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모임이 둘째 주 토요일인 10일 오후 3시, 문학의 집. 서울
(02-778-1026)에서 있습니다. 아울러 작품은 E-메일: soul9704@hanmail.net 로 보내주시고, 8월 30일 토요일 오후까지 마감합니다.
권두언
한국 공연시 연합회 창립을 주창함
좋은시 문학회 선언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일차적 욕구인 의식주 문제에 집착하여 온 과거의 생활 패턴을 벗어나서 질 높은 생활을 추구하게 되고, 그에 따라 양질의 문화를 향수하고자 하는 욕구가 팽창하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21세기에는 인류의 생활수준이 점차로 높아지게 되고, 그 결과 일차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나면 자연히 그 다음으로 문화를 향수하고자 하는 본능이 분출할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TV를 비롯한 미디어들이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는 저질의 대중문화에 식상하게 되면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추게 될 대중들은 자연히 문화에 대한 요청도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순수 예술을 비롯한 수준 높은 문화를 누리고자 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로부터 인류는 언어를 가지고 문화를 창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류문화 창조의 도구인 언어로 하는 예술이 바로 문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문화 창조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고, 그 점은 오늘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류는 언어로써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왔으며, 문자가 없거나 있어도 인쇄술과 제지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자연히 노래와 구송으로 문학을 영위할 수밖에 없어, 그 결과 운문문학인 시가 문학이 중심을 이루어 왔습니다. 민요와 시조창과 판소리 같은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던 것이 인쇄술과 제지술이 발달하면서 값싸게 책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구전되던 운문형태의 문학은 점차로 소설이나 희곡 같은 산문문학으로 분화되어 나가고, 오늘의 시가 문학인 서정시로 남아 종이책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의 시가 ‘읽고 생각하는 시’로 변하게 된 원인인 것이며, 상징주의시, 주지주의시, 초현실주의시 등과 같은 난해한 시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현대시는 일반 대중과 괴리된 채 책 속에 갇혀서 잊혀져 가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더듬어 볼 때, 문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천해 왔으며 어느 한 순간도 한 곳에 정체된 채 머물러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TV와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현란한 미디어 매체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정보화 시대인 오늘, 문학, 특히 시는 이제 더 이상 종이책에만 갇혀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발달한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예전처럼 노래하는 시, 극화된 시, 구송하는 시, 춤과 함께 하는 시, 등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에 따라 자연히 ‘노래시’, ‘시극’, ‘합송시’, ‘무용시’, 등, 가칭 ‘공연시’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함으로써 현재의 ‘읽는 시’와 함께 문화의 시대가 될 21세기를 ‘시의 시대’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시단을 중심으로 음악인, 연극인, 무용인 등 모든 예술계 인사들의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제 과감히 우리들은 ‘공연시 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면서, 사회 제현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합니다.
좋은시 문학회
■ 제 1 부
김 규 화 ․
김 종 희 ․ 가장 절망적인 한 장의 사진
해와 나무사랑
신 규 호 ․ 조각달 1.
유 승 우 강원도 8
신 현 정 강아지풀에 대한 명상
바다에 관한 백서
박 무 웅 ․ 덤
윤 인 경 ․ 아름다움에 대하여
최 금 녀 옷 한 벌
송 문 헌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
박 건 자 ․ 단군고기
전 순 영 ․ 내 마음의 열쇠
김 송 하 ․ 건망증
아름다운 세상
강 영 은 ․推敲
능소화
진 행 ․ 김 찬 옥
■ 제 2 부
초 대 시 ․ 최원규
권 혁 수 ․ 공원에서 보낸 밤
이 수 영 간성에서 하룻밤
이 유 미 ․ 파 도
어머니의 군대
김 찬 옥 ․ 이상한 시계
압력밥솥
박 일 소 옥정호
홍 경 림 그 대
이 인 철 8월엔 뱀딸기가 익어간다
이 용 관 ․ 어머니의 꽃밭
조 상 준 ․ 구 멍
김율리아 ․ 풀밭에서
영 역 시 ․ 손 희 연
초대시
섬
최원규
갈 수 없고
바라만 볼 수 있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고독의 끝에 있다
눈 나리는 날
가난한 외딴집
울부짖는 바람 속
등대 찾는 눈빛
나는 황혼에 물들지 않는다
부서져 흩어지는 성난 파도
물새들의 외로운 춤
소금과 모래로 구멍난 바위
신은 작은 것까지 버리지 않는다
아! 노여워 울부짖는 천둥번개
갈라지고 쪼개진 바위 틈새
피어난 물바위꽃
내가 할 일은 떠나면서
모든 것을 벗어던지는 일이다
까마귀
최원규
까마귀는 극성스레 울고 있었다
거의 하루종일 아침에서 저녁까지
까아악 까아아악 가르르르-----
코르만델 호텔 옆 거대한 느티나무 가지에서
아이들이 롤라스케이트를 넘어질 듯 달려가며
백주의 고요를 뒤흔든다
햇빛이 타는 여름 대낮, 나는 헐렁한
인도 시인들과 시낭송을 마치고
우체부의 바쁜 걸음 살필 틈도 없이
까마귀 소리에 매달린다
참았던 괴로움을 일시에 토해내듯
견고한 보석 뭉치가 한 번에 깨치는 소리,
왕소금같은 소리, 신의 비장 터지는 소리,
그런 시의 소리를 들고 내 방에 돌아온다.
* 약력 : 1962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충남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동교 명예교수,
현대문학상 등 수상.
시집으로 "겨울 가곡" 등 다수.
솔베지의 노래를 주제로 한 시
― 페르귄트의 말
김규화
가장 절망적인 한 장의 사진
김 종 희
바위산을 뒤로하고
조선여인 네 사람 그리고 일본군인 한사람
일본군인은 긴 총대를 세워 한 손으로 잡고
엉거주춤 앉아서 웃고 있다
오른 쪽으로 세 여인 중
맨 앞에 여인은 배가 만삭이 된 무거운 몸을
큰 바위덩이에 기대어 힘들게 앉아있다
죽음 같은 모습이다
바로 그녀 뒤에 서있는 두 번 째 여인은
그녀를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다
심히 그녀를 근심하는 얼굴이다
그 옆으로 중앙에 서있는 세 번째 여인은
앞을 똑바로 보고있다
웃고있는 일본군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네 번째 여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만삭이 된 여인의 배에 눈길을 주고 있다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몸에서
아이가 자라 태어나려하고 있다니
바위산뿐인 이 메마르고 척박한 세상에
가장 처참한 여인의 배속에서
아비를 모르는 아이가 자라
태어나려하고 있다니
(1944년 중국 위난성에서 미군이 촬영한 일본군 조선위안부들의 사진)
김종희
해와 나무사랑
해는 나무를 낳은 어머니입니다
해는 나무 사랑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나무는 해의 자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무는 해의 희망입니다
나무는 해의 사랑을 먹고
조금씩 키를 높이며 희망을 키웁니다
해가 지면 나무는 어둠 속에서
그리움과 기다림의 실을 자아
스스로 내일의 희망을 키웁니다
이렇게 숲 속에 모여 사는 나무들은
모두가 제 각각의 희망을 키웁니다
약력: 충청북도 청주 출생. “시문학”에 ‘매장․일기․돌의 말․빛’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 세상 끝 날까지’등이 있다.
조 각 달 1.
신 규 호
생각은 깜깜하고
태어날 듯 태어나지 않는다
견고한 알 하나
항문 끝에 보이고
대붕 한 마리 검은 날개를 펴
하늘을 덮고 있다
출산이 끝나면
타조알보다 클
생각 한 쪽은 파묻혀
보이지 않고
낡은 절 처마 끝에
풍경만 울어댄다
마르지 않는
눈물 한 방울
강원도 8
유승우
강원도의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우러러
신비스런 만남을 꿈꾼다.
어느 수도승의 마음이
저토록 간절할까.
먼 하늘 끝에서
가벼운 바람만 일어도
더욱 안타깝게 발돋움하고,
바람 속에 묻어오는
하늘 소식에 귀 기울이다가
아득히 번져 오는
구름 같은 풍문만으로도,
하늘 위로 떠올라
하얀 날개를 퍼덕거린다.
행과 행 사이 한깐씩 띄우기
강아지풀에 대한 명상
신현정
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의 어린 영혼아
우리들은 강아지풀로 콧수염을 해붙이기도 했다
그 우스광스러운 모습이라니 영락없는 애늙은이였다
더 이상 자라지도 크지도 않는 고만고만한 애늙이로 늙어야 했다
햇살에게든 바람에게든 강가이든 양지 쪽에게든 별참견 다해가면서
애늙은이로 늙었으면 좋을 뻔했다
그래 그동안 안녕들하셨는가 강아지풀아.
바다에 관한 백서白書
신현정
그렇다고 바다를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파도 또한 정면으로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야 고래잡이 선장
갈매기 나르으으고
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은 이곳에서
어찌하면 독주毒酒를 작살을 먼 바다를 이길까 하다가
그리하여 비틀거리는 풍랑의 내 걸음을
게의 옆걸음으로 슬쩍 바꿔보는 것이다
오 게가 간다
집게발을 높이 올리고
거품을 날리며
눈을 내놨다 감추었다 하면서
옆걸음으로
바다를 비껴서.
서울 생.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 <그믐밤의 수繡>가 당선.
시집 "대립' (1983년) "염소와 풀밭"(2003년)
덤
박무웅
밤이면 대낮보다 환하던 술집 골목이
여기저기 간판을 내린 곳이 많다
한 잔 술에 시름을 달래고
신사동 사거리에서 택시를 탔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요즘 수입이 좀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라디오를 켠 듯
뉴스 한 대목이 빠르게 보도 되었다
“술집 아가씨들이 호황일 때는
요금 보다 팁이 더 많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러다 언젠가 부터는 반으로 깎이더니
이제는 거스름돈 300원도 다 챙겨간답니다”
밥사발이 소복하게 퍼 주던 어머니의 고봉밥 같은 것이
물건을 사면 한 손, 더 덤으로 얹어주던
시장 아줌마 같은 푸근한 인심이
팁을 받아 팁을 나누어 주던 술집 아가씨들의 손이
하루하루 앙상하게 여위어만 간다
시장에선 콩나물 값이 깎여 나가고
공장에선 월급봉투가 깎여 나가고
가정에선 사랑이 깎여 나가고
날이 갈수록 구멍이 점점 커져만 간다
약력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박는다”가 있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윤인경
육신을 비운다 한 방울의 영혼도 남기지 않는다
몇 번을 헹궈내어 말린다 온전한 육신만 남았다
정갈하다 아름답다
영혼이 없어 사유하지 않는 글 쓰지 않고 말하지 않는 육신
크리스탈이다
약력 “조선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한 양푼 비운 마음엔 하늘이 와 들어앉 아”가 있다. 현 진단시 동인.
옷 한벌
최금녀
옷 한 벌이 눈에 띄었다
상큼한 빛깔에 눈이 찔려
문양도 디자인도 날아와
어깨에 감겨
이음새 한줄
홈질 한 땀 한 땀이
살 속으로 들어가 몸을 박음질해 오고
빈 데 없이 홈질 해오는
바늘의 깊이,
그 깊이가 뼈에 닿아 기쁨이 될 수록
피멍이 늘어가던 날
푸르름 속에서 날아온 빛깔 고운 옷
예기치 못한 침석(鍼石)에 찔리워
바늘과 피멍의 문양을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에 올려 놓고
철 지나기를 기다리게 하던
야한 옷 한벌.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
- 바람의칸타타. 23 -
송 문 헌
솔숲을 지나 자색 지칭개 오라지게 피어난 들녘
풀숲 돌계단을 내려서는 저 들짐승 흰뼈의 그림자
외도는 들길을 서성인다 여름에서 다시 여름까지
백년을 거슬러, 거슬러 오르려는 공룡의 화석처럼
걷잡을 수 없어 슬픈 오오, 침묵의 님이시여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야 하리라
멈춘 듯 느릿느릿 푸른 산빛을 씻기며
흘러도 흐르지 않는 개여울은 그 자리 그대로
선채로 침묵하는 님의 발치에 외발을 딛고 선 흰
날짐승아 너는 시퍼렇게 바람을 넘어서 어느 상념의 벽
그 낭떠러지 앞에 한나절 얼빠진 넋을 내어 놓는 것이냐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야 하리
(바람이 온다, 바람이 운다! 바람이.....)
* 지칭개 : 국화과의 野生 2년草. 6-7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
- 만해마을 ‘님의침묵' 산책로에서 2005. 7. 17.-
단 군 고 기 (檀君古記)
박 건 자
유사(有史) 이전에 생겨 내려오는 고담
원시사회의 초자연적 세력을 빌어서
종교 과학 역사를 통괄한 존재
신화를 역사로 하여
국가 성립의 기초로 둔것은
신과 인간의 융합을 가능하게하는 근거아닌가
옛날에 환인이 있으니
아드님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욕심내거늘
아들의 뜻을 알고 내려다 보매
삼위(三危) 태백이 인간을 홍익하기에 좋은지라
웅이
태백산에 내리니
하늘에서 내림이고
원시인들이 표상한 신들중
최고의 신이라
선과 악을 주관하며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곰녀와 결합하여 단군을 낳으니
그가 우리의 조상이 아닌가
21세기 그리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번영과 풍요라는 유산을 넘겨줄
슬기로운 우리의 조상
내 마음의 열쇠
-와불 앞에서
전순영
마음이 갇히는 날이면 그곳에 간다
페허 속에 가라앉은 나를 데리고
화순 영구산 기슭에 들어서면 환하게 열리는
하늘은 푸른 바다
삶의 배낭을 내려놓고 숨울 길게 내쉬고 들이쉬면
황토 흙내음이 허기진 나를 채워준다
사방에 흩어진 석불 석탑 ,
쌍배불 와불 천년 숨소리 앞에서
해묵은 체증이 뚫리는
그 석안 속으로 빠져들면 녹슬은 과거로 들어가는
열솨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
바람이 지나가듯 새 한 마리 날아간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뒷켠에
정승도 천민도 선비도 하인도
함께 누워
눈 감고 입 다물고 손도 발도 다소곳이 여미고
빨간 심장만 펄떡펄떡 뛰는
약력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목이 마른 나의 샘물에게’ 등이 있다.
건망증(健忘症)
김 송하
당뇨병 약 먹으러 가서는
빈속에 소화제 만 먹었다
다시 가서는
약은 손에 들고 물 만 마셨다
되 집어 가서는
약은 버리고 약봉지 만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쯔쯔쯔~
인왕산 호랭이......
아름다운 세상
김 송하
무엇이 나로 세상을 알게 하여
아침 이슬에 눈물 짖게 하는가
무엇이 내게 사랑을 가져와
맑은 호수에 별빛 찰랑이게 하는가
무엇이 이 느낌을 느끼게 하여
꽃잎에 쓰인 사연을 시(詩)로 쓰게 하는가
아, 아름다워라
당신이 있는 이 세상
약력 “자유문학”으로 등단. 현재 온양에서 사업하고 있음.
推敲
강영은
뜰 안,
잎들이 푸르다 검푸른 침묵이다 담쟁이들이 싱싱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은 그 침묵을 지탱하는 담장이 있기 때문이다
싹을 틔우는 건 잡초들이다 그들은 무성한 말을 거느리고 솎아낼수록 바람과 햇빛보다 더 빨리 시간을 점령한다
감나무와 목련 나무 짙푸른 그늘 사이 손님이 찾아든다 벌과 나비들의 말없는 발과 발 없는 말이 앉았던 자리는 더 무성해지고 감나무는 둥근 열매를 맺는다
누렇게 시든 채 말라가거나 채 익지 않은 낙과로 썩어버린 것도 있다 자벌레가 그들과 상관했다고 하나 진위를 알 수 없다
참, 많은 말들이 몸을 뚫고 흘러오거나 흘러 나간다 태풍이 지나간 뒤 대문을 열면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소문들, 푸르게 익지 못해 떨어진 그 말들이 아프다
능소화
강영은
엄마가 내 푸른 담요를 걷었을 때
나는 꽃이 될 거라는 예감을 가졌어요
꽃이 나에게 노크를 했거든요
엄마가 내 몸 속에 얼마나 많은 꽃씨를
숨겨 놓으셨는지
보세요, 저리도 많은 발가락과 손가락들을
마구 뻗어난 陰部의 길들을
늙은 노송의 축 늘어진 그것이든
버드나무 휘어진 허리춤이든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
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잖아요?
暴炎에 술 취한 딸처럼 주홍빛 꽃을 울컥울컥
게우고 있잖아요?
그게 나라구요, 나였다구요
능소화 피면 장마 진다고 그러니 엄마,
습한 문 열고 나, 장마지게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툭툭, 빗물에 젖어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두세요
귀를 젖히면 탱탱하게 익어온 말들이 여물고 있다 모두가 패잔병이지만 않은 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이 속살에 박혀있다
약력
2000년 계간 문학지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 스스로 우는 꽃 잎' '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 가 있고
현재 '미네르바 문학회' 회장 '한국 시인 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
공원에서 보낸 밤
권 혁 수
대형냉장고 BOX를 끌고
공원으로 들어가
집게처럼
나는 한 덩어리 냉장고가 된다.
어제는 소형 TV였는데
오늘은 좀 버겁지 ?
가로등이 꺼지고
더듬이를 접은
빛보다 편안한
어둠이
식은 몸을 끌어안는다.
사랑보다
아늑한 고독이 어깨를 짚고
맑은 별처럼
꿈꾸는 BOX 안에서
나는 행복하다
간성에서 하룻밤
-곡비-
이수영
내 몸이
사랑으로 충만해 있을 때
동해를 찾아가면
바다는
제 안의 볓 배의 큰 기쁨으로
신생의 아침을 통째로
내 가슴에 안겨주고
설움에 겨워 지친다리 끌며
그 곳에 도착할 때면
바다는
제 안의 더 큰 슬픔으로
밤이 새로록
괴로워 울부짖으며
제 몸을 찢고 또 찢고
파도
이 유 미
바다가
갯바위에 던지는
물폭탄
터지면서
하얀 파편이
시원하게
사방으로 튄다
세상 티끌들
쌓이고 쌓여서
속을 썩이니
입술 깨무는 아픔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그렇게
화(火)풀이 하는거야
어머니의 군대
이유미
신체검사 받고
입대영장 배달 될 때만해도
가슴 서늘할 뿐
강 건너 편의 불 입니다
입영 하는 날
그러잖아도 방망이질 칠
아들 마음 다칠까봐
꼬옥 누르는 눈시울
보충대에 들어가기 전(前)
점심 먹는 자리에서 부터
물 조차 넘어가지 않습니다
연병장에서
가족 친구들과 담담히 인사를 나누고
장정들 속으로 휩쓸려 가는
짧게 깎은 뒷머리 보는 순간
허물어져 내리는 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잡아당기는
자동차 뒷유리창 너머
자꾸 돌아봅니다
물기 머금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발바닥
눈에 밟히는
어린 자식 위해서
두 손 모아
신(神)의 손길 붙잡습니다
입고 간 옷 신발만
소포로 받은 날
폭풍우 같은 슬픔
이따금씩 걸려오는 안부전화에 귀를 세우고
기다리던 백일휴가
설레이던 첫 면회
그을은 얼굴
거칠어진 손등 쓰다듬으며
인내(忍耐) 삭이는 눈동자 들여다보며
목구멍으로 삼키는 눈물
휴가 면회가 몇 바퀴
남의 일 일땐 ‘벌써’이지만
모정(母情)에게는 모질고 길기만한
2년 1개월 보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건강히 무사히 온전히!
제대 하는 날
세상 모두에게 감사 드리는
어머니도 군복을 벗습니다
이상한 시계
김찬옥
허리에 통증이 심해 사우나에 갔다
한증막 안에서 모래시계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저 것이 밑 빠진 똥구멍으로
시간을 줄줄 배설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모래시계를 툭 밀어 자빠뜨린다
줄- 줄 새던 모래가
하던 짓을 멈추고 소리 없이 고여 있다
누워있는 꼴을 보니 영락없이 장구다
머리 위에 떠있던 해도
서산을 향해 달음박질 칠 시간인데
나는 이것을 가지고 중모리 장단이라도 넣어볼거나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에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놀다 가소! 놀다나 가소!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나 가소!
나는 뽀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서
진도 아리랑 한 대목을 흥얼거리고 나자
욱신거리던 허리의 통증도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내 속에 보름달 하나 둥실 떠 오른다
압력밥솥
김 찬 옥
이십년을 한결같이 주방에 서있는 저 여자
이마에 띠를 두르고
갑갑증을 꾹꾹 눌러도
담장 밖으로 피식피식 속앓이가 새어 나간다
상처투성이인 저 여자
길들여진 시간을 새로 교체할 수 없어
몇 차례나 부품만 갈아 끼웠다
몸이 쇳덩이인 저 여자
불길에 달아올라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는
지금 단추 하나 열어주지 않으면
뭔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약력:
96년 현대시학에 작품 활동 시작, 한국시인협회 회원, 화백문학회 부회장, 현대시학회 회원, 시집: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
옥정호
박일소
산 그림자 드리운
옥같이 맑은 물 위에
하얀 구름 한가롭고
한잔 술
아름다운 경치
취한 그대 얼굴
먼산 백일홍꽃빛에 물들어
사랑으로 붉어저 있구나
불어오는 바람 결에
가늘게 떨리는 취흥으로
매미소리 가는 여름 노래하고
담밑에 졸고있는
맨드라미 붉은 얼굴
느티나무 정자에
절로 신선 되어
학 돼 나는 푸른 꿈
섬진강 줄기에
그리움 심어본다
그대
홍 경 임
그대 향한 길이 일어서서
나를 향해 걸어온다
이름모를 잡초들조차 한 줄기 바람에
서로 어깨들을 부딪치며
생을 확인하는 역사의 현장속에서도
산발머리를 하고 혼자서 희죽거리는
이웃집 사는 미친 이쁜 처녀는
치마를 들썩이며 깡충깡충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와서 씩씩 웃어주고 가고
윤동주의 시를 읽고 구리거울의
주제와 소재를 외우며
나도 미치고 싶었던 8월
뱀딸기도 나도 익어가는 밤에, 꽃뱀을 기다린 적 있었다
어머니의 꽃밭
이 용 관
‘안녕’이라고 금방이라도 말을 건네 올 것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다 금방이라도 뒤 문으로 도망칠 표정이다.
잘고 가느다란 꽃잎들이 나란히 도열하며 어우러져 하나의 꽃을 만들었다.
마당 가장자리 가운데를 차고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너끈히 받아가며
7월의 열기들을 즐기고 있다.
야생의 질긴 생명력으로 엷은 꽃대를 세우고서도 곳곳하게 지탱하며
비바람이 뿌리를 흔들며 달려들어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산언덕배기 넝쿨 속에서, 들판 후미진 갈밭이 소리 없이 피었다 사라지기를 수십 년,
단아한 그 모습에 취한 사람들에 의해 몇 번의 일탈을 통해 ‘석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마당 정원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서서 손님을 맞는다.
주인을 떠나보낸 빈자리, 그 허전함을 대신 메우고 있었다.
본래의 순수함을 잊지 않고 풋풋하게 담아내는 미소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바라보면 비로소 꽃잎으로 겹쳐지는 어머니의 얼굴이 홀연히 나타났다.
이내 사라진다.
-어머니 49재에 붙여-
구 멍
조상준
눈이 내린다 싸락눈이 내린다
그곳에 나 있어
정수리에 뚫려 구멍 하나 달고
소라 구멍 싸서 도는 억새바람
존재하는 것은 숨고르기를 하고
햇살이며 땅기운이 들라락날라락 하고
영혼이 무덤을 깨치고 내뱉기도 하는
그곳에
하늘까지 사무치는 안개로 살짝 묻혀있다
덮인다 얼음이 덮인다
흰 벽 없이 물이 파랗던 여름보다
쌩쌩 더 투명하게
정처 없는 것을 사랑, 사랑한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도
다 덮어버릴 수 있다 아무리 높거나 긴 무엇도
어떤 것 하나 덮을 수 없어 깊은 구멍이
듬성듬성 술래잡기도 한다
숨을 내뿜는 곳
어떤 구멍은 토끼가 오고가는 옹달샘과 닮았고
어떤 구멍은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와 닮았고
어떤 구멍은 제 몸속에 저를 닮은 아이가 있다
모든 것에 내동댕이쳐진 저 구멍은
숨쉰다 물이 숨쉰다
어떤 수천의 물방울들은 답답한지 우묵하고 검은 밍크 구멍을 꿈꾸며
가끔 들썩이고 있다
세상에 지친 존재가
간혹 아무도 알 수 없을 듯한 기호를 남기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이 있다
그럴 때 구멍은
가장 빠르고 우렁차게 음표 하나를 뽑는다
약력 :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 낭송
-오늘 21
김율리아
김 시인의 '엄마의 얼굴'을 암송하다가
머리에 물동이를 인 채
흘러내린 두둑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아기를 들쳐 업은
마리아상을 본다
어머니 마음을 새기는라
한 해가 짭기만 했을 어느 조각가
스크랩한 사진을 코팅한다
아스라이 멀어져간 꿈
몇 날을 그 아름다운 품속에
묻혀
고개를 드노니
가슴 벅차게 떠오르는 모성의 극치
아, 절실하게 다가오는 향기여
암송가운데 찾아든 눈부신 얼굴이 아른거린다
외국시
낭송 : 손희연
빛나는 횃불
로빈슨(1869-1935)
아 詩人이-빛나는 횃불이 있었으면,
이 변함없는 죽은 회색의 어둠을 깨끗이 찢어 버릴.
오래 방황하던 詩神들을 데불고 와서
새 빛으로 파나서스 山을 붉게 물들여 놓았으면.
그리하여, 약은 기계적 방법으로 하루를 반짝이다
영원한 밤으로 사라지는
얼빠진 노래들을 만들어 내는
시시한 친구들을 멀리 쫓아 버렸으면.
도대체 무엇인가, 메마른 이 時代는?
男子와 女子와 꽃이 있고
季節 日沒도 여전히 있다.
도대체 무엇인가? 서녘 하늘로부터
한 旗幟 뽑아내어 영원히 제 이름 아로새길
한 사람 없을 것인가?
Oh For a Poet -For a Beacon Bright
Robinson(1869-1935)
Oh for a poet--for a beacon bright
To rift this changeless glimmer to dead gray;
To spirit back the Muses, long astray,
And flush Parnassus with a newer light;
To put these little sonnet-men to flight
Who fashion, in a shrewd mechanic way,
Songs without souls, that flicker for a day,
To vanish in irrevocable night.
What does it mean, this barren age of ours?
Here are the men, the women, and the flowers,
The seasons, and the sunset, as before.
What does it mean? Shall there not one arise
To wrench one banner from the western skies,
And mark it with his name forevermore?
雨期에
김규화
비오는 날
비처럼 긴 우산을 들고
鋪道에 에 서자.
비는 내리고, 백날을
비는 내려서
살속까지 베어드는 親分
비는 내리고, 빌딩의 그늘에도
비는 내려서
스멀스멀 기어드는 물안개
어두운 도시의 살그늘 속
한 두께 마알간 세상.
창밖, 이승과 저승 같이……
비오는 날
비처럼 긴 우산을 들고
가장 미끄러운 눈을 뜨자.
김규화 선생님 원고예요*^^*
윤인경 선생님 원고 다시 보내요
아름다움에 대하여
윤인경
육신을 비운다
한 방울의 영혼도 남기지 않는다
몇 번을 gpd궈내어 말린다
온전한 육신만 남았다
정갈하다
아름답다
영혼이 없어 사유하지 않는
글 쓰지 않고 말하지 않는
육신
크리스탈이다
“좋은시 문학회” 소식
축하합니다
●<좋은시 문학회>의 고문인 성찬경 시인이 10월 14일(금) JEI 재능교육 혜화동 소극장에서 ‘제 5회 성찬경 말예술 한마음’ 펼칩니다. .
●<좋은시 문학회>의 자문위원인 유승우 시인이 지난 7월 27일(수)부터 8월 2일(수)까 지 7일 간 영등포 문화예술회관에서 시화전 (“시와 그림이 있는 내 안의 풍경”)을 열었습니다.
함께 합니다
●“좋은시 문학회>의 회원으로 권혁수 시인을 새로 영입하였습니다. 권혁수 시인은 의학신문 등 기자를 지냈으며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81년). 계간 <미네르바> 2002년 봄호로 시를 천료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산행----?
좋은시 8월산행 안내
청계산 등반. 일시 8월27일 오전 10시 양재전철역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집결.
청계산의 숨은 등산로를 찾아갑니다. 산의 보석같은 코스입니다.
준비물: 간변복장에 점심도시락지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