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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지의 전설
김 성 한
새벽에 눈을 뜬 태양욱(太良煜)은 좀체로 잠이 들지 않았다.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였다.
눈 나리는 저녁이었다. 후치령(厚峙嶺) 마투턱에 대기하고 있던 팔십여 명의 의병들은 화승총에 알을 재워 가지고 각각으로 다가오는 왜병들 앞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대위가 지휘하는 일개 중대도 좁은 길 수목을 뚫고 연달아 몰려오는 품이 구름 같은 대적으로 보인다. 청국과 러시아 두 나라를 물리치고, 섬에서 대륙으로 껑충 뛰어 휘몰아지는 폭풍같이 일본의 전세력이 한데 뭉쳐서 여기 이 산길을 휩쓸어오는 것만 같다.
양욱은 총을 두 손으로 잡은 채 한바탕 부르르 떨었다. 가슴이 뙨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키를 넘게 쌓인 눈성을 파고 들어앉은 동지들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앞을 응시하고 있다. 살기가 등등한 눈초리들이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언 땅을 구르며 다가오는 적의 발자욱 소리가 또박또박 들려온다. 삶과 죽음이 교차해서 또박또박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적은 일렬 종대로 말없이 행진읕 계속한다. 무인지경을 가듯이 첨병(尖兵)도 없다. 반달 모양으로 포진한 아군의 탄막 속에 알맞게 들어왔다.
꽝!
일렬횡대 진형의 중앙에서 총소리가 터지자 때를 놓치지 않고 팔십여 개의 총구는 불을 토하였다.
이어서 순간적인 침묵이 ㅎᅟᅳᆯ렀다. 화승총이 다음 발사를 준비하고 불의에 습격을 받은 적이 쓰러져 목숨을 거두자 남은 자들이 엎드리는 순간의 진공(眞소)이었다. 침묵은 응결하여 피아간의 공간에 버티고 서 있었다.
양욱도 첫 방을 쏘고 다음 빙을 재우느라고 서둘렀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이 떨린다. 벌써 몇 해를 두고 포수 노릇을 하였으니 이 손으로 잡은 짐승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직접 사람을 겨누고 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기에 구멍이 뚫어질 듯이 겨누던 목표를 향해서 막상 총알이 나갈 때에는 눈이 저절로 감겨지고 머리가 아뜩했다. 쏜 후에도 맞고 안 맞은 것을 볼 생각조차 못하고 다음 방을 총구에다 넣었다.
‘핑 ’하고 적탄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처음의 혼돈에서 정신을 차린 적도 이제 태세를 갖추고 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화승총이 아니었다. 연방 막 쏘아붙인다. 양욱은 구렁 속에 머리를 푹 파묻었다. 총알이 나갈 때를 기다렸다. 쏘는 총이 아니라 기다리는 총이다. 적탄은 여전히 퍼붓는다. 초조하기 그지없다.
한 방 터졌다. 이번에도 맞아서 옆으로 굴러떨어지는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승리의 쾌감이다. 화끈 달았던 머리가 식으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별안간 쏴―하는 소리가 나면서 귀가 트인다. 총소리가 멎었다.
양욱은 고개를 조심스레 들어 앞을 내다보았다. 이미 적의 대열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여기저기 흩어진 적의 시체뿐이다. 시체라기보다 눈투성이가 된 검은 두루마리들이다. 주의에 주의를 집중해서 겨누고 있던 팔심여 자루의 총구가 내뿜는 첫번 일제사격에 태반이 쓰러져 버린 모양이다. 옆에 엎드린 친구의 화승총에서 꽝 하고 소리가 난다. 저쪽 소나무에 맞았다. 솜눈이 여전히 쏟아져서 이 긴박한 침묵을 덮는다. 양욱은 온몸에 소름이 쪽 끼쳤다.
앞만 뚫어지게 보고 있던 그의 눈에는 움직이는 시체들이 굴러들어왔다. 사지를 뻗은 시체의 사이사이를 뚫고 새하얀 시체들이 굼벵이같이 꾸물거린다. 아니 자벌레같이 조금씩 다가온다.
“쏘아라.”
대장 차도선(車道善)의 호령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적장의 칼이 번득이면서 고함소리와 함께 일제히 일어선 적병들은 쏜살같이 총검을 겨누고 달려든다. 심명 내외밖에 안 된다. 그리나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그 기세에 양욱은 기가 질렸다. 한 놈은 바로 양욱을 향하여 줄달음쳐 온다. 힘껏 총을 잠은 두 손이 부드드 떨면서 총알이 꽝 하고 나갔다. 쏟아지는 눈을 헤지고 달려오던 적은 총을 팽개치다시피 떨어뜨리면서 뒤로 쓰러진다. 사지가 버둥거리는 듯하다가 축 늘어지고 만다.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다. 가슴에서는 엉컸던 것이 확 풀려서 온몸에 퍼진다. 구멍 속에서 까딱 않고 냅다 쏜 우군의 십자포화에 완전 포위된 적은 여기저기서 쓰러진다. 무에라고 중얼거리면서 신음하는 놈도 있다. 대장이 위치한 중앙부를 향해서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던 두 놈마저 동시에 딱 나가떨어졌다. 이미 적은 없다. 전멸한 것이다. 저쪽에서 소나무 뿌리를 걷어안고 울부짖는 적병이 있다.
양욱은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일순 천까지도 돌멩이같이 꼼짝 않고 앞만 내다보던 전우들도 구멍 속에서 제각기 옆을 살피고 뒤를 보는 자도 있다. 말없이 들먹거린다. 그는 옆에서 자기를 물끄러미 주시하고 있는 김 포수의 시선과 마주쳤다. 머리에 돌렸던 흰 천이 떨어져서 상투를 중심으로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정신 나간 사람 모양으로 눈 하나 깜박 않는다. 무어라고 말을 건네려고 하였으나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다. 웃었다. 아니 웃어 보이려고 했다. 실지로는 웃는 표정이 나타난 것 같지 않다. 김 포수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뵤고만 있다. 포수 다음 구멍에서 우뚝 일어서는 흰 그림자가 보인다. 두 팔을 마음껏 활짝 펴올린다.
“만세! …… 적은 몰샅이다 ! ”
형 언할 수 없는 감격을 간직한 외침 이다. 모두들 일어서느라고 수성댄다. 양욱도 일어서려고 하였다. 꿇고 있던 무릎은 그대로 딱딱해져서 얼른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종아리를 문지르면서 엉거주춤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꽝하고 총소리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돌렸다. 만세 부르던 친구가 앞으로 쓰러져서 뒹굴고 불과 십여 척 앞에 시체로 엎드려 있던 적병 한 놈이 부리나케 산길을 내려 달리다가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순간이었다.
젊은 양욱은 분노로 전신이 화끈 달았다. 전쟁이란 이렇게 간단하고 승리가 이같이 쉽게 얻어지는 것인 줄은 몰랐다. 일본놈은 미욱하기 짝이 없으니 그 따위는 문제없다. 이들한테 넘어간 아라사 병졸들은 정말 병신들이라고까지 조금전 만세소리와 함께 머리를 스쳐 지나가던 생각은 여기서 딱 멈추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역류하는 것만 같다. 그는 총대를 거머쥐고 적병이 도망친 길을 성난 침승처럼 내달았다.
길가에 뻗은 소나무를 한 손으로 잡아 핑 돌려쳤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홱 머리만 돌려 보았다. 전우들이 따라오는 모양이다. 다시 정면으로 힘차게 내닫는 순간 경사진 길에 미끄러져서 모로 넘어졌다. 뒤쫓아온 전우들이 숨을 허덕이면서 덮지듯이 붙잡아 일으킨다.
“너 미첬구나!”
양욱은 벌떡 일어났다.
대장 차도선과 부하 두 사람이었다. 차도선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대판 승전이다. 어서 돌아가자.”
“그놈을 잡아 죽여야지. 박 포수를 쏜 놈을!”
양욱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허허 너 싸움은 오늘이 처음이지? 어서 돌아가자.”
“그런 비겁한 놈을 그냥 둬?”
“비겁? 허허…… 원래 전쟁이라는 건 비겁한 법이다. 그건 그렇구 우리가 지금 적의 일동일정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지 이런 거동부터 천만부당한 짓이다. 왜병들은 우리를 얕보고 파수도 앞세우지 않고 부대가 불쑥 나오다가 이렇게 참패를 당했지마는 이건 예외 중에도 예외다. 우리한테 몰살당한 것은 적의 전위댄데 본대는 어젯밤에 북청을 떠났다고 하니 지금쯤은 사십리 밖 삼기(三崎)까지는 왔을 게다. 자 돌아가자. 모두들 피곤할 텐데 좀 쉬어야지.”
대장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세 사람도 자동적으로 뒤를 따랐다.
어느덧 퍼붓던 눈은 그치고 음산한 공기가 육중하게 서리고 있다.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이 태산준령의 오솔길에는 움직이는 것은 서벅서벅 눈을 밟고 가는 세 사람뿐이었다.
선두에 서서 총대를 메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대장의 거인 같은 모습은 믿음직하다. 퉁퉁한 솜옷은 진흙과 때와 눈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양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퍽 먼 길을 뛰어왔다고 느꼈다. 아직도 얼마 전에 목숨과 목숨이 겨누던 그 초조한 심경, 승리의 쾌감, 그리고 전우의 죽음에서 폭발한 분노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여기서 담배나 한 대 붙일까.”
대장이 눈에 덮인 바위를 손으로 쓸고 앉는 바람에 세 사람도 따라 눈을 쓸고 앉았다.
대장은 곰방대를 비스듬히 물고 부싯돌을 친다.
“대장님 어떻습니까? 이렇게 간다면 가망이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묻는다. 차도선은 켜진 불에 담배를 붙이면서 돌아다본다.
“가망이라니?"
“왜놈들을 모조리 쳐부실 가망 말이지요.”
그는 말없이 땅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곰방대를 빨아서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산이 무너지듯이 걷잡읕 수 없는 법이다. 이 나라가 병든 지 벌써 얼마냐? 임진 병자에 그렇게 뚜들겨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묘당에 앉은 놈들은 주둥아리만 여물어서 서로 물어뜯고 백성의 고혈을 짜서는 자자손손이 먹을 미전(美田)을 샀단 말이다. 영정간에 조금 괜찮은 치정을 했다지마는 이미 골수에 사모친 병독은 고칠 나위가 없는데다가 그후의 비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잖으냐 말이다.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에는 큰 도둑이 활개를 치고 고을 관가에는 작은 도둑이 들어앉아서 백성을 갉아먹고 짜먹었으니 백성의 힘이 나라 힘이거늘 신흥의 기세로 들어덮치는 왜놈의 힘을 막아낼 도리가 있을 리 없지. 을사망국조약에 도장읕 고스라니 찍은 정승들의 꼴을 보려무나. 그래서 우리 같은 산돼지나 잡아먹던 포수들이 보다 못해 들고 일어선 것이 아니냐? 이건 참 국가의 체모로 보면 큰 수치요 백성으로는 막수다. 이기다니 어림도 없지. 녹쓴 화승총을 둘러멘 거지 포수들이 일본제국을 이기다니.”
대장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세 사람은 간담이 서늘하였다. 그 중에도 젊은 양욱은 실망에 가까운 기분이 들어서 언짢았다.
“그렇게 꼭 질 싸움을 왜 하는 거요? 쓸데없이 사람의 목숨을 없애면서.”
차도선은 젊은 친구가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띠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옳은 말이야. 싸움이라는 건 원래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지려고 하는 법은 없지. 너도 알 때가 오겠지만 져서 꼭 죽을 줄을 알면서도 싸워야 할 싸움이라논 것이 때로는 있는 법이다.”
양욱은 자원해서 의병에 가담한 것은 임금과 나라를 위한다는 성심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따지고 보면 그것보다도 오히려 매국노 동학당과 왜병을 무찔러 없애 버리고 나라를 평정하는 이 싸움에 공을 세운다면 후일 나라의 포상이 중할 것이요, 청난공신으로 자손 만대에 복록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편이 도리어 비중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이 싸움도 그런 싸움인가요?”
“그런 싸움이지. 전쟁이란 건 아까두 말했지마는 비겁한 데서 시작되는 거야. 상대가 약한 것을 빤히 들여다보고 승산이 충분하니까 덤벼드는 거 아니야? 그러니 비겁한 수작이지. 그러나 말이다. 이건 개개인의 감정이구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는 약하다는 건 일종의 죄악이다. 우리가 약해서 남의 나라를 두 차례나 싸움을 붙이구 종당은 제 나라까지 망지는 거 아냐? 좌라두 큰 죄지.”
양욱은 앞이 캄캄하였다. 적어도 이 고을에서는 차도선이라는 소문이 있는 대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치 못하였다. 차도선은 멀리는 몰라도 적어도 이 일대에서는 영웅이요, 차도선 대장은 잘 하면 왜놈들을 몽땅 없애 버릴 수가 있음직하다는 일루의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자기 자신도 이 희망에서 큰 용기를 얻은 것이었다. 그만큼 실망도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누더기를 걸치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렇게 보람없는 일을 하라는 팔자는 어디 있읍니까?”
“보람?…….”
대장은 또다시 곰방대를 빨면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다가 픽 돌아다본다. 두 눈에서는 유난히 광채가 났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 이길 가망도 벼슬할 가망도 잘 살 가망도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음으로써 이 민족은 그만큼 더 살 수 있다. 민족의 생명이란 별 것이 아니다. 민족으로서의 의기다. 옛날 마의태자는 왕건이 내미는 고려의 고관대작을 버리고 금강산에서 풀뿌리로 연명했고, 사육신은 역적의 누명을 쓰면서 애모하게 육족까지 멸해서 후손조차 없지마는 그 의기는 우리의 마음 속에 등불 같이 빛나지 않느냐? 이러한 의기가 마음 한구석에 있는 한,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 등불을 켤 때다. 등불은 생명의 씨다. 우리의 죽음은 미래 영원히 뜻있는 인사들의 가슴속에 등불로 남을 것이다. 이름없이 산속에서 개죽음을 한다고 생각치 말아라. 지기 저 오막살이에도 사람이 있고 마음이 있지 않으냐? 헐벗고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얕보지 말아라. 마음과 마음은 물같이 서로 융통하고 애비와 아들의 육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을지라도 그 마음에는 간격이 없다. 우리의 의기는 저 누덕을 뚫고 들어가서 삼천리에 흐를 수 있고 미래 영원히 잇닿을 수 있는 것이다. 걱정할 건 하나두 없다.”
그의 얼굴은 흥분해서 새빨갛다.
“여기 계섰구먼.” 본대에서 오륙 명이 찾아 내려왔다. 네 사람은 일어섰다.
“자, 산돼지나 한 마리 잡아서 죽은 친구 제사나 지내구 우리두 한 잔 먹을까? 다음 번에는 우리가 몰살할지 모르니까 각각 자기 제사를 미리 지내둬야지 허허.
차도선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총대를 어깨에 넝큼 얹는다. 모두들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났다. 당시의 천우들은 대부분 다 죽고 대장 차도선은 새로 부대를 조직한다고 단신 까치령〔鵲嶺〕을 넘어서 갑산으로 들어갔다. 잘 싸워서 왜병을 많이 죽이고 있다는 말도 있고 전사했다는 풍문도 들린다. 살아남은 중에서 제일 고참이라 해서 남대천(南大川) 상류, 이 지대의 책임자로 남은 자기가 신병을 모집해 가지고 독립대장으로 행세한 지도 벌써 반 년이 넘는다. 그동안 큰 적은 피하고 작은 적을 만나면 접전하면서 전후 이십여 차례 싸웠다. 적은 줄 알고 덤볐다가 숨었던 적에게 몰살을 당하고 단신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일도 두 번이나 있었다. 전투의 경험도 쌓을 대로 쌓았다. 제 손으로 죽인 사람만 하여도 삼십은 넘을 것이다. 이제 고생은 습관으로 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초에 환영하던 백성들도 되도록이면 피하려는 눈치다. 자기들의 뒤를 밟아 온 왜병들은 조금이라도 의병에게 편의를 제공한 자논 모조리 학살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성인되기를 원하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온 천하 백성들이 모두 의병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느 마을이나 왜병들과 그 앞잡이의 권세에 푹 눌러서 어찌 할 바를 모른다. 막다른 골목에 틀림없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사람의 가슴에서 희미하게 심 장이 파닥이듯이 이미 고개를 넘은 이 나라의 시체에서 최후로 파닥이는 것이 자기들이다. 독균같이 천국 방방곡곡에 파고들어 온 왜병과 그 앞잡이의 이빨과 톱날에 나라는 이미 숨을 거두었으니 이같이 파탁이는 자기들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필경 사라지고 말 존재들이다.
양욱은 누워 자던 마윗등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덮고 자던 포대기는 이슬에 홈뻑 젖었다. 밀어제끼고 크게 기지개를 컸다. 동쪽이 환하게 동이 튼다. 이제 마지막 남은 부하는 셋밖에 없다. 파수를 보느라고 지 앞 바윗등에 앉은 친구는 총을 안은 채 졸고 있다. 옆에 누운 두 친구는 세상 모르고 코를 곤다.
요새 와서 부하들은 자기를 보고 니무 침울해 보인다고 하였다. 사실 침울할 수밖에 없다. 패방과 죽음이 주위를 뺑 돌아싸고 있는 것이다. 죽는 것은 무섭지 않다. 그러나 이 철천의 원수들을 마음껏 후려갈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다. 설령 육시를 당한다 해도 두려울 것은 없다. 그러나 스물 다섯 살이 젊음을 마음껏 펴보지도 못하고 이 생을 마지는 것이 한이다. 일월은 아름답고 산수가 청명한 나라, 순박한 백성들을 맡은 작자들이 그렇게도 못나서 사직을 팔아 버리는 이 판국에 그놈들의 모가지를 비틀어 동해물에 내던지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이 산과 저 산, 진달래 함박꽃이 저렇게 핀 이 봄을, 살육과 공포로 뒤덮는 왜놈의 괴수를 물어뜯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다.
이제 길은 없다. 총알도 몇 방 안 남았다. 새로 의병을 모집할 가망도 없다. 식랑도 떨어졌다. 백성에게는 오히려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사면 절벽이다. 죽어서 땅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차도선 그는 쾌남아였다. 죽어도 시원스럽게 죽었을 게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죽을 때와 죽을 장소를 마련해야겠다. 시원스럽게 죽자. 저 친구들은 어떻게 하나……?
자기와 같이 젊은 친구들이다. 그들의 생명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아니 살아서 자기가 맛보지 못한 인생의 희비애락을 맛보게 하자. 내 생명의 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지마는 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잘 살아라! 살아서 세상의 횃불이 되어라!
저녘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생각하면 며칠 전 일은 통분할 노릇이다. 후지령에서 대장 차도선이 하던 말마따나 결국은 질 싸움이었다. 지금은 더구나 져서 죽어 넘어질 싸움이다. 그러나 며칠 전에는 지나친 실수를 하였다. 동족의 피를 과신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부대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어서 이미 재기 불가능이다. 이렇게 산속에 파묻혀서 돌등에서 뒹구는 이상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협은 각각으로 다가오는 판이다. 며칠 전에 그는 삼심 명 남짓한 부하를 거느리고 새벽을 기해서 아래 부락 왜놈 헌병대를 습격하였다. 작전은 예정대로 들어맞아서 안에 있던 헌병 두 놈과 보초원 한 명을 무찔렀다. 거기까지는 일이 순조로웠다.
부하들은 부락에서 머리 깎은 동학당을 모도리 잡아다가 한방에 쓸어넣었다. 눈에서 불이 났다. 밉살머리스러운 마음으로는 각을 떠서 죽이고 싶었다. 부하들은 방에 넣은 채 집단 처형을 하자고 졸랐다.
양욱은 생각던 끝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운명과 처지와 경우에 얽매인 것이 인간이다. 더구나 그들도 동족이다. 애꿎은 목숨을 죽여서 무엇하랴는 것 이었다. 대장의 마음이 언제나 ‘동족’ 바람에 나약하다고 부하들은 불평이었다. 원래 의병은 동학당읕 왜놈 못지않게 미워해서 머리 깎은 놈만 보면 당장에 총살이었다. 그린데 태양욱은 한번도 동학당을 죽이지 않았다. 부하들이 죽이려 들면 한사코 말러 왔다. 이번에도 역시 말렸다. 대장의 명령이라 하는 수 없이 부하들은 물러섰다.
양욱은 방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버티고 섰다.
“너희들의 죄로 말하면 오찰해도 유부족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이 몰라서 그런 잘못을 지지른 줄로 믿는다. 용서해 준다. 다시는 왜족에 붙어서 동족을 할퀴고 물어뜯는 더러운 수작을 부리지 말아라. 그러기만 하면 이번에는 용서없다. 너희들도 이 나라 백성이 아니냐 말이다. 그렇지 않고 아부하고 싶거든 얼마든지 해라. 동족을 많이 잡아먹고 살찌고 똥 같은 벼슬을 하란 말이다. 민족의 생명은 죽은 듯하면서도 결코 죽지 않는다. 얼마 안 가서 너의 후손대에 몇 갑절 속죄해야 할 줄만 알아라. 세월이 흘러서 너희들의 환갑이 지나고 진갑이 지나도록 오늘 누데기를 입은 서른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왜놈 헌병 두 마리를 때려누이던 얘기는 잊지 말고 전해라.”
동학당을 이렇게 방면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일은 벌어진 것이었다. 전에 이 고장을 지나다가 믿음직하기에 영장(營長)을 시켜 놓은 청년이 도중에서 반가이 맞으면서 집으로 불러들인다. 여기서 지체하다가논 위험 하니 가야 한다고 하였으나 동생을 시켜 망을 볼 터이니 염려없다고 하였다. 다음 동네 헌병대까지는 십 리가 넘으니 누가 고자질해도 시간의 여유가 있음직도 하고 옛날 동지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여서 파수를 대문 밖에 세우고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 선 자리에서 한 잔씩만 나누고 떠날 작정이었다. 그러나 닭을 잡는다고 굳이 만류하는 통에 신을 벗고 방안에 들어섰다. 양욱도 오래간만에 부하들에게 고기라도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망을 본다고 동생이 대문을 나가면서부터 집안에서는 야단법석이었다. 몇몇 이웃 아낙네도 돕는다고 왔다. 밥을 새우고 행동한 의병들은 엉덩이가 땅에 붙기 바쁘게 다리를 뻗고 잠이 들었다. 짓궂은 친구들은 닭고기는 이따 먹고 술부티 달라고 졸라서는 한잔씩 걸치고 쓰러진다. 양욱은 대문 밖에 나가 한바퀴 휘돌았다. 파수병도 한 잔 마신다. 큰 주발로 한 잔 마시고 추우니 한 잔 더 하라고 한다. 주의하라고 하니 염려없다고 하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른다.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갈기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다. 왜병들이 지마다 총을 들고 방에 들어와 왼통 발길질이다. 모두 두 손을 들고 일어섰다. 어름장 같은 것이 가슴에서 떨어진다. 두 손을 쳐들고 일어서면서 앞이마로 왜병의 정통을 받아 넘어뜨리고 뛰는 길에 문턱에 선 놈을 발길로 차서 뒹굴리고는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내달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산으로 뛰었다. 그때 자기를 따라온 부하가 지금 남은 세 사람이다. 뒤에서는 총소리가 연달아 났다. 산마루턱에 앉아서 숨을 돌리며 내려다보니 왜병들은 총대로 위협하면서 휘몰아 가지고 나와서 세칭 개벽나무라는 큰 나무 밑에서 총살을 집행하고 있다. 한 친구가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냅다 뛰다가 뒤에서 겨누고 쏜 총알에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다. 총이라고는 날쌘 친구가 잊지 않고 갖고 온 한 자루뿐이다. 더구나 이쪽은 기진맥진한 네 명뿐이 아닌가?
적은 단천(端川) 본영을 떠나 남대천을 따라 슬령(瑟嶺)을 넘어온 별동대인 듯 하다. 오십을 넘는 숫자다. 불러들인 적은 아니리라. 그러나 적어도 동족이라고 믿었던 자들이 십분 전에라도 알려 주었으면 이런 참변은 없었을 제다. 파수병은 술에 녹은 모양이고 망을 본다던 주인의 동생이란 자의 얼굴도 앞마당에 보이지 않았던가? 후환이 두려웠겠지…… 사람을 원방해서 무엇하랴.
이제 움직일 여지도 없다. 적이 자기들을 찾느라고 총공격을 해온다는 소식을 사흘 전에 듣고도 이 지첨에서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께는 바로 이 산기슭에 다다랐다고 전하여 주는 청년을 고맙다고 그냥 돌려보내고는 하루종일 낮잠을 잤다.
맑은 아침이다. 평지에는 해가 쪽 퍼졌다.
화전민(火田民) 세 사람이 괭이를 메고 올라온다. 생명이란 모진 것이어서 짓밟힌 천지에서도 저렇게 흐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초목은 여전히 푸르고 이 산에는 봄이라고 꽃도 예나 다름없이 피지 않았는가?
화전민들은 까딱 않는 자기들을 못 보고 지나려다가 우뚝 발을 멈춘다.
“누구요?…… 의병 나으리들인가 봐.”
양욱은 ‘나으리’라는 말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놈들이 바로 이 밑에서 야단인데 어서어서 피하시오.”
양욱은 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자코 있다. 세 사람은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지나갔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부하들을 깨웠다.
“자, 여러 날을 두고 생각했지마는 이제는 막다른 골목이다. 썩어빠진 화승총으ㅗㄹ 일본제국을 어쩔 수는 없다. 너희들은 각각 산을 내러가 끈덕지게 살아서 후일을 기다리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한 친구가 진달래 가지를 꺾으면서 입을 열었다.
“다 죽지요. 망국지백성이 살아서 무엇하겠읍니까? 더구나 이제는 살래야 살 길이 없읍니다. 왜놈들한테 붙잡혀서 오찰읕 당하느니보다 제 손으로 죽는 것이 낫지요.”
모두 잠자코 있다. 양욱은 묵묵히 앉았다가 불쑥 일어섰다.
“평소에 너희들은 충성되고 용감했다. 나는 그 은공을 갚을 길이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이제 한 가지 길이 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생사를 같이 하던 추억만은 영원히 잇지 말고 후세에 전해다오. 내 목으로 너희 생명을 구하여라.”
말이 떨어지자 그 자리에 덜썩 주지앉아서 단도로 배를 갈랐다. 순간이었다. 달려들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부하들은 그를 부둥켜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제비 한 쌍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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