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한다. 예컨대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필요하다. 편지, 휴대전화, 인터넷 이메일 등이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될 것이다. 개인간의 의사전달 행위를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로 확대했을 때 미디어는 더욱 필요한 존재이다. 신문, 텔레비전, 잡지, 영화 등과 같은 미디어는 똑같은 내용의 정보를 사회 내에 있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미디어를 대중매체라고 한다.대중매체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간의 생각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특히 20세기 들어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뉴스들을 접하게 되었다. 직접경험해 보지 않은 사실들을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받게 되고,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발달은 여성에게 하나의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특히 텔레비전의 경우 그것은 여성에게 기존의 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가섰다. 과거 ‘여성스러움’을 강요했던 조건은 여성이 가정 내에 고립되어 있음으로 해서 바깥 세상의 정보에 무지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바깥일을 하는 남편이 주부인 아내를 윽박지를 때 주로 하는 말은 ‘당신은 세상을 잘 몰라’라는 것이다. 이처럼 바깥 세상은 남자들만의 것이고, 여자는 외부 세계에 대한 무식과 공포 속에서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바깥 세계와 가정의 전통적 구분을 약화시켰다.
텔레비전은 바깥 세계를 가정으로까지 배달해 줌으로써 여성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여성은 여자이기 때문에 근접할 수 없었던 곳까지 텔레비전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통해 남성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과거 남성이 독점하던 역할을 여성이 맡는 것을 보게 됨으로써 보다 능동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이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됨에 따라 남성은 여성이 이 세상을 잘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적 권리는 남성들보다 낮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가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이 가져다 주는 ‘축복’보다는 텔레비전이 가존의 남녀 불평등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쪽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재앙’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 곧 분명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이 배달해 주는 바깥 세상의 모습은 여성의 위치를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 많았고 이것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수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기존의 가부장제적 남성중심 사회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성학이나 대중매체를 이론적으로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대중매체 속에 나타난 여성들의 왜곡된 모습이나 여성 비하 현상에 대해서 분노를 느껴 본 경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후보자 부인들을 초청한 방송 프로그램들에서는 좋아하는 노래나 음식솜씨, 패션감각, 쇼핑스타일, 연애시절 이야기 같은 신변잡기식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한 지아비의 아내로 조신하게 가정을 지킨 여성을 이상적인 영부인상으로 묘사하는 미디어의 모습에서 많은 여성들은 분노와 실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국내의 한 시사주간지가 여대생 1백 명에게 ‘대통령 부인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의 설문조사를 했는데, 83명의 여대생이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중매체 속에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왜곡된 여성상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의 변화는 더욱 어렵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중매체의 주요한 내용들은 분명 여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많은 경우 여성의 모습은 남성중심적인 관점에서 구성된 왜곡된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주부, 어머니,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모습은 대중매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분명히 현재 대중매체의 모습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반여성적이고 가부장적인 대중매체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명확한 답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대중매체의 왜곡된 여성관을 바꾸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대중매체에 재대로 여성이 묘사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인 제도나 시민단체를 구성하여 압력을 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여성이 영화나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 산업에 많이 진출하여 여성의 이미지를 스스로 개선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은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의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그 내용이 별로 많이 바뀌지 않은 점만 생각해 보아도 크게 실효성이 있는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대중매체 산업 내에서 벌어지는 여성 종사자들의 노력도 중요하고,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여성들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그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 온 사회운동 단체들의 노력 또한 값진 것들이다. 하지만 대중매체에서 여성들에 대한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여성들이 노력이 부족했다거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제도적 방안이 없어서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대중매체의 여성 표현에 대한 왜곡된 모습은 여성을 객체화함으로써 얻는 대중매체의 상업성,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남성중심의 전통 등과 같은 상식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매체가 바뀌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커다란 모습이 바뀌지 않고서는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은 대중매체 산업이 가지고 있는 상업성 때문에 시청률 등과 같은 대중의 관심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런 이유로 수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매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 수용자들의 의식변화가 있다면 약간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