주의 사항을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느긋하다. 우리도 함께 느긋해야 한다. 행정이 아직 미비하여 옛날 중국과 유사하다. 마음을 내려놓고 다녀야 한다. 일행에서 떨어졌다 하여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는 낯선 땅이다. 까만 피부의 이방인이 신기하다. 그러나 남아공은 문화수준이 외견상으로 상당히 높여보인다. 발달이 잘 된 땅이다. 베아뜨리체, 예쁜 이름의 가이드 교민 여인이 더욱 우리에게 편안하게 이끈다.
* 남아공의 수도
예쁜 나라다. 요하네스버그가 중심이지만 케이프타운이 꽃이다. 지금 이곳 요하네스버그 땅은 해발 1800m 고지다. 햇볕이 나오면 아주 따갑다. 태양과 아주 가까운 나라다. 습도가 없다. 남한의 11배 크기다. 기후가 지역마다 다 다르다.
남아공의 수도는 세 군데 있다.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 입법 수도인 케이프타운, 사법수도인 블룸폰테인, 이렇게 세 개의 수도가 있다. 삼권 분립이 철저하다.
대통령도 1년 중 6개월은 행정본부인 프리토리아에 머물고 6개월은 입법 중심인 케이프타운에 출장가서 일한다. 수도가 세 개라는 것도, 대통령이 이동하여 집무를 보는 것도 신기한 이야기다.
* 경제도시 요하네스버그
수도는 아니지만 경제 활동이 활발한 도시는 요하네스버그다 경제도시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더욱 풍요롭다. 7개 지역의 금광에서 450개의 금맥이 흐르고 있다.
남아프리카는 금이 유명하다. 금생산 세계 5위 국가다. 다이아몬드도 세계 5위 생산국이다. 프라토리움도, 석탄도 굴착기로 파낸다. 인구는 남한과 동일한 4700만명이다. 광물 축복을 받은 나라다.
지금 공항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외곽도로에는 주택이 많다. 눈 앞에 전개되는 다운타운에는 고층빌딩도 많다. 센톤이라는 곳에 기업본사건물이 많다. 백인 부자가 사는 도시다. 10%가 백인, 90%가 흑인인데 부자는 거의 백인이다.
예쁜 나라, 예쁜 도시다. 건물도 예쁘고, 사람의 손으로 일군 흔적이 진하게 보인다. 우중층한 도시가 결코 아니다. 이집트의 카이로와는 또 다른 향기다. 아프리카 대륙이라 하여 조금은 어두운 땅으로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유럽의 한 도시에 온 느낌이다.
집 안에 수영장은 기본이다. 테니스장까지 있다. 식모는 기본이 세 명이다. 청소, 밥 당번, 정원사 이렇게 분리하여 일한다. 집을 크게 짓는다. 일하는 사람 방까지, 방이 많다. 인건비가 싸서 있는 자는 살기 좋다. 경제가 발전한 도시의 양면성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 또한 이 나라, 이 도시의 몫이리라.
* 남아공의 한국 교민
남아공에 한국 교민이 3천명 산다. 대사관에서 보호해 준다. 이곳에서 살며 가장 두려운 것은 치안이다. 신고만 하면 총기 소유가 가능한 나라다. ‘싸울래?’ 하면 금방 총살로 사망자가 눕는 국가다. 도둑도 총 들고 들어온다.
한국 교민들도 큰 집에서 살다가 너무나 많이 당했다. 동양인은 큰 타켓이다. 돈이 많으며, 현금을 지니고 다닌다 하여 범죄의 표적이다. 행동과 몸가짐을 조심해야겠다는 대목이다.
가이드 여인은 남편이 근무하는 해운 회사에서 왔다고 한다. 두 아이는 고교까지 여기서 마치고 지금은 한국의 대학에 가 있는데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갈 거란다. 영어국가여서 어릴 적에 이민 온 연유로 영어를 완벽하게 소화했단다. 어떤 모습이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 동포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남아공은 10%의 백인이 90%의 흑인을 부리고 산다. 노예처럼 부리고, 착취당하는 곳이다. 문득 소설 같은 착각이 들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흑인과 백인은 사는 곳도 다르다. 알렉산드리아 주택지는 흑인들의 집단 거주지다. 그곳에 함부로 들어가면 죽는다.
저 멀리 보이는 부자들의 높은 백인 소유의 빌딩과는 천지 차이다. 어쩌겠는가. 생존 경쟁에서 우위의 집단과 아래의 집단은 다른 것을. 피부색도 서러운데 삶까지 서럽다는 대목에서 서늘하다.
* 흑인 대통령 만델라
남아공을 세운 자다. 지금은 90세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흑인에게는 위대한 대통령이다. 남아공은 1930년대 흑인과 백인이 대립되었다. 그 당시 더클락 대통령은 수감자 만델라와 타협했다. 만델라를 풀어 주었다. 그 전까지는 흑인에게는 투표권도 없었다.
이웃나라 짐바브웨는 30년 독재다. 투표했는데 열지 않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부탁했다. 무가베가 독재 통치 중이다. 무가베가 백인을 추방했는데 흑인들이 효율적인 자본력이나, 효율적인 농사를 잇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생활해온 원인으로 엉망인 나라다. 심지어 물과 전기가 끊겨, 물없는 곳은 죽음에 가깝다.
그러나 남아공은 레인보우 컨트리, 무지개 나라다. 만델라가 그렇게 백인과 약속하고 출범했다. 그래도 백인이 불안해한다. 탱크 막고 야단이었는데 유혈사태없이 1994년에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탄생했다. 그제서야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7년간 백인 대통령 더클락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그 동안 흑인에게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식했다. 흑인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이끌어 갈 수 없다. 그래서 서서히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학 정원 중 25%를 흑인 먼저 뽑고, 75%를 흑인과 백인 경쟁시켜 뽑았다. 또한 51%의 흑인 지분 회사만 지원해 주었다.
만델라의 그런 정책으로 1998년부터 2008년 지금까지 경제, 정치, 교육 면에서 상당히 안정적이다. 이곳 백인은 유럽계 다민종이다. 만델라, 먼 곳에서만 바라보았던 그가, 흑인과 백인이 동시에 어울려 살 수 있는 무지개 나라에서 그의 위대한 업적을 본다. 평온하고, 화사하고, 행복이 드리운 나라다.
* 흑인의 한계
현재 대통령은 움베키다.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흑인 대통령이 들어왔어도 그 시스템 그대로 유지된 것은 글로벌 인재를 키워서다. 똑똑한 자는 캐나다와 유럽으로 유학보낸다. 고위층은 모두 흑인이다. 중간층은 백인이고, 하층계급은 흑인이다. 외국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를 모두 불러들여서 고위직에 심었다. 가이드는 말한다. 독립 운동을 한 것은 한국과 동일한데 한국은 그 관리를 이 나라만큼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아공은 지금 약간 문제다. 백인은 미리미리 내다보고 일하는데 흑인은 백인이 해놓은 것 빼먹고 산다. 그래서 걱정이다. 옛날에는 백인만 전기를 사용하고 흑인은 갈탄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흑인도 전기를 쓴다. 문제는 발전소를 증가시킨다 해놓고 약속을 안 지켜 전기가 부족하다. 1일 2시간 전기 공급을 중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원자력 발전소 입찰공고했는데 한국 외 4개국이 입찰했다. 2010년에 월드컵인데 문제다. 호텔, 전기, 교통이 문제다. FIFA에서 물으면 다 고치겠다고 하는데 잘 개선되지 않는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이 세 나라는 럭비 싸움이 잦다. 이것은 흑인 문제가 아니고 어느 국가든 이웃 국가간의 마찰을 보는 동일한 역사다.
흑인의 한계가 차츰 드러나고 있다. 시스템은 영국 수준인데 일하는 자가 흑인인 관계로 시스템이 좋아도 잘 유지되지 않는다. 인부들이 게으르다. 그것이 흑인이 넘기 어려운 벽이다.
* 아프리카의 미국 남아공
아프리카의 미국이 남아공이다. 2010년 월드컵 예정국으로 건설붐이 일고 있다. 훠웨이즈 마을에 주택 단지가 늘어났다. 도로는 그대로면서 집만 늘어 교통이 막힌다. 우리의 버스가 지날 때도 서행이었다.
내가 생각한 아프리카는 정녕 아니다. 가끔씩 드넓은 초지가 보일 때면 인정되지만 도심 가까이 오면 건물도, 사람들도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특히 남아공은 백인이 일구어 놓은 화사한 국가다.
*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우리 여행 그룹은 행운이란다. 여행 가방을 분실하는 예가 다반사인데 우리는 모두 짐을 잘 찾았다. 얼마전 심장병 환자의 약가방이 공항에서 분실되어 가는 날까지 못 찾았단다. 결국 그의 딸이 다시 약을 가지고 와서 겨우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가방을 풀어 한국인의 핸드폰을 꺼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 가방에 모르는 짐이 들어 있기도 하고, 이것이 아프리카란다.
물건을 빼앗으려는 것보다 팁을 얻으려고 승객을 붙들곤 한다. 우리 일행 한 팀도 늦게 나왔다. 먹을 것을 싸 왔는데 기미를 알아채고 공항수색대가 붙잡은 것이다. 멸치, 순대를 좋아하는 흑인들이 그런 짐인 듯 싶으면 붙들고 돈을 요구한다. 뇌물을 주면 쉽게 통과시킨다.
이런 일은 나도 겪었다. 입국할 때도 일행 줄을 놓치면 이유없이 붙들어 놓곤 했다. 하나투어 가이드가 오면 그때서야 가라는 것이다. 만델라가 흑인을 깨우치고 남아공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까만 피부의 숱한 백성들은 허술한 면이 많다. 결론은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다.
* 남아공의 날씨와 농사
가장 추운 겨울이 영하 1도-영하 2도다. 여름에는 30도 이상이다. 그래서 과일이 풍부하고 먹거리가 많다. 물이 깨끗하여 태고수다. 수돗물도 그냥 먹는다. 강이 깨끗하여서 그렇다.
차창 밖에는 빈 땅이 많다. 간간이 도시가 보이지만 초지가 많다. 하늘에서 보면 농사짓는 땅은 원형이다. 그 이유는 농지 가운데에 스프링클러를 장치하고 농사짓기 때문이다.
여름에만 비가 온다. 겨울에는 가뭄지역이다. 밀이 주식이다. 언덕에 집짓고 살며 밀농사를 짓곤 한다. 아직도 노는 땅이 많다. 개인소유인데도 농사를 못 짓는 것은 물이 없어 스프링클러를 장치해야 되는데 그 시설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들녘은 대부분 풀이 나부끼는 초지다. 날씨에 의해서 노는 땅들이 나의 눈에는 아깝고 안쓰러웠다.
* 하얀 언덕산 금광
하얀 언덕산이 금광이란다. 약품을 뿌려서 그렇다. 저 하얀 흙 안에 금과 우라늄이 있다. 일본인들이 사 가지고 캐 갔는데 이제는 안 팔고 자기들이 생산하고 있다. 이런 하얀 언덕산 금광은 버스에서도 보이지만 비행기가 이착륙할 무렵에 남아공에서 종종 보이곤 했다.
자동차 비생산국이다. 전량 수입이다. 한국 대우차가 한때 왕성했는데 대우차와 관련된 사람이 총살된 적이 있다. 이것이 금광과 연관은 아니지만 골고루 분포된 산업이 아닌데서 파생되는 불행이다. 땅 어느 곳이든 금이 매장되어 있다니 분명 그것은 축복받은 나라다.
* 사파리 투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여 맨 처음 관람한 곳이다. 공항에서 이곳까지 오며 아프리카에 대하여, 남아공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며 왔다.
드넓은 초지가 전개되고 정문을 통과한 버스는 또 한동안 초지 위로 달려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힘찬 진입에 박수쳤다. 마중 나온 사파리투어차량에 옮겨탔다. 2대에 나누어 탔다. 수직의 사다리를 밟고 오르며 지붕도 창문도 없는 높은 차다.
이 차는 길이 따로 없다. 초지 위도 마음껏 달리는 괴력이다. 푸른 초지 위에서 맨 처음 만난 동물은 기린이다. 몇 마리가 나무 아래에 서성이며 외객을 배웅하듯 처연히 바라본다. TV에서 보던 명자연이 지금 눈 앞에 있음에 사람들은 환호성이다.
이제 시작이란다. 그랬다. 사자, 새, 코뿔소, 사나운 사슴, 버팔로, 가이젤, 누우, 가이젤과 누우들 집단 등등 진풍경이 전개되고 있었다. 초지와 하늘의 흰 구름이 장관이다. 얼룩만 떼들이 평화롭게 거닐고, 이것은 동물에게만이 아닌 사람에게도 지상 천국이다.
물가에는 물새가 노닌다. 하마를 보러 호수에 갔는데 그 시간에 잠수해서 꼬물거리는 물결만 보았다. 행복한 동물이다. 행복한 나라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초원이다. 차가 달리는 도로는 포장을 해두어 동물 곁을 지나고 나면 신나게 달린다.
광활한 땅에서 사는 동물들이 평화롭다. 동물을 보는 것도 장관이지만 드넓은 초지, 동물에게 허락한 무한한 영토를 잠시나마 공부한 점이 감격이다. 행복한 목숨과의 상면을 나는 잊지 못하리라. 내일은 새벽 5시 30분에 공항에 간다는데 귀에 들리지 않는다.
순진한 눈으로 바라보던 모습도, 개구쟁이처럼 달아나던 모습도 열광적인 행보로 언덕을 행진하던 버팔로 떼들도, 모두 장엄한 영상으로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존재하리라. 물 속에 잠수한 하마가 나오지 않기에 ‘팁을 주어야 나올까’, 이 나라는 팁을 좋아하는 나라라 하니 그리 말하였더니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사파리 투어장 안에 캠핑카도 와서 쉰다. 자가용이 캠핑카를 끌고 들어간다. 우리가 칸 짚차에 비하면 가냘프지만 모두 평화다. 하늘빛도, 공기도, 구름까지도, 순수한 곳에서 동물과 호흡한 것은 더욱 뜨거운 평화다.
* 사파리 투어장 중식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그 안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뷔페식으로 메뉴가 좋다. 쇠고기를 구워서 즉석에서 썰어준다. 밀빵, 야채 등등으로 푸짐한 식사를 했다.
집의 지붕이 갈대잎이다. 자연 밀림 속의 환경을 그대로 살려서 지었다. 밀이 주식인 나라에서 밀 음식이 많다. 분위기 좋은 집의 현지 식사다. 화장지 한 장도 붉고, 푸른 색상으로 튤립처럼 장식해 놨다. 바깥에는 사파리와 연결되는 곳이다. 작은 원숭이도 보이고 멀리 줄폭포도 보인다. 의미있는 곳의 인상 깊은 중식이다.
* 남아공의 역사
적도에서 아래로 23.5도에 위치한 나라다. 우리나라와는 반대 위치이며 우리가 선 이 땅 자체가 고산지대다. 대서양을 타고 외인이 가장 먼저 온 곳이 케이프 타운이다. 배타고 들어와서 맨 처음 부른 이름이 최남서단의 희망봉이다.
백인들이 와서 보니 흑인들이 살았다. 원주민 흑인과 백인 간에 이질감이 생겼다. 물물교환하며 살았다. 그들은 다시 뉴질랜드로 갔다. 케이프타운을 상업거래지 중심으로 여러 민종이 섞여 살았다. 그렇게 섞여 살기 싫어서 프리토리아 인들은 모잠비크로 도주했다. 모잠비크에는 포르투갈 인종이 살다가 네덜란드인이 거주했다.
그 후 영국인이 군인들을 데리고 넘어왔다. 원주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담장치고 세금을 거두며 살았다. 그래서 케이프타운이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이 군림하던 영토가 되버렸다.
네덜란드계 농부들이 개척자로 내륙에 침투했다. 그 대행진 행렬을 흑인들이 이상하게 보고 서로 공격 또는 협상했다. 영국인이 보니까 네덜란드인들이 안 돌아와 가 보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쫓고, 또 네덜란드는 북쪽으로 올라가고, 그곳이 바로 요하네스버그다. 그땐 황무지였다.
영국인이 와서 샌드조약을 맺었다. 계속 쫓아다니며 협상을 요구했다. 금이 나오면 싸웠다. 이것이 아프리카 최초의 제1차 전쟁이다. 사우스 아프리카의 보우앵글로 전쟁이라 부른다. 보우는 네덜란드인, 앵글로는 영국인이다.
영국이 다시 사우스 아프리카 군대를 데리고 와서 협상하여 두 나라가 세운 것이 바로 유니온 아프리카다. ‘유니온 오브 사우스 아프리카’ 다. 즉 ‘하나의 남 아프리카’ 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가는 박물관에 그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이 나라 공식언어가 11개다. 영어와 네덜란드 계의 아프리칸스 외 많다.
항상 적은 이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과 슬픈 역사가 얽혀있듯이, 남아공은 영국과 네덜란드와 슬픈 역사가 얽혀있지 않은다. 그러면서 떠나고, 떠나면서 발전하고 그런 가운데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세계 역사가 아닌가 싶다.
* 드넓은 땅
땅이 넓어서 쇼핑센터가 옆으로 퍼져 있다. 땅은 개인 소유와 국유지인데 분할 할당하기도 한다. 흑인들에게 깡통집 지어주고 분할상환을 요구한다. 불쌍한 흑인들의 깡통집들이 도로변에 즐비하다. 흑인들은 한 곳에 정착하여 산다. 한국의 포항 같은 도시인데 바로 더반이다. 그곳에서 날씨가 따뜻하여 사탕수수 3모작으로 산다.
원주민이 흑인인데 주권을 잃고 깡통집, 그야말로 깡통모양의 협소하고 볼품없는 공간에서 산다는 것이 안타깝다. 공동묘지가 마을에 함께 있다. 박물관에 가면서 그런 풍경을 보았다. 타이타닉호 모양으로 지은 통신대학은 23만명인데 전 세계인이 온다. 드넓은 땅을 소유한 나라이기에 이색 풍물들이 많다.
* 전쟁기념 박물관
한국의 독립 기념관인데 사원 느낌이 든다. 걸어 들어가서 관람했다. 입구에 여자와 아이들의 전쟁 희생을 상징하는 동상이 있다. 당시의 거친 환경을 드러내는 누우의 부조상도 있다.
실내에 들어서니 피의 관 전쟁을 전시해 두었다. 둥글게 구멍이 뚫려 있고 원 아래의 줄리족 관이 있다. 12월 16일이면 지붕에서 빛이 들어온다. 저 아래 관으로 빛이 고인다.
창문이 노란색이다. 조상의 피와 땀을 신성시한다는 의미다. 바닥도 물방울처럼 퍼져나가는 모양의 무늬다. 벽면에는 부조로 역마차의 역사가 장엄하게 조각되어 있다. 아까 차 안에서 배웠던 남아공의 역사가 모두 이곳에 새겨져 있다.
박물관은 -1층, 0층, 1층인데 높이가 높아 엘리베이터로 한층 오르는데 꽤 오래 걸린다. 지하 1층에는 십자수와 유화 그림으로 역사를 말하고, 0층에는 벽면부조로 역사를 말하고, 지상 1층에는 대리석 기둥들이 역사를 노래한다. 독특한 전시관이다.
박물관 밖에는 말마차가 있다. 외국인에게는 다칠까봐 금지인데 마차 관광용이다. 뜨락에 말이 사는 집과 마차가 많다. 남아공에는 말라리아 모기가 없다고 한다. 한 나라의 역사를 전해듣고, 전시물을 눈으로 보고 알찬 시간이다. 세계여행으로 얻는 값진 지식이다.
* 프리토리아 시가지
1910년에서 1912년까지 건립된 도시다. 외지에서 들어온 외로운 자들이 교외 광장에서 모여서 시장이 형성되고, 그러면서 프리토리아가 형성되었다. 그로 인해 플크루그 대통령이 탄생하고 그것이 오늘의 프리토리아가 되었다.
지금은 번화가가 많다. 관공서가 많아져 오히려 대중 교통이 부족하다. 한국의 봉고차가 여기서는 택시로서의 교통수단이다. 실제로 봉고차에 한 가득 사람이 타고 퇴근하는 것을 보았다. 트럭 위에도 타고 간다. 이 나라는 성이 문란하여 에이즈 환자가 35%다. 화려한 건물과 흑인과 백인, 모두가 이색 풍경이다.
* 프리토리아 교외광장
교외 광장은 중심 번화가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기도 하여 우리는 내리지 않고 BUS 투어로 지나며 보았다. 과일 상인들이 길가에 많다. 흑인들은 동양인을 노린다. 우리는 동양인, 돈 많다고 보이는 대상이다.
법원, 은행, 금융가, 아파트가 웅장한 외형으로 아름답다. 잘 가꾸어진 도시다. 건물들이 사암으로 지어져서 붉거나 갈색이다. 사암이 튼튼하다. 학교 수업은 8시에 시작한다. 아이들도 지금은 하교하여 돌아다닌다. 박물관에는 실제 고래뼈가 전시되어 있다. 흰색으로 아주 크다. 분홍색 기차역 건물도 보인다. 블루트레인 긴 내륙 횡단 열차역이다.
다부지고 알찬 도심이다. 아프리카라고 느껴지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 중 흑인이 보일 때뿐이다. 흑인도 자가용을 타고 퇴근한다. 그런 모습을 빼면 어느 유럽의 한 도시로 착각할만큼 발달되어 있다.
* 프리토리아 가로수 자카란다
독특한 가로수가 프리토리아를 채우고 있다. 7만 그루의 꽃나무다. 벚꽃과 동일한데 봄에 보라색 꽃이 핀다. 꽃이 피고 나면 잎이 나온다. 나무터널이 절경을 이루어 이곳을 일명 ‘자카란다 시티’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온통 보라색으로 뒤덮히면 그 정경을 보고자 유럽에서 많이 온다.
지금은 푸르른 잎만 한 가득이다. 한국의 등나무꽃 색깔로 뒤늦게 핀 보라색 자카란다 꽃을 어렵게 보았다. 곱다. 남미에서 온 나무다. 한국의 진해 벚꽃 구경처럼 프리토리아의 명물이다.
* 남아공의 미니 축구장
퇴근 무렵, 러쉬아우어다. 이 나라도 어김없이 긴 차량 행렬이다. 이곳이 아프리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만큼 혼잡한 도로다. 높은 버스 안에서 내려다보는 프리토리아의 진 풍경이다. 도심을 벗어나자 넓은 축구장이 보인다. 석양이 내리는 오후 5시다. 야자수가 우람하게 줄 서 있고 소년들과 청소년들이 뛰어 다니며 축구에 여념이 없다. 미니 축구장인데 정식 축구장을 축소해 놓은 모양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최국으로 그 열기는 더욱 대단하다. 아프리카의 해질녘 큰 낭만이다.
* 남아공의 자동차
자동차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다. 자가용, 버스, 트럭 모두 오른쪽이 운전석이다. 자가용이 모두 좋다. VOLVO, TOYOTA 등을 백인 뿐만 아니라 흑인도 몰고 다닌다. 부유한 표식이다.
이집트와는 많이 다르다. 도시도 현대식이고, 사람들도 머리에 히잡이나 터반을 두른 사람이 거의 없다. 생기 발랄하다. 도심에서 외곽으로 퇴근하는 차량이 장사진이다. 아프리카의 또 다른 풍경을 본다.
* 대통령 집무실 유니온궁 빌딩
짙푸른 공원 안에 적색 건물이 예술에 가깝다. 길가에서 내려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았다. 전에는 집무실 안에까지 올라가서 보았는데, 그때는 만델라 대통령이 허용했는데, 지금은 외경만 허락된 곳이다.
메모리얼 파크에는 6.25 때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이 나라의 전사자 용사들이 있다. 그래서 6.25에는 한국 대사관에서 이들을 위해 감사하며 행사를 한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퇴근시간이 지나 큰 문은 닫았고, 다행히 작은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다. 빌딩이라 하여 높은 층인 줄 알았는데 길게 옆으로 늘어선 빌딩이다. 움베르키 대통령이 오픈을 차단시켜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고운 꽃과 나무, 아름다운 건물들, 모두 감탄을 자아내는 기쁨으로 보았다.
* 요하네스버그 호텔 투숙
유니온궁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여정을 마쳤다. 힘든 일정인데 잘 마무리되었다고 가이드는 칭찬한다. 신이 났는지 차 안에서 넌센스 퀴즈라며 유모어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라면에 참기름을 쳤는데 갑자기 경찰서에 불려갓다. 왜 그럴까 묻는다. 답은 고소해서란다. 잠시 후 참기름도 경찰서에 왔다. 라면이 불어서란다. 싱거운 유모어를 시작으로 우리 일행 주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빵,빵빵’, ‘조지 브라운’, ‘흥부 놀부 아내’ 등 우스운 이야기로 여독을 풀곤 했다.
늦은 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3시 30분 호텔에 들어왔다. 현지 시간으로는 오후 8시 30분인데 낮이 짧아 짙은 밤으로 느껴진다. 시차 관계로 피곤하지만 먼 나라 여행이며 일정을 잘 소화했다는 보람으로 행복한 밤이다. 호텔 직원이 모두 흑인이다.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하여 큰 관심으로 다가온다. 지나가는 행인도 우리를 보면 웃고, 손을 흔들며 지나가곤 한다. 순수한 나라라고 하면 내가 너무 곱게 바라보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비록 까만 살결로 혐오스럽지만 속심은 따스하더라고, 이 밤 나는 외치고 싶다.
내일은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30분 출발이다. 남미 브라질 상파울로에 간다. 비행기로 리오까지 간다. 남아공과 비슷한 날씨란다. 내일부터는 한 호텔에서 이틀씩 유숙한다. 오늘보다는 훨씬 편안한 일정이다.
시차관계로 조금 늦게 자란다. 체크인 후 10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참으로 멀리 왔다. 여기가 어딘가. 아프리카에서도 맨 남쪽 나라, 한국에서 아주 먼 곳에 왔다. 큰 설레임으로 낯선 땅의 첫 밤을 맞이한다.
2008년 4월 12일 토요일 남아공에서 브라질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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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하네스버그 호텔 출발
새벽 5시에 모닝콜, 6시에 뷔페조식, 7시에 모였다. 오늘은 브라질로 가는 날이다. 호텔은 공항 가까이 있어 편리하다. 호텔 셔틀버스가 데려다 준다.
남아공의 새벽은 우리나라보다 늦다. 6시에도 어스름하다. 식사 전 호텔 주변을 구경하고자 돌아보았다. 호텔로 진입하는 문 앞에서 흑인이 나가겠냐고 묻는다. 순간 이 나라의 범죄가 떠올라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담장 너머로 요하네스버그 시가지를 보았다.
모로코의 호텔에서는 현관문 밖에도 못 나오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치안이 불안한 탓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비가 내린다. 또 출발할 때는 비가 그친다. 날씨도 잘 변한다. 이색적인 체험을 하며 호텔을 떠나왔다.
* 요하네스버그 공항 이륙
10시 20분 SA 항공으로 떠난다.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다. 면세점에서 기념모자를 샀다. 공항 직원도, 면세점 점원도 모두 흑인들이다. 지독한 검은 피부다. 아프리카인을 만나고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영어로 교육받고 국어가 영어라서 그들의 말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어 좋다. 모두 영국이 남긴 소산이다.
비행기가 정시에 이륙했다. 남자 흑인이 기내 서빙을 한다. 아주 귀여운 인상이다. Milk를 달라 하였더니 Beer를 주고 간다. 나와 남편은 웃었다. 행동까지도 귀엽다.
10시간 20분 소요되는 비행이다. 대서양을 날아가고 있다. 감동이다. 음악을 들으며 갔다. 남미에 대한 기대로 행복하다. 기내식을 2번 준다. 11시간에 가까운 긴 비행이어서 그렇다. 모두 여정의 한 단면으로 소중하다.
* 상파울로 공항 도착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대서양을 온전히 건너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을 향해 한낮의 작렬한 햇빛을 가르고 왔다. 자다가, 영화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온몸이 저리도록 지루하다가, 모니터에 뮤직 비디오가 나오면 알지 못하는 곡이지만 흥에 겨워 손뼉도 치다가 그렇게 왔다.
지금 비행기는 상파울로를 향해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고 있다. 지구의 반도 넘게 돌아온 이 순간 내 조국에서 멀어졌지만 새로운 것들을 배워갈 것이라는 신비에 벅차 오른다.
공항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나무였다. 푸른 산, 파란 하늘, 파란 풀들이 공항 활주로를 곱게 장식하고 있다. 남미, 따뜻한 나라를 알리는 것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역시 공항 앞에는 큰 키 나무의 가로수가 줄지어 서서 반긴다. 버스도 크다. 날씨는 27도, 약간 덥다. 여기는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이다. 꼭 와 보고 싶었던 나라, 이제부터 브라질의 여정이 시작된다.
* 크고 먼 나라 브라질
한국에서 제일 먼 나라는 우루과이다. 한국에서 땅을 정확히 파면 우루과이고, 조금 삐뚤어 파면 브라질이다. 그만큼 먼 나라에 나는 지금 와 있다. 공항에서 교포 가이드 김성, 안토니오 김을 만나 이동하며 브라질에 대하여 배웠다.
남북한의 40배인 나라다. 인구는 1억 8천만명이다. 27개주로 구성되어 있고 상파울로가 가장 큰 주이며, 가장 큰 도시다. 상파울로에 1천만명의 인구가 모여 산다. 해발 800m 고지의 도시인데 남미의 중심이다. 수도는 브라질리아다.
상파울로 국제 공항은 국제선은 4시간전, 국내선은 3시간 전에 도착해야 탑승한다. 그만큼 복잡하다. 국제선 고속도로 곁에 교도소가 있다. 그래도 편안하게 사는 나라다. 상파울로에서 리오까지 버스는 6시간, 비행기는 1시간 걸린다. 북쪽까지는 버스로 4박 5일 걸린다. 그만큼 큰 나라다. 지도에서 보았던 브라질의 큰 땅덩이가 떠오른다.
* 브라질 중심도시 상파울로
브라질의 수도는 아니지만 정치, 경제의 중심 도시다. 의류업이 성하여 교민들도 그 쪽에 종사자가 많다. 아가씨는 특히 패션업을 많이 한다. 옷 한 벌 잘 지으면 부자되고, 잘못하면 가난해진다. ‘돈 있다 자랑마라, 돈 없다 낙심마라’ 하며 사는 도시다.
돈을 벌면 자꾸 상가를 산다.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저녁시간이라서 문 닫았지만 쇼핑가에는 원단가게, 옷가게가 많다.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다. 리오도 그렇다. 마약과 경찰이 전쟁이다. 관광도시라서 그렇다. 불법총기소지인데도 총을 갖고 다닌다. 불심검문을 안 한다. 총살당할까봐서다. 교통 위반에 걸려도 안 잡는다. 딱지만 떼서 보낼 뿐이다.
어느 나라든 중심도시에는 그만큼 발전과 함께 위험이 도사린다. 우리는 내리지 않고 상파울로 도시를 보았다. 시가지 안쪽은 구시가지라서 칙칙하다. 중후한 남미의 도시에 왔다는 자부심으로 흐뭇하다.
* 브라질 언어
남미 중에서 포르투갈어를 쓰는 곳이 브라질, 이 한나라다. 우리는 브라질의 말 몇 가지를 배웠다.
아침 인사는 ‘곤지아’, 점심인사는 ‘보아 따르지’, 저녁 인사는 ‘보아 노이치아’다. 좋다는 ‘따봉’, 그런데 이 말이 여기서는 욕이다.
고맙다는 두 가지가 있다. 남자가 할 때는 ‘오브리가도’, 여자가 할 때는 ‘오브리가다’, 참으로 신기한 언어다. 따라서 배우면서도 우리는 많이 웃었다. 여행국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뜻깊은 체험이다.
* 브라질의 한국 이민사
한국인 이민은 50년이다. 성공하지 못했다. 땅을 속아서 사서 그렇다. 농사를 모르는 상류층 이민자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과일 장사로 산다. 선조들의 이민사다.
일본인 이민은 100년이다. 농업으로 성공했다. 일본은 땅을 잘 주고, 흉년시 지원해 준다. 일본인 국방부 장관까지 나왔다. 하지만 일본인 후손은 일본말을 못한다. 한국인 2세들은 한국말을 잘 한다.
고기, 채소, 과일만 싸고 모두 비싸다. 집세도 비싸다. 교육비도 비싸다. 초등, 중등 학교를 공립은 못 보낸다. 그래서 월 50만~200만원의 사립 학교에 보낸다. 사립도 미국계는 월 200만원이다. 사립보다 공립이 비싸다는 말에 의아했다.
이 나라는 모계 사회인데 이민자의 가족에게도 적용된다. 이곳에서는 외조부모가 1순위로 특혜다. 다음으로 시조부모다. 브라질의 한국 이민자는 적다. 교민이 얼마 안 되는데 5만명 정도가 상파울로에 거의 모여 산다. 리오에는 200명 정도 산다. 가이드는 이민 15년차라고 한다. 먼 나라에 와서 열심히 사는 교민을 보며 자랑스러웠다. 이명박 대통령도 종종 온단다. 버스 환승제 때문이란다. 서로 교류하는 모습도 흐뭇하다.
* 브라질의 강
상 파울로 도심에 서울의 한강 같은 찌이떼강이 있다. 그런데 얼마나 오염이 심각한지 물이 넘치면 깊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독이 올라서 죽는단다. 2007년 이전까지 정화조가 없었다. 2007년 1월부터 정화조가 생겼다.
한국의 정화조, 한국의 청계천을 배워와서 실시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맡겼더니 강가에 벚꽃까지 심더라는 것이다. 지독하더리고, 고개를 내젓는다. 아무튼 브라질의 강은 맑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한강은 명경지수다.
* 브라질의 교육
학교 수업이 엉망이다. 그냥 놔 둔다. 관심이 없다. 뒤에서 뽀뽀하든, 무엇을 하든 그냥 넘어간다. 이 나라에 유학오면 좋지 않다. 버린다.
대학은 상파울로 주립 대학이 세계 100위 안에 들어간다. 거기 들어가면 학비가 면제다. 훌륭한 대학이다.
좋은 점은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차별했다고 하면 3일간 교사가 정지당한다. 검은 색이 없다. 흑인 차별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 차별은 있다. 빈부격차가 심하다. 한인은 한인끼리 논다. 학연, 지연보다 100만불끼리, 50만불끼리 어울린다. 상당히 보수적이다. 단점도 많고, 장점도 많은 교육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헤쳐나가야 되고, 좋은 미래도 스스로 잡아야 되는 나라다.
* 한국인 거리
브라질 상파울로에는 한국인 거리가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이민자에게 잘 해준다. 부시가 와서 에이즈 퇴치금을 주겠다고 하니까 거절해서 지지도가 67%로 인기다. 선반공 출신으로 새끼손가락이 없다.
브라질 최초의 공원에는 한국인이 많이 온다. 아무튼 내 동포가 편히 살 수 있도록 베풀어준다는 말에 기뻤다. 한국인 거리의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었다. 알고보니 가이드가 운영하는 집이다. 딸과 아내와 함께 대접을 잘 해준다. 양념은 한국에서 온단다. 하늘초 고추, 태양초 고추를 그렇게 부르며 그걸 써서 맵단다.
음식 문화는 편한 나라다. 마늘도 잘 먹는 나라다. 값은 비싼 편으로 자장면 4식구 비용이 5만원 정도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일본로도 있다. 리베르타지인데 우리가 지날 때는 가로등만 있다. 일본인들은 일찍 잔다. 가게를 모두 중국인에게 잠식당했다. 가게 주인이 모두 중국인으로 바뀌었다. 일본인들은 농사만 짓는다.
브라질에 뿌리 내린 한국인의 거리를 돌아보며 이국에서 낯익은 향수에 젖었다. 평화롭고, 안정되고, 행복한 거리다.
* 브라질의 자원과 관광
자원은 많은 나라다. 그래서 룰라가 부시에게 큰 소리치는 이유다. 석유는 자급자족으로 1리터에 1천원이다. 가스는 볼리비아에서 수입한다. 어둠이 시작되는 밤인데 자동차와 거리 모두 캄캄하다. 오늘 내가 본 곳은 구도로라서 좀 칙칙하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라이트를 안 켜고 미등만 켜고 다닌다. 우리가 탄 버스는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선팅했다. 신시가지에 가면 잘 정비되어 환하다 하는데 자원이 많은 나라에서 절약한 정신이 대단하다.
브라질의 볼거리 3가지는 리오, 이과수, 아마존이다. 6월 1일부터 대한항공 직항이 개설된다. 1만 5천불의 계류장비로 LA를 거쳐 직항한다. 브라질인들도 미국에 가기 수월하여 좋아한다. 한국인도 브라질 관광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 나라 남자는 셔터맨이다. 여자는 상가를 운영하고 남자는 문만 열어주고는 골프친다. 돈 번 사람은 유럽, 한국 등으로 여행간다. 자국만도 볼거리가 많은 나라, 그래서 관광 문화가 발달된 것 아닐까.
거리에는 가로등이 없다. 이 나라의 거리 기준은 0번지에서 시작인데 지금 지나는 곳이 0번지다. 캄캄하다. 0번지 도로에는 공원, 상가도 많지만 노숙자가 많다. 치안 문제로 외국인은 내리지 못한다. 너무 어둡고 스산하다. 사람들은 어둔 골목을 오간다. 국제 도시 상파울로의 놀라운 단면이다. 나는 큰 나라의 검소한 생활상이라고 기억시켰다.
* 파노라마식 상파울로 투어
시간이 없어서라면 나는 이해했으리라. 물론 오후에 도착하여 석식 후 떠나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못 내리는 가장 큰 이유가 치안이 불안하여서라 하니 안타깝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사람이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겨우 내린 곳은 한국인 거리였다. ‘고궁’ 한식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 식사를 하고 그 주변을 거닐었다. 다시 리오로 가기 위해 상파울로 국내선 공항으로 옮겨가는데 어둠이 내리자 거리는 암흑이었다. 자동차의 실내등은 모두 껐고, 가로등도 없고 가뭇한 미등 뿐이다. 모두 치안 때문이라니, 이 또한 무서운 사회다.
내 조국 한국은 광명천지다. 살기 좋은 나라임을 깨달았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교육 효과를 얻는다는 <여행>, 큰 교훈을 지금 실감하고 있다.
* 상파울로국내선 탑승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로 가기 위해 서둘러 상파울로 국내선 비행장으로 왔다. 교민 가이드와 중2 그의 딸 아이가 나와 안내한다. 한국 소녀는 브라질 한국 학교에 다닌단다. 사립이다. 왜 공립에 안 다니냐고 했더니 인종 차별 때문이란다. 2학년만 19명이란다. 타국에서 억센 뿌리를 내리며 부녀가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공항은 국내선인데도 크고 좋다. 브라질이 워낙 큰 나라이고 보니 국내선 공항도 국제선 못지 않은 규모다. 밤 9시 비행기로 떠난다.
사람들은 T 셔츠를 내 입는다. 열쇠 더미를 뒤포켓에 매달아 가리기 위해서다. 이민 1,2년차는 T셔츠를 넣고 다니지만 몇 년 지나면 모두 내놓고 다닌다. 포켓 도둑 때문이란다. 생각보다 두려운 나라다. 짧은 시간의 하루 여정을 보낸 상파울로, 무언가 베일에 싸인 듯한 도시, 긴장의 끈을 조이게 하는 도시, 그래도 소박하고 열심히 사는 도시다.
이제 A1 게이트에서 리오행 비행기를 탑승하며 작별할 시간이다.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아쉬운 기억까지도 소중하게 담아가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더 많이 머물지 못한 것이 서운하지만 더 아름다운 브라질의 리오를 향해 이 밤, 날아간다.
* 상공에서 본 상파울로 야경
대단하다. 아까 저녁 무렵 한 시티투어는 아주 작은 한 조각이었다. 광활한 불빛 야경이 시야를 적신다. 세계 그 어느 나라를 밤에 이륙해도 저토록 아름다운 야경은 본 기억이 없다.
질서정연하고, 나무와 건물 사이로 줄 맞춰 선 은은한 불빛들이 곱다. 누가 상파울로를 칙칙하다 할까. 상 파울로의 마지막 찬란한 야경이 대국의 밤으로 부상하며, 브라질은 브라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상파울로에서 리오데자네이루 가는 야간 비행
브라질이 넓다는 말이 실감난다. 자국기를 타고 본토를 비행하는데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지상의 불빛과 산, 시가지들이 보인다. 가장 큰 특징은 한 무더기씩 산이 보이다가, 산 무더기 사이로 어우러진 시가지의 불 무더기다.
산도 많은 나라, 도시도 많은 나라, 그것도 내가 맴도는 영토는 브라질의 동남부 끝자락 일부일 뿐인데 전 국토를 여행한다면 놀랄 일이다. 아름다운 나라의 아름다운 야경 앞에서, 시린 부러움이다.
* 리오데자네이루 공항 도착
공항이 크다. 외부도 크고, 내부도 크다. 세계 3대 미항의 공항이라는 사실이 공항에서부터 전시된 듯하다. 모든 것이 시원시원하다. 마음대로 핸드카를 쓸 수 있는 것도 남아공과 남미의 좋은 점이다.
한국 교포 36년차 이민 여인 이은숙 가이드를 만났다. 현지명으로 엘리야나란다. 한국어 중에서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고. 그녀는 정서도 외모도 어느새 브라질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밝고, 정열적인 어투에서 호감이 가며 내 동포이기에 더욱 친근해졌다. 늦은 밤 어둠을 헤치고 공항을 나서 호텔로 향했다.
* 어둠에서 본 리오데자네이루
돌산, 나무, 해안이 절경이라고, 아주 좋은 곳에 오셨다고, 4사지 볼거리 ① 예수님 동상(710m) ② 빵산이라 불리는 돌산(396m) ③ 해변가 2군데 ④ 세계 3대 미항(지금은 리오, 나폴리, 시드니, 밴쿠버까지 4대 미항)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창 밖은 어둠으로 가까이만 보인다.
해안선과 도시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버스가 달린다. 어둠 속이라서 음악은 잡히지 않지만 리오데자네이루 항구와 고전적인 건물이 대단한 위용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던 건물이 지금은 비어있다. 다 도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곳 지역 건물들은 렌탈해도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함에 비용이 많이 들어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폐허인채 그대로 있다. 고전의 유물을 지키려는 이 나라의 행정이 독특하다. 플레멩고라는 지명의 울창한 거리도 지났다.
리오데자네이루는 어떤 사람이 이 바다가 강인줄 알고 지은 이름인데 ‘1월의 강’ 이란 뜻이다. 리오는 ‘강’, 데는 ‘의’, 자네이루는 ‘1월’, 그런 유례로 아직까지도 그 고운 이름으로 불리운다. 사실은 바닷물이 깊숙이 파고 들어온 만이다. 즉 강이 아니고 바다 해안이다. 내일은 1시간 30분간 유람하며 리오를 볼 것이다. 버스 창문에 불빛을 타고 스미는 리오의 정경만으로도 아름다운 도시다. 나는 꼭 와 보고 싶었던 항구 도시이기에 부푼 기대로 리오의 밤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 리오데자네이루 호텔 도착
밤 10시 40분에 리오공항에 도착하여 30분을 달려 11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들어왔다.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꽃도 풍요롭게 꽂아 놓고, 한 켠에는 연주용 피아노를 놓았다. 피아노 위에 놓은 배와 사람들 조각상이 걸작이다. 이제 이 호텔에서 2일간 투숙한다. 그래서 피곤해도 여유로운 밤이다.
내일은 7시 기장, 8시 45분 출발이다. 자연과 역사를 보는 곳이다. 저녁에는 쌈바 축제도 본다. 남미의 첫 밤은 이국의 향기로 곱다.
2008년 4월13일 일요일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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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출발
해변으로 이어지는 울창한 숲길도, 우람한 고층 아파트도 모두 이곳이 큰 나라 브라질이라고 외치듯 외객을 반긴다. 호텔 주변은 그렇게 짙푸른 남미의 열정을 머금고 있다.
오전 9시 호텔을 출발하여 유람선 타는 곳으로 향했다. 낮에 보는 리오데자네이루는 벌써부터 강아지 형상의 빵산과 거룩한 곳에 높이 선 예수님상이 압권이다. TV에서 보아온 아름다운 정경이 전개되는 남미의 여정, 그 첫 걸음이다.
* 리오데자네이루 시가지
아름다운 해변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울창한 숲의 공원에는 축구하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이 공원은 파리를 모방한 것으로 파리스파크다. 공원의 한 켠에 과일 시장도 있다. 값이 싸다. 한국 채소는 주문하는데 더러는 비싸다.
시가지가 깨끗하다. 높은 건물이 많고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다. 아침 햇살과 만나는 리오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유리알 같은 투명한 아름다움이다. 리오 항의 유명함이야 익히 들어서 예견한 바이지만, 항구로 가는 길의 시가지 풍경 또한 고운 숲과 길, 빌딩의 조화로움으로 고운 낭만이다.
* 리오데자네이루 유람선
뜨거운 4월의 남미 햇살을 품으며 리오항으로 한참을 걸어가서 유람선에 올랐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배다. 약 2시간을 돌며 리오항의 비경을 본다.
유람선이 질주하자 리오 시가지가 곱게 부상하고, 곧바로 빵산이라 불리는 슈가로프산과 예수님 동상이 오롯이 솟는다. 이 두 가지만 보고 가도 리오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훌륭한 경관이다.
리오를 감싼 바다의 과나바라 만을 구석구석 돌며 모든 것을 보여준다. 조선소, 세계에서 긴 다리 등등 바다 위 풍경과 해변의 건물 풍경이 절창이다. 벨기에에서 왔다는 부부와 우리 부부는 친해져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작년에 벨기에에 다녀온 추억과 함께 아름다운 만남이다.
가도가도 바다는 이어지고, 정성껏 외인을 이끄는 유람선은 비경을 선사하고, 산도 다가오는 눈빛이 다정하고, 배의 난간에 앉아 살갗을 태우는 젊은 남녀들의 나신이 또 하나의 큰 비경이다. 행복하여서 나는 뜨거운 가슴으로 남미의 고운 정경들을 담고 또 담았다.
*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이곳은 석유가 나는 지역이다. 서울의 강남이다. 유람선을 타고 그 지역을 지나며 세계에서 가장 긴 니떼로 다리를 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바다 위에 늘인 줄처럼 보인다. 길고 긴 다리, 시야에 담기조차 버거운 다리다. 누군가는 한국의 서해대교가 더 길어 세계에서 두 번째 긴 다리라고도 한다.
니떼로는 숨겨진 물이란 뜻이다. 인디언들이 수영하며 다니던 니떼로 지역이다. 이곳 지명은 모두 인디언 말이다. 이따라이 해변도 축복받은 물이란 뜻이다.
이 다리에 스프링이 없을 때는 많이 흔들렸는데 지금은 수리하여 많은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유람선은 다리 아래로 넘어갔다. 꿈같은 진행이다. 용감하게 바다에 선 다리와의 멋진 상면이다.
* 리오데자네이루항 비경
정녕 비경이다. 나는 밴쿠버 미항, 시드니 미항, 나폴리 미항, 이 세계 3대 미항이라 자처하는 곳을 다 가 보았다. 이곳에 오니 밴쿠버 미항을 빼고 리오데자네이루 미항을 넣어 세계 3대 미항이라 한다. 밴쿠버 미항까지 더하여 요즈음은 세계 4대 미항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리오데자네이루항 비경은 상당히 웅장하며 광폭하다. 만에 둘러싸인 모든 정경이 비경으로 일어선다. 사람이 일구어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타고난 지형과 자연이 천혜의 비경이다.
밴쿠버항은 노스 밴쿠버에서 바라볼 때 하얀 범선 모양의 국제 호의 건물과 일렬로 늘어선 항구 풍경이 비경이고, 시드니 항은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 비경이고, 나폴리항은 폼페이 최후의 날을 탄생시킨 베수비오 화산이 비경이었는데 이곳 리오데자네이루 항은 슈가로프산과 예수 동상이 가장 큰 비경이다. 정녕 잊지 못할 비경이다.
* 유람선에서 본 리오데자네이루
산과 바다와 만난 도시, 아리따운 여인처럼, 우람한 남성처럼 모든 이에게 황홀하게 전시되는 브라질 남동부의 대단한 도시다. 도심을 다닐 때도 그렇지만 선상에서 본 정경은 오감을 흔드는 비경이다.
해군 관리성과 리오 국내 공항이 보인다. 군인 해군대학교를 졸업하면 기본 월급이 5천불에서 1만불이다. 상당한 보수다. 초록색 대통령이 살던 집도 보인다. 일리아 휘스카, 포르투갈어로 그렇게 부르는 건물인데 지금은 렌터해서 향연이 열리는 곳이다. 배 건문소로, 왕 파티장으로 관리는 개인이 하지만 보호는 해군에서 하고 있다.
유람이 다 끝날 무렵 리오의 다운타운은 굵은 맥으로 절경을 선사한다. 시티투어겸 유람으로 이루어진 유람선이다. 2차 전쟁 기념 위령탑이 공원에 솟아 있다. 이탈리아 전쟁 498명 사망 기념탑이다. 브라질 전쟁이 아니고 이탈리아에서 사망한 군인들이기에 더욱 숭고하다. LG 선전문구가 선명하다. 집집마다 LG 가전 제품 1개씩은 다 가지고 있다. 한국의 드높은 위상이 리오에 휘날리고 있다. 유람선에서 본 리오는 그렇게 큰 감동이다.
* 리오데자네이루 시티 투어
한국보다 훨씬 덥다. 버스 안에서 리오를 돌며 시티투어를 했다. 17세기에 조성한 파리스파크, 위령탑, 해안 도시 플라멩고 등 곱게 스쳐간다. 리오는 브라질의 두 번째 수도로서 GNP가 8천불이다. 잘 사는 지역은 화사하지만 못 사는 지역은 허술하다.
대통령 지명이 많다. 마베니다 길을 달린다. 다운타운에는 높은 건물이 많다. 성당, 선박, 터미널을 지난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한가하다. 시내 버스 색상이 노랑, 빨강, 파랑 등 화려하다. 극장가, 문화지대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지금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며 자연스럽게 시티 투어를 한다. 도서관, 법원 등 주요 행정 건물도 지난다. 외진 곳의 구 건물, 폐옥 그대로 두고 떠난 풍경도 이색적이다. 가난한 자가 이용하는 기차길도 한 획을 긋고 있다. 리오를 알차게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 포루투갈어의 브라질어
이 나라는 포르투갈어이면서 브라질어를 사용한다. 즉 영어와 미국어의 관계다. 포르투갈어는 우락부락하며, 브라질어는 순하여서 약간 다르다. 현지에서의 욕이, 이곳에서는 욕이 아니다.
이런 관계는 아르헨티나에서 우루과이에 갔을 때 더 자세히 알았다. 남미는 모두 스페인어를 쓰는데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쓴다는 것이다. 거의 유사한데 조금씩 다른 것이 남미 언어의 특징이다. 포르투갈어이든, 스페인어이든 그 나라의 언어로 약간 다르게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같은 스페인어인데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언어에 차이가 있듯이 그렇게 사용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지배 역사를 읽는 대목이다.
* 축구의 나라 마라까낭 축구장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 혹은 쌈바 축제의 나라다. 곳곳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브라질 아이의 꿈은 호나우도가 되는 것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훌륭한 기량과 준수한 외모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다.
늪 지역 산다. 그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까낭 축구장이 있어서다. 이곳 이름으로는 마리우 필륨이다. 1942년 월드컵의 아버지가 4번째 월드컵을 위해 왔는데 전쟁으로 연기되어 1958년에 실시된 곳이다.
인디언말로 ‘앵무새’ 란 뜻의 이름이다. 축구, 넓이 뛰기, 수영, 뜀뛰기 등 종합 경기장이다. 32m 높이, 934m 둘레의 대형 축구장이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항상 축구경기가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몇 시간씩 기다려 표를 산다. 문 앞에서 담장까지 길게 줄 선다. 외형도, 축구를 사랑하는 정신도 아름답게 담긴 축구장이다.
* 쌈바 축제장
한낮의 폭염이 장엄한데 쌈바 축제 경기장 삼 보도르모의 규모는 더욱 장엄하다. 긴 축제장이 있고 관람석이 계단식으로 축제장을 따라 놓여 있다.
아득한 직사각형 공간을 활보하며 쌈바춤을 춘다고 상상하니, 가히 그 유명한 브라질의 쌈바 축제가 짐작된다. 태양이 정열적으로 내려쪼이는 나라에서 정열의 춤이 쏟아지는 영토 한 자락 밝고 간다.
* 까떼드리우 메트로폴리아 성당
1964년부터 장소를 물색하여 짓기 시작해서 1976년 완성된 건물이다. 3년간 인테리어를 마친 후 1979년부터 일반인 출입했다. 아주 독특한 양식으로 지었다. 지붕도 없이 뭉뚝한 높은 건물은 여늬 성당과는 전혀 다르다.
위에서 모자이크 유리로 장식하여 불이 필요없이 그 유리를 통한 빛으로 예배 가능하다. 초록은 하나님은 하나다, 빨강은 성령님을 따르자, 파랑은 세계는 하나다, 노랑은 신부님을 따라 걷자, 이런 메시지가 담긴 빛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실내 조명이다.
5천명 좌석에 2만명 입석으로 총 2만 5천 명 입장이 가능한 성당이다. 너무 유명해서 지금은 성지 순례지다. 오전 7시부터 관광코스로 개방되고 있다. 예수님 동상이 보이는 곳에 문이 있는데 예수님은 리오를 항상 바라보며 지켜준다는 의미다.
* 브라질 전통 바베큐 슈라스코
고기를 긴 꼬치에 꿰어 구워 직접 썰어서 준다. 접시를 들고 가서 받아오기도 하고, 식당 사람이 들고 와서 식탁 위 접시에 대고 썰어주기도 한다. 모두 진풍경이다.
풍성한 야채 샐러드와 겸해서 먹는다. 겉부위는 삐깡이라고 하는데 좀 짜지만 맛이 좋아 제일 선호하는 고기다. 두 번째 자르는 부위는 덜 짜다. 이 나라에서는 제일 싼 것이 고기와 과일이다. 특히 고기는 싼 값이라서 식당마다 넉넉히 나온다.
음식점 직원도, 여행객도 흥겨운 식당이다. 언어가 다른 데도 눈빛으로 대화하며 브라질 전통 바비큐를 많이 먹었다. 내 조국에 돌아가면 지금 이 순간의 고기에 배불렀던 기억을 그리워하리라.
* 리오의 기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4월이다. 한국과는 정반대 계절이다. 많이 서늘해진 날씨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네 달 연속 40도 였는데 지금은 많이 더워야 30도란다. 오늘은 좋은 날씨란다.
그런데도 너무 덥다. 현재 28도인데 땀이 줄줄 흐른다. 아침 최저온도는 16도다. 낮에는 덥고, 조석으로는 약간 서늘한 날씨다. 겨울도 온화하다. 이곳 사람들은 조금만 추우면 털장갑, 털옷을 입는다. 추위에 약해서 영하 2도에도 얼어 죽는다. 더운 나라의 더운 열기를 4월에 보듬어 보는 체험, 이것도 행복이 한 여정이다.
* 리오의 생활상
은행장 월급이 1500불이다. 한화로 150만원, 싼 월급이다. 사립학교 월 수업료가 100~200불인데 부자만이 보낼 수 있다. 의사, 변호사는 월 5천불 소득으로 높은 수입이다.
어느 나라인들 빈부차가 없겠는가. 이 나라도 둘이 벌어야 한 가정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콩과 쌀이 주식인데 쌀은 5kg에 3불, 콩은 1kg에 1불이다. 닭고기는 1kg에 1.5불이다. 한국보다 모두 싼 편이다.
리오는 큰 도시이고 발전되어 화사하다. 사람들의 행색도 거주지도 세련되어 있다. 그러나 치안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사회가 불안하다. 특히 외객은 조심해야 되는 곳이다. 브라질의 여행은 그런 면에서 긴장을 가장 많이 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리오의 낙서 문화
유럽식 낙서문화다. 예술인의 아름다운 한 장르 표출이기도 하지만 마약, 깡패 조직들의 자기 지역 표식 신호이기도 하다. 상가에서 돈을 주면 낙서를 안 한다. 외형은 유럽식인데 내형은 미국식 문화다.
그림 그리는 아이들이 그리기도 한다. 주로 새벽 시간에 그리므로 단속을 못 한다. 그림 그리고 마약자의 경우 떨어져 죽기도 한다. 걸리면 감옥살이다. 바라보는 내 눈에는 아름다운데 슬픈 낙서라는 생각이 든다.
* 예수님 동산
해발 710m 언덕산이다. 코르코바도 언덕, 이곳 사람들은 꼴고바드 곱추산이라 한다. 1502년에 발견하여 17세기에 오르는 길을 만들었다. 이 산의 정상에 예수님 동상이 거대하게 세워져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산에 길이 생기며 노예들이 판자촌을 짓기 시작했다. 왕들이 브라질에 피신 온 것이 17세기인데 나들이로 구경하면서 길이 생기고 경치가 기가 막혀 1824년을 시작으로 1884년도에 기차길이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나무를 태워서 기차를 움직여 올랐는데 지금은 전기로 오른다.
기차로 오르며 신기한 식물도 많이 보았다. 20분마다 기차가 다닌다. 열대 지방의 향기를 맞보며 예수님 동상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 동산을 오른다. 쉬이 오를 수 있음에 길을 놓은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했다.
* 코르바도 언덕의 예수상
기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로 한 구비 오르자 거대한 동상의 예수 뒷 모습이 보인다. 높은 산, 천연의 절벽에 에스컬레이터라는 기계가 도는 것도 신기하고 상상하기 힘든 창공 속의 예수님 동상은 믿기 어려운 조형물이다.
브라질 역사 400주년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미국은 400년 역사지만 브라질은 500년 역사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무녀들이 비누돌을 깎아서 세웠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상하지 않는다. 돌들이 세모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예수상은 키가 30m, 단이 8m, 38m 높이다. 양팔 길이가 28m, 무게는 1145t이다. 예수가 팔을 벌린 이유는 멀리서 볼 때 십자가를 연상케 하기 위해서다. 크리스토 헤뎃돌이라 부르는 이름의 예수상은 TV에서 보았던 거룩함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앞으로, 뒤로 돌며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하늘 가까이 선 예수와의 상면은 국경을 초월한 영광이라 여겨졌다. 나 오늘, 큰 축복이다.
* 하트 모양 호수 라고아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상 바로 아래,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하트 모양의 호수가 있다. 1921년에 아이디어를 내고, 1926년부터 1931년까지 완성한 호수다.
호수의 본 이름은 라고아 호드리고레프이따로 포르투갈 사람 이름이다. 원래 포르투갈인 개인 소유 호수였는데 그가 본토로 돌아가며 이 나라에 돌려줌으로 고마워서 그 주인 이름 그대로 부른다.
지금은 국가에서 관리하며 크리스마스 때는 이 호수에서 대형 토리를 조성한다. 대단한 호수다. 정말 하트 모양이다. 이것은 높은 이 산정에서만 볼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이다. 리오의 비경을 또 하나 발견한 듯 나는 큰 감동으로 가슴 깊이 담아간다.
* 리오에 사는 한국인
브라질에서는 한국 혈족을 꼬헤야라 한다. 꼬리아에서 파생된 것이다. 리오에는 한국인이 400가정 산다. 모두 떨어져 사는데 동양교회에 50명 정도 모인다.
포르투갈 부인은 한국인 남편에게 잘 해준다. 생일날 50가지 한국 요리로 상을 차려 준다. 포르투갈 인들은 인디아로 가다가 브라질을 발견했고 오늘날의 발전을 이루었다. 오래된 땅으로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이런 땅에서 아름답게 사는 내 동포가 눈시울이 붉도록 대견스럽다.
* 휘오데자네이루
이곳에서는 ‘R'이 ‘ㅎ'으로 발음된다. 그래서 리오데자네이루를 휘오데자네이루로 부른다. 가이드는 연신 그렇게 부른다. 축구 선수 호나우도 등이 그런 예이다.
원래 주민은 인디언이다. 바다를 강으로 알고 ‘1월의 강’ 이란 뜻으로 ‘휘오데자네이루’ 로 부르게 된 것은 포르투갈 남자 이스타쇼데 씨에 의해서다. 이 땅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다. 영국, 프랑스도 와서 차지하려고 싸웠는데 포르투갈이 이겨서 지배한 땅이다. 포르투갈 죄인들과 아프리카 흑인들을 데려와서 일 시키며 일구었다.
지배당한 역사는 어느 나라에 가든 공통이라는 사실을 브라질에 와서도 확인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에 얽혀있듯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얽혀 있다. 남미는 대부분 바다 건너 이웃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강한 힘에 영향을 받으며 역사가 형성된 것이다.
* 이빠네마 해변
긴 백사장과 바다, 야자수를 바라보며 해변도로를 달렸다.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이곳은 수준급 지역이다. 연예인, 모델이 주로 거주한다. 전에는 치안이 위험해서 새벽에만 왔던 곳이다.
미녀, 미남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노인도 많이 산다. 작곡가 똥쇼빙도 이 지역 출신이다. 노래를 작곡해서 세계에 전파시켰다. 해변도, 거리도, 주변 시가지도 아름답다.
왕족 사촌이 식물학 박사였다. 그래서 이상한 식물들이 많다. 그가 나라에 기증해서 퍼진 것이다. 예수 동산 오를 때도 기이한 식물이 많았다. 리오의 해변은 도심과 이어지며 낭만을 선사하는 천혜의 자연이다.
* 꼬빠까바나 해변
넓고 긴 해변이다. 4km의 드넓은 백사장에서는 축구, 배구, 테니스 경기도 한다. 모든 공연이 여기서 열린다. 큰 관광지역이다. 호텔과 식당이 많은데 꼬빠까바나 호텔은 1일 숙박료가 1천불이다. 헐리우드 연예인들만 묵는 숙소다.
푸른 색깔의 해변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만큼 비경을 선사한다. 유람선에서 본 바다지만 바다 가까이 버스로 달리며 보는 바다는 또 다른 정경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황홀한 비경이다.
* 빵산
리오데자네이루 시가지를 아버지처럼 바라보며 지켜주는 산이다. 돌고 돌며 수없이 본 산이다. 영어로는 슈가로프산인데 포르투갈의 빵을 닮아 빵산이라 부른다. 강아지 형상 같기도 하고, 불쑥 솟아오른 산이 귀엽게도 보인다.
두 개의 산인데, 396m, 220m다. 두 산이 리오를 명화로 그려낸다. 예수 동산과 함께 시즌에는 3시간을 기다려야 오를 수 있다. 먼 나라에 와서 기이한 자태로 태어난 산을 만난다.
* 슈가로프산 케이블카 등정
가파른 빵산이다. 1817년 첫 번째로 오른 자는 여자인데 30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포르투갈 군인이 올랐고, 1852년 존 볼데보 미국인이 올랐다. 이렇게 힘들게 오르던 산을 지금은 케이블카로 쉬이 오른다.
해질녘 찾은 명소다. 고단한 여정을 높은 산정으로 살갑게 이끄는 케이블카가 고맙다. 산의 전신을 휘감아 오르며 저 아래 전개되는 리오 시가지와 해변의 비경을 본다.
* 슈가로프 산정에서 본 리오의 비경
무어라 말 할까. 산과 바다와 석양이 만나 비단 수를 놓더라고,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하늘을 마시며 평화를 깔더라고, 이렇게 전하면 될까.
감성이 모두 일어서서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리오의 땅은 비경이다. 굽어진 해안을 따라 늘어선 도심과 백사장, 푸른 숲이 명화로 새겨진다.
높은 산정은 잘 가꾸어져 있다. 기념품 가게, 휴게소, 야외의자, 식물 전시, 모두 사람의 손이 이룬 부속물인데 산과 하나되는 소중한 존재로 외인을 반긴다. 행복한 휴식을 만끽한 명소다.
* 리오데자네이루 미항의 야경
해는 넘어가고 리오데자네이루 미항의 비경은 일어선다. 슈가로프 산정에서 바라본 리오 항구는 알알이 수놓는 불꽃 꽃밭이다. 바다는 깨우고 산을 세우는 비경 앞에 나의 영혼이 깨어 일어선다.
세계 3대 미항은 장엄했다. 밤을 딛고 전개되는 불바다, 내려가자 하는데 돌아서지지 않는다. 오랜 기억 속에서 살아 일어설 미항의 야경이다.
* 쌈바 축제 관람
화려하다. 아프리카와 섞인 문화다. 거대한 체구의 흑인, 백인 남녀들이 홀로 또는 집단으로 무대에 올라 춤과 묘기를 선사한다. 몸과 머리에 장식한 장신구와 복장이 30kg이나 되는 것도 있다. 브라질 무술도 강한 카리스마로 연출하고, 6명이 나와서 카니발 축제 악기로 연주도 한다.
밤 늦게 열리는 축제다. 우리는 호텔에 가서 잠시 휴식하고 8시에 해물 뷔페식당에서 풍성한 석식을 하고 축제장으로 갔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더니 우리가 기다린 1시간 동안 객석은 하나의 의자도 남김없이 가득 찼다. 사람의 열기, 춤의 열기로 가득하다.
나는 무대 바로 앞 중앙에 앉아서 잘 볼 수 있었다. 에어컨이 세어 약간 서늘했지만 세계인이 한 자리에 동참하여 남미 브라질의 전통 춤을 관람하는 순간 행복했다. 춤도 장엄하고 객석도 장엄하다. 춤의 주제에 따라 무대가 바뀌는 것도 아름답다.
마지막 마무리는 코믹한 남자가 나와서 이 자리에 참석한 국가를 거론하며 각 나라의 사람들을 무대로 올린다. 그리고는 그 나라의 대표곡을 울리며 춤과 노래를 부르도록 유도한다 나의 조국 KOREA로 불러 아리랑을 틀어준다. 10분 정도 할애된 무대에서 함께 간 일행 중 몇 명이 나가 한국을 보여주었다. 중국, 일본, 유럽 등 줄줄이 불려오르며 하나의 호흡으로 아름다운 마지막 장식이다.
내일은 아르헨티나로 간다. 아침 10시 20분 비행기로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으로 떠난다.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겠는가. 점점 짙은 정열로 가슴을 채워주는 남미의 이 밤, 고운 추억으로 나의 생애 한 도막을 엮어 주리라.
2008년 4월 14일 월요일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동
리오 호텔 출발, 공항으로 가며 본 리오의 아침, 리오의 변두리 풍경, 리오데자네이루 공항 출발, 상공에서 본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도착, 울창한 숲의 공원, 산이 없는 넓은 나라, 아르헨티나의 목축업, 남미의 파리 브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이민, 가난한 나라의 부자 국민들, 아르헨티나의 교통, 아르헨티나의 정치, 아르헨티나의 날씨, 레골레타 귀족 묘지, 아르헨티나의 복지, 오월 광장, 독립기념 여신상, 대통령궁, 쌈마르틴 장군 시신을 모신 성당, 오벨리스크, 아르헨티나의 군대, 남미의 경제, 동상이 많은 나라, 아르헨티나의 한인촌, 한국관의 융성한 대접, 아르헨티나의 문화, 이민자 천국, 인심 좋은 나라
* 리오 호텔 출발
오늘은 아르헨티나로 간다. 로얄티 꼬빠까바나 호텔을 떠난다. 리오데자네이루 공항에서 10시 20분 비행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룸을 나왔다.
덥다. 에어컨을 켜도 땀이 난다. 로비도, 식당도, 모두 덥다. 구름 낀 날씨여서일까. 오히려 밖이 서늘하여 호텔 앞 거리에서 바람을 쏘였다. 공중 전화가 모자를 씌워놓은 것 같이 예쁘다. 브라질과의 아쉬운 작별이지만 여행 마지막 무렵 이과수로 또 온다는 희망으로 그래도 즐겁게 떠난다.
* 공항으로 가며 본 리오의 아침
리오의 아침은 사람도, 차도 활기차다. 브라질 대통령이 리오를 전반적으로 수리한다고 약속했다며 더 변화될 것이란다. 해변에는 출근하는 배가 뜬다. 싼 값에 타고 다닌다. 모두가 정겨운 표정들이다.
가이드는 그 동안 본 리오의 명소들을 상기시키며 기억을 다져준다. 슈가로프산, 즉 빵산, 이곳 이름으로는 빵데아슈카 번갈아 듣던 저 산, 예수님 동상이 거룩하게 십자가 형상으로 바라보고, 이제 떠나야 하는데 아쉬운 눈시울이 시려온다.
긴 다리 니떼로니, 숨어있는 물이란 뜻으로 13.29km의 장엄한 몸통으로 바다에 섰던 모습, 위령탑 앞에서 유람선을 탔던 시간, 지금 그 아름다운 도로를 달리며 고운 장면들을 재생시킨다. 리오의 아침은 레코드판의 회전처럼 여전히 고운 자태를 전시한다.
* 리오의 변두리 풍경
도심을 벗어나자 변두리에는 판자촌이 보인다. 가난한 자가 사는 곳이다. 마약촌이기도 하다.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총소리도 많이 들리는 무서운 지역이다. 빈부의 극심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오염된 만이 보인다. 브라질은 정화법을 한국으로부터 이제야 배우기 시작했다. 내 조국의 한강은 정말 청결한 강이다. 드넓은 호수가 지저분하다. 이런 저런 이국의 풍경을 보며 공항으로 달린다.
* 리오데자네이루 공항 출발
국제선이라서 바쁘게 움직였다. 10시 20분 비행기, 33번 게이트다. 일행 중 한 명이 심하게 체하여 다들 걱정했다. 다행히도 현지 가이드 남편이 나와서 경략을 지압하여 혈점을 풀어줌으로 회복되었다. 서로들 조심하여 즐거운 여행이 되어야겠다고 동감하는 순간이었다.
브라질 날씨가 덥고, 일교차가 커서 그렇다. 오늘은 구름이 많이 낀 하늘이다. 33번 게이트 앞에 9시 30분까지 대기 중 바라본 공항의 외경은 푸른 나무 숲과 멀리 주택과 공항 건물들이 시원하게 전개된다. 이제 브라질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간다. 22E, 22F, 남편과 나의 좌석이다. 비행기는 다시 한번 아름다운 리오를 보여주며 힘차게 날아간다.
* 상공에서 본 아르헨티나
자외선이 강하여 창문을 닫고 오다가 거의 왔다는 안내 방송으로 창문을 여니 시가지가 오밀조밀하게 전개된다. 그러다가 푸른 숲 물결이 보이고 잘 정리된 경작지도 전개된다. 반듯반듯 가꾸어 놓은 땅이 예술이다.
광활한 땅이다. 산도 없는 긴 지평선이다. 이것이 아르헨티나구나, 하고 나는 동그란 감탄을 했다.
*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도착
브라질에서 2시간 늦게 출발하여 늦은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한국 교포 황용식 가이드를 미팅하여 유인물을 배부받았다. 친절하고 성실하다.
쾌청하고 맑은 날씨다. 19도의 온도, 참 좋은 일기다. 공항에는 LG TV가 걸려있다. 내 조국을 만나는 순간이다. 아르헨티나라는 영문 글씨가 반긴다. 빙하 사진도 있다. 울창한 나무들이 공항 밖에서 반긴다. 정말 꼭 오고 싶던 곳, 여기는 아르헨티나 수도 브에노스아이레스다.
* 울창한 숲의 공원
공항에서부터 사방에 짙푸른 나무와 숲이 많이도 보인다. 브에노스아이레스는 1936년도 도시계획했는데 바둑판으로 조성했다. 이미 그때 1km 안에 반드시 공원을 조성하도록 했다. 그래서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공원에 가득하다.
드넓은 자연을 얻은 나라인데 또 새로운 자연을 조성하여 쾌적한 도심을 만든 모습에서 큰 교훈을 얻게 한다. 배워가야 할 대목이다.
* 산이 없는 나라 아르헨티나
한국과 12시간의 시차, 정반대의 영토다. 12시간이 늦은 나라다. 남한의 28배 크기, 세계 8번째 크기의 국가다. 3200만명 인구인데 불법체류자 200만명을 더하면 3400만명 인구다. 그만큼 불법 체류자도 많다.
남북의 땅 길이가 3800km, 동서로 1400km다. 이토록 넓고 큰 대륙에 산이 없다. 볼리비아 접경만 산이다. 나머지는 산이 없다. 겨우 100m의 동산 정도가 있다. 서쪽으로 900km 가야 산을 만난다. 산이 있어도 경사가 완만하여 높이를 느끼지 못한다. 기막힌 대륙이다. 내 조국의 넘치는 산과 영토를, 할 수만 있다면 나누어 골고루 분포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아르헨티나의 목축업
평원에서 발전한 것은 목축업이다. 1인당 3마리를 기르는 격이다. 주인이 자기 소가 몇 마리인지도 모를 정도다. 산타클로스주는 남한의 3.5배, 1만 5천명 인구인데 3명이 목축업에 종사하며 산다. 한국의 땅 정도를 1인이 차지한 셈이다.
소, 돼지, 염소 모든 동물을 방목한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가서 10헥타 사각형에 몇 마리인지 계산하여 파악한다. 자연 번식으로 숫자 파악이 어려워서, 넓어서 어려워서 그렇게 동물 수를 헤아린다.
송아지 수준의 200kg 소를 잡는다. 4-6시간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맛있다.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 이태리인이 디자인하여 유명하며 유행이 쉬이 바뀌지 않는다. 이 나라 인구분포는 스페인계 30%, 이태리 30%, 독일 20%, 나머지는 이민지와 현지인이다. 한데 어울려 동물과 함께 평화롭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미의 파리 브에노스아이레스
여기는 유럽의 파리, 남미의 파리로 불리는 도시다. 1800년도 프랑스식 부채꼴로 조성되었다. 파리가 개선문을 중심으로 8갈래로 나뉘었다면 브에노스아이레스는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8갈래로 나뉘어졌다. 유럽에 온 느낌이 드는 도시다.
먼저 에바의 무덤에 있는 곳에 간다. 역사를 공부하며 왜 아르헨티나가 변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탱고 발상지 보카지구와 건립의 시초지인 오월 광장도 돌아볼 것이다. 비행기가 2시간 연착하여 분주한 걸음으로 보아야 한다. 유럽풍의 우람한 건물이 찬란했던 역사를 발하고 있다
* 아르헨티나 이민
이민역사가 다르다. 미국은 기독교 이민자지만 이 나라는 지하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백인들이 귀족으로 이민왔다. 그 옛날부터 백인들은 3D 직종의 힘든 일을 하지 않고 그 인접국가 사람들이 와서 했다.
불법 체류자도 대학 병원 모두 무료다. 생명 우선 존중으로, 그래서 많이 넘어와 산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교육, 문화, 경제 수준이 제일 높다. 국가에서도 외국인이 넘어와 일 열심히 하면 영주권을 주고 세금도 눈 감아준다.
불법 체류자가 영주권을 받는 법은 젊은이는 아이 하나만 낳으면 조부모까지 이민이 가능하고, 늙은이는 5~10년 살면 변호사를 사서 신청하면 영주권이 나온다. 모두 불법은 아니다. 1992년부터 정식으로 이민을 받지 않던 나라인데 지금은 여권만 있으면 부동산 취득까지도 가능하다.
브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건축, 공과는 세계 50위권으로 유명하다. 한국 서울대가 세계 200위인데, 그에 비하면 대단한 학교다. 그런데 그런 대학의 의대, 법대가 모두 불법체류자에게도 무료로 교육시킨다. 반드시 졸업 전에 영주권을 취득해야 졸업장을 얻지만 드러내 놓고 폭넓게 수용하는 이 나라의 이민에 대하여 신비롭다.
* 가난한 나라의 부자 국민들
일본과 정반대다. 일본은 나라는 잘 살고, 개인은 가난한데 이곳은 아니다. 나라는 가난한데 개인은 부자다.
한때는 세계 부강 국가였는데 정치와 복지의 불균형으로 가난한 나라가 된 것이다. 21%가 부과세와 3%의 영업세를 낸다. 무엇보다 인간 중심, 생명 중심이라는 말에 숙연해진다.
* 아르헨티나의 교통
공항에서 브에노스아이레스 시내로 진입할 때 고가도로를 넘어왔다. 1967년도의 고가도로인데 원래 미국에서 만들어 30년간 돈 받고 있다가 나갔다. 그 고가도로 덕으로 쉽게 공항에서 시내 진입이 가능하고, 도심 소통도 원활하다. 1936년에 20차선의 대로와 지하 주차장, 1300만대 승용차 국가였다. 버스를 시작한 나라이며 볼펜을 처음 사용한 나라다.
아르헨티나 인구의 40%가 브에노스아이레스에 산다. 그중 10%인 400만명, 서울 인구의 1/3 정도가 도심에 모여 산다. 1536년에 조성한 도로가 일방통행로여서 혼잡하다지만, 우리나라는 그 당시 조선시대였는데 이 나라는 잘 살았다고 하니 행복한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20차선 대로도 있고, 무거운 건물 사이로 길은 무수히 열려 있다.
* 아르헨티나의 정치
국회가 상, 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기가 만료될 때도 일부만 바뀌어 나가는 제도다. 법을 이어가기 위해서 일부만 교체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주지사나 상원의원에서 나온다. 두 정권이 있는데 현재의 당인 민주주의 당과 정권이 우세한 사회주의 당이다.
나는 정치에 대하여는 잘 모른다. 그러나 단절된 정치가 아니고 조금씩 법을 이어가는 정치를 한다는 대목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나라도 성숙한 정치로 국가 경제를 일으켜야 할 것이다.
* 아르헨티나의 날씨
바깥 날씨가 쌀쌀하다. 사람들이 털옷을 입고 다닌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렇겠지만 브라질과는 아주 딴판인 날씨다. 발가벗고 다니던 브라질인데 이곳은 겨울 복장이다.
내일은 바람이 셀 것이란다. 긴 팔과 잠바로 따뜻한 옷을 입으란다. 이곳에서 3일간 관광한다. 브라질에서 조금 내려온 나라인데 벌써 겨울색이 짙다. 4월에 보는 남미의 날씨는 그렇게 국가마다 달랐다.
* 레골레타 귀족묘지
장군 무덤과 아르헨티나를 부유케 한 자와 에바의 무덤이었다. 1881년에 시작하여 2003년도까지 조성했다. 귀족 묘지는 장엄했다. 짙푸른 숲의 공원 안에 커다란 문과 함께 빛을 발하는 묘역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에바의 무덤이다. 1919년-1952년까지 34세로 사망한 여인이다. 이곳에서 200km 떨어진 지역에서 사생아로 탄생한 그녀는 성우로, 단역 배우로 알려졌지만 길거리 창녀였다.
그 무렵 빼론이 등장했고, 노조 결성 운동으로 에바가 등장했다. 빼론이 정치를 못한다고 감옥에 감금되자 에바는 그걸 알고 사람을 모아 노력하여 빼론을 도왔다. 그녀는 사별한 미망인으로 뒤에 큰 힘이 있었다. 감옥에 나온 빼론은 그런 그녀와 결혼했다.
빼론은 귀족이고 에바는 천민이다. 브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의 딸로 양녀로 들어와 신분이 상승된 것이다. 그녀는 1946년 영부인이 되고 빼론은 대통령이 되었다. 위대한 여인이다. 아르헨티나 대학을 세웠고, 병원 무료 시스템을 만든 여인이다.
그녀의 무덤은 작은 골목에서 만났다. 관리원이 항시 지키고 있어 금새 찾을 수 있다. 카메라를 대어도 무덤의 문조차 잡지 못할 만큼 협소한 도로, 그 곁에 촘촘이 박힌 무덤들, 기막힌 장면이다.
묘라 하여 한국 같은 무덤이 아니고, 집의 형상이다. 문도 있고 우람한 건물로 언뜻 보면 주택가 혹은 상가와 유사하다. 아르헨티나를 부유케 한 자는 큰 동상과 함께 무덤도 컸다. 실제로 시신을 안치한 귀족 묘지, 소슬하지만 사후에도 행복한 곳에 머물고 있다.
* 아르헨티나의 복지
복지가 너무 잘 되어서 무너진 나라다.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지만 한 국가 튼튼하려면 나라나,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쏠려서는 안 되겠다는 큰 교훈이다.
에바와 빼론을 원망하는 소리도 많다.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나라 복지에 너무 치중하여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동법이 1개월만 일하면 퇴직할 때 3개월분 봉급을 탄다. 노동법이 세어서 이 나라의 자동차는 자체 생산력을 잃고 모두 외제다. 심한 노동법의 규제로 외국 회사가 못 들어온다.
복지는 불법체류자까지도 심장 무료 시술, 약 무료 제공이다. 자국민과 이민자 모두가 나라의 큰 혜택을 입고 산다. 그런 연유로 나라는 가난하고 개인은 부자가 되는 불균형을 낳은, 안타까운 나라다.
* 오월 광장
브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 한복판에 큰 광장이 있다. 아르헨티나 건립 시초지로 대단한 자부심을 머금은 성스러운 영토다. 사람도 비둘기도 평화로운 품에 안긴다.
주요 건물들이 이 광장 주변에 많다. 중앙에 독립 기념 여신상이 있고 분홍색 고운 대통령 궁이 있고, 성당, 시청 등이 우람하다. 한 나라의 심장부에 들어선 것이다.
* 대통령궁
오월 광장 독립기념여신상 곁에서 국기하양식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근엄하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것이 대통령 궁이다. 길게 분홍색 건물로 늘어서 있다.
대통령이 머무는 곳 치고는 너무나 검소하다. 어느 평범한 건물로 보이는데 그 곳이 대통령궁이라 하니 국민과 대통령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보인다. 외국을 돌며 배우는 것은 다양하다. 이런 무형의 깨달음을 주는 것도 여정의 큰 소산이다.
* 쌈마르틴 장군 시신을 모신 성당
이 나라의 독립 장군을 모신 성당, 역시 오월 광장 바로 곁에 있다.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가면 있다. 신성한 성당으로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성당에 대리석 관을 마련하여 45도 각도로 모셔있다. 죽어서도 이 나라를 지켜달라는 간곡한 주문이다. 시신을 세우면 뼈가 무너지고, 뉘이면 이 나라를 못 일으킨다는 뜻에서 비스듬히 안치한 것이다. 성당 안에서는 사진 촬영도 금지다. 순금 장식의 대성당에는 예배 드리는 사람이 근엄하게 앉아 있다.
이 나라는 천주교가 국교다. 천주교인이어야 대통령이 된다. 취임 미사를 먼저 드려야 대통령 취임이 거행된다. 이런 성스러운 성당을 오픈하여 외인에게 보여줌에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 오벨리스크
내가 최초로 오벨리스크를 본 곳은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이다. 그 후 이집트 룩소, 카르낙 신전에서, 카이로 도심에서 보았고, 터키 이스탄불 히포드럼 공원에서도 보았다. 모두 이집트에서 시작한 오벨리스크가 각 나라로 흩어진 것이라 했다.
나는 지금 오월 광장에서 빌딩 숲 사이로 도로의 끝에 선 오벨리스크를 만나고 있다. 유럽도 아니고, 이집트도 아닌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뾰족 첨탑 기둥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다.
* 아르헨티나의 군대
군대가 징집과 자원,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주민번호 0-9번에서 추첨하여 끝자리가 5번 나오면 군대가는 식이다. 참으로 희한한 방식이다. 그리하여도 불평없이 징집된 자들이 군대에 간다니, 이건 위대한 자유인가 위대한 복종인가. 내 눈과 귀가 놀라는 대목이다.
* 남미의 경제
남미의 경제는 ABC 경제다. A는 아르헨티나, B는 브라질, C는 칠레다. 이 세 나라가 서로 연관된 경제다. A가 잘 살면 B가 못 살고, C가 잘 살면 A가 못 산다.
아르헨티나 자동차 공장이 브라질로 가면 아르헨티나는 가난하고 브라질은 부유해진다. 칠레는 긴 국가로 남쪽에 전자제품 공장이 많다. 아르헨티나는 노동법에 세어서 외국 회사가 발을 못 붙인다. 삼성 전자도 20년전 들어왔다가 이 나라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자동차 생산이 못 들어온 정도다. 조립 공장은 있어도 생산 공장은 없다. 생산은 공장이어야 해서 그렇다. 아르헨티나와 남미의 경제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아르헨티나의 GNP는 4300불이다. 2001년까지는 1만 2천불이었는데 달러 파동으로 1/3이 추락된 상태다. 그래도 시내를 관광하다 보면 가난한 나라라는 것을 못 느낀다. 숨겨진 아픔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외에서 들을 때면 내 조국의 눈부신 발전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드높은 위상에 대하여 큰 자부심과 함께 더욱 성실한 국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순간도 나는 대한민국 백성임이 참으로 행복하다.
* 동상이 많은 나라
영웅화, 우상화를 좋아하는 나라다. 그래서 곳곳에 동상이 많다. 누군지도 모른다. 축구선수 마라도나의 두상도 많이 있다. 20여개나 된다. 자신도 자신인 줄 모른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진품도 있다. 첫 번째 진품은 스페인에 있고 두 번째 진품은 이 나라 시청 앞 공원에 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버스 안에서 잠시 나도 보았다. 그만큼 정열로 사는 나라이리라.
* 아르헨티나의 한인촌
이민 43년차 가이드는 109번 버스 종점이 있는 백구마을 한인촌에 산다고 한다. 한국 이민자들이 외로워서 자주 모이며 평화롭게 사는 영토다.
주로 식당, 혹은 저녁 장사로 살아간다. 4만명이 거주하는 한인촌에는 불교, 천주교, 여호와의 증인 교회 등 30여개의 교회가 있다. 조선족으로 14년차 이민자도 처음에는 한국인 밑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독립해서 분식점을 운영한단다. 처음에는 사상으로 많은 대립이 생겼으나 지금은 화합하여 잘 산단다.
우리는 이곳으로 석식을 하고자 들어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다. 어둠 속에서도 한국어의 상호를 단 가게가 보인다. 방앗간이며 건강 식품 상가들이다.
한국인 이민은 대부분 농업 이민자들이다. 가난해서 이곳에 산다. 황용식 가이드는 성공한 이민 교포였다. 섬유 공장도 운영하고, 부동산 가게도 있고, 부인은 유치원 원장이라 했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이민자라고 자처한다.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다. 훌륭한 교민들이다.
* 한국관의 융성한 대접
한국관은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곳에서 아르헨티나의 첫날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훌륭하여서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같은 동포의 뜨거운 사랑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융성한 대접을 타국에서 내 동포의 손길로 받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불고기, 생선, 나물 등 수십가지의 음식을 연이어 내놓는다. 처음에는 무심코 먹었는데 점점 뜨겁게 대접하는 주인과 종업원의 손길을 보며 눈물겹도록 감사하며 먹었다.
* 아르헨티나의 문화
겉치레가 없는 나라다.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산다.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지 않아서 좋다. 실속있는 사회 풍조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가이드는 강조한다.
어쩌면 한국의 정서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만큼 나도 마음에 드는 문화라고 느꼈다.
* 이민자 천국
이곳에 온 한국 이민은 1966년도 농업 이민이 최초다. 서로가 이민자라서 인심이 좋다. 80& 이상이 의류업을 한다. 지금은 자체 브랜드 상업이다. 선대 조부모도 그렇게 하며 힘들게 살았다.
사회주의적인 나라에서는 절대로 개인은 못 산다. 의사 월급이 적다. 존경받지만 부자는 안 된다. 이민 2세 중 의료업계 종사자는 많지만 부자는 아니다.
유태인이 안 하는 일만 관여하는데 그게 바로 의류업계다. 유태인 마피아가 상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이민자도 1주일에 1명 꼴로 사살당한다. 장의사 한국인도 손떼고 브라질로 도주했다. 그래서 한국인이 한국인 대상으로 장인업도 못 한다.
지금은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 이민자도 중산층 이상이 되었다. 이민자의 월급은 이 나라에서 300불이다. 달러 파동을 3번째 겪으며 교민이 1만명 이하까지 줄었는데 한국의 IMF 이후 다시 증가하여 지금은 1만 9천명으로 추산한다.
이민자에게도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무전 여행을 할 만큼 친절하고 가이드는 이민자 천국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무엇보다 치안이 브라질에서보다는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내 동포가 행복한 나라에서 우리도 덩달아 행복했다.
* 인심 좋은 나라
기차를 잘못 탄 적이 있단다. 이 나라는 300km 쯤 가야 바다 낚시로 고기를 잡는데 가기만 하면 아이들도 하루에 황색 조기를 100마리는 잡는다. 그곳으로 가려는데 발음을 잘못하여 엉뚱한 대륙 횡단 열차를 탔던 것이다. 2일이 지나야 멈추는데 한국인의 이 안타까운 호소에 30분후 다시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와 연결시켜 주기 위해 세워주더라는 것이다.
버스를 잘못 탔을 때도 원하는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가더라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인심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아르헨티나는 그렇게 우리를 편안하게 맞이했다.
내일은 5시에 기상, 6시 조식, 6시 30분에 우루과이로 출발한다.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고 배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국경을 넘어가니 여권을 가져오고 오가는 배 시간이 3시간이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오란다.
많이 설레인다.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를 찾아 헤매던 무대가 이곳 브에노스아이레스다. 그 항구로 나는 배를 타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니 꿈처럼 행복하다. 참으로 좋은 나라에 왔다.
2008년 4월 15일 화요일 아르헨티나에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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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호텔 출발
오늘은 페리호를 타고 우루과이로 가는 날이다. 3시간 동안 배로 넘어간다. 206호 룸에서 자고 10층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했다. 이 나라는 석식을 푸짐하게 하고 조식은 간단히 하는 문화라서 빵, 과일, 계란반숙, 소시지, 시리얼 이 정도만 나왔다. 나에게는 알맞은 식단이다.
아르헨티나의 첫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쌀쌀하여 얇은 내복을 입고 잠바를 걸쳤다. 아침 TV를 보니 영상 5도다. 한국의 아침 기온보다 낮다. 거리는 가로등이 화사하고 버스 기사는 벌써 나와 대기 중이다. 나를 보더니 반가이 인사하며 문을 열어준다. 즐거운 하루가 또 열린다.
* 우루과이 가는 길
브에노스 아이레스의 약자로 BS.AS로 표기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우루과이로 넘어가려면 여권에 도장 2개 찍는지 꼭 확인해야 된다. BS.AS에서 출국하는 도장 1개, 우르과이에 입국하는 도장 1개다. 이 2개의 도장이 없으면 벌금을 많이 내야 된다.
비행기가 아니고 배로 넘어가도 여권 심사는 엄격히 한다. 우루과이에는 교민이 100여명 산다. 페리호는 시설이 좋아 선내에 상가도 있고 두 나라를 오가는 아주 편리한 배다.
* 라쁠라따 강
아르헨티나에서 우루과이로 건너가는 강이다.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강물이다. 바다 같은 강이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이 4km, 가장 넓은 곳이 50km다. 광폭의 강물은 빨간 색이다.
라쁠라따는 ‘은’ 이란 뜻이다. 브라질 위쪽에서 은을 많이 채취하여 실어나르던 강이다. 이 강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는 수단이었다. ‘은이 흐르는 강’, ‘은빛 강’ 이다. 이름도 담긴 뜻도 아름답다.
특유 물고기가 산다. 잉어, 빠가사리 등이 사는데 매운탕이 기가 막히게 맛있단다. 파도는 1m까지 친다. 잔잔한 강이다. 몬테비데오는 강과 바다가 만나지만, 배가 지나가는 강이 세계에서 제일 넓은 강이다. 한국과 일본이 왔다 갔다 하는 격이다.
물고기 잡는 장소도 두 나라가 같다. 잡은 사람의 나라에 따라 00산 해물이라고 표기한다. 한국 오징어 선원도 많다. 대부분 뱃사람이다. 몬테비데오에는 한국인 2명이 식당을 운영한다. 배를 타러 가며 버스 안에서 들은 설명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 쾌속선 승선 터미널
공항의 향기가 난다. 유람선도 아니고, 타국으로 넘어가는 배를 승선하는 터미널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여권을 모두 거두어 심사 과정을 거치러 갔다. 비행기표를 사듯 그렇게 배표를 산다.
수속을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남편과 내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뚱뚱한 남자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준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순간 이국에서의 두려움으로 나는 거절하고 자리를 피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순수하고, 그렇게 친절하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쾌속선 승선 터미널은 그렇게 향기로운 추억까지 담아 주었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향발 쾌속선 승선
한국인 약간과 이 나라 부근 사람들이 많다. 머리는 까맣고, 얼굴은 서양인 형상이다. 친절한 국민성으로 바라보면서도 정감이 흐른다.
배는 상당히 넓고 크다. 대형 TV가 있어 뒤편에 앉았는데 잘 보인다. 배의 앞편은 또 이만큼 넓다. 중간에 식사 코너 식당에는 빵 종류가 많이 있다.
배가 아니라 바다의 버스 같다. 창도 넓고 의자도 많고, 사람도 많고 국경을 넘어가는데, 꼭 나들이 또는 장보러 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정겹게 살고 있다. 참으로 부러운 정경이다.
* 브에노스아이레스 항구
어느 항구인들 아름답지 않을까마는 내 눈에 브에노스아이레스 항구는 유난히도 아름답다. 항상 배를 타면 배 후미의 떠나는 항구를 꼭 살펴보는데 오늘도 나는 쾌속선 후미의 창가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배가 출항하면서 서서히 그려내는 브에노스아이레스 항구는 환상이다. 나를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속 주인공으로 이끌기도 하고, 잘 발달된 고층 빌딩들이 문명의 꽃으로 피어오르기도 한다. 바다 같은 강물과 하늘과 햇살이 그려내는 넓고, 잘 생기고, 아름다운 항구를 한동안 보았다.
* 세계에서 제일 넓은 강
배가 정박한 항구 브에노스아이레스 여객 터미널에서부터 바다 향기가 나는데, 바다가 아니다. 이 물은 분명 강물이며, 강이다. 라쁠라따 강, 세계에서 제일 넓은 강이다. 강폭이 제일 좁은 곳이 4km라 하니 십리나 되는 폭이 가장 좁은 곳이라 하면 어찌 이해할까, 아슬한 강이다.
그래, 나는 강을 타고 오르며 우루과이에 간다하여 강변의 고운 풍경을 그렸었다. 그런데 배를 탄 순간부터, 배가 달리고 또 달려도 아득한 수평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제일 넓은 곳이 250km, 이것이 어디 강이던가. 상상할 수 없는 강이다. 남미의 자연 우림지대에서 흘러든 물이 강을 이룬 것이다. 대단한 강이다.
1층은 주차장, 그리고 사람이 들어앉은 곳은 2층 규모의 선실이 있는 대형 페리호는 도저히 강에서 왕래하는 배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우람하다. 그만큼 강의 큰 규모를 시사하고 있다. 내 생애 드넓은 강의 품에서 환희에 젖는 기막힌 시간이다.
* 우루과이로 넘어가는 강의 길
길고 넓은 강을 넘어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로 간다.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전 8시 정각에 출항했다. 뒤에 브에노스아이레스 시가지를 두고 떠나고 있다.
망망대해다. 수평선이 사방을 동그랗게 그리고 있다. 나는 배의 맨 뒤편 의자에 앉아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간다. 물살이 세 갈래로 폭포친다. 두 갈래 물살이 중앙에서 다시 만나며 용솟음쳐 오른다. 아침 햇살이 무지개까지 세워 진풍경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얀 물살과 무지개, 저 멀리 배 몇 척, 그리고 하늘과 맞닿는 수평선이 전부다.
배로 강을 타고 3시간 간다는 말에, 나는 산을 만나리라, 나무도, 이국의 주택도 강변에서 만나리라 했는데 전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십리 강폭에서, 육백리 강폭에서 무엇이 보이겠는가. 오로지 강물만이 시야에 가득하다. 기막힌 강의 길, 여정이다.
* 국경을 넘나드는 쾌속선 BUQUEBUS
용감한 배다. 그만큼 드넓은 강을 줄기차게 달린다. 아침 햇살이 물결을 은빛으로 수놓는다.
지하층에서 꼭대기 층까지 돌아보았다. 층마다 상점이 있다. 지하층에는 큰 상가도 있다. 한켠에는 어두운 잠자는 좌석이 있다. 1층은 일반 선실, 2층은 특실이다. 돌아보며 영어로 ‘Ladys Toilet, where is?' 하고 물으니 선무원은 저쪽으로 돌아가라고 곧바로 대답한다. 영어가 통하여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배 후미에서 배 앞 좌석으로 옮겼다. 앞으로, 옆으로 강이 잘 보여서 또 새롭다. 하늘에는 태양이, 지상에는 강물이 환상이다. 만나는 그곳에 그려내는 수평 또한 장관이다. 안정적으로, 파도가 없는 잔잔한 강물 위를 질주한다. 그 이름 BUQUEBUS다.
멀리 아련하게 물 위로 솟은 육지 풍경이 보인다. 이제 남은 시간은 40분 정도,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르과이에 가까워진 것 같다. 강로를 따라 국경을 넘나드는 위대한 쾌속선이다.
* 우루과이 도착
오전 10시에 가까워지자 정면으로 산이 보인다. 곁으로는 긴 마을이 줄지어 있다.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3시간을 달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다다른 것이다.
정각 10시에 하선했다. 부퀘버스가 와서 우리를 태웠다. 이곳에서는 한국 가이드가 없어 아르헨티나 황용식 가이드가 통역한다. 오늘 하루 몬테비데오에서 시가지 기념 곳곳을 돌아보고 다시 브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간다.
쾌청하고 좋은 날씨다. 한국의 서늘한 10월쯤이다. 여기는 남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다. 우루과이 여인이 가이드로 나왔다. 그녀가 우루과이어로 말하면 황용식 가이드가 한국어로 통역한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생애의 기쁨이다.
* 몬테비데오의 해변 풍경
운전기사는 루벤, 가이드는 제니라고 소개한다. 해변을 따라 달린다. 물건운반항구도 지났다. 흔히 볼 수 있는 바다 풍경인데 이곳 물은 바닷물이 섞인 강물이란다.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지는 물이며 여기가 바로 250km의 강폭인 곳이다. 장엄하여서 믿기지 않는다. 낚시는 가능하며 해수욕은 불가다.
낮은 지역으로 건물도 낮다. 100km까지는 해변도시다. 여름에는 관광객이 많다. 이 나라는 소가 1인당 4마리이며, 주로 관광수입으로 산다. 산이 아예 없다. 면적은 한국보다 약간 크다.
조금 달리자, 몬테비데오 시가지가 보이고 신기하게도 해안 도로 곁의 물이 바다란다. 이제 야자수 그윽한 해변 풍경을 본다. 남미의 강과 바다는 그렇게 가까이서 만나고 있었다.
* 몬테비데오의 중심지
옛 길을 따라 들어간다. 도로가 좁다. 여기가 제일 중심지다. 4~5블록 안에 주요 건물이 다 모여 있다. 대사관 집중 지역이다. 구도시와 신도시를 나누는 문이 있다. 한국의 명동거리로 1992년부터 차량 통행 금지되어 우리는 내려서 걸어 들어갔다.
거리 표정이 밝다. 유럽풍의 건물이 우람하다. 한국의 명동이라는데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상가와 2층 건물이 밀집하여 화사하다.
* 우루과이 대통령궁
베이지색 2층 건물이다. 현재는 대통령이 거주하지 않는데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을 고려 중이란다. 특별한 치장도 없고, 한 나라의 우두머리를 위한 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소박하다.
내가 수많은 해외 여행지에서 본 대통령궁은 대부분 그랬다. 백성들 곁에서, 백성들이 드나드는 곳에 있었다. 허술하다고 느낄만큼 경계도 느슨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높지 않은 대통령궁, 그윽하고 아름답다.
* 독립광장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르삐가스 장군 동상이다. 우루과이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장군이다. 야자수 사이에 선 장군 동상이 말을 타고 여전히 위대한 위용을 드높인다. 1923년 이탈리아 인이 제작하여 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한 나라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는 순간이다. 도심 한 도막 내어 공원도 만들어 놓았고 장군 동상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대통령궁을 비롯한 주요 건물들이 둘러싸여 있다.
* 몬테비데오 구시가지
독립 광장 주변이 모두 구시가지다. 1970년 세운 성당도 오롯하다. 이곳 성당은 병원 역할까지 한다. 이까 배타고 들어올 때 보였던 그 성당이다.
한국의 문선명이 세웠다는 적색 높은 호텔도 있다. 장군 동상 곁에서 한국을 빛낸다. 1922년 건물로 남미에서 그 당시에는 제일 높았다는 회색 첨탑 건물도 오롯하다. 빌딩 숲이다.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 나라 땅에 서서보니 빛나는 영토다.
* 7월 18일 거리
우루과이의 메인 거리다. 이 나라의 독립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1830년 7월 18일이 스페인의 지배에서 해방된 날이며 그 날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탄생시킨 도로다.
극장, 상점, 공원, 브라질 건물, 사람들이 많다. 캐나다 국가의 나무인 포플러 나무도 우람하게 가로수로 있다. 이민자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건물도 있다.
유럽 향기가 난다. 고전적 건물이 많다. 스페인의 잔재일까. 다비드상이 있다는 벽돌색 시청도 지난다. 7월 18일 거리를 중심으로 시티투어하며 우루과이의 심장부를 본 것이다. 내 나라만 서글픈 역사를 안고 산다고, 내가 어릴 적에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커서 어른이 되어 점점 세계 속으로 걸어보니 주변국에 대한 아픈 고리를 안고 사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역사궤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한스러웠으면 해방된 날짜를 도로에 깔았을까. 점잖은 신사의 뒷모습이 이제는 화사하고 당당하게 보인다.
* 우루과이 기념품 상가
수공예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모두 이 나라의 제품이다. 겨울로 가는 계절이어서 주로 털옷이 많다. 나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기념 마크가 찍힌 겨울 T셔츠를 하나 샀다. US 달러 12불, 모자까지 달린 적색 겨울 셔츠인데 한국보다 싼 편이다.
이 나라 음료수 중 메디오 메이오가 있단다. 화이트 와인에다가 샴페인을 섞은 것이다. 유럽과 남미 여행에서는 주로 와인이 특산품이다. 사는 것만이 쇼핑이 아니고 눈과 귀로 그 나라를 보고, 듣고, 느끼고 가는 것도 한 나라에 대한 큰 쇼핑이다.
* 우루과이 현지 중식
생선, 고기, 야채가 나오는 이 나라의 특식이다. 미리 예약하고 간다. 44번 부퀘버스에 우루과이 여인과 함께 투어한다. 이 나라 여인이어서 잘 안내해 준다. 이 나라 돈 관계는 20으로 나누면 US 달러가로 환산된다. A316이면, 나누기 20하여 약 16달러다.
우루과이를 배우며 아까 배에서 내렸던 몬테비데오 항구 터미널 안에 있는 큰 규모의 식당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는다.
고기를 많이 먹었다. 햄, 빵, 감자, 고구마, 야채, 그리고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모든 음식이 순하고 맛있다. 배부른 식사로 아시아인을 환대함에 기쁘고, 고마웠다. 여기는 먼 나라 우루과이다.
* 몬테비데오 항구 터미널
햇살이 따스하다. 하늘이 투명하고 해맑은 빛이 내려온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곳곳을 둘러보았다. 건물의 외형도 아치로 둥근 기둥을 세워 아름답다. 수많은 차와 사라들이 들고 난다.
부퀘 버스는 부퀘 쾌속선과 같은 소속의 운송수단인 것 같다. 손님을 위해 주차 대기하고 있다. 물이 길이 되어 타국을 오가는 신비로운 나라, 먼 나라의 정겨운 풍경이다.
* 몬테비데오 시티 투어
우루과이에서 땅을 파면 한국과 만난다. 지구 정반대편에, 내 조국의 180도 극과 극의 영토에, 나는 지금 서 있다. 그리 많이 들어보지도 않은 나라, 지도상에서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잘 몰랐던 나라,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마음 속 외진 곳의 나라에 내가 지금 들어와 있다.
버스를 타고 몬테비데오를 돌아보는 시티투어 시간이다. 중식 후 항구 터미널에서 프랑스, 칠레 등 외국인과 함께 합류하였다. 나무도 남미 향기 그윽한 야자수를 비롯하여 울창하고, 예쁜 색상으로 지은 도심 건물들이 남미의 향수를 자아낸다.
* 국회의사당
이사벨 공원을 지나갔다. 옹달샘이라는 지역이다. 물이 나와서 그렇다. 사립 학교도 지났다. 공립은 무료인데 사립은 월교육비를 낸다. 잠시 후 우리는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내렸다.
국회의사당 건물은 대단하다. 자태도, 조각도, 구도도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1925년에 이탈리아 인이 설계하여 만든 대리석 건물인데 유니세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의사당으로 선정된 건물이다. 건너편 강가에는 두바이 돛단배 모양 건물이 현대의 미적 조화로 국회의사당을 더욱 빛내고 있다.
* 두바이 돛단배 모양 건물
영상매체로, 선전 화면으로 수없이 보아온 건물이다. 두바이에 있는 해변의 그 유명한 건물 형상으로 강가에 서 있다. 두바이 돛단배 건물은 호텔인데 우루과이 돛단배 건물은 언론 건물이다.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고 공원 언덕에서 바라보았다. 하늘을 향해 오롯이 솟아오른 건물이 비경이다. 나는 다음 기회에는 두바이에 가서 실제의 돛단배 건물을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넓어지는 가슴이다.
* 유럽풍의 웅장한 건물들
분명 이곳은 남미 우루과이인데 유럽풍의 웅장한 건물들이 많다. 국회 건물과 그 앞의 공원도 1931년에 형성된 도시인데 역시 유럽향기다. 대통령궁 부근의 모든 상가들, 성당, 아파트, 주택 대부분이 그렇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남미다. 역사의 한 부분을 도려낼 수 있겠는가. 이어져 내려오는, 어느날 새로운 역사가 돌연히 진행되지 않는 역사의 순리다. 우루과이는 삼마르틴 장군이 세웠고, 지금은 그들만의 밝고 씩씩한 행보로 살아가고 있다.
* 아름다운 공원
몬테비데오 도심에 큰 공원이 있다. 물도 흐르고 숲이 울창하다. 계곡인가 싶을만큼 깊은 공원이다. 자연 공원이 아니고 프랑스인이 만든 다리와 함께 아름다운 인공 공원이다. 장미공원도 있다.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던 우루과이인데 모든 것이 크다. 건물도 크고 시가지도 크고, 공원도 크고, 참으로 여유로운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 스페인 마드리드 거리
울창한 공원을 지나 들어선 곳은 외인 주택가다. 중후한 주택들이 별장처럼 나무 숲 사이에 들어서 있고, 어떤 집은 담쟁이 넝쿨로 장식된 자연의 집도 있다.
거리는 좁아서 대형버스가 겨우 지나가는데 아직도 떠나지 않은 외인의 주택 단지는 거대하다. 누가 살까. 지배의 잔재인데 한 도시를 곱게 꾸미고 있다.
* 프랑스식 건물
프랑스인이 거주하는 마을의 건물은 프랑스 향기를 머금고 있다. 몬테비데오 외곽 한적한 영토에 자리잡고 평화로이 살고 있다. 세계를 넘나들어 사는 시대이니, 그리 이상하지는 않는데 약한 국가속에 강한 힘이 들어서 있다는 대목에 서면 소슬해진다.
함께 평화로이 잘 살아야 할 것이다. 내 조국 역시 동일한 대목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고리를 끊고 나란한 존재로 세계가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다.
* 우루과이 약국
나는 해외여행 중 반드시 약국을 만나면 그 상호를 본다. 그 이유는 나의 둘째 아들이 약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쓰는 영문 약국 글씨와 조금씩 다름에 만나는 순간 호기심으로 다가간다.
우루과이 약국은 FARMACIA다. 역시 첫 글자가 P가 아니고 F다. 유럽에서 보았던 표기다. 이 나라 언어는 정녕 아니겠고, 영문 표기일텐데 유럽식 영어를 쓴다. 우리는 미국식 영어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 서민 시장
차는 점점 몬테비데오의 변두리로 간다. 지금 가는 곳은 시티투어 겸 고산지대로 오르고 있다. 고산지대라 하여 높은 산이 아니고 평평한 언덕이다.
서민시장은 한적한 곳에 있다. 대로변에 줄지어 있기도 하고, 마을마다 작은 가게가 있다. 허술하다. 가난한 마을이다. 아까 지나온 부자 마을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소박한 사람들이 오가고, 사람 향기가 고이는 풍경이다.
* 몬테비데오의 변두리 풍경
한국 서울의 변두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곳은 좁아서 시내 중심까지 30분이면 진입한다. 길 이름은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하며 자기네 나라와 도시 이름을 따서 지었다.
가을로 가는 골목의 나무들이 정겹다. 골목마다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낮고 작은 서민들의 주택들이 그 사이 곱게 수놓는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 몬테비데오의 가장 높은 고지
해발 142m의 고지, 이곳이 몬테비데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지다. 끝없이 평지의 다운타운이 보인다. 강과 도시, 울창한 숲의 전망이 장관이다.
고지 정상에는 박물관이 있다. 대포도 2대 전시되어 있다. 곁에는 그 동상을 세운 자의 동상도 있고, 푸른 잔디 둔덕이 절경이다.
산이 없는 나라, 나는 또 이곳에서 내 조국의 우람한 산을 떠올리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참으로 내 조국은 고운 땅, 깊고 높은 산을 키우는 웅장한 가슴의 땅이다.
* 산정에서 본 몬테비데오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소꿉장난하듯 꾸며놓은 아름다움이다. 얕으막한 건물과 바다와 강이 에워싼 비경이 눈부시다. 한적한 여백도 있고, 푸름도 있고, 고운 남미 도시의 진풍경이다.
산정이라 하여 한국과 같은 산정은 결코 아니다. 나무도 없고, 높지도 않은 해발 142m의 고지일 뿐이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산이라 부르며 오르고 있다. 저 멀리 옆선보다 조금 아래로 보이는 시가지, 어쩜 그 비경을 보기 위해 오를 것이다.
* 몬테비데오의 외곽지역 정경
도시로 내려오면서 촉촉이 가을로 들어서는 골목길도 보고, 도시와 이어지는 대로도 보고, 학교 운동장의 아이들과 축구하는 아이들도 보았다.
사람 냄새가 난다. 상가도, 거리도, 사람도 모두 정겹다. 편안하게 시티투어를 하여서 몬테비데오의 전경을 본다. 우루과이 여인은 이 나라 말로 설명하고, 한국 교포 아르헨티나 황용식 가이드는 한국어로 통역한다. 우리 차에는 여러나라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다. 합류하여 시티투어를 한다고 이미 일정표에 나와 있다. 이것도 이색 여행이다. 돌고 돌아 가는 외곽 지역의 정경은 계속 이어지고, 좁은 거리를 잘 헤쳐가는 버스, 멈추면 손을 흔드는 사람들, 모두가 평화롭다.
* 우루과이의 경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로 부유하지 못하다. 두 나라에 의지하여 산다. 그러다가 얼마 전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며, 자력으로 일어서려 노력한다.
이 나라 경제는 농축산물을 수출하여 이루는데 쌀은 대부분 볼리비아로 수출한다. 그 이외는 관광자원 수입으로 산다. 가난한 나라다. 해변 APT는 비수기에만 주인이 살고, 성수기에는 임대하여 세를 받는다. 렌트 가격은 1일에 4천불이다.
휘발유는 1리터에 1불 50센트다. 아르헨티나의 2배로 비싸다. 그래도 멋진 자가용도 눈에 많이 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사는 도시, 잘 사는 국가로 보인다.
* 몬데비데오의 거리 풍경
야자수 가로수가 거대한 크기로 줄 서 있다. 카메라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큰 키다. 몇 백년된 형상의 거목 야자수다. 이색 풍경을 자아낸다. 택시도 종종 보이는 활발한 거리다.
점점 도심 깊이 진입하며 곳곳에서 합류하는 차량들이 밀린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한국과 같은 막힘은 없다. 조금만 나가면 해변 도로다. 그 거리는 더욱 아름다운 손짓으로 이방인을 부른다.
* 우루과이의 정치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다. 한번 쉬고 다음에는 또 나올 수 있다. 이 나라 국기는 흰색과 9개의 줄로 구성되어 있다. 9개 주를 상징하는데 지금은 19개주다. 도심에 오벨리스크가 있다. 독립기념탑으로 법, 자유를 상징하는 동상을 조각했다.
한 명의 대통령과 30명의 상원의원, 99명의 하원의원이 있다. 아까 보았던 대통령 관저가 소박하여서 정치도 소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세계 최초의 월드컵 경기장
세계 최초로 월드컵을 실시한 나라다. 그 축구장을 보았다. 6개월만에 만든 경기장이다. 외경은 FIFA에서 꾸며 주었다. 외벽의 문양이 참으로 아름답다. 예술적이다.
월드컵에서 2번 우승한 나라다. 이 작은 나라에서 어찌 그런 힘이 있었을까. 처음은 페루와 결승전에서 1:0으로 우승했다. 축구는 정말 세계인이 사랑하는 경기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대목이다.
* 가장 아름다운 동상
우루과이는 목축업 국가다. 그래서일까. 마부가 소를 타고 마차를 몰고 가는 소 무리의 동상이 있다. 7마리 소들이 일렬로 가는 모양이다. 잔디 언덕에, 길가 사람이 지나다가 잘 보이는 곳에 갈비뼈까지 세밀히 조각하여 전시해 놓았다.
이 조각상이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상이다. 외형의 아름다움도 대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 나라의 상징, 목축업의 진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 우루과이 쇼핑센터
아주 큰 쇼핑센터다. 길고, 넓고, 아주 큰 상가다. 규모가 큰 실내 쇼핑가다. 에스컬레이터로 1,2,3층을 오르내리며 전 품목을 구입할 수 있는 종합 매장이다.
결코 싼 물건들은 아니며 상품질도 우수하다. 깨끗하고, 진열한 모양도 일류다. 나는 모자를 기념으로 샀다.
이제 급히 쾌속선 승선장으로 간다. 오후 6시에 쇼핑가를 떠났다. 이것으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관광은 끝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낀 시간들이다. 부자마을에 한국, 일본, 중국 대사관도 들어와 있다는 대목에서 남미 속의 아시아도 보았다. 아쉬운 걸음으로 쇼핑가를 나와 버스에 올랐다.
* 우루과이 출발
이제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간다. 7시 16분 배다. 3시간 걸리니 밤 10시경이나 브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모두 남미의 아름다운 여정으로 내 기억 창고에 저장될 것이다.
잠시 머물렀지만 정든 나라다. 온종일 버스 타고, 또는 간간이 내려서 보며 눈물겹도록 고운 나라를 이제 떠난다. 석양빛이 바다에 드리우고 항구의 불빛이 예술이다. 지는 해를 보며 몬테비데오 시가지를 달려와 아까처럼 출국 수속을 마치고 쾌속선에 승선했다.
* 브에노스아이레스행 쾌속선 승선
배 안에서는 온통 강물이 에워싸 있어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리창에는 나의 형상만 보인다. 잠을 청하며 국경의 강을 넘는다. 사람들도 고요하고, 불빛도 고요하고, 강도 고요하다. 드넓은 라쁠라따 강은 또 우리에게 돌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볼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상상으로 강의 풍경을 그리며 눈을 감는다. 아스라한 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여정 한 도막을 엮었다.
* 아르헨티나 도착
밤 10시, 우루과이를 출발한 배는 정확히 3시간을 달려 다시 아르헨티나에 도착한다. 음악이 나오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모두 이 나라 말이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도착에 대한 의미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하고 어제 유숙했던, 짐을 그대로 두고 온 호텔로 들어간다. 고향에 온 듯, 나의 가방이 있는 브에노스아이레스 호텔이 그립다. 오늘 하루 딴 나라에 외출하고 온 것이다.
* 남미의 언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쓰고, 우루과이는 포르투갈어를 쓴다. 그런데 각자 조금씩 다르게 언어를 쓰는데도 세 나라가 모여서 말을 하며 서로가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가이드가 우루과이 언어를 알아듣고 말하기에,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르헨티나와 50%는 같고 50%는 약간 다른데 대충 알아듣는단다.
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라서 그 잔재로 지배당한 언어가 아직도 남아 국어가 된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내 조국은 대단하다. 일제 36년을 거치면서도 언어를 지켰고, 우리 한국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으니 말이다. 더욱 한글을 지켜서 세계 유일한 오늘의 이 언어를 큰 자부심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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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에노스아이레스 아침 풍경
호텔 조식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서 차량이 많다. 시내버스가 아름답다. 일방통행로라서 오고 가는 차는 단일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아파트가 유럽풍으로 중후하다. 스페인과 포루투갈 영향으로 그렇다. 우리가 머문 호텔도 곱다. 복도 곁에 유리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는 작은 공간이 나온다. 화분도 놓여 있고 낭만이다.
식당 곁에도 작은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브에노스아이레스의 아침 풍경은 참으로 정겹다.
* 탱고 발상지 보카 지역
탱고는 원래 이 나라 보카 지역에서 뱃사람과 창녀들이 추던 춤이다. 후에는 귀족 춤이 되었다. 유럽으로 건너가서 스페인의 플라멩고와 접목되었다. 카리스마를 띈 남자는 플라멩고의 특징이다. 뱃사람을 통해 전해져 유럽에서 더 유행하다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들어와 귀족 춤이 되었다.
탱고의 아버지는 까를로스 가르뎅이다. 1920년 후반에서 1930년 말에 가장 발전된 춤인데 1930년에 들어서면서 유럽에 탱고를 알린 자다.
곡이 빠르고 경쾌하나, 노래 가사는 서글프다. 바이올린, 플롯, 반도네노 악기로 연주하는데, 반도네노 악기는 아코디언과 비슷하지만 건반이 없고 음색만 내는 악기로 그래서 매우 서글프다.
탱고(이 나라 말로는 ‘쌍구’)에는 세 가지 주제가 있다. 노래 가사가 ① 이민자의 아픔, ② 아가씨와 뱃사람의 사랑, ③ 늙은 창녀의 허황으로 분류된다. 타국에서 고향의 과일 가게, 다리, 가로등을 그리워한다. 오지 않는 뱃사람을 기다린다. 잘 나가던 창녀가 늙음으로 허황해한다.
남자가 여자의 오른편에서 손으로 다리의 방향, 다음 진행까지도 예고한다. 슬픈 표정, 슬픈 말로 표현한다. 아르헨티나는 노래 가사보다 자기 기술에 더 치중한다.
보카에 커피 숖과 춤추는 자가 많다. 시간나면 그들과 즐기란다. 골목도 아담하고 늘어선 상가들이 아기자기하다. 서민들과 이민자들이 살던 양철지붕도 많다. 배에서 사용하던 양철에 페인트칠한 것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곳저곳 많이 걸으며 보았다. 지금까지 단순한 춤으로만 여겼던 탱고가 그리 깊은 사연을 담은 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고, 슬픈 인생사가 담겼음에 숙연해졌다.
* 아르헨티나의 교육제도
고등학교인 하이스쿨은 고1부터 5년 학제인데 입시 위주 학교가 아니다. 오후 2시면 하교한다. 전문직인 공무원이나 은행원이 될 수 있다. 중학교인 미들 스쿨은 중1부터 7년 학제다.
사교육이 발전되어 있지 않다. 영어, 수학 학습 1개 정도 받는다. 오전은 정규수업, 오후에는 예체능 지원 공부가 가능하다. 만약 음악 대학에 붙으면 오전에는 하이스쿨, 오후에는 음악학교에 갈 수 있다. 두 곳 병행하여 힘들 때는 공부하여 대학 3학년으로 편입이 가능하다.
월반도 가능하다. 음대 다니면 음악교사 자격증을 주고, 콩쿠르 입상시 외국 유학을 지원해준다. 학력위주가 아니다. 하이스쿨만 나와도 취업한다. 실력이 더 우위다. 음대는 정규코스지만, 정규학교 안 나와도 콩쿠르에서 1등 하면 정통음악인을 제치고 오케스트라 단장도 된다.
초등 1년부터 유급제를 실시한다. 1년 못 마치면 2학년 못 올라간다. 하이스쿨부터는 더 심한 유급제다. 한 반에 25명 이내다. 교과서는 교사가 선택한다. 진도 위주 공부가 아니다. 철저히 개인에게 맞게 수업한다. 그것이 정책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초등 3,4년에는 그룹 숙제, 논문식 시험을 실시한다. 한국보다 고교 때까지는 실력이 떨어지지만 대학부터는 한국보다 우수하다. 제 스스로 공부하는데 아주 우수하기 때문이다.
법대는 사시가 없다. 7년 법대 졸업하면 바로 변호사가 된다. 졸업이 힘들다. 100명중 3~4명만 졸업한다. 1년에 듣는 과목수 제한 없다. 14년 동안 공부해서 졸업해도 된다. 야간반도 부끄럽지 않다.
참으로 현실에 입각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겉치레보다 속살을 키우는 교육제도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지만 함께 노력하여 튼튼하고 효율적인 교육제도를 적용했으면 좋겠다. 나의 큰 아들이 고등학교 교사다. 나는 초등교사였다. 그래서 교육이 얼마나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지 안다. 희망찬 미래이길 소망해 본다.
*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가난한 자가 그 굴레를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프로 축구단이 220개다. 한국은 20개다. 죽음을 놓고 겨룬다. 팀 대 팀이 싸우면 사망한다.
한국의 유소년 축구단이 이곳에 유학와 있다. 세계 축구의 교량 역할을 한다. 한국 축구가 방송에도 나온다. 한국이 일본을 이기려 하듯이 이 나라는 브라질을 이기려 한다. 브라질만 이기면 된다는 식이다.
브라질은 즐기는 축구다. 져도 좋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아니다. 개인기를 중요시한다. 건방진 축구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올라가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팀웍을 다져놓은 후 개인기를 발휘하여 본선에 가서 이긴다는 것이다. 분석하자면 브라질은 갈수록 팀웍이 잘 되어 승리하지만 져도 서두르지 않고, 아르헨티나는 갈수록 개인기가 잘 되어 패배하는데 지면 서두른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대표인물 세 사람은 탱고 창시자 까를로스 가르뎅, 왕의 부인 에바 페론, 축구 선수 마라도나다. 그들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보카 지역에는 축구장도 있고 길가에 축구 선수들의 그림도 크게 그려 세워 놓았다.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는, 내가 본 바로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처럼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하진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어리석고, 어찌보면 눈물겹다. 후자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용감하고 씩씩한 축구이길 빈다.
* 보카 호수
보카라는 지명을 탄생시킨 축구다. ‘보카’는 ‘입’이라는 뜻으로 입 모양 호수다. 보카 지역을 가로질러 간 끝부분에서 만난 호수다. 투명하지 않은 허름한 물이 모여 있다.
배가 있는데 이민자를 실어 나르던 것이란다. 1300년대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싸워 스페인이 승리했다. 그 후 정권도 스페인이 우세하다. 곳곳에서 듣고 보는 흔적이다. 시가지 한 자락 깔고 앉은 호수, 의미가 부여된 고단한 배, 이제는 모두 휴식이다.
* 아르헨티나 관광 명소
남한의 128배 크기의 나라다. 땅이 너무 넓어서 우리가 못 가는 관광지가 많다며 가이드는 몇 군데 알려준다. 먼저 우리가 갈 예정인 이과수 폭포다. 나이아가라보다 높이는 낮지만 넓고 멋있다. 칠레와 볼리비아 접경 지역의 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보다 멋있다. 그의 포도주 생산 지역과 산에서 나는 소금 지역 등 명소가 많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여행 중에 먹고 있는 소금이 모두 산에서 나는 것이라 하니 신기하다. 3박 4일을 걸려야 볼 수 있다는 나라, 한정된 영토만 밟고 가는 것도 나는 큰 감격이다.
* 아르헨티나 호수
이 나라의 호수는 대개 크다. 강원돤한 호수도 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구별조차 어렵다.우루과이에 갈 때 쾌속선을 타고 건넜던 라쁠라따강은 장엄한 바다라 해도 손색이 없는 강이었다.
이곳 호수와 강은 그렇게 크다. 우리가 갈 가우쵸 농장의 가우쵸 호수도 상당히 크다. 나라가 크니 호수도 큰 걸까. 남미 밀림지대에서 모여든 물일 것이다. 호수는 덩달아 자란 것이다.
* 이민자들의 슬픔
한국 교포는 19000명, 거의가 브에노스아이레스에 모여 산다. 황용식 교포 가이드는 이민 22년차란다. 대입 직전 가족 6명이 이민 온 것이다. 아내는 28년차, 초등학생 때 왔단다.
하교 후 돌아올 때 울며 왔다고, ‘치노, 치노(중국인이란 뜻)’하며 놀렸는데 그것은 ‘바보, 바보’ 란 뜻이라고, 즉 ‘더러운 농민’ 이란 뜻이라고, 학교에서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학교를 바꿔도 마찬가지라고. 참고 살아야 한다고 부모로부터 배웠다고. 이민자들의 슬픔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다. 태권도도 배워주고, 힘센 놈을 때려서 이겨라 가르치고, 인종 차별하면 학교에 알려 학교의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등 당당히 산다. 부모 세대에는 언어를 몰라 그렇게 안 가르쳐 준 것이다. 최근에 총기난사한 조승희(미국 거주 한국 교포 대학생) 사건을 이해한단다.
말하기 시작할 때 자꾸 ‘뭐라고? 뭐라고?’ 하면 내성적인 아이는 다시는 말을 안하게 된다. 조용한 아이로 인식한다. 공부는 잘해도 상처는 크다. 조승희도 그런 예다.
1세대는 조상, 1.5세대는 현 세대로 현 세대, 2세대는 후손이다. 결혼 후 자녀가 출생하면, 오히려 부모의 발음을 고쳐 준다. 후손으로부터 이 나라말을 못 한다고 구박받는다. 1.5세대의 언어고통이다. 1세대는 더 큰 고통이다.
한국에 가려면 36시간 걸려서 잘 못 간다. 주 1회 출항인데 부모가 사망해도 1주일 후에나 출발한다. 7~8년 전만 해도 미국을 거쳐서 갔다. 가이드 아버지도 인도네시아 큰 형집에서 사망했는데 냉동으로 보관해서 다행히 시체는 보았다고. 나는 지금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가장 슬픈 일은 이민자 동포가 이민자에게 사기치는 일이다. 70~80%가 동포에게 사기당한다. 처음에는 잘 도와주다가 사기친다. 가이드 가족도 사기 당해서 모두 망했었다는 것이다.
추석 때가 가장 고향이 그립다고. 전화가 전부라고. 달력에 추석날을 빨갛게 칠해놓고 본다고. 택시 운전, 신문팔이, 식당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끈질긴 한국인이다. 타국에 흘리는 뼈아픈 눈물들이다.
그러던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실을 수입해서 천을 짜는 공장 사장인데 직원이 20명이란다. 부동산도 운영하고, 아내는 유치원 원장이란다. 대단히 큰 성공이란다. 남 부럽지 않게 사는 40대 가장이다. 우리는 큰 박수로 이민자들을 대신하여 활용식 교포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평안과 행복을 빌었다.
* 가우쵸 농장 가는 길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180km, 버스로 2시간 소요된다. 여행은 명소를 보는 것만 아니라는 것이 여행에 대한 나의 신조다. 지나가는 순간 모두 여행이며, 그 풍경, 풍습을 보는 것 또한 값진 여행이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광활한 들녘이 전개된다. 그 광야 사이로 도로가 크고, 길게 전개된다. 가슴이 시원하다. 초지 위에는 목장으로 동물이 있는 곳도 있고 그냥 무심한 갈대 초지도 있다. 넓은 나라에서 보는 당연한 풍경일텐데 좁은 영토에서 살아온 나는 신기하여서 모든 정경을 담아간다.
* 가우쵸 농장
드넓은 호숫가에 있다. 나무와 잔디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이다. 오늘은 진종일 이곳에서 머물다 간다. 바다 같은 호수와 시원한 숲, 그리고 오가는 말들, 모두가 정겹고 평화롭다.
아르헨티나의 전신을 보듯 낙천적인 분위기다. 이것이 바로 남미의 진정한 풍경이며, 이런 목가적이며 광활한 대지에 서고자 남미로 여행을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곳에서 말도 타고, 마차도 타고, 행복한 여정이다.
* 가우쵸 호수
가우쵸 목장 곁의 호수는 바다 같이 드넓어서 시리도록 아름답다. 이미 농장 가까이 이르렀을 때 보았던 호수다. 아득히 한 먼 수평선이다. 배를 타기 위한 긴 길을 나무판으로 만들어 물 위에 설치해 두었다. 바다 항구의 부두 역할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두려움으로 멀리는 못 갔지만 호수 위 나무판에 올라도 보고, 어린 아이처럼 호수의 품에 안겼다.
가우쵸 농장과 어우러져 그려내는 호수의 정경은 비경이다. 어느 곳에 서도 명화다. 말은 사람을 해치지도 않고,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 호숫가의 풀을 뜯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한참을 바라보며 호수의 낭만에 취했다. 자연과 동물과 사람이 하나되는 순간이다.
* 승마 체험
말을 타고 숲속을 산책하는 체험이다. 크고 작은 말들이 사람을 기다린다. 그야말로 고삐를 쥐고 신호를 하여 말과 사람이 하나로 움직인다. 긴 코스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극적인 순간이다.
말은 사람을 알아보고 절대로 두렵게 행동하지 않는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채 사람을 위해 길들여져 있다. 영리한 말이다. 나는 가장 준수한 말을 골라 올라탔다. 짧은 시간이지만 훌륭한 체험이다.
* 너도 밤나무
가우쵸 농장에 들어서자 호수에 이르는 곳에 밤이 잔뜩 쏟아져 있다. 웬 밤이냐고 주웠더니 너도 밤이란다. 꼭 밤이다. 겉모양과 색깔이 알밤이다. 깨물어 속을 보니 밤알과 동일하다. 그런데 먹지는 못한다. 씹어보니 아리다.
높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에 잔뜩 열렸다. 벌어져 있어 바람이 불면 우수수 쏟아진다. 나는 말로만 들어오던 너도 밤나무를 처음 보았다. ‘너도 밤나무냐?’ 하여 그렇게 이름지어졌다더니, 정말 그렇다. 이제 완전히 너도 밤나무에 대하여, 그 밤 아닌 밤에 대하여 알았다.
* 마차 타기
숲가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말을 모는 사람은 어른도 있지만 초등학생 쯤 보이는 아이도 있다. 어찌 감당할까 싶은데 말을 거뜬히 몰아 마차를 달린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말과 마차와 함께 움직일 때의 기분은 내가 목부가 되고, 내가 농장의 주인이 되는 환상이다. 싱그러운 숲 내음이 전신을 적신다. 참 아름다운 행사로 남미는 외인을 맞는다.
* 트랙터 정글 체험
큰 바퀴와 건장한 몸체가 예사롭지 않은 차다. 오르는 것도 높아서 힘들다. 뚜껑이 없는 트랙터에 올라타고 정글 속으로 진입하는 코스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려니 했는데 값진 체험이었다.
무장으로 옷을 입은 운전 기사는 거대한 차를 몰고 울창한 숲길을 달리다가 차곡차곡 문을 열면서 더욱 깊이 들어간다. 바퀴가 진흙 속에 박히기도 하고 좁고 험한 산길을 몰아간다. 밭이 나올까 했는데, 남미의 전통적인 밀림 지대를 돌고 나왔다. 언제 이런 영토에 발을 딛겠는가. 나는 지금 위대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랏빛 환희로 행복하다.
* 고기 굽는 집
가우쵸 농장에는 고기를 굽는 집도 있다. 닭을 비롯한 동물들이 자연 속에서 자라고, 그 고기로 손님에게 귀한 대접을 하는 것이다. 뜨락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며 장작불 위에서 고기가 익고 있다.
옛날 한국의 헛간 같은 집이다. 창문이 뚫려 있어 다 보인다. 꼭 너도 밤 같은 것이 익는데 소세지다. 크고 작은 고기 도막이 맛있게 구워진다. 오늘 이곳에 온 우리의 몫도 저 속에 있으리라. 이국에서 받아보는 값진 대접이기에 흐뭇하여서 자꾸만 그 곁을 맴돌았다.
* 바베큐 중식
여러 가지 농장 체험을 마친 후, 오후 1시부터 큰 식당에서 식사했다. 듬뿍 푸짐한 야채를 곁들여 나누어 주는 구운 고기와 먹는다. 포도주까지 곁들여 먹는 맛은 일품이다.
이런 날은 위장 주머니가 서너개였으면 좋겠다. 목전에 값비싼 구운 고기 덩이를 놓고도 배가 불러서 못 먹는다. 두 덩이를 받아 먹으니 배부르다. 야생으로 길러 질긴 것이 흠이지만 맛은 기막히다. 남미 여행은 고기, 과일, 야채가 풍성하여서 먹거리에 행복하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먼 후일 오늘의 자연과 평화가 드리운 달콤한 식탁을 그리워하겠지. 그날에도 오늘처럼 나는 회억 속에서 행복하리라.
* 가우쵸 민속춤 공연
식사 후에는 중앙 무대에서 쇼를 한다. 많은 남녀들이 춤을 추고, 두 남자가 노래를 서글프게 부른다. 탱고 스타일의 춤과 노래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붉은 향수다.
마지막에는 객석의 사람들과 하나되어 단 위에서 화합의 춤으로 마무리했다. 나를 이끄는 남자는 손 한 쪽이 의수인 듯 하다. 아마도 농장의 말과 생활 속에서 잃은 것 같다. 멋진 남자다. 노래를 리더격으로 계속 잘도 불러 이어간다. 동그란 한 무리의 화합이다.
아름다운 나라다. 나는 ‘가기 싫다’ 고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만큼 살기 좋은 나라다. 많은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랬다. 남편도 남겠다는 말을 했으니 얼마나 아르헨티나가 인간을 위한 정이 흐르는 곳인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감성이 무딘 남성들까지 예찬한 여정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향연이다.
* 가우쵸 농장 말쇼
야외로 나가 말쇼를 보았다. 날쌘 말을 타고 목장 중앙에 걸어둔 링을, 뾰족한 나무 꼬치로 링을 꿰어가지고 오는 쇼다. 노련한 마부에서, 청년, 소년,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까지 눈물겨운 말과 하나되는 쇼다. 호숫가 초원에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울을 쳤고, 그안 초지 목장 위에서 달리고, 또 달려가는 말과 마부의 놀림이 장관이다.
말가죽을 땅에 깔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우고 크게 한 바퀴 도는 시간도 있다. 옛날 아버지가 밭농사 지으실 때 밭을 고르기 위해 우리를 나무 얼개에 태우고 소를 몰아 가시던 장면이 연상된다. 우리 일행도 나가서 신나게 타고 들어온다. 바다같은 호수와 목장과 말, 사람의 기막힌 축제다. 모두가 하나되는 이국의 환희다.
* 가우쵸 농장 야외 축제
뜨락에서 커피와 케잌으로 축제의 장을 마무리한다. 손님에게 마지막 베푸는 향연이다. 커피를 안 먹는 내가 두 잔을 마셨다. 그래도 그 커피는 나를 가우쵸 목장의 보드라운, 향기로운 정경으로 황홀하게 물들여 꿈결같은 맛이다.
아까 말쇼를 하던 4살박이 남아가 마차에 있길래 사진 찍자 하였더니 내게로 온다. 천진하게 안기기도 한다. 영어로 몇 살이냐 했더니 아직 영어를 모르는 듯 대답을 못한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자란 천진한 숨결이다.
닭이 돌아다닌다. 말도 방목하여 자유로이 다니며 풀을 뜯는다. 그들은 사람 사이로 함께 다닌다. 천국이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아름다운 영토다. 4시에 버스로 농장을 떠났다. 아쉬운 이별이다. 붉은 정을 담아가는 순간이다.
* 농장에서 브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
아까 온 길을 간다. 초지와 동물들이 도로변에서 기막힌 장면을 선사한다. 하얀 갈대숲도 장관이다. 어찌하면 끝없이 달려가는 초지의 목장 끝을 잡을까. 눈도, 카메라도 따라 잡지 못하는 먼먼 향수다.
사진기를 대기만 하면 명작인 저 들판을 어이 두고 갈까. 내 돌아가면 저 평화가 그리워 어찌할까.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길고 긴 초원을 검은 소, 누렁 소, 하얀 양들이 펼치는 향연을 내 어찌 잊을까. 오래도록 기억하며 내 생애가 행복하리라.
* 브에노스아이레스 시가지
높은 건물도 있고, 웅장한 고전적 건물도 있고, 현대식 아파트도 있고, 현대와 고전이 어우러진 도시다. 어찌보면 유럽에 온 듯하고, 어찌보면 정열의 남미, 바로 그 향기에 물씬 젖는다.
외곽의 농촌은 한국의 집과 유사하지만 도심의 건물들은 다르다. 주상복합 상가건물풍이 주류다. 단층집 앞에는 자가용도 주차해 있고 노랗고 검은 색 치장의 영업용 택시도 있다. 우루과이에서도 그랬다. 남미의 택시는 대체적으로 화사하고 아름다운 색조다.
해가 진다. 긴 광야, 긴 길을 달려온 시가지에서 석양을 맞는다. 이런 순간이면 나는 짙은 그리움으로 설레인다. 조국에 대한, 여행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다.
* 대원정 해물 석식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한인타운에 있다. 어제 저녁에도 왔던 곳이다. 게와 조개, 콩나물, 굴, 홍어찜 등 푸짐하다. 칼칼하고 맛있다. 고향을 그리며 조국에서 온 동포들에게 최고로 베푼다. 후식으로 준 귤도 맛있다. 겉은 초록색이 짙은데, 설은 것이 아닌지 아주 달다.
거리에는 조국에서 온 건강 식품 등 식품 가게가 많다. 모두 한국어로 상호를 걸어 두었다. 꼭 내 조국 어느 길목에 선 듯 참으로 반갑다.
* 아르헨티나 삼십년 역사
삼십년 전 쿠데타가 일어났다. 70년대에 군정이 들어서서 80년에는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인권 유린, 부정 부패가 심각했다. 1982년에 국민의 관심을 사려고 영국 섬인 포크랜드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에서 가까운 영국 섬에게 시비를 걸어서 영국과 싸웠다. 아르헨티나인이 살므로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칠레도 그런 식으로 영국 섬을 빼앗았다. 큰 전쟁이 날 뻔 했는데 주변국에서 투표하여 칠레가 이겼다. 나는 역사라는 것에 대하여 사람이 기묘하게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내 조국 역시 그렇고, 세계 어느 곳에 가 보아도 그런 느낌이다.
그 당시 포크랜드에는 비행기 1개, 항공모함 1개, 국군 1개 사단이 있었다. 포크랜드 섬에는 영국 활주로가 없어 비행기가 못 내렸다. 4~6월, 3개월간 전쟁했다. 그러나 채 10일도 안돼 끝이 났다. 아르헨티나가 패배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즉 패배국이 승리국에게 2배 보상해주는 규정으로 인해서다.
1986년 알폰시나 대통령이 등장했다. 1989년 다시 달러 파동이 왔다. 200% 인상으로 임기 6개월 남겨놓고 물러나야 되었다. 곧 새 대통령이 나와 경제 부흥에 주력했다. 부정회사를 모두 외국에 매수했다. 화폐 개혁을 했고, 국영 회사를 외국계 회사에 넘겼다. 5년 단임을 개정하여 2회 연임으로 했다.
델라루아가 등장하여 청렴한 대통령으로 정치, 경제 영향을 없앴는데, 2001년에 달러 파동으로 또 무너지고, 사우린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하루 반 만에 퇴장했고 결국 7일 정부로 끝났다. 또 새로운 대통령이 나와 안정정책으로 다스렸다. 고환율정책으로 수출을 장려했고, 공권력으로 인플레이션을 퇴치시키려 노력했다. 그래도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크리스티나 대통령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부인이 대통을 이었다. 여전히 노조를 잘못 건드려 경제가 심각했다. 농축협회 노조가 문제였다. 수출하려면 수출세를 내야 되는데 100% 인상한 것이다. 야채, 고기가 시장에서 바닥났다. 위기다. 잘못 건드렸다. 제일 큰 노조를 건드렸다. 정치인들이 뭐 했느냐며, 농축인들이 큰 기여를 했다며 국민도 농충협회 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지금 아르헨티나는 힘든 상황이다. 역사는 어느 나라든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역사는 굳이 이 나라 일만은 아니다. 내 조국의 역사도 어떻게 흐를지 심히 염려된다.
* 탱고 공연 관람
저녁 식사 후 다시 호텔로 가서 잠시 쉬었다가 밤 10시 30분부터 1시간 30분간 공연하는 탱고 공연을 보기 위해 9시 30분까지 호텔 로비에 모였다. 피곤하지만 이런 문화에 접하는 것도 여행에서 얻는 큰 가치다.
까를로스가르뎅 탱고 공연장이다. 20여군데가 있는데 이 공연장이 제일 좋다. 부녀가 나오기도 한다. 탱고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팀이다. 밤길, 20차선의 장엄한 도로를 달려갈 때 이미 마음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야경이 브에노스아이레스를 곱게 물들여 외인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가득 차 있다. 상당히 넓은데도 테이블마다 사람으로 꽉 차 있다. 뒷부분 테이블에 앉았다. 포도주와 물, 커피, 만두까지 제공한다. 음악과 춤, 그리고 사람의 열기로, 와인으로 곱게 익어가는 밤이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2층에 있고 아래층에서 탱고 춤을 춘다. 애절한 노래도 부른다. 남녀가 한 쌍이 되어 화려한 의상으로 구름 속, 선남선녀로 무대를 누빈다. 지금은 귀족춤이지만 그 역사는 서글프다는 것을 인식해서인지 가슴이 아려오는 선율, 율동이다. 공연은 끝나고 대단한 인파가 나를 떠민다. 탱고 공연의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잠시 남미의 전통 문화에 젖어 보았다는, 그 아름다운 낭만,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내일은 8시 모닝콜, 9시 식사, 10시 출발이다. 브라질 이과수로 간다. 3일간 유숙했던 정든 호텔을 떠난다. 대형가방도 챙겨야 한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한다.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느낀 것 모두 담아 소중히 품고 가리라. 먼 후일 나는 행복한 기억의 필름을 꺼내 재현시키며 아름다운 노후를 맞이하리라.
2008년 4월 17일 목요일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이과수로 이동
브에노스아이레스 호텔 출발,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출발, 아르헨티나 이과수 도착, 이과수 국립공원, 악마의 목구멍 폭포 가는 협궤열차, 이과수강 철다리, 이과수강 비경, 악마의 목구멍 폭포, 이과수 협궤열차로 하산, 이과수강의 국경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관계, 붉은 흙,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국경을 넘어가는 육교, 브라질 이과수 도시 도착, 이탈리아식 석식, 이과수 도시의 야경, 브라질 이과수 약국, 이과수 호텔 도착
* 브에노스아이레스 호텔 출발
오전 8시 모닝콜, 9시 호텔 뷔페 식사, 공항으로는 10시 출발이다. 가이드 황용식은 독일, 네덜란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아 보았지만 체면 문화가 아닌 이곳 아르헨티나가 이민자 천국이라고 정의한다. 정녕 자연도, 정서도 아름다운 나라다.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아깝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장을 다 마무리하고 호텔 앞의 슈퍼에 갔다. 두 아들에게 줄 선물로 과자, 사탕, 커피 등을 샀다. 주인이 영어를 못 알아 들어 힘들게 샀다. 175패스인데 US 달러로는 60불을 내고 드롭스 3개를 더 집으라 했다. 모자도 하나 샀다.
이제 떠난다. 정각 10시에 공항으로 갔다. 우루과이에 다녀오던 날 건너갔던 강변을 버스로 달린다. 바다같은 강이다. 현지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했다.
*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출발
이과수 행 11시 55분 비행기다. 자국 내로 움직이는 비행기라서 수속은 간편했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공항에 간다. LAN 칠레 항공이다. 비행기는 10번 게이트에 미리 와서 대기중이다.
브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은 라쁠라따 강변에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바로 그 강위로 난다. 강이 드넓어서 바다 역할을 한다. 한참을 날아 강물을 지나자 드넓은 평원이 지상에 전개된다. 농지와 초지다. 긴장이 흐른다. 아마존강 지류일까. 대단히 크고 길다. 강 주위에는 푸른 나무가 줄서서 자란다.
산이 없는 나라 아르헨티나, 이 나라 사람들은 산을 모르니 산을 그리워하지도 않을 듯 싶다. 가도가도 평원이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나니 바깥은 온통 흰구름 밭이다. 하얀 구름 물결이 장관이다. 그만큼 아르헨티나의 상공은 깨끗하다는 뜻일까. 순백의 하늘이다.
* 아르헨티나 이과수 도착
비행기는 2시간 남짓 날아 이과수에 도착한다. 고도를 낮춰서 구름층을 뚫고 내려간다. 3,3 좌석 항공인데 의자도 크고, 공간도 넓고 쾌적하다. 아르헨티나 쪽의 이과수에 내려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이과수 폭포를 부기 위해서다.
이과수 공항은 붉은 색깔 건물로 곱다. 푸른 나무들 물결이 넘실거려서 더욱 장관이다. 윤경 동포 가이드와 미팅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렌트카를 보호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차량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는 브라질 국경에서 브라질 버스로 환승하여 넘어간다.
이과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공유하는 국경지역이어서 그렇다. 두 나라를 넘마들며 여행하는 것이 독특한 체험이다.
* 이과수 폭포 가는 길
세계 3대 폭포는 나이아가라, 빅토리아(짐바브웨), 이과수다. 베네수엘라 폭포가 등장하여 요즈음은 엔젤 폭포까지 4대 폭포라 한다. 오늘은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내일은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 간다. 그 접경국인 파라과이에는 이과수 폭포가 없다. 아, 브, 파 이 3국이 이과수에 접해 있는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만 폭포가 있다 하니 신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게 더 축복을 준 것 같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는 낙차가 1Km로 크진 않은데 장엄하다. 이미 있었는데 코스 개발이 안되어 있어서 경비행기로 접근 가능하다. 일명 면사포 폭포라 한다.
이곳은 한인이 별로 없어 한국식당을 찾기 어렵다. 오늘은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폭포 하나만 본다. 2700m의 넓은 둘레 안에 19개의 많은 폭포가 있는데 악마의 목구멍은 그 중 가장 웅장한 폭포다. 이것은 보통 말하는 이과수 폭포는 아니다.
버스 에서 폭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장관이었는데 기대된다. 이 버스는 브라질 국경까지만 데려다 주는 아르헨티나 버스다. 어느 곳이 브라질인지, 어느 곳이 아르헨티나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이과수 폭포 가는 길은 그렇게 신비로웠다.
* 이과수 국립공원
사방이 숲이다. 그 사이 길만 뽀얗게 열려 있다. 이과수 국립공원 안에서 중식을 했다. 일부는 걸어서, 일부는 열차로 폭포까지 간다. 이미 우리는 명소 안에 진입했고 잘 가꾸어진 건물 안에서 근사한 고기 요리를 먹었다.
참으로 먼 곳에 와 있다. 풍경도, 문화도, 음식도 다른 타국이다. 웅장한 자연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 하나의 값진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 악마의 목구멍 폭포 가는 협궤열차
이과수 국립공원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기차를 탔다. 가스열차인데 창문이 없는 열린 기차다. 20분 동안 깊은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달려 들어간다. 앞과 뒤로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는 기차다. 3Km거리다.
지금부터 폭포까지 3시간 코스로 다녀오는 여정이다. 짐은 모두 버스 안에 두고 왔다. 꽤나 장엄한 장관을 찾아간다는 실감이든다. 협궤열차는 남미의 우거진 숲 아주가까이 지난다. 느린 속도여서 지세히 볼 수 있어 좋다. 그야말로 자연이 이루어낸 나무와 풀의 밀림지대다.
중간 지점에서 잠시 쉬고 또 달린다. 폭포를 보러 가지만, 그곳까지 가는 이 순간도 소중하다.
* 이과수강 철다리
협궤열차에서 내려 숲길로 들어서자 강이 보이고 그 위에 놓은 철다리가 있다. 1100m 철다리다. 꺾어지고 휘어지며 이어지는 긴 철교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걸었다. 그저 강 위의 길이려니 했다. 그러나 한도막 한도막 지나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었다. 강폭이 넓은 것도 대단하고, 그 강 군데군데 섬처럼 이어진 땅과 철교의 조화는 대단했다.
그리 높지 않아 바로 아래는 물이다. 구멍이 뚫린 철망이어서 다 보인다. 양 옆도 강이다. 도란도란 흐르다가, 장엄하게 흐르다가, 또 이어지고 이어지는 강물, 그리고 철다리, 나는 대단한 자연과 대단한 인공이 만난 영역을 소슬하게 걷고 있다.
* 이과수강 비경
무어라 말할까. 꼭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본 온타리오강 같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웅장한 폭포를 낳던 그 강, 나는 그곳이 연상된다.
이과수 국립공원의 나무와 숲 사이에서 자란 물은 드넓은 폭으로 흐른다. 얌전하지만 저 아래 어느 곳 갈라진 절벽에 가면 웅장한 폭포를 낳는 것이다. 숨겨진 힘을 쥐고 있다.
간간이 숲무더기가 강 위에 섬처럼 떠 있다. 그 풍경 또한 장관이다. 강변의 숲도, 강 위의 숲도,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도 장엄한 비경이다.
* 악마의 목구멍 폭포
이과수 중에서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폭포다. 긴 철교를 건너간 끝에서 만났다. 가는 길에 본 강물과 열대우림 길도 장관인데 폭포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붉은 물이 꼭 목구멍 형상으로 꺼이꺼이 너울져 내린다. 아래에는 분무하는 물안개가 솟구치고 사방은 온통 물보라다. 얼마 전 영국 남자가 뛰어들어 나오지 못했단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이다. 죽음의 물 속인데 그 남자, 잠시나마 최상의 환희였으리라.
아래로는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또한 신비로운 자태로 흘러내린다. 신은 그 어떤 손이 있어 이과수 땅 한덩이 뚝 잘라내어 저토록 비장한 폭포를 지어낸 걸까. 철교에서 바라보며 신의 경지로 흡입되었다.
* 이과수 협궤열차로 하산
열차 정류장에서 오후 5시 30분에 기차를 탔다. 아래에서 올라오면 그대로 타도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평일이어서일까. 사람이 많지 않아 긴 열차의 오픈된 많은 의자를 골라서 넉넉히 앉았다.
내 의자 곁의 대나무가 동양적이다. 한국의 대나무보다는 잎사귀가 작지만 동일한 형상이다. 울창한 우림 곁으로 열차가 간다. 붉은 황토길도 비경이다. 강가 나무들도 아름답다. 그 사잇길로 열차는 계속 달려 내려간다. 비에 젖은 나무에 여심도 시심도 젖는다.
* 이과수강의 국경선
이과수강, 반을 갈라서 아르헨티낭하 브라질의 국경선이 있다. 1300m 폭의 장엄한 강이 반은 악마의 목구멍으로, 반은 다리 밑으로 흘러 이과수 폭포를 만든다.
오늘은 1/3 폭포만 본 것이다. 지팡이 형상에서 악마의 목구멍까지 2700m 폭포다. 그 길이에 크고 작은 폭포가 바로 이과수강이 이루어냈고, 그 사이에 두 나라의 국경선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역사를 쌓고 있었다.
*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관계
브라질은 악마의 목구멍에서 약간만 폭포를 갖고 있고, 모두 아르헨티나 영토에 있다. 그러나 악마의 목구멍에서부터 시작하는 그 긴 2700m의 폭포는 아르헨티나에서는 볼 수 없다. 브라질 영토에서만 그 장엄한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있다.
또한 이과수, 지팡이 모양의 장엄한 폭포의 머리격인 악마의 목구멍은 브라질에서는 볼 수 없다. 아르헨티나 영토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열차 타고 이과수강을 철교로 건너서 악마의 목구멍인 이과수 폭포 최상단을 본 것이다.
물이 정상적인 수량일 때 제대로 보인다. 기후도 이런 날처럼 겨울 기후일 때 관광하기 좋다. 한달 전만 해도 48도~50도였다. 습도는 80%여서 완전히 사우나하며 보았단다. 우리는 비가 촉촉히 내리는 늦가을, 잘 본 것이다. 두 나라의 시아 좋은 길을 잇는 이과수 폭포다.
* 붉은 흙
이과수의 흙은 모두 붉다. 열차로 오르면서, 내려오면서 바닥의 붉은 흙을 보았다. 주황색 물감을 풀어 놓은듯하다. 이곳만도 아니다. 곳곳에서 그렇다.
남미의 땅은 대부분 기름진 토양이다. 우거진 숲과 천혜의 자연이 이루어낸 값진 소산이다. 내 조국에서 보던 흙과는 너무 달라서 보고 또 본다.
*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국경을 넘어가는 육로
이과수 국립공원 입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린다. 비행기로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고 육로를 따라 버스로 넘는다.
여권을 모두 거두어 현지 가이드가 한데 모아 가지고 검문소로 갔다. 출국과 입국 모두 율로이어도 철저히 한다. 남미의 국가간 국경을 육로로 넘는 것도 이색체험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두 나라의 관문이 있다.
* 브라질 입국
입국카드를 받아작성하여 제출한다. 입국신고는 여권과 함께 개별적으로 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가 수속을 밟아야 한다.
이과수강,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다리를 건너서 브라질로 진입했다. 아르헨티나 출국 후 바로 브라질 입국소다. 벌써 어둡다. 오후 6시 40분인데 이곳은 겨울로 가는 계절이기 때문에 낮이 짧다. 어스름 저녁이다.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출국시 꼭 여권에 도장이 있어야 입국이 수월하다. 지금 만약 리오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 출국 도장이 없으면 지금 다시 입국이어렵다. 얼마전 20명 한팀이 리오 출국 도장이 안 찍혀 모두 연방 경찰차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24시간 근무, 48시간 휴식하는 이곳 경찰들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1명이 그 중요한 출국 도장이 없어 큰일이었다. 다행히 쉽게 처리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방경찰의 고단한 업무로 힘이 들러 오래 끌지 않고 바로 끝내 주었다는 것이다.이민 행정처리로 통과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었다. 남미는 그렇게 법은 잘 되어 있는데 행정이 어눌하다고 가이드는 부첨한다. 아무튼 이것도 세계 여행시 알아두어야 할 큰 체험이다.
* 브라질 이과수 도시 도착
칠레나 페루에서 육로 관광을 많이 오는 도시다. 3일 걸려서 온다. 아르헨티나인들은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18시간 육로 타고 온다. 잘 살 때는 항공으로 해외에 많이 나갔지만, 지금은 육로 타고 이과수 쪽에 온다. 원래 아르헨티나는 여행국이어서 남미에서는 그래도 여행을 많이 한다.
이과수는 조그만 브라질의 도시다. 인구 30만명인데 75%가 관광업무에 종사한다. 상업도시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밤이다. 자작자작 야경이 나무 사이로 곱다.
* 이탈리아식 석식
이곳은 한인이 없어 한식식당이 없다. 무조건 현지식이다. 오늘 석식은 이탈리아식 음식이다. 아름다운 식당은 뜨거운 환대로 반긴다.
친절, 또 친절 속에서 푸짐한 식사다. 식탁에 놓인 고기요리도 많은데 계속 서빙하여 음식을 집으라 한다. 중국식 비슷하게 느끼하여 많이 못 먹는데 자꾸 먹으란다. 닭고기를 비롯하여 두고두고 그리울 식당이다.
* 이과수 도시의 야경
나는 식사보다 도시의 야경을 빨리 보고 싶어 서들러 마치고 나왔다. 외딴 곳일까. 건물보다 나무가 먼저 들어온다. 아님 도시 자체가 나무로 이루어진 걸까.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고 간간이 차가 지난다.
불빛이 곱다. 정열로 뿜는다. 나와 남편이 서서일 때 식당 종업원이 보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서란다. 카메라를 달라 하더니 우리 부부를 사진 찍어준다. 친절한 도시, 친절한 매너가 돋보인다.
* 브라질 이과수 약국
이과수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을 때 도로변에 약국이 있다. 브라질 이과수 약국이다. 나의 아들은 약사다. 그래서 세계 약국에서 약국 간판이 보이면 반갑기도 하고, 약국 상호 표기가 신기하여 유심히 본다.
녹십자 간판과 함께 FAMACIA로 걸려 있다. 유럽에서 본 것처럼 알파벳 첫 글자가 P가 아니고 F다. 여약사가 앉아 있다. 큰 공간에 약이 가득하다. 또한 슈퍼에서 판매하는 물품도 약간 진열해 놓았다. 한국 약국도 앞으로는 저러할 것이라 하던데 미리 한국 약국을 보는 듯하다. 오늘 밤 아주 가까이에서 브라질의 약국을 본 것은 내게 있어 큰 행운이다.
* 이과수 호텔 도착
호텔까지는 식당에서 10분 거리다. 내일은 파라과이 인디오촌에 간다. 30분 강줄기를 보트 타고 가서 올 때는 1시간 10분 돌아보고 나온다. 인디오촌에서 600m는 약 30도 경사로 된 길을 걷는다. 하선해서 유명한 베토니 사람이 살던 집까지 600m, 그곳에서 1500m 또 걷는다. 베토니 집에서 인디오 마을까지 걸으며 자연을 본다. 짧은 지역의 등산이다. 돌계단 비포장 길이다. 신발 편한 것으로 신고 나오란다. 윤경 교포 가이드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내일의 일정에 대하여, 이과수 여행에 대하여 많은 설명을 했다.
브라질, 파라과이, 다시 브라질 4시간 소요되는 여행이란다. 이 지역은 해물이 없다. 바다에 가려면 800Km 가야 된다. 그런데 인디오촌에는 생선요리가 많다. 야채 겸해서 먹는다.
파라과이에 다녀와서 오후에는 1300m의 이과수 폭포를 관망한다. 브라질 폭포다. 양산, 우의, 잠바, 갖고 나와야 한다. 국립공원 3Km 비포장도로로 가서 보트 타고 강줄기를 거꾸로 타고 폭포까지 갈 것이다. '물보라'리 하지말고 '물벼락을 맞으러 간다'고 90세 할아버지가 하라고 했단다. 우의를 가져오면 좋단다. 배가 지붕이 없다. 우의가 없으면 속옷까지 젖는다.
복장은 간단히 하라. 인디오촌 가는 배는 바람이 차갑다. 잠비 꼭 준비하라. 내일 모닝콜 7시, 식사는 6시 30분부터 가능 , 8시 30분 출발아라고, 이 호텔에서 2박 투숙한다고 야무진 안내다.
저녁 8시, 어두둠 속에서 호텔에 도착했다. 석식으로 나온 고기 음식이 너무 많아서, 후일에 다 먹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호텔이 화사하다.이과수 공원에 온 고객을 위해 마련한 아름다운 공간이다. 모두 그렇지만 이 밤, 나는 참으로 행복한 나라의 품에 안겨 있다.
2008년 4월 18일 금요일 파라과이, 브라질 이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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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과수 레칸토 파크 호텔
지난 밤 늦게 들어와 몰랐는데 오늘 아침 들러보니 호텔과 주변을 둘러싼 정경이 비경이다. 수영장, 야자수, 적색지분, 실내 대나무 의자, 등 모두 아름답다.
엘리베이터가 빈에서처럼 문을 열어야 탈 수 있다. 방문을 열듯 앞으로 당겨야 된다. 새로 지오 오픈한 지 얼마 안된 호텔이어서 참 깨끗하다. 유칼립투르 나무만 써서 짓는다. 아무 나무나 쓸 수 없다. 목조 색상이 우아하다.
유럽식으로 0층이 로비이고, 우리는 2층 개념인 1층 122호실에서 잤다. 복도 베란다에서 보이는 멀리 브라질은 온통 푸른 물결이다. 순수한 평화다. 호텔은 이과수를 대표하듯 그렇게 장엄한 풍경으로 어느 곳에, 그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남이의 행복을 선사한다.
* 파라과이 가는 길
작은 배를 타고 가는 여정이다, 강을 작은 배로 타고 오른다. 이과수에서 15분 버스로 가서 배를 탄다. 4시간 후에나 다시 버스로 온다. 50안승 큰 배라서 옷이 젖지 않는다.
오후에 이과수 포고 사파리 배를 탈 때, 그떈 22인승으로 젖는 배다. 우의를 준비해서 입으면 좋다. 그러나 지금은 짐을 버스에 두고 그냥 간다. 브라질에서 파라과이로 가는 것이다. 차는 점점 이과수 시가지를 벗어나 강가로 달린다.
파라과이는 인디오 말로 '큰 강을 갖고 있는 나라'란 뜻이다. 파라과이는 한반도 2대, 인구 700만 명이다. 바닥 없는 내륙의 나라다. 1800년대는 강국으로 급성장한 국가였는데 전쟁으로 지금은 어려운 나라다. 수출, 수입을 강으로 한다. 75% 국민이 인디오 혈통으로 과라니 인디오 말을 사용한다. 1970년대 7년 전쟁으로 남자가 70% 사망했다. 지금도 여자가 더 많다. 남자 1/3, 여자 2/3다. 지금 그 나라로 가고 있다.
* 이과수 도시의 삶
마약자들이 많다. 리오데자네이루 판자촌에서 온 자들이다. 이곳은 세 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접경지역이다. 강이 2개 있는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두 국경선인 이과수강과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인 파라나강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삶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다. 그러나 접경지역의 인구가 많이 유입돼 있다. 보기에는 시골처럼 살지만 치안이 불안하다. 한인은 30세대로 인구 100명이다. 기아드 교포에게 쓸쓸함이 보인다. 나무와 숲의 평화는 외인의 눈에 비치는 것이고 내면으로는 그리 밝은 빛은 아니다.
* 관광도시 이과수
이과수는 오로지 관광지역이다.농토는 40Km 가야 만난다. 공장도 없다. 브라질은 대두지역으로 한반도의 두배나 된다. 그곳에 가면 사속 60Km로 15분을 가야 끝이 보인다. 품목은 1개씩 대규모 농사다. 커피가 1위, 차량 알콜용으로 사탕수수도 재배한다. 공해 없는 알콜차다.관광객을 의식해서일까. 작은 도시지만 건물도, 거리도 예쁘게 가꾸어 놓았다. 세게인의 걸음이 모이는 곳이니 그럴만도 하다. 한국교포들
도 1/3은 관광업에 종사한다. 그 나머지는 브라질이나 파라과이에서 두 영주권을 소유하며 비지니스 상업을 하며 산다.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며 산다. 브라질은 한국 기업체가 많으나, 이과수 도시에는 파워가 세어서 한국기업이 없다. 환경청의 법이 잘 되어 있어 보호의식이 세어 타 기업이 침투하지 못한다.
나무가 많다. 90년된 이과수다.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데는 시민들의 노력이 컸음을 알랐다. 나무를 심는 것은 마음대로인데 자르는 것은 마음대로 못한다. 위성사진으로 나무 상태를 기록하여 수시로 점검한다. 반드시 경찰이 와서 자르도록 되어 있다. 가이드 교포 집안의 망고 나무도 그렇게 보호되고 있단다. 그런 법도, 그런 법을 지키는 시민들도 위대하다. '나무가 내 것이어도 내 나무가 아니다' 의미 깊은 문구다.
농사 짓는 땅에도 30%는 나무를 보유해야 허락된다. 지금은 가을이어서 망고는 철이 지나고 이어서 귤이 나온다. 법을 안 지키면 융자 안 해준다. 철저한 관광도시로 지키고 있음이 아닌가. 이과수는 정연 이과수다.
* 이과수 파라나강 도착
파라나강은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이과수강은 동에서 서로 흐른다. 이과수는 22km 떨어진 곳에서 파라나강을 만난다. 아르헨티나 라쁠라따강은 이 강의 하류다. 라쁘라따강은 우루과이 갈 때 건넜다.
파라과이로 가기 위해 오늘은 파라나강에 온 것이다. 도시의 끝에서 강을 만난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아담한 강이다. 어느 한국의 강줄기와 유사하다. 강가에서 배가 오길 기다렸다. 청명한 하늘이다.
* 파라과이행 페리호 승선
브라질 이과수에서 파라과이 인디오촌으로 가는 배다. 이과수에서 파라과이 쪽으로 물이 흘러간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배가 간다. 페리호는 50명 정원으로 오늘은 우리 일행 22명만 탔다.
강나루에서 국경을 넘어가는 배를 타는 체험은 해맑은 강가에 평화가 구르던 내 유년의 향수다. 양쪽으로 향기로운 산과 숲이 전개되며 더러는 낚시꾼도 보인다. 세상을 떠난 고요한 정경이 이어지고 배는 유유히 떠간다. 삼십분만 가면 파라과이 인디오촌이다. 그곳에는 화장실이 좋지 않으니 배에서 볼일을 보고 내리란다. 배는 작은 유람선인데 시설이 좋다. 강과 푸른 산과 하나되는 행복이다.
* 파라나강 비경
햇살이 내리는 님미의 강은 참으로 아름답다. 4600Km. 세계 7위 강이다. 이과수강 길이의 10배다. 보기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데 장엄한 길이의 강이다.
좌로는 브라질 우로는 파라과이, 아래로는 아르헨티나, 그 사이로 세 국가의 국경을 쥐고 있는 굳건한 강이다. 수심은 35~40m, 꽤나 깊다. 물빛이 청아하다. 산 사이로 돌아 흐르기도 하고 더러는 넓은 폭에, 더러는 좁은 폭에 배를 품는다. 시위의 풍경이 비경이다.
* 파라과이 도착
배는 아까처럼 아무런 시설이 없는 파라과이 강변ㄴ에 우리를 내려준다. 내가 파라과이 땅을 밟는 순간 입국신고다. 강변의 억센 풀들이 일어서서 반긴다. 둔덕에 오르는 길은 붉은 황토흙이다. 기름진 땅이다.
파라과이 땅은 고요하다. 아무런 생명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 숲길을 따라 깊숙히 마을로 들어간다. 큰 감격으로 모두가 신기하다.
* 파라과이 인디오촌 가는 숲길
초입에서는 가파른 길이다. 600m 가면 유명한 사람이 살던 집이 있다. 여기서부터인디오촌까지 다녀오려면 1시간 30분 소요된다. 짧은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숲길이어서 지루하지 않다.
울창한 산이다. 검붉은 옥토가 산속에서 숲을 키운다. 식물원에서나 보던 귀한 식물이 이곳에서는 지천으로 자란다. 아직도 사람의 숨결은 없다. 이곳은 남미 파라과이다. 밟는 걸음 하나에도 감사드리며 오기 힘든 땅에 들어와 내가 선 것에 대하여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깊은 행복이다.
* 베토니의 집
산길만 빤히 열린 숲속이다. 크 ㄴ마누와 고운 풀들이 밀림으로 들어서, 이곳이 남미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날씨가 덥다. 4월인데 한국의 6월쯤 되는 기온이다.
사람의 발길이 흔히 닿은 길은 아니다. 돌과 흙이 자연스레 나뒹군다. 이런 밀림지대를 발로 걷는 것만도 해외여행에서 얻는 큰 소득이라 여기니 힘든다는 생각보다 보람된 시간이라 느껴진다.
한참으로 오른 600m 지점에서 사람의 집을 만났다. 유명한 사람이 살던 집이란다. 베토니라는 사람이 거하던 집인데 2층이다. 방도 그대로 오픈하여 생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목조 마루와 방을 오가며 둘러보았다. 지붕을 넘는 큰 나무 사이의 집에서 안간의 냄새를 발하고 있다.
* 인디오 가족의 이동 모습
베토니의 집에서 잠시 쉬고 또 다시 오른다. 집 뒤에서 인디오 여인이 물건을 판다. 손으로 만든 소모품들이다. 나무와 자연 재료로 만든 목걸이 외 주로 장신구들이다.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팔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을 떠났을 때 우리와 같이 섞여서 오르는 인디오 가족을 보았다. 아이들이 맨발로 따라 다닌다. 개도 사람과 같이 오른다. 문명을 만나지 못한 생명체, 파라과이 원주민, 그들을 가까이서 보며 함께 걷는 것도 행운이다.
* 숲속의 인디오 집
점점 깊이 오른 산중에서 움막 같은 집을 만났다. 사람이 산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초막집이다. 거친 풀줄기로 지붕을 만들고, 자연 재료로 지은 원시의 집이다.
어찌 살까. 현대의 발달된 문명이 한점 스미지 못한 형상이다. 그래도 행복이 도란거린다. 우리는 이방인,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가슴으로 따스히 바라보았다.
* 인디오 학교
인디오 집 바로 곁에 학교가 있다. 그저 한덩이 큰 집이 학교란다. 마당도 산비탈에 좁다랗고, 그곳이 운동장이다. 창고 같은 건축물, 이곳에서 그래도 인디오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
나라에서 지어준 학교가 아니고 대학교수가 지어 주었다. 정부가 가난해서 못 지어준다.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내 조국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된 나라인지 깨달으며 감사함으로 행복했다.
* 인디오촌 마을 도착
산은 계속 이어지고, 작은 개울물도 만나고, 인디오들이 수없이 걸어 올랐을 떄묻지 않은 영토다. 바람소리에도 놀랄 것 같은 깊은 산중에서 나 역시 때묻지 않은 영혼이다.
그런데 정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고, 칼을 들고 나온 남자에게서 두려움에 빠지고, 괜찮다고 손을 저으며 가라하는데, 그 남자는 웃고 있는데, 나는 소스라치게 떨고 있었다. 순수한 삶 앞에서 다시 용기를 얻으며 힘찬 걸음으로 걸어 올랐다. 동그랗게 다듬은 마을이 보인다. 제법 사람의 향기가 고여 있다.
* 인디오의 여인
다 오른 인디오 마을에서 신비로운 정경을 보았다. 귤나무에는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인디오 여인은 그 아래에서 장사를 한다. 아이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아 인디오들이 만든 기념품을 판다.
이곳 인디오촌은 그들이 허락한 오픈된 영토다. 허락하지 않은 집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집은 들어가면 안 된다. 그야말로 가슴을 연 손바닥만한 터에서 여인은 가슴을 열고 장사를 하며 문명의 너울을 쓰고 온 외인과 마주하고 있다.
* 인디오의 아이들
까맣고 깡마른 아이들이다. 옷만 입었지 원시인 그대로다. 그런데 저토록 순수할까. 눈망울도, 웃음도, 우리를 오히려 당황케 한다. 거부하지 않는 그들이다.
오라면 오고, 함께 사진 찍자하면 찍고, 가난한 국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이, 그들은 무엇을 바리지도 않고, 또 우리 곁을 떠난다. 1달러 지폐를 부면 그저 고마움으로 받아들고는 집으로 달려간다. 세상의 욕심이 제거된 선한 모습만 전시하고 있다.
* 인디오촌의 생활 모습
인디오들은 그들만의 법으로 산다. 백인 세계에 가서는 못 산다. 법을 몰라 얼마전 시내에서 백인을 살해앴다. 도시에 갔다는 적응을 못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전기, 수도가 없는 이 마을에는 30가구의 50여명 인구가 모여 산다. 사냥, 낚시, 농사, 열매로 생활한다. 남자는 사냥과 낚시를 하고, 여자는 농사 지으며 집안일을 한다. 원시의 생활상이다.
집을 한채 전시해 놓았다. 개도 있고, 60년대의 한국 거주와 비슷한 부엌이며 헛간이다. 가루를 빻는 기계도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용구들이다. 문명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세계가 변해가고 있는지 모르는 정지된 시간 속의 삶의 모습이다.
* 파라과이 고구마 밭
귤나무도 있고, 율무나무도 있고, 예쁜 꽃도 있고, 뜨락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탓으로 깨끗하고 잘 다듬어진 편이다. 인디오가 장대로 귤을 털어주어 먹었다. 당도가 높다. 파란 색인데도 맛은 달다. 이방인을 두려워 하지 않는 그들이며 친절도 베풀어줄 줄 안다.
그뿐 아니다. 조금 올라간 곳에서 산자락 아래 밭에 잘 심어놓은 고구마 밭을 보았다. 한국의 고구마와 똑같은 잎새다. 나는 감동으로 다가가 만져보고 들여다 보았다. 모양이 같은 것도, 한국의 밭처럼 잘 다듬어 놓은 손길도 낯설지 않아서다. 포근한 사람, 포근한 식물, 이들과의 만남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저장될 것이다.
* 브라질로 가는 배 승선
한나절을 파라과이 과라니 인디오촌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하산했다. 아까 내린 뱃전에서 강물로 신발을 닦았다. 붉은 토가 햇살을 받으며 여물고 있다.
기다리던 배가 들어오고 다시 블라질로 가기 위해 승선했다. 더운 날씨로 헉헉거릴 때 배의 아랫층에서 선원이 과일을 들과와 집으라 한다. 들어올 때 실었는데, 나는 이곳으로 운반하는 물품이려니 했는데, 우리를 위해 사 온 것임을 알고는 참으로 고마웠다.
수박, 바나나, 붉은 참외 등 많이도 나누어준다. 푸짐한 인심이다. 한국 노래도 들려준다. 박인희의 '꽃반지 끼고', 고운 선뮬이 흐른다. 햇살이 내리는 강은 비경이다. 모든 풍경과 ,인심과 외객ㄱ에 대한 배려까지 가슴 벅찬 감동이다.
* 생업의 낚시 모습
여기서 낚시는 생존의 업이다. 내 조국에서 보는 낚시는 결코 아니다. 남자 인디오들이 산모롱이에 앉아 줄을 드리우고 있다. 보트 낚싯꾼도 있다. 유심히 살펴보니 강가 곳곳에 많다.
집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며 하루의 먹거리를 건져 올리리라. 태양과 강물과 나무와 바람과 벗하며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모습이다. 저렇게 사는 것도 지상의 평화를 누리는 값진 삶이리라.
* 배 타고 하교하는 아이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배가 온 길을 돌아갈 때 또 하나의 배에 사람이 타고 있다. 쪽배다. 아이들이 노를 저으며 강가로 몰아간다.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다. 가방을 메고 있다.
파란 강은 그들이 등하교 하는 희망의 길이다. 욕심 없는물의 길, 스스로 노저어 다니며 이론보다 더 큰 체험으로 인생을 배우고 있다. 진풍경이다. 강변에 다다르자 개미처럼 산을 타고 들어간다. 부모가 마중나온 아이도 있다. 함께 산속 길로 걸어간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교육을 받는 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흐뭇했다.
* 3국 접경의 강
강은 또 하나의 강을 만나다. 옆구리에서 파고 든다. 이과수강이다. 파라과이 파라나강과 브라질의 이과수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높은 산언덕에 있는 브라질의 학회장 건물을 보았다.
강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나라와 나라가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국 접경의 강이다. 더러는 밀수품 배도 있다지만 들어도 들어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보아도 보아도 평화로운 정경이다.
* 농업국가 파라과이 선적 사무실
파라과이는 농업 국가다. 파라나강 물살이 깊고 넓게 고인 산 위에 농산물을 수츨하는 건물이 있다. 그곳에서 모아 강의 길로 보내는 것이다. 제법 크고 우람한 사무실이다.
아래 강 위에는 비자선이 있다. 강과 연결된 철조물도 보인다. 농산물을 실어 나른 장치다. 주로 남미의 국가에 수출한다. 주어진 자연 조건을 잘 활용하여 살아가는 남미 국가의 한 단면이다.
* 브라질 도착
아쉬운 파라강과의 이별이다. 아까 배를 탔던 그곳에 다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국경을 넘어온 것이다. 땀을 흘리며 다녀온 파라과이 그 산길, 비경을 선사하던 그 강물 모두는 값비싼 선물이다.
어디 편안한 것만이 여행이던가. 많이 걸어서 종아리가 아파도 즐거운 여정이다. 더 선명하게 감기는 소중한 추억의 순간들이다. 땅에 발을 디딜 때 감사했다.
* 이과수 식당 남미 현지식
브라질 생선 전문 식당이다. 커다란 물고기, 야채, 과일이 풍성히다. 브라질 전국 대상 식당으로 2000년도 남미 축구팀이 이곳에서 맛있게 먹었다 하여 훌륭하 식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생선이 비리지 않고 맛있다. 어떤 향신료를 썼길래 이토록 맛있을까. 신기하여서 먹고 또 먹었다. 식탁 위에도 많이 놓여 잇고, 뷔페식으로 얼마든지 갖다 먹을 수 있다. 드넓은 식당에서 먹는 남미 현지식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브라질 야채와 과일 가격
농산품은 헐값이다. 망고 1Kg에 600~700원에 판매된다. 그런데 포장하면 10배로 뛴다. 공산품화로 생산하면 그렇게 비싸진다.
망고나무 한그루에서 떨어지는 하루의 양은 한 가족이 다 먹고도 넘친다. 이웃집에 10개 갖다주면 다음날 20개를 가져온다. 그만큼 과일이 풍부하고 값이 ㅆ다는 것을 시사한다. 풍성한 나라다.
그래서 남미 여행은 고기와 과일을 먹는 여행이라고 한다. 먹거리가 싼값에 넉넉히 제공되기에 여행은 더 없이 행복하다.
* 기념품 가게 견학
보석 조각이 많다. 꽃, 나무, 새, 등 조각품을 전시해 놓았다. 아주 큰 브라질 이과수의 기념품 가게다. 규모도 크고, 눈으로 보는 쇼핑만으로도 행복한 곳이다.
1500년 전 포루투칼이 와서 개척한 땅, 브라질이다. 금을 찾아서 수출했다. 30년 동안 1개 품목만 유럽에 수출했다. 천연 날염 원료인 빠오브라지오다.
그래서일까. 보석도, 다른 조각품도, 모두 색상이 탁월하게 곱다. 물건을 판다기보다, 브라질을 전시한 형상이다. 모두 감탄하며 둘러볼 뿐이다.
바깥 풍경도 아름답다. 야자수와 잘 가꾸어 놓은 뜨락이 진풍경이다. 이과수 시가지 도로도 훤히 뚫려 시원하다. 푸른 물결의 도시 곁에 기념품 상점은 명물이다. 건물의 외경도 화사하고 낭만적이다. 직원들이 영어도 잘 알아듣고 답한다. 세련된 남미의 한 공간이다.
* 남미국가의 GNP
브라질의 GNP는 8천 5백불이다.아르헨티나는 12000불이다. 남미에서 제일 높다. 파라과이는 4500불이다. 미국 CIA 정보제공으로 한국은 22000불로 나와 있다. 한달 전 인터넷에 그렇게 떴다는 것이다.
넓은 땅을 소유한 국가인데 손바닥만한 내 조국보다 모두 낮은 GNP가 아닌가. 힘들었던 국가 도약의 산업사회를 넘어온 우리들이다. 50대, 60대의 한국인들은 그 힘들었던 마디를 넘어 욌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우리가 일군 대한민국의 경제부흥으로 세계의 높은 어깨와 당당히 맞서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 브라질의 교육수준
국민 교육 수준이 낮다. 20%만 대졸이다. 1억 9천만 명 중에서 그렇게 배운 자가 적다. 산수를 못해서 최저 임금자는 누가 내 돈을 갖고 있냐고 구데타를 일으키기도 한다. GNP도 미국에서만 발표할뿐, 발표하지 않는다.
브라질은 운동도 축구만 한다. 골프장이 이과수에 하나 있는데 운동하는 사람이 없어 망한다. 하이클스인들도 축구한다. 혹은 테니스 정도다. 평균 수명이 65세다. 드넓은 대륙을 부러워 했는데 그 안의 담긴 내용은 전혀 부럽지 않다. 높은 수준의 대한민국 교육이 이토록 자랑스러운 것은 세계 여행이 일깨워주는 또 하나의 값진 소산이다.
* 이과수 폭포 가는 길
기념푼 가게에서 10분 소요된다. 버스로 국립공원 안까지 들어간다. 입장권을 가지고 들어간다. 이과수 변두리 지역인 익소은 푸른 초지가 눈앞에 전개되기도 하고 야산의 숲도 보인다. 가는 동안 이과수 폭포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이과수 폭포는 1억 4천만년 전에 형성되엇다. 용암이 2번 흘러 이중 폭포를 형성시켰다. 그 용암 주변에 폭포가 흐르고 사이 사이 풀이 돋아 장관이 되었다. 이과수 관광청에 등록한 버스만 공원 진입 가능하다. 삼형제 폭포도 있다.
남미의 48%가 브라질이다. 브라질에는 국립공원이 55개 있다. 그리고 나머지 52%는 12나라가 소유하고 있다. 브라질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의 대표 명소다.
버스로 10분 가서 도보로 1300m를 걸어가며 폭포를 관람한다. 폭포 끝에서 전망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높이 만큼 오른다. 아르헨티나쪽 폭포를 보는 것이다. 색깔이 붉으면 물의 양이 많다는 것이다. 물보라로 우의를 들고 가면 좋다.
이과수는 한국의 제주도 면적이다. 원래 토종 나무만 있었다. 공원의 이종 나무를 제거할 때 트럭 20대 분량이 공원 입구에 나왔다. 얼마나 큰 밀림 숲인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점점 보고 싶어지는 이과수 국립공원, 이과수 폭포다.
* 사파리 투어
국립공원 안에서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만난다. 대표로 코아티(꽈치)가 있는데 동물이 작다. 코아티(꽈치)는 인디오 말이다. 꼬리 빼고 50~60Cm다. 너구리과의 동물로 발이 4개이며 잡식이다. 음식물을 주지 말아야 한다. 발톱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음식을 뺏아 먹으려고 뛰어올라 할퀸다. 떠지어 무리로 다닌다. 프랑스 여인이 미아가 될뻔 했다. 여권 든 가방을 물고 도망 가버려서 그렇다. 절대로 가방을 놓지 말라고 한다.
비닐 소리가 나면 먹이인 줄 알고 온다. 코아티(꽈치)는 관리를 소홀히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코로 구멍을 판다'는 뜻의 동물이다. 뿌리를 먹는 동물이어서 코와 구멍이라는 뜻의 언어다.
철저히 자연을 보호하는 영토, 이과수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걸어서 이과수 폭포까지 가는 동안 코아티(꽈치)란 녀석을 만날까 두려웠다. 또한 보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나타나진 않았지만 안내판 그림을 보니 꽤나 영리한 모습이다. 안전한 곳으로만 사람이 다니도록 길을 내어 그리 위험한 사파리 투어는 아니다.
* 이과수 폭포 도착
산 언덕에서 하얀 줄 폭포가 보인다.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폭포의 끝선이 다가온 것이다. 푸른 나무 숲 사이로 그려내는 하얀 목숨들, 너를 만나기 위해서 아시아인은 지구를 반바퀴 돌아 이곳에 온 것이다. 서막인데, 이제 겨우 첫 손가락 연주일 뿐인데 사람들은 감탄하다. 아기처럼 곱게 얌전히 바닥으로 내려온다. 이과수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감상하며 걷고, 또 걷는다.
* 이과수 폭포 비경
내가 이곳에 섰다는 것에 대하여 기막힌 환희다. 이 순간을 어떻게 담아가야 할 지 심히 벅차오른다. 온통 심장이 함께 뛰어 내린다. 악마의 눈, 악마의 목구멍, 악마의 발, 악마의 몸통, 무어라 해도 아름다운 이름이다.
긴 도로를 따라 오르며 물의 유혹을 본다. 초록 나무 물결과 물보라가 천상의 하모니다. 내 생애 이토록 황홀한 비경 앞에 섰다는 것에 대하여 목숨이 뜨겁다. 내가 정녕 살아 있구나. 숨수;는 의미를 여기서 깨닫는구나.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 폭포, 오를수록 점점 큰 위용으로 용트림 친다. 브라질에게 신은 지상 최대의 축복을 선사했다 하여도 지극히 타당한 표현이라고 나는 외친다.
* 이과수 폭포 전망대
산길을 걸으며 보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폭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전망대를 만난다. 그곳에 서면 폭포와 사람은 하나로 포개지며 깊은 환희에 젖는다.
이런 전망대는 하나가 아니며 1300m, 그 긴 산길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 조금 강물 쪽으로 들어가 있어 폭포는 바로 눈앞에 있다. 강폭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구비쳐 흐르는 물결도 비경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느라 줄 서 있다. 폭포 속에 나를 넣고, 하나의 영혼으로 그려내는 명화를 완성하는 순간이다.
* 이과수 폭포 전망 철교
폭포의 상단에 놓인 철교다. 산길에서 강을 타고 폭포 앞까지 가는 다리다. 사람은 영리하여서 위험하지 않을 만큼 아주 가까이 신적 자연과 만나도록 주선한다.
꺾고, 또 꺾어자는 철교를 구비구비 건너간 곳에서 어제 보았던 악마의 목구멍 폭포를 만났다. 이곳이 진정 이과수 폭포의 발원지이며 지축을 흔드는 굉음으로 탄생되는 지상의 자궁이다. 철교는 어머니처럼 사람과 폭포를 아우른다.
* 이과수 폭포의 장엄한 물보라
하얀 분무, 신의 하얀 춤사위, 세상 모르고 휘도는 물의 영혼들, 정녕 이곳이 땅 위 세계인가. 분간하지 못할 만큼 사위를 떠도는 물 알갱이들이 가벼워야 얻는 축복을 선사한다.
다 버리라 한다. 빈 날개로 날으라 한다. 두려움을 지우라 한다. 저 높은 곳에서 우르르 뒹굴어 떨어지며 절망도, 욕망도 깨어지고 솟구치는 물보라는 천상의 순수다. 저 모습 하나만 보듬어 가도 나는 이과수를 다 본 것이다. 영혼으로 우는 이과수 폭포를 만났으니 나의 심장은 무거운 연륜을 지우고 있다.
* 이과수 폭포 보트 투어
이과수 폭포를 끝까지 보고 엘리베이터로 전망대에 올라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폭포 하단의 강가에 내렸다. 이제 이과수 폭포를 거슬어 오르며 아주 가까이 가는 보트 투어를 위해서다.
심한 물보라로 가방을 비닐팩에 싸야 한다. 신발, 양말을 벗어 놓고 맨발로 탔다. 우의로 무장했는데도 여권이 든 가방이 젖을까 걱정된다. 카메라는 가슴 깊이 보듬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 30분 동안 보내는 폭포와의 시간은 장엄했다.
물보라가 아니라 물을 쏟아 붓더라고 전하라던 어느 할아버지의 말처럼 폭포는 바로 머리 위에서 춤추며 떨어진다. 옆으로 기울며 기교를 부리는 보트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폭포 속을 넘나들며 사람보다 더 신난 것은 보트다.
폭포의 전경을 보여준다. 아득한 천상에서 투신하는 물줄기들, 그 최상단 악마의 목구멍까지 눈앞에 전개된다. 두려워야 할 순간인데 사람들은 웃고 있다. 나도 함께 힘차게 웃고 있다. 이것이 이과수 폭포다. 슬픔이거나, 두려움이거나, 이런 비열한 단어는 존재할 수 없는 가장 고요한 영역, 그래서 세계인의 걸음이 끊이지 않는 사유를 꺼이꺼이 외치고 있다.
* 미꾸꼬 사파리 투어 차량
이과수강은 1320Km다. 파라나강이 4600Km인 것에 비하면 짧지만 장엄한 규모의 강이다. 그 만큼 숲도 장어하다. 보트 투어 후 미꾸꼬 사파리 투어 차량으로 정글을 헤집에 나온다.
뚜껑이 없는 차다. 의자가 촘촘이 박혀 있다. 기차처럼 길다. 20년 된 관광코스를 쉼없이 달려다닌다. 귀엽기도 하고, 철인처럼 강하게 보이기도 한다.
* 이과수 국립공원의 정글
미꾸꼬 사파리 투어 차량으로 정글을 뚫고 나올 때 사방은 나무로 둘러쳐 있다. 무서운 공간인데 차와 많은 사람이 함께가는 길이기 때문에 진정된다. 그야말로 밀림지대다. 인간의 호흡이 닿지 않은, 인간의 숨결을 거부하는 숲의 오롯한 영토다.
나무 사이로 가끔씩 하늘만 보인다. 그것도 작은 구멍이다. 다듬지 않은 초자연의 숲에서 동화 속 소년이 나올 것 같다. 원시의 미로다. 잠시 지나는 길이지만 온몸이 순수한 공기로 다시 태어나는 순결한 체험이다.
* 이과수 보트 투어 비디오 시청
사파리 차 타고, 짚차 타고 가서 보트 투어로 다녀온 코스의 비디오를 시청했다. 물보라가 심하여 아무도 영상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디오로 제작하여 보여준다.
흔들리고, 출렁이며 물과 하나되는 순간들이 TV 모니터에 뜬다. 다시는 이루어지지 않을 여정이기에 소중히 보고, 몇 장면은 사진으로 찍어 왔다. 또 오겠는가. 이 먼곳을-. 그래서 나는 내가 찍지 않은, 내가 담긴 이 장면들이 소중하여서 보듬어 간다.
* 이과수 시가지 투어
대부분 아파트 생활이다. 2~3층의 저층이다. 도심이 작다. 호텔과 상가가 많고 나무도 많아 야경이 곱다. 건물, 백화점이 거의 단층이다. 5층 이상이면 엘리베이터가 있고, 5층 이내면 없다. 그래서 이과수의 엘리베이터는 단 1군데, 공항에만 있다. 학생들이 견학 오는 곳이다.
이과수 중심 도로를 지났다. 거리는 짧지만 화여하다. 전깃줄을 지하에 매설하여 건설한 길이다. 관광객을 위한 도로인데 치안이 미비하여 못 온다. 낭만의 거리를 내리지 못하고 버스로 지났다.
말을 타고 순시하는 경찰도 보았다. 현대와 과거가 접목된 풍경이다. 골목을 기동성 있게 다니기 위해서란다. 나의 눈에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데 이곳의 고단한 생활이라니, 담장 너머 이과수 도시의 아픈 살점 하나 보는듯 하다. 위대한 자연 유산을 지키기 위한 브라질의 큰 노력이다.
이과수 폭포에서 많이 걸었던 다리가 가벼움으로 풀리는 순간이다. 시가지의 야경이 땀을 흔리지 않고도 뇌리 속에 저장되니 말이다. 크고, 작은 길을 따라 돌며 잘 가꾸어 놓은 도시를 다 보았다.
* 이과수 시민들
순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길을 물으면 데리고 가서 알려 줄 정도다. 대부분 유럽계 민족이다. 만족도 자수는 낮다. 오늘 먹을 것만 잇으면 행복을 느끼며 산다. 전쟁, 태풍, 지진이 없어 평화롭다. 내일 걱정을 안 한다. 항상 즐겁다. 이런 대목을 어떻게 이해할까.
기본적인 자연자원이 많아서 그렇게 삶이 형성된 것이라고 해석된다. 이런 이과수 폭포가 한국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리는 황홀한 환상을 해보았다. 아니 내 조국에는 단 몇 줄기 폭포라도 좋다. 그 많은 장엄함을 다 소유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날 신이 내려와 세계인이 놀랄 눈으로 바라볼 자연유산 하나 만들어 주었르면 싶다. 그래서 이과수 시민들처럼 조금은 마음을 비워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만 욕심내지않고 평화롭게 사는 조국을 꿈꾸어 본다.
* 한국의 위상
나는 현지 가이드 윤경 교포에게 한국의 화장품을 말해 주었다. 이과수 폭포 보트 투어 할 때 물이 얼굴에 범벅인데도 눈이 따갑지 않더라고, 썬크림과 화운데이션을 많이 발랐는데도 전혀 번지지 않더라고, 몇 년 전의 화장품과는 또 다르게 좋아졌다고-.
그랬더니 그는 나보다 더 한국 화장품을 예찬했다. 한국 화장품이 세계 1위 질이란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여인들이 화장이 지워진다고 이과수 폭포 보트 투어에 응하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한국 화장품이 너무 좋아져서 한국 여인들도 모두 보트에 탄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화장품을 안 쓴다. 그러나 사용할 때는 한국의 화장품을 주로 산다. 악세사리도 중국제품 값이 1/3이어도 한국의 악세사리를 쓴다. 대단한 한국의 위상이다.
* 이과수 인디오 테마 식당
내일이 인디오의 날이란다. 그래서 오늘이 축제의 날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건물도 곱고, 분위기도 아름답다.
안심, 등심 숯불구이 요리집이다. 음식도 좋지만 테이블의 꽃과 주변 실내정경이 대단히 우아하다. 뷔페식으로 고기, 야채, 과일이 많이 나온다. 마지막 이과수의 만찬이다.
아주 맛있게 많이 먹고 가란다. 이제 언제 또 오겠는가. 남미의 이 고운 영토를-. 순간 순간이 아쉬움이다. 베풀어 주는 남미 이과수 인디오 식당의 손길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내일은 10시 10분까지 로비 집합이다. 상파울로까지 1시간 30분 비행기 타고 가서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가고, 또 그곳에서 다시 케이프타운까지 비행기로 이동한다. 진종일 비행기만 타는 날이다. 총 비행 시간 14시간, 상파울로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8~10시간 소요, 기내 1박이다. 오늘이 물 폭탄 여행이었다면 내일은 비행기 폭탄 여행이라 하여 누리는 웃었다.
짐은 케이프타운까지 가지 않는다. 시스템 미비로 그렇다. 공항에서 가방에 붙은 짐표를 모두 찢어야 한다. 옷은 브라질은 더웠으나 남아공은 춥다고 긴팔, 긴 바지를 입으란다. 모두가 내게는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보는 것만 여행이 아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기후까지 담아가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세계여행이기 때문이다. 이 밤, 참으로 아름다운 브라질의 마지막 여정이다.
2008년 4월 19일 토요일 브라질에서 남아공으로 이동
이과수 호텔 출발, 이과수 공항 중식, 이과수 공항 출발,이과수 국립공원 상공, 상파울로 공항에서 요하네스버그행 환승, 브라질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길
* 이과수 호텔 출발
새벽 일 찍 눈을 떴다. 빗소리에 문을 여니 온통 물범벅이다. 아, 우리는 어제 이과수 폭포를 축복의 날씨 속에서 잘 보았구나. 감사했다.
오늘은 떠난다. 상파울로로 1시간 30분 비행기로 간다. 우리가 떠나는 시간에는 비가 멈췄다. 시가지도 보고, 호텔도 마지막으로 돌아 보았다. 목조 호텔, 에술적인 선, 색조, 모두 아름답다. 이과수에 온 객을 위해 포근한 숙소다. 호텔 잎 거리가 드넓다. 깨끗하다.
10시 10분, 버스로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윤경 교포 가이드는 말한다. 33년 사는 동안 쇠고기 값이 0이 9개 떨어졌다고. 10년마다 0이 3게씩 떨어지더라고. 자꾸 쇠고기 값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인구는 1억 9천만명인데 소는 2억 1천 마리다. 1인당 소 1마리 이상인 셈이다. 쇠고기 1Kg에 한화로 4000원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축산업 발달로 쇠고가가 싸다. 여행하며 곳곳에서 목장을 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이과수 시가지다. 먼 후잏, 그리워질 때 기억을 쉬이 꺼내려고 자꾸 보며 스처 지나가는 창밖의 정경을 꼬옥 담고 있다. 뇌리에, 가슴에, 사진기에, 예쁜 건물과 웅장한 들녘을 고운 시선으로 저장하며 이별을 고했다.
* 이과수 공항 중식
오후 1시 30분 비행기다. 이과수에서 상파울로행 국내선이라서 1시간 50분 소요되므로 기내 중식이 충실하지 않아 공항에서 식사를 했다. 고기도, 과일도 맛있다. 그런데 뷔페 식당 위 벽에 마늘이 걸려 있다. 지난 저녁식사 때도 마늘을 먹은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마늘을 또 본다. 반갑고 신기했다. 한국과 음식이 유사한 걸까. 맛도 매운 것이 동일했다.
타국에서 조국의 요리향신용 마늘을 보다니 잠시 뜨거운 향수가 밀려온다. 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여서 마늘을 요리롤 사용하는가 보다. 질도 좋고, 서비스도 좋고, 공항의 식사는 그렇게 떠나는 이에게 고운 손길이었다.
* 이과수 공항 출발
오늘은 14시간 비행기 탄다. 이과수에서 상파울로,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까지 간다. 그래서 짐을 부쳤는데 다행히도 이과수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연계시켜 우리가 중간에 찾아 부치치 않아도 케이프타운에 가서 찾도록 해주었다.
현지 가이드의 활약으로 그리 된 것 같다. 원래는 그렇게 안된다는데 몇일 전부터 그렇다며 우리가 복이 먾다고 한다. 공항에는 삼성광고가 곳곳에 크게 있다. 자랑스럽다.
이제 푸른 물결 넘실대는 브라질의 이과수와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깨닫고 간다. 포근한 남미,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이과수 국립공원 상공
비행기가 이륙하자 지상은 푸른 물결이다. 모두 초록이다. 제주도 면적에 해당하는 이과수 국립공원 정글이다. 좀 더 날아 오르자 이과수 폭포의 흰 물보라가 피어 오르고 이과수 강줄기가 보인다.
넓고 긴 1320Km의 이과수강이다. 이과수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위용으로 흐른다. 어제 내가 저곳 어느 한마디를 지났다고 생각하니, 또한 저 이과수 폭포 앞에 섰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과 내 지혜가 커지는 듯하다.
이런 대륙도 있구나. 비행기를 타고 바라본 땅 전체가 푸른 정글, 산도 아닌 평지인데, 식물은 사람의 손을 벗어나 마음대로 살고 있다. 엉키면서도 질서있는 저 자연, 평화로운 삶을 내 기억 창고에 담아간다.
* 상파울로 공항에서 요하네스버그행 환승
짐은 찾지 않는다. 이미 이과수 공항에서 우리의 종착지 아프리카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계속 환승하여 그곳에 내려주기로 했다. 우리는 상파울로에서,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 티켓팅만 하면 된다. 다행이다.
지금까지는 국내선을 탔고 이제는 국제선을 탄다. 시간이 촉박할 때 공항마다 짐을 찾고 또 부치려면 힘들텐데 그런 부담을 이과수 공항에서 덜어준 것이다. 18:00 비행기다. 좀 여유가 있다. 오후 4시경 도착했다.
상파울로 공항은 올 때 이미 거쳐간 공항이다. 두번째로 온다. 6월 1일부터는 LA 경유하여 대한항공이 직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어디로 오든 하루가 걸리는 먼 곳이다. 물론 여기서 남아공까지도 11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다. 한국의 반대편 대서양을 완전히 횡단하는 것이다.
상파울로 공항은 하얀 구름이 있다. 푸른 산도 얕으막하게 보이고, 저층의 시가지가 보인다. 흙은 여전히 붉은 브리질의 기름진 땅이다. 이제 비행기는 곧 상파울로 공항에 착륙한다. 상파울로 도심은 높은 건물과 붉은 주택이 한가득이다. 곱다.
활주로에 착륙하자 멀리 산이 보인다. 남미에서 오랫만에 보는 반가운 산이다. 상파울로 공항에서 요하네스버스행 항공권과 케이프타운 항공권을 받았다. 27번 게이트에서 17:20분에 보딩이다. 나는 56K, 남편은 55A다. 둘 다 창쪽 좌석인데, 아프리카는 좌석이이 일행이어도 흩어진다.안에 들어가서 바꾸어야 한다.
상파울로 공항은 국제공항이라서 크다. 좀 어둡고 오래된 연륜이 느껴진다. 모두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으로 자꾸 바라보게 된다.
* 브라질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길
상파울로 국제공항에서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으로 간다. 남미 여행을 마치고 아프리카로 가는 것이다. 올 때는 11시간 걸렸는데 갈 때는 9시간 소요 예상이다.
시차 관계로 5시간이 증발된다. 브라질보다 남아공이 5시간 빠르므로 밤 5시간이 당겨진다. 좀 고단한 비행기 길이다. 이륙 직전 비가 온다. 유리창에 알알이 물이 맺힌다.
거대한 SA 항공은 용감하게 빗속을 뚫고 상공으로 차오른다. 어둠은 더 짙어가고 기내 석식을 먹고 안대로 불빛을 가리고 잠을 잤다. 8시간 40분 소요 예정이라고, 도착 2시간 전쯤 기내 조식이 나왔다. 창밖은 붉은 새벽이다.
우람한 비행기 날개 사이로 여명이 서린다. 곱다. 하늘은 점점 빠른 속도로 아침을 연다. 해는 비행기쪽으로 오고, 비행기는 동쪽 해쪽으로 가고, 그래서 빠른 속도로 낮이 열리는 것이다. 신기한 하늘 길이다.
2008년 4월 20일 일요일 아프리카 남아공
상파울로에서 요하네스버그 공항 도착,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케이프타운 행으로 환승,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비행기, 케이프타운 공항 도착, 항구도시 케이프타운, 흑인 판자촌, N2 고속도로, 케이프타운의 인종, 케이프타운의 거센 바람, 테이블 마운틴 원경, 아프리카 빅5 동물, 남아공의 이민 교포들, 사막화 되는 땅, 타조농장 중식, 기울어져 사는 나무, 테이블 마운틴 가는 길, 케이프타운의 역사, 케이프타운의 건설 붐, 케이프타운 시가지 투어, 네덜란드 성벽, 노예 매매시장 건물, 남아공 국기, 불에 탄 소나무, 바람과 테이블 마운틴, 항구도시의 비경, 켐스베이 해변 마을, 케이프타운의 집값, 포로수용소 감옥, 남아공 2010년 월드컵 준비, 켐스베이 12사도 봉우리, 워터프론트, 빨간 시계탑, 넬슨 만델리 게이트웨이, 워터프론트의 공연, 낭만의 거리 워프론트, 고려정 한식 석식, 케이프타운 호텔 투숙
* 상파울로에서 요하네스버그 공항 도착
오전 7시 40분에 도착했다. 밤새 상파울로에서부터 날아온 것이다. 아프리카의 아침은 상쾌했다. 지난번 올 때에 이어서 두번째로 왔다. 이곳에서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환승하여 간다.
흑인 남자가 카메리를 들고 있으니 우리 부부를 찍어준다고 한다. 디카를 주었더니 신기한듯 바라보다가 셔터를 눌렀는데 'LOOK'하며 다가오기에 보여주니 흔들려 찍어서 사진이 흐리다고 다시 찍어준단다. 두번째는 조금 낫다. 흑인 남자는 'good, good'하며 화사하게 웃는다. 나는 해외여행중 외국인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지 않는데, 요하네스버그의 그 흑인청년에게는 평안하게 넘겨 주었다.
아르헨티나 라쁠라따강을 쾌속선으로 건너우루과이에 갈 때 뚱뚱한 백인 남자가 그때도 우리 부부를 찍어준디고 했는데 나는 치안 문제로 무서워서 주지 않고 달아났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편견이었다. 외국인이라 하여 모두 우리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여행 중에 얻은 큰 깨달음이며 기쁨이다.
E11 게이트에서 오전 10시 케이프타운행 SA항공을 탔다. 이제 마지막 여행지로 간다. 점점 아쉬움이 배인 여정이다.
*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케이프타운행으로 환승
오늘은 계속 비행기만 탄다. 세번째 환승이다. 밤을 넘어 브라질에서 왔다. 케이프타운은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자국기로 이동한다. Sauth Africa Airway, SA항공 이름도 참 아름답다.
환승수속을 마치고 탑승하여 활주로 대기 중일 때 맞은 편 활주로에는 짐바브웨 항공과 SA항공이 그 활주로에 들어섰다. 남국의 자작한 풀들이 흔들린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순간이다.
*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비행기
상공으로 솟구쳤을 때 요하네스버그 타운은 붉은 색 지붕 물결이다. 초록 나무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다. 금광인 산언덕 2개도 보인다. 하얀 구름이 저 아래 깔려 있다. 하얀 솜을 찢어놓은 것처럼 몽실몽실하다.
두 시간쯤 날아왔을 떄 케이프타운에 가까운 지상은 조금 거칠은 평원이다. 황토색 볼모지인듯 나뒹군다. 저 드넓은 평원이 아프리카다. 최남단 지구 땅은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은 애련한 땅이다.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고 있다.
* 케이프타운 공항 도착
가슴이 벅차오른다. 케이프타운, 흑인의 도시가 아니고 영국과 네덜란드 사람들이 들어와 백인의 도시로 키운 곳이다. 항해술리 발달한 유럽국가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고 지배하여 발전시킨 도시다.
분명 흑인과 백인의 차이는 있다. 공항에서 수속업무를 할 때도 백인이 훨씬 빠르게 처리한다. 어쩌면 야속할지는 몰라도 백인이 들어와 남아공을 키운 것이 이곳 흑인에게는 더 큰 덕택일지도 모른다.
그 시초의 백인 땅에, 지금 내가 들어온 것이다. 산이 있어도 나무가 없다. 남극 특유의 잔잔한 풀 종류만 아득히 보인다. 산맥의 거대한 봉우리가 모두 갈색이다. 평지의 땅을 찾아 민가가 약간 있고 일구어 놓은 경작지가 보인다. 게획도시로 반듯반듯한 시가지다. 케이프타운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낮 12시 40분, 쾌청한 날씨다. 염려했던 짐도 잘 나왔고 축복받은 여행이다. 마중나온 교포 가이드를 미팅하여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 샘'이라 불러 달란다. 한국이름의 '샘'이라고, 결혼도 했다고 반가운 인사를 한다. 화사한 만남, 먼 나라에서 씩씩하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 항구도시 케이프타운
대한민국 10배 도시다. 유럽형이다. 총 9개주로 나뉘어졌으며, 남아공 세군데 수도 중 한군데로 입법 국회의사당이 있다. 2006년도 미국에서가고 싶은 곳으로 뽑은 세계 6대 항구 도시다. 여행하다가 살기 좋아서 이민 생각이 날 것이란다. 가이드는 1999년 대학유학 왔다가 정착하여 지금은 남아공 지정 정식 가이드란다. 인터넷 검색에서 나아공에 대한 답변은 거의 '샘'이 쓴 것이란다. 사실 이곳은 너무 멀어서 한국인이 오기 힘든다. 나도 여행 오기 전 인터넷 창에 남아공에 대하여 검색해 보앗는데 답변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이토록 지구상에서 먼 곳에 왔다는 것에 대하여 큰 행복이며 축복이라 여겨진다.
아프리카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남아공이며 이곳은 더욱 그렇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여기까지 1500Km, 자동차로는 18시간, 기차로는 12시간, 비행기는 3시간 소요되는 아프리카 최남단 항구 도시다. 지구상 모든 인종, 모든 식물과 동물을 볼 수 있는 대단히 열린 도시다.
* 흑인 판자촌
흑인들은 구분된 곳에서 산다. 본토의 주인인데도 그렇게 산다. 외곽 판자촌에서 모여 산다. 공항에서 버스로 올 때 사람이 살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집드이 늘어서 있었다. 극서이 흑인 판자촌이란다.
그래도 흑인에 대한 배려는 있다. 전기, 수도세를 안 낸다. 그래서 나가라고 해도 그 집에서 살며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흑인은 8시부터 통제다. 저녁이면 사람들 통제용 불이 전봇대에 켜지고 경찰이 지킨다. 교과서가 아닌 여행에 의해서 얻어지는, 눈으로 목격하는 삶의 한 단면을 배운다. 그래도 숲속으로 쫓겨나 숨어 사는 원주민보다는 남아공 흑인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N2 고속도로
지금 N2 고속도로를 지나고 있다. 한국의 남해고속도로 같은 개념이다. 케이프타운에서 더반까지 1300Km 고속도로다. 이곳은 고속도로에 N자가 들어간다.
우리가 가고 잇는 곳은 타조 농장이다. 케밥 중식을 위해서다. 오늘의 일정은 타조 농장에서 돌아 본 후 현지식을 먹고, 테이블 마운틴과 워터프론트에 갈 예정이다. 중심지 시가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계속 달려간다. N3 고속도로를 지난다고 또 알려준다. N1은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1500Km 고속도로란다. 고속도로에 붙은 이름이 간편하면서도 독특하다.
* 케이프타운의 인종
남아공의 총 인구는 5천만 명으로 한국과 유사하다. 도심에 500만명이 모여 산다. 케이프타운에는 백인이 33%, 흑인이 27%, 그리고 나머지 40%는 혼혈족이다.
현재 흑인 집권체제인데 케이프타운은 백인이 지배하낟. 언어는 영어와 아프리카 영어, 두 가지다. 영어와는 조금 다른 영어다. '안녕하세요'가 '몰로'다. 그래도 곳곳에서 부딪힐 때 영어로 묻거나 답변하면 의사소통이 되어 여행하기 편리한 곳이다. 흑인과 백인, 그 중간자가 평화롭게 일군 땅이다.
* 케이프타운의 거센 바람
바람의 도시다. 그냥 바라람이 아니고 시속 125Km의 거센 바람이 휩쓰는 도시다. 이제 테이블 마운틴으로는 향하는데 오른다는 보장이 없단다. 바람이 거세면 도착해서도 그냥 돌아와야 된다.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는 길이 여러가지 있는데 우리는 해발 300m에서 1067m의 산줄기를 케이블카로 오른다. 바람이 많이 불면 운행 중지다. 차문을 못 열 정도이고 억지로 열면 문이 부러질 정도의 거센 바람이 수시로 분다. 나무도 그런 바람을 맞으며 비스러진 모습으로 산다.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설마 했는데 거신 바람이 불어 오르지 못했다. 버스 안에서는 몰랐는데 테이블 마운틴 산중턱 케이블카 타는 곳에 내렸을 때 요란한 바람이 분다. 바람, 항구 도시에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 테이블 마운틴 원경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부터 보였다. 보통 산과는 정녕 다르다. 보는 곳에 따라 다르지만 산정이 테이블처럼 평면이다. 평평하여서 붙여진 테이블 마운틴이다. 1087m의 높은 고지의 구름은 식탁보 구름이다.
테이블 마운틴은 사람 형상으로 보이기도 하낟.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산이다. 저 산을 보고자 세계인의 걸음이 이곳에 모인다는 것이다. 기묘한 자연을 신은 선사하였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신비로운 눈을 열고 있다.
* 아프리카 빅5 동물
동물이 그냥 많은 대륙은 아닐 것이다. 자연 환경과 인간의 끊임없는 보살피으로 이어가는 동물의 요새가 아닌가 싶다. TV에서, 지면에서 수없이 보아온 동물들, 꼭 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대륙, 나는 지금 그곳에 와 있다.
대표 동물 빅5는 표범, 버팔로(물소), 사자, 코뿔소, 코끼리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거대한 야생 동물이 이곳에 있다. 자연에 길들여지고, 사람에 길들여져서 그들의 종족을 보존하며 살고 있다.
* 남아공의 이민 교포들
케이프타운에 이민 교포가 1000명 산다. 99년도만 해도 100명이었는데 많이 늘었다. 요하네스버그에는 500명의 교민이 산다. IT산업, 무역사업 등에 주로 종사한다.
내가 본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외모가 아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듯 화사하고 질서 있다. 남아서 살고 싶을만큼 깨끗한 청정의 도시다. 특히 케이프타운은 더욱 잘 가꾸어진 도시다. 이런 곳에서 앞서가는 두뇌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내 동포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 사막화 되는 땅
여름 강수량이 10~20mm다. 지극히 물이 내리지 않는 양이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에서 온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은데, 그 나무는 물 흡수율이 높아서 사막화되는 사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도 튼튼한 재목으로 건물용에 사용되기 때문에 곳곳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이 있다.
지금은 이곳 게절이 가을이다. 단풍이 촉촉히 든다. 와인 포도 수확시기다. 연평균 10도다. 지하자원 생산량이 많은 나라다. 사막화되는 연유도 알게 되고, 유칼립투스 나무가 호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곳곳에서 만나고,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사막을 보고 신기한 땅이다.
* 타조 농장 중식
한참을 달려온 곳이다. 나무를 보며 진입했는데 사막이 전개된다. 사람과 타조가 사는 곳은 꼬과 잔디가 있지만 건너편에는 긴 사막이다. 꽃들이 곱다. 푸른 잔디와 멀리 사막화된 땅의 경계선이 애처롬다.
타조는 버릴 것이 없다. 흰색은 암놈이고, 흰갈색은 숫놈이다. 검정은 변종으로 100마리 중 하나다. 암컷은 90Kg, 숫컷은 110Kg, 엉덩이살로 요리한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빠른 동물로 시속 75Km 뛴다. 첫째는 치타로 시속 90Km다. 두번째로 질긴 가죽이다. 첫째는 악어 가죽인데 값은 타조가 더 비싸다. 알껍질은 칼슘 먹이로 사용된다.
듣고보니 정말 타조는 인간에게 유용한 동물이다. 여기 농장은 타조를 가두어 기르고 있었다. 어미와 새끼가 많은데 사람을 피해 달아난다. 관람 후 식당에서 타조 요리인 케밥을 먹었다. 입에 익숙하지 않아 맛이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특이한 요리 처험이다.
공작새 가족이 방목되어 돌아다닌다. 바람에 비스러져 사는 큰 소나무도 있다. 남아공의 커피 서비스까지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식사다. 사막지대에는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한 풍경이나 이것이 이곳 삶의 한 부분이다.
* 기울어져 사는 나무
바람이 많은 지역이어서 나무가 기울어져 산다. 그대로 자라면서 비스러진 형상이다. 타조농장에도 있고, 거리에 다닐 때도 있고, 숲에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테이블 마운틴의 나무는 더욱 그랬다.
어떤 나무는 꼭 누워서 크는 것 같다. 얼핏보면 그렇게 조경하여 기르는 나무처럼 보인다. 바람결대로 순응하며 세상 이치를 깨닫는 나무들이다.
* 테이블 마운틴 가는 길
거센 바람으로 오를 수 잇을런지 염려하며 간 길이다. 결국은 바람으로 오르지 못하고 일정을 내일로 미뤘지만 가면서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보았다.
최고봉은 1087m다. 우리는 1067m까지 오른다. 산위 정상의 평면은 580ha로 드넓은 테이블 카운틴 산정이다. 일반 사람이 대개 오르는데는 2시간씩 왕복 4시간 코스의 산이다. 등산로는 4시간씩 8시간 코스도 있다. 하지만 외객은 케이블카로 쉬이 오른다. 저 산이 없으면 케이프타운도 아름다운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없다. 산정 가까이, 버스가 구불구불 산을 타고 오른다. 장관의 경치가 목전에 전개된다. 항구도시도, 아름다운 해변 풍경도 비경이다.
* 케이프타운의 역사
남아공에서 가장 먼저 세운 도시다. 1652년 된 도시다. 네덜란드인이 건너와 세웠다.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에서 영국으로 인계됐다. 다이아몬드, 황금 전쟁을 2회 치렀다.
그래서일까. 누구의 손길일지라도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토록 눈부신 발전 역사를 곱게 보아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라고 믿기지 반들반들 윤기 흐르는 도시에 백인의 입김이 있었던 것이다.
* 케이프타운의 건설 붐
건설붐이 일고 있다. 아파트를 많이 짓는다. 부실공사도 많다. 2년도 안 되었는데 금이 간다. 문이 삐걱거린다. 29세의 젊은 교포 가이드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알려주었다. 단단해 보인다. 좋은 편이란다.
도시 곳곳에서 건설 현장을 본다. 외곽지역에는 아주 많다. 나라와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세계 공통인 것 같다. 국경이 없다.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발전, 또 발전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 케이프타운 시가지 투어
테이블 마운틴 산자락 아래 해변에 곱게 자라한 도시를 버스로 다니며 살표보았다. 높은 빌딩과 예술적 향기가 솟는 건물 숲이다. 왼편에는 테이블 마운틴이 절경이다. 단층 탁자는 바다가 솟아 만들어 놓은 걸작품이다.
국제회의 장소에는 여러나라의 국기들이 게양되어 있는데 국제학회장은 3년 전에 예약해야 사용 가능하다. 케이프타운을 발건한 사람의 동상도 있고, 넓은 자리로 앉은 시청도 지났다. 한국의 기업은 현대, LG, 삼성이 가장 많은데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LG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다.
6.25 때 공군을 파견한 나라다. 공군기지가 이곳에 있는데 바람 낙하를 이용해서 훈련한다. 군인은 95년 전만 해도 1년씩 의무였는데 지금은 보병제다. 군사력이 강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들으며 시가지 투어에 충실했다.
* 네덜란드 성벽
이곳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마찰이 심했던 도시다. 서로가 더 많은 영토를 지배하려는 욕심 탓이다. 원래는 네덜란드가 먼저 들어왔는데 영국이 밀어올리며 강하게 차고 들어왔다.
그때 영국군을 막으려고 세운 성벽이다. 물이 있고, 긴 성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역사의 유물로 전시해 두고 있음이다. 국회의사당은 영국에서 벽돌까지 갔다 지었고 영국 빅뱅 시계의 1/2 크기로 시계까지 만들었다. 내 조국의 아픔에 잠시 숙연해졌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또 하나의 역사 고리다.
* 노예 매매시장 건물
1658년 맨 처음으로 노예제도가 등장했다. 원래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이었다. 광산업으로 사람이 많이 필요한데, 흑인은 까만 피부라서 인되고 백인은 못 쓰고 그래서 황인을 노예로 사용했다. 지금 지나는 노란 색 건물이 노예를 매매했던 장소다. 작은 길 옆에 소슬하니 버티고 있다. 말로만 듣던 노예에 대하여 가까이에서 그 연관된 흔적을 접하니 서늘해진다.
건물 맨 끝에 잠바크리비 동상이 있다. 노예제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롤 보인다. 인권이 모두 격상되어 누구에게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쥐어준 세상에 대하여 고맙지 않은가. 비단 흑인뿐만 아니라 여성, 아이, 노인, 연약한 자에게 부여되는 값진 자유가 아닌가. 세상은 참으로 좋아지고 있다.
* 남아공 국기
오색 찬란하다. 만델라 정권 때 만들었다. 남아공 대륙과 흑인 인권에 대한 상징이다. 파랑으 ㄴ삼면이 푸른 바다, 녹색은 푸른 초원, 노랑은 풍부한 자연, 검정은 흑인, 흰색은 백인, Y자 모양은 다른 민종이 합해서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빨강은 흑인이 인권을 위해 흘린 피다.
참으로 복잡한 색상들이, 그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니 다시 깊은 가슴으로 살펴보았다. 흑인의 용기이며 위대한 승리의 깃발이다.
* 불에 탄 소나무
테이블 마운틴에 오를 때 산 기슭의 소나무들이 잔인하게 죽어 있다. 송진으로 불이 나서 그렇다. 바람과 송진이 만나 마찰할 때 큰 불이 산을 뒤덮는 것이다. 하얀 나목이 애처롭다.
그대로 두는 것도 불에 대한 교훈이다. 서 있는 것도 많고 넘어져 나뒹구는 것도 많다. 2010년까지 모두 베려고 하는데 죽은 소나무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어찌보면 아름다운 정경인데 아픔 서린 풍경이다.
* 바람과 테이블 마운틴
바람 때문에 테이블 마운틴 문은 닫혀 있었다. 우리가 내린 산 중턱은 그래도 약한 편이란다. 산 위에는 태풍이 불어 케이블카는 운행을 중단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내일 가기로 했다. 수직의 산이라서 걸어서는 못간다. 그렇게 오르기가 어려운 산이다.이곳소 바람 이름은 '키이프 닥터'다. 좋지 않은 공기를 다 몰아가서 붙여진 이름이며 그 덕분에 이곳 공기는 깨끗하다. 바람은 바람대로 위대한 작업을 수반하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끝내 테이블 마운틴은 보지 못하고, 다시 찾는 손님도 있다는데 우리는 내일 아침에 꼭 오를 수 있길 빌며 되돌아 내려왔다.
* 항구 도시의 비경
시가지를 다니며 본 경치도 아름다운데 테이블 마운틴에서 휘어지고 꺾어지며 내려오는 산중 도로에서 본 항구도시 케이프타운은 비경ㅇ디ㅏ. 뒤로는 산이 아버지처럼 우뚝 버티어 섰고, 앞으로는 어머니 같은 바다가 도시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산과 바다, 그 사잉에서 곱게 자란 도시는 세상 모르고 아름다운 숙녀로 앉아 있다.
케이프타운에 와서 이 풍경 하나만 머리에 담아 가는 것도 큰 소득이다. 최남단 인도양과 대서양을 만나고 도란도란 평화가 여물어 간다.
* 켐스베이 해변 마을
가장 아름다운 해변 마을이다. 12사도 봉우리라 불리는 테이블 마운틴 자락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바다와 산이 만난 절창이다. 한국의 성악가 조수미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했단다.
실내 주차장이 5억, 그 만큼 비싼 땅이다. 대서양 최남단 영토다. 해변길을 다려서 가고 있다. 우측으로는 해변, 좌측으로는 산봉우리가 장관이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차도 즐비하다. 봉고차가 택시로 5~6인승이다. 야자수가 남국을 노래한다. 유럽인들이 휴가용 주택을 사 놓았다. 그래서 집값이 올랐다. 해변가의 50평 주택은 5억원이다. 클린턴 지역은 50평이 30억이다. 산을 깎아서 지어서 그렇다.
이곳은 한국외 여러나라에서 사진 광고물로도 많이 나간다. 남극 고래가 9~10월에 시끼 낳으러 바다에 온다. 인공으로 만든 것이 곱기도 하지만 그 고운 건물을 바치고 있는 천혜의 자연이 비경이다.
* 케이프타운의 집값
주택 담보 융자 대출이 14.5%다. 다음달부터는 15%로 이자율을 높인다. 집값이 자꾸 뛰어서 그렇다. 테이블 마운틴이 얼마나 보이느냐에 따라서, 바다가 얼마나 보이느냐에 따라서 집값이 결정된다.
집을 지을 때는 100m 주변의 이웃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집을 짓는다. 바다 혹은 산을 가리면 안된다. 한국어 학원도 많다. 이 도시는 테이블 마운틴과 바다가 집값과 건물값을 쥐고 있다.
* 포로 수용소 감옥
해변도로를 달릴 때 바다 멀리 섬 하나가 가뭇하게 보인다. 포로수용소 감옥이다. 탈옥자 모두 사망했다. 한명도 탈옥하여 성공을 못하는 감옥이다. 나무도 다 베어버렸다. 쉬지 못하게 함이다. 먹을 것도 백인과 흑인이 차별이 있다.
나는 내 족국이 아니기에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아득하여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수상 감옥에서 잔인하게 단절되어 사는 죄인이 저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소슬하다.
* 남아공 2010년 월드컵 준비
2010년에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다. 준결승전이 케이프타운에서 치러진다. 그린 포인터 지역에 월드컵 스타디움 공사 중이다. 2007년 10월에 착공했는데 2010년까지 완공될지 의문이다.
현대에서 무상으로 지어주겠다고 했는데 이 나라에서 거절하여 미국, 유럽 기업에서 공채해서 미국이 와서 짓고 있다. 워터프론트는 두바이에서 인수하여 칠성급 호텔을 2009년까지 완공예정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월드컵을 떠올리며 이 나라의 즐거운 준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 켐스베이 12사도 봉우리
보아도 보아도 다시 나타나는 비경이다. 멜데스코프 지역이 이 봉우리를 관망하는 특별한 명소다. 메르치 증권 광고도 촬영해 갔다. 길게 혹은 뭉쳐지며 기묘한 형상을 자아낸다.
테이블 마운틴과 이어지며 12개의 바위산 봉우리다. 이곳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비경을 '12사도 봉우리'라 부른다. 명명한 이름도 절창이다. 켐스베이 해변 마을, 아까 들렀던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때는 아주 가까이서, 내려가서 조망했다. 그리고는 수시로 눈앞에 다가와 눈부신 비경을 선사한다.
* 워터프론트
해안을 따라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케이프타운을 관광항구로 키운 곳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다. 작면에 두바이에 7조 5천억원에 팔았다. 테이블 마운틴도 두바이에서 흥정한다.
워터프론트의 경치가 참으로 좋아서 관광객이 찾는다. 6개의 호텔, 9개의 학회장, 400여개의 상점이 있다. 클린턴 지역에는 마이클잭슨 별장과 여러 허리우드 연예인들의 별장이 있다. 워터프론트 마을은 항구, 건물, 테이블 마운틴 이 세가지를 보는 곳이다. 200여 세대가 거주하며 비교적 안전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화려하다. 건물도, 사람도 한가득 눈이 휘황해진다. 바다를 작은 다리로 건너고, 바닷가 항구를 바라보고 그야말로 황홀한 젊은 거리다.
* 빨간 시계탑
옛날에는 배를 조절하던 시계탑 항구 건물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저 기념탑으로 남아서 사랑받는다. 워터프론트에 들어서자 바로 만났다. 색상이 붉어서 그렇게 부른다. 높은 첨탑이 상당히 아름답다.
곁에는 CLOCK TOWER가 있다. 보석관 등, 한국의 종로 상가다. 상가까지도 클럭 타워, 시계가 들어가 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 휴식도 하고 둘러보고 나왔다.
시계탑 바로 옆에는 옛날에 수위를 조절하던 다리가 있다. 지금은 저 건너 유리 건물에서 한다. 짧지만 아름답다. 시계탑과 함께 모두 잘 어울리는 경관이다.
*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
워터프론트 해변에 있는 회색 건물이다. 총을 소지 하지 않고도 로벤섬으로 갈 때 배를 타는 평화 구역이다. 아까 본 그 포로수용소 감옥 갈 때 말이다. 아주 웅장하고 듬직해 보이는 대리석 건물이다.
건물에는 'NELSON MANDELA GATEWAY TO ROBBEN ISLAND'라고 외벽 상단에 새겨져 있다. 만델라의 평화에 대한 강한 메세지가 담긴 문구이며 말로만 듣던 흑인 대통령,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위인을 이곳에서 만나고 있다. 그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이다.
워터프론터에는 항구가 2개 있다. 구항국와 빅토리아 항구다. 배들이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 건물 앞에 많이 정박해 있다. 나는 해변 만델라 선착장 곁 가까운 곳에 앉아 이런 경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워터프론트의 공연
곳곳에서 공연한다. 넓은 광장에서는 많은 인원이 팀을 구성하여 춤과 음악을 보여주고, 좁은 길목에서는 몇 명이 모여 아프리카의 민속춤을 추며 노래부른다.
희한한 악기도 동원되고, 무질서한 손발의 놀림 같지만 질서정연하다. 그저 조건 없이 공으로 베푸는 공연이다. 한국의 이태원 혹은 대학로에서 보는 그런 무대다. 돈을 넣는 통을 앞에 두었지만 그건 관심 밖이다. 모두가 공연에 몰입하고, 모두가 열중하여 보고 있다.
* 낭만의 거리 워터프론트
정녕 이곳은 낭만이 넘치는 거리다. 1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주었는데 처음에 우리 일행은 두려운 마음에 30분만 요구했다. 가이드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는 하루 종일이라도 이곳에서 놀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이해한 것은 한참 후였다. 어느 누구도 낯설게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흩어져서 둘이 이곳 저곳 다 돌아보았다. 전혀 무섭지 않다. 우리의 외국거리에 대한 편견이었다. 상가도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고, 거리도, 사람도 모두 무한한 자유를 준다. 노르이 타는 거리, 낭만이 타는 거리, 내 돌아가면 많이도 그리울 워터프론트 거리다.
* 고려정 한식 석식
한인 교민이 운영하는 한식 식당이다. 맛이 좋아서 국무총리도 가서 먹는 곳이다. 갈비,김치, 된장국이 한국맛 그대로다. 정말로 맛있다. 도심 한적한 곳이 있다.
그래도 이곳은 교민수가 1000명으로 많은 편이다. 그래서 교민끼리 분쟁도 발생한다. 대사관은 한인끼리의 분쟁은 그냥 둔다. 이 고려정 식당도 모방하여 운영한 동포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한다. 풍성한 대접을 받은 뜨거운 동포애다.
* 케이프타운 호텔 투숙
첫날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있다. 케이프타운은 생각보다 훨씬 발달된 도시였다. 최초의 심장병 전문병원도 있다. 화장 문화가 이루어진 고운 묘지다. 자동차으이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다. 보아도 보아도, 들어도 들어도 신비로온 이국 정취다.
불빛을 가르고 호텔레 갔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이란다. 세계적인 1급수 지역으로 수도물을 그냥 먹으란다. 사위가 밤인데도 절경이다.
내일은 많이 걷는단다. 양산은 바람에 꺾이니 썬크림을 사용하란다. 낮 25도, 얇은 셔츠에 잠바 정도, 모자 준비 하란다. 케이프 포인트, 희망봉, 펭귄 몰더스비치,물개섬 그리고 아침 일찍 테이블 마운틴, 꽉 찬 내일이 일정이다. 그 모두가 행복한 여정인 것을, 이 밤 피곤함보다 부푼 기대로 설레인다.
2008년 4월 21일 월요일 남아공 케이프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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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마운틴 등정
오늘은 산이 열렸단다. 빨리 가잔다. 오늘 일정도 바쁟6시 30분이면 해가 지는데 물개섬, 펭귄해변, 케이프타운, 희망봉까지 볼 거싱 많은 날이다. 호텔에서 가까워서 금새 간다.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한국의 LG전자 광고판이 솟아 있다. 자랑스런 내 조국이 아프리카 최남단에 나부끼고 있다. 시가지를 지나 버스는 테이블 마운틴을 향해 오른다.
*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승차장 언덕에 도착했을 때 바람은 얌전하여서 케이블카가 정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산봉우리까지 오르는 벅찬 감동의 기계덩이다. 1997년 스위스에서 제작한 것이다.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대가 없다. 3개 줄만 있다. 또 360도 회전하며 오른다. 스위스 엥겔버르그에서 티틀리스 알프스 영봉을 오를 때 탔던 그 케이블카와 동일하다.
가파른 경사를 빙글빙글 돌며 산의 게곡 구석구석과 해변 도시를 모두 보여준다. 정원은 60명, 5분간 오르는데 10분 간격으로 줄줄이 다닌다. 뚝 꾾어진 절벽을 지나고, 창공을 가르고 산정에 올랐다.
* 테이블 마운틴 산정
산정을 칼로 떡 자르듯 반듯한 평지다. 바위들이 예술이다. 바다가 솟으며 만든 창작품이다. 신의 손길은 장엄했다. 수직으로 뚝뚝 끊어져 내린 절벽이 마디마다 절경이다.
평평한 산정은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바위가 도란도란 모여 살기도 하고, 사람이 왕래하는 길은 줄을 쳐서 안내하기도 한다. 테이블 같은 산을 걷고 싶은 만큼 갔다가 온다. 이곳은 1080m 산봉우리다. 소녀처럼 걷고, 뛰고 하늘 가까운 산정의 너른 품에서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 테이블 마운틴에서 본 비경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산 아래 케이프타운 시가지가 명하다. 오직 하나뿐인 저수지도 보인다. 저 멀리 포로 수용소인 로빈섬도 보인다. 산정의 가장자리레 사닞늘 찍으라고, 비경을 보라고 전망대를 곳곳에 만들어 두었다. 그곳에 서면 바다도, 항구도시도 가장 고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지라서 키 작은 나무들이 남극의 메세지로 자란다. 독특한 식물들이다. 길은 뽀얗게 열려 있더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꼭 어느 평지 뜨락을 걷는 기분이다. 이 테이블 마운틴이 있어 케이프타운에 온다는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 아프리카의 전기 사정
지난 밤 가이드네 집 정전으로 한국 뉴스를 못 보았단다. 오늘 한국 소식을 전해준다 했는데, 죄송하단다. 아프리카는 20%만 전기 생산하여 많이 부족하다. 발전소 10개 중 4개만 가동되고 6개는 고장으로 자주 정전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동하는데 2002년도에 1개가 망가졌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도 통보없이 멈출 때가 있다. 3시간 정지된 적도 있다. 오늘 우리는 평화롭게 잘 진행되어 축복받은 여정이다. 그래도 남아공에서는 짐바브웨에 전기를 수출한다. 또 전기 부족으로 남아공은 금광을 못 캐기도 한다. 케이프타운 야경이 까만 그림으로 신문에 나온 적도 있다. 보기에는 화려한 외경인데 아프리카 내부의 아픔이다.
* 케이프타운의 축복
지구를 만든 신이 대지 여신에게 땅을 넓히라고 하여 생긴 영토란다. 그래서인지 케이프타운에는 자연재해가 전혀 없다. 해일, 지진, 호우 등이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바닷가에서도 산다. 오직 바람 피해만 있을 뿐이다. 시드니와 같은 위도 33도 선상에 놓인 나라다.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은 사라ㅏㅁ이 누운 형상의 큰 산이다. 곁에눈 사자가 누운 형상의 작은 산이 있어 둘이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는 케이프타운을 보듬는다. 애련한 땅에 용기를 주는 축복의 이야기다.
* 해변의 다시마 군락
해변에 다시마와 전복이 많다. 지금은 채취 금지다. 중국인이 너무 많이 따 가서 그렇다. 중국인은 탱크와 잠수함만 빼고 다 먹을 정도라고 표현한다. 바닷가에 까만 다시마들이 군락을 이루며 산다.
다시마는 오메가3, 해구신 제조용으로 쓰인다. 분명 청정의 바다다. 나는 처음으로 보는 다시마의 삶에 신비로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바람이 만든 모래산
바람은 해변의 모래를 불러 모아 하얀 산을 만들었다. 산자락에 하얗게 보인다. 스노우보드 대신 샌드보드를 타는 사람도 있단다. 가이드도 젊은 기분에 올라가서 탄 적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바람이 세면 모래가 산을 이룰까. 얼마나 해변의 모래가 많으면 바람에 실려올까. 아름다운 낭만이다.
* 홑베이 물개섬 선착장
홑베이, Hout Bay는 통나무란 뜻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표범이 1965년 마지막 으로 출현한 곳이기도 하다. 물개섬에 가기 위해 지금 배를 타러 가는 곳의 마을 이름이 홑베이다. 해적 기지용 마을로 사용된다.
동묵 속에서 보물 찾는 사람도 있고, 영국 여왕의 배가 난파하여 다이아몬드 반쪽을 찾는 사람도 있었단다.
마을은 바다를 바라보며 평지에서 산 언덕까지 어여쁘다. 고운 집들이고, 해변에는 노점 상인들이 즐비하다. 그 사이로 물개섬을 왕래하는 배가 들고 난다.
* 물개섬 유람선
배를 타고 물개가 사는 섬까지 다녀오는 여행이다. 홑베이항에서 배를 타고 왕복 45분 소요된다. 배에 오르자 오붓한 해안을 떠나 점점 넓은 바다로 나간다. 까만 가마우지가 손님을 맞이 하듯 앉아 있다. 검은 오리다. 참으로 귀엽다.
아름다운 것은 바다만은 아니다. 해변의 항구 도시가 꽃처럼 곱다. 산을 타고 늘어선 주택들이 비경이다. 물개섬을 향하여 배는 점점 더 큰 힘으로 달리고 물개를 만난다는 기대에 가슴은 마냥 부풀어 있다.
* 물개섬 비경
물개가 보인다. 바다에서 솟아 오른 바위자락 너른 등짝에 물개들이 까맣게 앉아 있다. 아득한 바다, 생명이 머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은 사람이 쥐고 있을 뿐 물개의 숨결은 지극히 평화롭다.
이방인을 기쁘게 하려고 몰려든 걸까. 바다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납작 업드려 있기도 하고, 지느러미와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평화의 바다에서 익혀온 그들만의 습관대로 멋드러진 모습을 연출한다.
배가 그들 가까이 다가가서 멈추어도 아랑곳 없다. 사람과 하나 되는 순간이다. 배는 빙그르 한바퀴 돌아 떠나기 전 다시 멈추어 서서 물게섬 비경을 선사한다. 인공이 아니고 천연의 생태를 볼 수 있음에 뜻깊은 여정이며 잊지 못할 물개와의 만남이다.
* 이민국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이민궁이다. 1200년부토 흑인들이, 1488년부터 백인들이 들어와 산다. 다른 인종과는 살 수 없다는 흑인들이다. 흑인을 안 받는 대학도 있다. 끊이없는 마찰을 겪으며 그래도 공존한다.
흑인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백인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 가다가 충돌하여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다를 타고 들어온 유럽 백인의 힘은 아직도 엄청난 영향으로 아프리카를 채우고 있다.
* 만델라의 평화로운 정치
다양한 인종드이 사는 곳이다. 계급은 분명하여 1.백인, 2.인도인, 3,혼혈인, 4.흑인이다. 피라미드 구조 지배 정책으로 운영되는 나라다. 상단에서부터 1,2,3,4 계급이 피라미드를이룬다.
넬슨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다. 그 이전만 해도 백인 지대에서 흑인 테러가 많았다. 안으로는 테러를 일으키고, 밖으로는 주변국이 침공하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혼란한 땅을 평화롭게 정치하여 진정시킨 자가 만델라 대통령이다. 그 유명한 남아공의 흑인 대통령, TV에서나 보았던 위인을 그의 나라에서 숨결을 듣는다.
* 포도주 유래
케이프타운의 명소 네곳이 있는데 테이블 마운틴, 워터 프론트, 케이프 포인트, 그리고 콘덴샤 와인 농장이다. 그 만큼 이 나라의 포도주는 유명하다. 우리는 그 농장 주변 길을 따라 다음 여행ㅈ;로 이동하낟.
포도밭 주변에는 장미를 심는다. 장미꽃이 시들 때 '해충이 있구나'하고 병충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얼마나 세심한 배려로 포도를 기르는지 알 수 있고 지극히 인간적인 보살핌이라 느꼈다.
포도주는 백인에게 주려고 시작됐다. 나폴레옹에게 줌으로로써 포도주가 알려졌다. 그리고는 프랑스에 보급된 것이다. 햇살이 강하여 당도가 너무 높아서 알콜을 높이는데 14도다. 당도를 낮추려고 햇볕 강한 평지를 피해 비탈길에 심는다.
포도주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발효 알콜 음료인데 발효하면서 탄수화물이 알콜로 변한다. 포도주를 보는 법은 지역, 생산연도가 중요하다. 포도주에 대하여, 여행 중 많이도 마셨던 유익한 술에 대하여 좋은 지식을 얻었다.
* 프라스틱이 없는 나라
프라스틱이 없는 나라라는 말에 나는 놀랐다. 여성 장신구들이 거의 플라스틱 제품인데 그것이 없다면 무엇으로 만들까 의아했다. 타조알 목걸이란다. 구슬 목걸이란다.
아프리카는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보석도 많이 나온다. 크고 작은 보석으로 제품을 만든다. 그래서 색상이 곱다. 은은하고 천연에 가까운 빛을 발한다. 나도 홑베이항 기념품 상가에서 목걸이와 팔찌를 샀다. 그것은 목걸이나 팔찌에 두는 의미보다 프라스틱이 배제된 장신구, 지하자원으로 만든 천연제품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 뮤젠버그의 해변
펭귄이 사는 몰더스 비치에 가는 길에 잠시 본 해변이다. 약간 높은 도로에 버스를 주차하고 내려서 바라본 케이프타운과 바다의 만남은 신의 예술이다. 경계선의 아름다움, 도시와 푸른 물의 합창 모두가 지상에 깔린 평화다.
지금 바라다 보이는 곳이 인도양의 아글라스 바다다. 저 오붓한 만은 홀스베이 만이다. '거짓말 만' 이란 뜻이다. 이름의 사유는 모르겠지만 현실이 아닌 거짓말 같은 비경이어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라고 나는 순간 생각했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원경으로 감상했던 절경을 목전에서 보고 있다.
* 고래 탐지소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고래 탐지소가 있다. 뮤젠버그의 해변을 조망하는 것도 축복인데 곁에 작은 초소가 있고, 한 여인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종종 출현하는 고래를 관찰하기 위한 곳이라 하니, 나는 지금 분명 낯선 이국에 섰다는 사실을 강하게 전율한다. 난생 처음 본 장면이며, 어쩜 내 생애에서 하나의 점으로 찍힐 남극의 비경이다. 영문으로 쓴 설명문과 고래 그림이 오랜 기억을 돕고 있다. 영문으로 쓴 설명문과 고래 그림이 오랜 기억을 돕고 있다. 금방이라도 저 고운 바다에서 고래 한마를 솟구칠 것 같다.
* 해안선 기차
케이프타운은 단독 소유였다. 한사람의 도시였는데 그 단독 소유자가 1902년 사망하며 모두 정부에 기증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케이프타운이다.
산자락 아래 해안선을 따라 기차가 다닌다. 나는 산 위의 길을 따라 버스로 달리고, 기차는 케이프타운을 감싸 안은 해변의 길을 따라 달린다. 어쩌면 저리 고운 길을 내었을까. 철로도 기차도 바다와 하나도는 비경이다. 전기가 흐르는데도 전철선 도둑이 많다는 말은 한줄기 바람으로 날아간다.
* 아름다운 해변 정경
대서양 쪽에서 인도양을 보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바다만은 아니다. 해변이 그려내는 마을 풍경, 바다가 그려내는 푸른 빛 낭만, 모두 이방인을 설레게 한다. 산 아래 HOUT BAY(홑베이) 항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곱게 앉아 있다.
이곳은 1년에 1만원을 내고 낚시 허가증을 받아야 낚시를 할 수있다. 잡는 해산물 숫자도 정해져 있다. 하루에 조개 50개까지만 잡도록 허락한다. 바다는, 해변은 이런 인간의 보호에 대하여 깊은 고마움으로 초롱초롱 아름다운 정경을 선사하고 있다.
* 은퇴자 마을
아담한 마을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평화로이 전개된다. 얕으막한 지붕의 색상들이 곱다. 은퇴자 마을이라고 부른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엮고 있다.
여기서는 천천히 운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운전면허 따기에 좋다고 한다. 은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 들었다. 우리의 버스도 서행으로 지나고 있다.
* 인터넷 용량제
분리수거에 대하여는 용량제가 아니다.그런데 인터넷에 대하여는 용량제다. 1일 1기가만 사용하겠다 했으면 그 이상은 다운 받지 못한다. 쓰레기에 대하여는 넉넉한 인심인데, 그래서 살기 좋은데 인터넷에 대하여는 야박한 규제로 불편하다.
아직 인터넷이 한국만큼 발달되지도 않았고, 전기도 턱없이 부족하니 내려진 조치가 아닐까 싶다. 내 조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아프리카에서는 단단한 법으로 흐르고 있다.
* 케이프타운의 동물들
까마귀 종류의 검은 새가 많다. 날아갈 때 보면 겨드랑이가 주황색이다. 빨간 날개를 가진 새라고 부른다.
산에는 뱀도 많다. 산불이 나면 산마을의 피해는 불보다 뱀의 피해가 더 크다. 뱀이 내려와서 민가에 파고 든다. 케이프타운의 살모사는 치명독을 품고 있다.
해국 상징 모자에는 개가 그려져 있다. 군인 위로용이다. 참으로 동물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인간적인 정의 표징이다.
* 펭귄이 사는 해변
아프리카 펭귄이 많이 사는 곳이다. 펭귄을 만나러 가고 있다. 주차장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많고, 해변 마을이 아름답게 들어서 있다. 잘 발달된 건축물들이며 고운 꽃과 남국의 식물들이 먼저 이방인을 반긴다.
표를 사서 입장했다. 인공으로 내어 놓은 긴 나무다리 길을 따라 다다른 해변에서 펭귄 무리를 만났다. 작고 귀여운 펭귄가족이 모여 산다. 사람이 다다가도 미동도 없이 그들만의 움직임으로 평온하다. 귀가 빨간 것은 바닷물을 말리는 중이다.
먹이를 주거나, 알을 가져가는 것은 금지다. 한국인이 펭귄알을 훔쳐가다가 걸린 적이 있다고 말해준다. 중국인은 한달에 한번꼴로 알을 훔쳐간다는 보도가 1면 기사로 나고 있다니 동양인의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만큼 이곳은 철저히 펭귄을 보호하는 구역이다.
바위 위에 오르는 모습이 앙징스럽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니 뒤뚱뒤뚱 걸음으로 기어 오른다. 주루룩 떨어지기도 한다. 알을 품고 있는듯 모래밭에 고요히 앉아 있는 펭귄도 있다. 황색 펭귄은 11월에 알을 낳고 성인식 한다. 한마리는 멀리 사람들이 나가는 출구까지 와서 나무 아래에서 배웅한다. 동물원의 닫힌 공간에서 보던 새를 열린 공간에서 만나는 진풍경이다.
* 랍스터 중식
바다를 보며 아름다운 식사를 했다. 노르웨이 구드방겐 피요르드 바다 해변 마을에서 먹었던 랍스터다. 바닷가재, 새우, 오징어 튀김, 밥, 야채, 아이스크림, 포도주, 커피까지 맛있게 먹었다. 흑인들의 서빙이 정성스러웠다.
식당 주변은 아프리카 자연 풍경 그대로다. 정원에는 바나나 나무도 있고 바나나가 열려 있다. 신기하여 만져보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덩이만 열리는 게 아니고 줄줄이 덩이가 자라며 내려온다. 풍성하게 과일을 제공하는 바나나 나무다.
* 야생 원숭이
식당 주차장에 세워둔 차 위에 야생 원숭이가 앉아 있다. 개코 원숭이 종류로 이름이 바분 원숭이다. 가까이 가면 안된다. 먹이를 얻으려 할퀴며 달려든다는 것이다. 조금 떨어진 반경 안에서 마주 보았다. 사람들ㄹ이 몰리자 숲속 나무로 타고 오른다. 덩치 큰 원숭이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랍스터 중식과 정겨운 동식물과 마다 비경은 먼 훗날 나의 기억 창고에서 여행 중의 큰 선물로 빛나리라.
* 케이프타운 국립공원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공원이다. 1936년 정부에서 지정했다. 포유류가 60종, 식물이 1800종 서식한다. 공원 안에는 많은 동물들이 실고 있고 가끔은 사슴이 도로변까지 나온다는데 기대되는 대목이다. 대표 식물은 보이차와 악마의 발톱이다. 뿌리가 사나워서 악마의 발톱이라 부르는데 꽃은 상당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노란꽃 물결이 제주도 같다. 한라산 산정 선작지와 평원의 키 작은 나무 숲처럼, 그와 유사한 키 작은 나무 물결이 대평원이다. 서서히 케이프타운의 국립공원 산정을 향해 버스가 돌고 돌며 오른다. 케이프 포인트와 희망봉을 가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 지구의 최남단 영토를 향해 천연의 숲길을 달리고 있다.
* 슈가 트리
케이프라운 국립공원은 상당히 넓어서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다. 창밖에는 가끔씩 하얀 나무가 보인다. 더러는 물결을 이루기도 한다. 슈가 트리다. 설탕을 뿌린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록 물결 속에 하얀 물결이 장관이다. 맛은 쓰다 하는데 한웅큼 쥐어 먹으면 아프리카이 열정적인 단맛이 입안 가득할 듯하다.
* 케이프 포인트
국립공원의 산정이다. 해발 250m~290m까지 오른 지점에서 빨갛게 오롯이 선 케이프 포인트를 만났다. 희망 등대가 산정에 용감하게 서 있다.
오를 때는 플라잉 더치민이라는 기차로 산등을 타고 오르고 내려올 땐 걸어서 내려온다. 지금은 한갖 관광지로 변해버렸지만 아프리카를밝혀주는 횃불이다. 산 중턱에서 안내소 건물에 들어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역사를 배우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짧은 거리지만 경사가 급하여 숨이 찼다.
각 나라에 대한 방향 표시 기둥이 서 있고, 바다가 전개된다. 뚝 끊어진 절벽 아래 아득한 물길, 그 옛날 유럽인들이 아파리카를 찾아오던 길이리라. 그날의 항해를 떠올리며 바라보았다. 내려오는 길은 산과 바다, 그리고 희망 등대가 이루는 비경이 환상이었다. 이 순간 먼먼 아프리카 대륙의 영토에 섰다는 절감으로 한발짝 한발짝 내딛는 걸음이 소중하다.
* 희망봉
이미 들어온 이름이다. 워낙 먼 곳에 있어 상상으로만 기억하던 곳에 내가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케이프타운 국립공원 안에 있다. 케이프 포인트에서 하산하며 지구의 최남단 희망봉을 조망한다. 눈과 발을 묶는 비경이다.
바다를 향해 내민 애련한 땅, 그 주위를 바다가 감싸며 하얀 파도의 띠로 희망을 노래한다. 코발트 빛, 청빛, 하늘 빛, 흰빛으로 겹겹이 비경을 자아낸다. 케이프 포인트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봉우리지만 어느 동물의 머리처럼 바다를 향하여 포효하듯 목을 내밀고 있다. 저기가 바로 희망봉이다.
희망봉, 그 이름에 대하여는 원래 디아스가 '폭풍의 곶'으로 지었는데 후에 바스코다가마가 '희망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 해석하면 '희망곶'이란다. 디아스가 더 중요한 인물이며 이름도 맞게 지었다는 것이다. 디아스의 검은 색 석탑도 국립공원 안에 있다. 가이드는 계속 희망곶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름이든 망망대해의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 대서양과 인도양의 두 바다
바다가 하나로 둥글게 이어진 것 같지만 양편으로 두 바다가 전개된다. 오른쪽은 방글라스 즉 대서양이고, 왼쪽은 아글라스 즉 인도양이다. 나를 지도상에서 아프리카 최남단의 지점에 놓고 바다를 향해 보면 답은 쉽게 얻어진다.
그 경계선은 케이프 포인트에서 바라보였고 어떤 이는 인도양이 더 탁하다고, 그렇게 대서양과 인도양을 구분 짓는다는데 그래서일까. 내 눈에도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희망봉 앞바다에서 경계선을 이루며 두 바다가 합류하고 있다. 지구 대륙의 끝점에 이르었기에 육안으로 확인되는 기막힌 경관이다.
* 지구 최남서단에 서다
희망봉은 지구 최남서단이다. 나는 지금 그 땅에 서 있다. 꿈속을 걷듯 걸어 올랐다. 정녕 현실인데 믿어지지 않는 행운이다. 희망봉을 본 것도, 그 해변에 선 것도 감격인데 자유시간을 주었을 때 나의 값진 땀으로 희망봉 정상에 오른 것은 생애 최고의 감동이다.
그리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힘들었다. 돌고 돌며 바위를 잡고, 줄을 잡고 올랐다. 갈림길에서 희망봉 정상과 희망봉 조망소가 있는데 나는 희망봉 정상을 택하여 높은 지점 끝에 오른 것이다.
지구 최남서단에 선 것이다. 이곳에 오른 사람들이 돌을 쌓아 크고 작은 석탑이 늘어서 있다. 큰 바위도 있고 희망봉은 돌과 바위 꽃이다. 나와 남편도 우리 가족, 우리 부부의 탑을 쌓았다. 바다와 바위만이 생존하는 곳이다. 소슬한 영토지만 저 멀리 대해를 떠돌던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었던 곳이다. 바다와 대륙이 만난 희망의 땅에 아름다운 삶으로 내가 서 있다.
* 국립공원의 야생 동물
바다와 육지 모두 낚시조차 금지하는 나라다. 바다에는 다시미가 무성하게 자라고 산에는 야생동물이 활기치고 산다. 특히 케이프타운 국립공원인 이곳에서는 버스를 타고 지나며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야생 사슴을 들어올 때 보았는데, 나갈 때는 야생 타조, 야생 토끼를 보았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 차가 지나도 동요하지 않는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많다. 덩치 큰 타조들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찾아온 이방인에게 큰 선물이다. 참으로 고운 정경이다.
사암돌이라서 바위와 돌이 노랗다. 산중에는 초소가 있다. 동물 보호용 집이다. 한마리를 잡으면 한화로 천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엄격한 동물 보호법으로 국립공원을 지키고 있다. 드넓은 땅을 지정하여 식물과 동물, 바다와 대륙을 보호하고 있다.
* 게이의 나라 남아공
남아공은 게이의 나라라고 한다. 흑인의 성문제가 지나친 자유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유럽여행 중 들었던 이야기와 접목하니 쉽게 이해됐다.
게이들의 부부는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산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보았던 무지개 깃발의 집을 스쳐 지나가며 보았을 때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역시 그것도 유럽과 유사하다. 남아공은 특히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많이 받고 또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어 동일한 문화인 것 같다.
* 값싼 대학 교육비
기숙사비를 포함하여 1년 대학교육비가 150만원이다. 놀랄만큼 싼 교육비다. 가이드 샘이 유학 온 1999년 무렵에는 역시 기숙사비를 포함한 1년 교육비가 80만원~100만원이었단다. 도저히 대학교육비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1학기 시작은 2월부터다. 여러나라를 다니며 듣는 교육제도나 교육비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큰 소득이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육비는 비싼 편인데도 대학교육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남아공의 다음 대통령 후보
남아공의 다음 대통령 후보는 만델라 제자인 주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자이고 현재 90%의 당선을 예상하고 있다. 주마는 천당의 시계에 비유하여 회자되고 있는데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해서다. 신부님이 12시에 정지되어 있다면 주마는 선풍기 시계라고, 그래서 계속 거짓말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공약한 첫째는 광산 국유화다. 둘째는 은행도 국유화해서 해외 자본ㅇ르 모두 내보낸다는 것이다. 셋째는 사형제도 부활이다. 그 동안은 살인자도 2년이면 해방시켰다. 감옥이 없어서, 사형제도가 없어서 그랬다. 친구 딸을 범한 자, 주마의 공약을 대부분 사람들은 안 믿는다.
교포 가이드는 말한다. 남아공에 투자 하려거든 대선이 끝나는 2010년 이후에 결정하라는 것이다. 현재는 랜드의 화폐 가치가 떨어져 불안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지도자와 국가의 관계는 깊으며 훌륭한 지도자를, 미흡한 지도자를 백성들은 알고 있음을 보는 대목이다.
* 무지개 도시 케이프타운
해지는 바다가 곱다. 케이프타운 국립공원에 있는 케이프 포인트와 희망봉을 본 후 돌아오는 길의 정경은 참으로 곱다. 드넓은 국립공원의 숲길을 달리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아름다운데 파란 하늘까지, 그런데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다. 해의 곁에 아롱지는 무지개가 예술이다.
이곳은 지구의 최만서단에 위치한 땅이다. 바다를 다 보듬고 있으니 수증기가 증발하여 하늘을 타고 으로다가 태양을 만나면 고운 무지개가 생기는 것이다. 하늘에 무지개가 자주 떠서 케이프타운을 무지개 도시라 부른다니 신은 애련한 땅에게 또 하나의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 해변의 고운 집들
그림처럼 집을 짓고 사는 도시다. 2층의 아파트도 보인다. 단층 주택도 저층 아파트도 해변의 집들은 아름답다. 이곳 사람들은 산이나,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산다.
우리가 머문 호텔도 테이블 마운틴, 바로 그 산 아래였다. 룸의 창을 열면 거대한 테이블 마운틴이 보이고, 현관 밖으로 나오면 시가지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케이프타운은 산과 바다의 축복을 받은 도시다.
* 케이프타운에 대한 나의 느낌
사람이 만든 도시일까. 신이 만든 도시일까. 아무리 보아도 인간의 눈으로 판명하기는 어려울만큼 고운 도시다. 나의 가슴으로는 그렇게 느껴진다.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나는 수채화 명화 속 주인공이다. 스 안에 내가 있고, 나를 감싼 자연과 고운 건물들이 명화의 화포가 되어준다.
테이블 마운틴 아래 모여 사는 지구 최남단의 도시, 바다만 바라보는 수정 도시, 맑다가 푸르다가 꿈에 젖은 도시다.
* 월드컵으로 알게 된 코리아
월드컵 2002년 한국선수 출전 당시, 대한민국에서 치러진 그 세계축전에서 등장한 악마의 응원단에서 KOREA가 알려졌다. 6.25 참전 혈맹국이어도 코리아를 잘 몰랐는데 말이다.
그때 유니폼을 대사관에서 나누어 주었는데 인기가 최고였단다. 붉은 막마, 한국에서도 모두 사지 않았던가. 스포츠는 위대함을 새삼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요번에 남아공은 월드컵 예선에서 떨어졌다. 자국에서 치러질 월드컵인데 그래서 아쉽다는 것이다. 한국의 축구가 조국을 알렸으니 더욱 자랑스럽다.
* 초대 이민자들의 애환
최고 성공자는 시업자들이다. 요하네스버그의 차 사업은 그 으뜸이다. 과속 카메라를 설비하고 찍힌 벌금의 1/2만 나라에 내면 된다. 대우직원이 그 사업을 하고 있다.
다음은 사진관 운영이다. 약간 수정해서 인화해 주면 사진이 잘 나왔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사업이 번창한다.
반면에 실패자도 많다. 1980년부터 이민 시작으로 이민 역사는 짧은 편인데 동포끼리 사기 치기도 하고, 생활고로 비자 사기사건도 나는 등 애환이 많다. 초기에는 선교자들이 이민 왔는데 지금은 주로 사업가드이 이민 와서 성공하여 안정되게 사는 편이다.
* 남아공의 국조 기니피그
케이프 포인트와 희망봉을 보고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올 때 도심 부근의 공원에서 특이한 새를 보았다. 저녁 무렵인데 덩치 큰 새가 걸어 다닌다. 남아공의 국조 피그니, 날지 못하는 새다.
저 멀리 테이블 마운틴은 사람이 누운 형상으로 평화롭고 국조 기니피그는 날개를 접은 채 평화로이 풀숲을 거닌다. 왜 날지 못하는 새를 국조로 정했을까. 대륙의 끝점에서 더 이상 날아갈 필요성이 없음일까. 궁금증이 나의 뇌리를 흔들었다. 모두가 애련하다.
* 남아공의 복지
통합 GNP가 6천불이다.백인들은 2만~3만불이다. 헬기 타고 골프 치러 다니는 부자 백인들도 있고, 공항 근처의 판자집 흑인도 있다. 분명 흑인과 백인의 삶은 큰 차이가 있다.
국가 세금으로 월급의 3%를 납세한다. 민원은 엉망이다. 기다리다 그냥 돌아갈 때도 많다. 복지 의료보험은 없다. 개인 의료보험을 들어야 한다. 국립병원은 출산비가 30만원이다. 15만~20만원은 납부해야 한다. 출산실 칸칸이 있는데 한칸에 순서대로 들어가 출산한다. 사립병원은 300만원으로 시설이 좋다.
은퇴자들에게는 약간의 지원금이 있다.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4명 공무원의 식사비가 1천마원 정도다. 돈을 밝혀서 그들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복지가 엉망이란 생각이 든다. 들으면서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했다.
* 남아공의 교육제도
초등 6년 중등 2년을 합하여 8학년 공부하고 중3부터 하이스쿨까지는 4년이다. 오후 2시에 하교하여 교수로부터 악기교습이 가능한데 1시간당 5천원으로 싸다.
대학은 수능 후 자원봉사, 내신성적으로 대입이 결정되는데 의학과는 4+2년 교육이고, 법학과는 6년, 전문기술직은 3년이다. 석사는 1년만 더 공부하면 된다. 교육제도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 심각한 에이즈 국가
이 나라는 에이즈 국가다. 군인들을 통계로 하는데 상당히 심각하다. 의무적으로 에이즈 뱃지를 달고 다녀야 한다. 붉은 열매 모양이다. 에이즈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담배가 사람에게 해롭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생산계급에서 하급직원 월급 안 주고 포도주를 준다. 그것이 성적 문란의 시작이다. 학교에서 포르노 비디오 틀어 주어서 그렇기도 하다. 공부한 자들은 모두 영국이나 캐나다로 나간다. 결국 무지한 자들의 잘못된 성행위로 불러온 위험 사태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조차 모르고 있음에 더욱 안타깝다.
거리의 걸인 아이들은 돈 주면 나쁜 짓 한다. 먹을 것을 주었더니 던지더란다. 이 나라 아이들은 영악하다는 것이다. 아이들까지 멍들은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런 대목이다.
* 다이아몬드 보석관 견학
먹는 것으로는 보이스차가 남아공의 명품이고 보석으로는 다이아몬드가 명품이다. 그 다이아몬드 보석관에 견학하여 다이아몬드 제작과정을 공부했다. 여러 기구들이 놓여 있다.
동판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입혀서 자른 후 긴 막대기에 꿰어 간다. 갈을 때 그 각도에 따라서 보석이 결정된다. 71면까지 조각이 가능한데 하트 모양으로 최고급이다.
많은 보석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시자 동상도 세워져 아프리카를 실감나게 한다. 축복받은 나라다. 다이아몬드, 금 등 많은 보석이 나는 나라다. 보석관에서는 생수도 한병씩 제공하여 목을 축였다. 그들의 나라에 대하여 홍보하는 곳이다. 아무튼 아프리카의 화려한 보석들은 어느 곳에서나 만나지 못하는 웅장한 규모다.
* 탁송 가방 쌀 때 주의사항
이제 석식하면 모든 여행 일정이 끝난다. 잘 마무리된 여행이다. 오늘 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방을 싸야 한다. 짐은 인천 공항까지 간다.그런데 탁송가방 쌀 때는 몇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이 나라에서는 돈처럼 보이는 편지 같은 것은 탁송가방에 넣지 말아야 한다. 돈인줄 알고 공항직원의 손에 가방이 열린다는 것이다. 카메라, 핸드폰도 넣으면 안된다. 10명 중 한명 꼴로 짐 뜯기거나 분실 당하고 있다.
반드시 짐 텍을 확인해야 한다. 인찬까지로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하고 짐 텍은 인천까지 꼭 보관해야 한다. 와인은 1인당 2병까지 탁송 가능하다. 들고 들어가는 것은 금지다. 제일 안전한 것은 홍콩공항에서 떠날 때 사는 것이다.
내일은 8시 모님콜, 9시 50분 출발이다. 케이프타운에서 12시 40분 비행기다. 요하네스버그까지는 2시간 여유, 홍콩에서는 1시간 여유로 촉박하다. 홍콩까지는 13시간, 홍콩에서 인천까지는 4시간 소요된다. 비행기 타는 시간도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창공과의 대면, 우주 속의 나를 조명하는 시간 여행이다.
석식은 중국 식당에서 했다. 깔끔하고 맛있다. 수박까지 후식으로 주어 잘 먹었다. 호텔로 돌아와 그 동안 모아둔 짐 하나 하나를 다시 점검하며, 특히 돈으로 의심될 종이류는 모두 들고 가는 손가방으로 옮겼다. 늦은 밤까지 힘들었지만 이것도 아프리카 여행의 큰 추억이리라.
* 남아공의 노동법
이 나라의 노동법은 강하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호텔에서 3명 잘랐는데 CCTV 설치했다 하여 영업정지 당해서다. 우리에게 크게 해당되는 것은 없지만 비행기 탈 때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비행기 좌석도 티켓팅할 때 원하는대로 주지 않는다. 시스템상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들 마음대로 주는 것 같다. 홍콩에서 서울 갈 때는 윈도우시트(창쪽) 혹은 아일시트(복도쪽) 원하는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이 나라의 법에 대하여 알게된 유익항 체험이다.
* 아프리카의 여행 마무리
아프리카의 교포 가이드 샘, 29세 젊은 청년은 떠나 갔다. 아쉬운 작별이다. 이제 한국에서 동행한 최준영 실장이 여행 마무리로 몇 가지 알려준다.
인천공항에 내리면 도착한 곳에서 바로 아시아나 항공에서 마일리지를 넣고 가란다. 비행기표 사본과 SA 항공 보딩 패스 조각을 합하여 제출하면 되는데 25000마일~28000마일쯤 될 거란다.
그룹 투어 비행기는 가격이 싼 뒷좌석 배정이어서 마일리지도 약간 다운 된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실제로는 상당히 높은 마일리지인데 그 정도만 적용받는다. 사실 2만 5천 마일도 큰 선물이다. 가족 합산으로 9천 마일이면 제주도 1인 왕복 항공권이 나오는데 적어도 2명이 무임 왕복 제주도 여행 가능하지 않은가.
긴 여정이었다. 아프리카도, 남미도 어려운 여행이었다. 긴 날짜와 큰 액수의 여행비,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강한 체력과 건강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나와 남편은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것들 중에서도 그래도 크게 제약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가면 내 조국에 보고 들은대로 글을 써서 알리는 것도 나의 몫이다. 나는 시인이다. 남편은 수필가다. 우리는문인의 사명에 충실하여 글로 그 축복에 대하여 보답할 것이다.
2008년 4월 22일 화요일 아프리카 출발
케이프타운 호텔 출발, 케이프타운 공항 이륙, 눈물고운 땅 아프리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행 환승, 기내 모니터
* 케이프타운 호텔 출발
오전 일찍부터 서둘렀다. 머리를 감고, 테이블 서랍에 있는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고 1층 식당에서 뷔페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룸에서도 테이블 마운틴이 보이더니 호텔 문을 나서자 정면으로 테이블 마운틴이 보인다.
멀리 케이프타운 시가지와 항구, LG 광고판이 가장 높은 건물에 있고, 야자수와 열대 식물들 모두 아름답다. 아쉬움으로 한동안 시선을 고정시켜 두루두루 바라보았다.
오전 10시에 버스에 올랐다. 이제 집으로 간다. 12시 40분 케잎타운 발 SA 항공으로 출발한다. 이틀 동안 잘 보듬어주었던 호텔에게 뜨거운 손으로 기약없는 이별을 고했다.
* 케이프타운 공항 이륙
이 비행기는 요하네스버그까지 간다. 요하네스버그에서 2시간의 여유가 있다. 다시 홍콩행으로 환승하여 인천에 간다. 흑인 직원은 여전히 수속업무가 늦다. 한사람의 티켓팅 시간이 10분이 넘는다.
이 공항은 국내선이라서 게이트가 한곳에 길게 모여 있고, 단층에서 탑승하므로 공항문 밖으로 나가 걸어서 비행기에 올랐다. 화창하고, 청빛 하늘, 아름다운 날씨의 배웅이다. 남편은 27E, 나는 27F 창가 좌석이다.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2시간 소요다.
* 눈물고운 땅 아프리카
비행기가 이륙하자 곧바로 바다로 진입한다. 뒤로는 테이블 마운틴이,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전개된다. 다음으로는 우람한 산맥이 줄을 잇는다. 나무가 없는 황막한 산맥이다.
그리고는 그 산맥을 넘어가자 평평한 산과 평원이 이어진다. 올 때도 보았지만 갈 떄도 쾌청하여 아프리카의 땅을 바라보며 간다. 금광도 보이고, 동그란 경작지도 보인다. 광활하다가, 쓸쓸하다가, 산도, 바다도, 평원도 모두 눈물고운 땅이다.
내가 이제 이 길을 오겠는가. 시간과 건강이 허락한다해도 다른 대륙으로 떠나겠지. 모두가 소중하고,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다.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행 환승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 40분에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같은 남아공 하늘을 날아왔다. 이곳에서 홍콩행으로 환승한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은 국제선 공항이라서 광활하다. 상공에서 보이는 요하네스버그의 시가지도 끝없는 평원에 넓게 자리하고, 활주로도 규모가 대단히 크다. 아프리카 대부분 항로가 이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거쳐서 간다.
비행기는 현지시간 16:55분 정시에 이륙했다. !6:10분경 보딩하여 탑승했다. 벌써 석양이 드리운다. 동쪽에서부터 밀려오는 어둠이다. 오후 5시 30분인데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하다.
이 비행기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동편을 향해 어둠을 만나며 간다. 그래서 밤은 더욱 빨리 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용감하게 날아가고 있다.
* 기내 모니터
남아공 비행기 SZ 항공은 모니터가 바로 내 앞 의자에 붙어 있다. 그래서 내가 조절해서 본다. 항로도 볼 수 있고, 영화, 코미디, 음악 등 다양하다.
항로를 먼저 보니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와 어둠이 아프리카 쪽으로 짙게 오는 모습이 뜬다. 비핵기는 점점 인도양으로 접어든다. 비행 시간이 13시간 20분이다. 그야말로 하루의 1/2을 날아가는 것이다. 아지고 남은 시간이 12시간이다. 참으로 긴 여정이다.
석식 후에는 영화를 보았다. 'Bella', 91분 짜리 Romance다. Bella is a true love story about how oneday in New York city changed three people forever. 자막에 뜨는 서문이다. 벨라는 뉴욕시에서 하루 동안에 세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바꾸어 준다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다.
내가 주인공들이 영어로 하는 말들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한 여인과 우수에 젖은 긴 머리, 긴 수염의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다. 육체적인 사랑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돌보며 지켜주며, 그녀의 아픔까지 눈물까지 함께 한다. 무엇이 아팠는지 맨끝에서야 밝혀졌다. 그녀의 잃어버린 딸을 그 남자가 찾아주었다. 그래서 셋이 행복하게 해변을 걷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언어는 잘 몰라도 장면마다 낭만이다. 흐르는 음악은 더욱 낭만이다. 긴 시간을 한도막 잘라 시네마에 젖은 나의 시간은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이제 자야 한다. 홍콩까지는 9시간 남았다. 나는 조수미의 천상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인, 그녀의 음악이 모니터에 떠 있다. 영화도 아름답고, 음악도 아름답고, SA 항공의 모니터는 장시간의 비행시간을 영리하게 소모시킨다.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홍콩공항, 인천공항 도착
홍콩에서 인천행 환승, 홍콩공항 건물 외경, 홍콩공항 이륙, 인천공항 도착
* 홍콩에서 인천행 환승
밤을 날아서 낮으로 넘어왔다. 지난 밤 늦도록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집에 간다는 설레임에 잠이 오지 않아 남편과 두 아들에 대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가 잠시 눈도 붙였다.
해가 뜨고 기내 조식이 나오고, 하루가 넘어가고, 이제 홍콩에 거의 다다랐다. 홍콩 상공은 안개가 자욱하다. 바다 바로 곁에 공항이 있어서일까. SA항공은 얌전히 내려앉고 홍콩공항에서 인천행 OZ 아시아나 722편 항공으로 환승한다. 홍콩공항은 오랜 연륜인듯 어둑하다. 시간이 급하여 분주히 게이트로 옮겼다.
낮 12시 10분에 도착하여 13시 15분 비행기, 16번 GATE다. 우리 부부는 31A, 31B 창가 좌석이다. 원래는 내가 32G인데 우리 일행이어서 바꾸어 앉았다. 비행기 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시아인이 많다. 여기는 아시아, 내 조국이 속한 대륙이다.
* 홍콩 공항 건물 외경
이제 이륙 준비를 마치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간다. 나는 어느 공항이든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하나로 여긴다. 그런데 홍콩 공항은 아주 특이하다.
공항 건물이 둥글게 지어져 있다. 굽어진 건물이 땅을 감싸안고 있다. 아주 긴 건물이 직선으로 서 있지 않고 곡선으로 서 있다. 영국이 지배한 땅이었으니 선진 양식일까. 나는 신기하여서 큰 눈으로 한동안 살펴보았다.
* 홍콩 공항 이륙
활주로에서 대기하던 비행기는 힘차게 차오른다. 홍콩을 낮에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비행기가 급선회하여 구름층을 뚫고 올라서 지산을 본 시간은 잠시지만 홍콩은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분명 달랐다.
바다의 만에 즐비하게 선 고층건물이 문화의 발달을 알려준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화려한 도시다. 지금은 중국에게 반환하여 중국인과 떠나지 않은 유럽인이 공존하는 도시다. 산, 바다를 끼고 자리한 아름다운 영토다.
구름층을 뚫고 오르자 창공은 우주 순수의 청빛이다. 바다 위, 하얀 구름과 함께 그려내는 명화다. 현재 한국시간 오후 4시다. 오후 5시 30분 인천 도착 예정이다. 3시간 소요, 이제 1시간 30분 후면 도착한다.
아시아나 항공은 제주도를 지나 한반도의 땅 위를 진입한다. 나는 이제 먼 여정을 접고 내 조국의 품에 안긴다.
* 인천 공항 도착
아프리카 남아공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이렇게 5개국을 12박 14일 일정으로 무사히 마치고돌아간다. 가장 궁금한 것은 두 아들이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 형제들이다.
긴 여행은 그 만큼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준다. 새로운땅에서 많은 것을 얻었으니 나는 시인으로서의 사명과 또한 아내, 어미로서의 본분에 더욱 충실하 것이다. 내 생애 아름다운 삶의 한도막이었다.
비행기는 정시에 도착했다. 인천 국제공항은 광활하다. 김포공항에서 국제선만 이곳으로 옮겨왔다. 영종도 섬에 바다 한도막을 육지로 메워 지은 공항이다. 지을 당시에는 여러가지 말이 난무했는데 현재는 세계 2, 3위에 자랑스럽게 오르는 아주 훌륭한 공항이다. 외경, 내경, 친절도 등이 호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두 아들에게 도착 사실을 알리고 아시아나 항공 안내소로 가서 마일리지를 적립했다. OZ 아시아나 항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아공 SA항공도 아시아나와 제휴사로 함께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적립된다. 2만 5천 마일이 넘을거라 하니 국내선 제주도 항공 왕복권을 두 사람분 하고도 넘는 액수다. 그 만큼 내가 투자한 여행비지만 돈과 바꿀 수 없는 엄청남 세계의 산 지식을 안고 왔으니 결코 아깝지 않다.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큰 효율을 얻는 것이 여행이라 했다. 나는 그 요육 법칙에 따라 자녀도 그렇게 길렀고, 나의 삶도 그렇게 산다. 비행기가 그리울 때면, 또 다른 대륙이 그리울 때면 문학에 대한 향연으로 또 여행이 시작된다. 고국의 품은 여전히 포근하다. 이제 내가 담아온 소중한 자료들을 토대로 문학기행 자취록과 시를 써서 조국에 보담하리라. 방대한 작업이지만 기쁨으로, 행복으로 나는 충문히 할 수 있다. <끝>
2008년 7월 26일 토요일 오전 6시 40분에 마치다. 松花 김윤자
첫댓글 멋진 원고를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