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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환유, 알레고리의 개념
비유는 어떤 사물의 가치를 그 자체에 고정시키지 않고 다른 것에서 유추한다. 미국 철학자 어번(W.M.Urban)은 언어와 현실에서 언어의 가동성을 강조했다. 사물과 언어관계는 거리가 있으므로 부단히 움직인다고 본 것이다. 이는 언어의 추상성과 언어 의미 사이에 무한한 가능성을 뜻한다. 한편에서 비유는 진리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18c 말엽부터는 비유는 필수적이며 세계를 인식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로 보고 있는 태도가 강하다. 비유는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맞닿아 있어 인간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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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매개어의 개입 없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어 의미의 轉移와 새로운 의미를 환기시키는 비유법이다. 은유를 이해하려면 유사성을 파악해야 하지만 동일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아리스텔레스는 '인생의 황혼'으로 노년을 표현했다. 수학적 비례로 치환시시켜 a/b=c/d 따라서 ad=bc이나 노년의 인생에 대한 관계가 황혼이 하루에 대한 관계와 정확히 같지는 않다. 유사성은 바로 흡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같은 관계가 성립한다. 은유는 일종의 수수께끼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뜻을 유추하기 힘들다. 은유의 장르라 할 만한 시를 두고 새뮤얼 코울리지가 <시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고 막연하게 이해될 때 가장 큰 기쁨을 준다>고 얘기한 것은 바로 이같은 맥락이다. 윌리엄 엠슨은 은유가 가능한 것은 애매성 때문이라고도 했다. 은유는 우리를 당혹하게 하지는 않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유사함을 밝혀 우리를 일깨워주고 매료시킨다.
환유는 원관념을 연상되는 다른 말로 바꾸어 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낸다.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라든가 '십자가와 초승달' 등이 그 예이다. 환유는 상징의 발생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깃발이나 십자가, 베일 같은 상징은 실재를 환기시키는데 상징과 실재가 모두 같은 문화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변하면 상징이 사라지는 것처럼 환유는 확고한 문화적인 관습에서 설득력이 생긴다. 환유는 최근에 들어와 주목받기 시작했다. 환유의 어원인 미토노미아는 '이름을 바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일상 생활 언어에서 은유보다 환유가 더 많이 쓰이고 언어학자들은 환유쪽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20C 미국의 야콥슨은 은유와 환유의 성격을 밝혀내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 학자이다. 그것을 실제 비평에 적용해 문학의 스타일도 은유나 환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밝혀냈다. 18C에서 19C 낭만주의 예술에서는 은유적 성격이 강하고 19C 중엽부터의 리얼리즘 예술에서는 환유적 성격이 강하며 세기말의 문예 사조라 할 상징주의에서는 은유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 장르에 있어 시는 은유적이고 소설은 환유적이며 연극은 은유적이고 영화는 환유적이라 주장한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는 이 둘의 관계가 깊이 연관성을 띠며 상호작용을 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어떤 비유는 은유로 보아야 할지 환유로 보아야 할지 그 경계선이 굉장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메타프토노미라 하며 은유, 환유 동시 성격으로 규정하기도 한다.좋은 예로 밀양 아리랑이 있다.
정든 임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이 경우 입을 벙긋거리는 행위로 웃는 행위를 나타낸 것은 '환유'이나 이것이 행복하다는 마음을 나타내니 '은유'가 되는 것이다. 은유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는 방법이고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은유는 개념 이해의 방법으로 많이 쓰며 환유는 지칭하는데 많이 쓴다. 은유와 환유는 그 역사적 맥락과 연관되는데 한 시대의 환유가 다른 시대 은유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창백한 죽음>이 예전에는 환유였으나 현재는 은유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얼굴 빛이 희게 변하기 때문에 결과로써 원인을 나타내는 환유였으나 추상적 관념인 죽음을 의인화하여 그 얼굴 색깔이 희다고 하는 은유로 현재 쓰는 것이다.
제라르 주네트·새뮤얼 레빈·존 설 같은 이론가들은 환유를 은유의 하위 갈래로 여기기도 하지만 이 둘의 형식에는 차이가 있다. 은유가 유사성에 의존한다면 환유는 인접성에 기초한다. 환유는 은유와 비교하여 인간의 경험적 토대가 크다. 흔히 은유는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고 환유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 강하다. 영국 이론가 호미 K.바바는 최근 은유와 환유를 포스트식민주의 문학 이론에 적용했다. 은유적으로 읽으면 의미의 보편성에 주목하게 되고 환유로 읽으면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이나 특수성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바바에 따르면 피식민지 주민을 문학 작품 속에 재현하는 것은 <차별의 주체, 타자의 역사와 타자의 문화>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유화하면 등가의 원칙을 끌어들이고 이 원칙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추상적 명제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고 염려한다. 이는 다시 말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담론에서 은유가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은유를 폭력의 언어, 환유를 저항의 언어로 볼 수도 있다. 전통적인 제도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환유의 수사적 장치가 적당하고, 영원불변하고 본질적인 것과 연관되는 은유는 기존의 폭력적 성격의 것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것이다. 은유는 모든 현상을 하나로 뭉뚱그려 동일성에 무게를 싣고 환유는 인간을 모든 구체적 현상 속으로 낱낱이 파헤쳐놓는다. 김욱동 교수는 그 예를 문정희의 시 「작은 부엌노래」와 정현종의 시 「부엌을 기리는 노래」로 설명한다. 문정희의 시는 남성 가부장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보이며 환유가 지배적인데 정현종의 시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은유가 많이 쓰이고 있다.
여자들의 권력의 원천인
부엌이여
이타의 샘이여
사람 살리는 자리 거기이니
밥하는 자리의 공기여
몸을 드높이는 노동
보이는 세계를 위한 성단이니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인들
어찌 생선 비린내를 떠나 피어나리오
-정현종 「부엌을 기리는 노래」
부엌에서는 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가는 냄새
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맞추는 냄새
부엌에서는
언제나 바삭바삭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나요
세상이 여린 이래
똑같은 하늘 아래 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큰방에서 큰소리 치고
한 사람은 종신 동침계약자, 외눈박이 하녀로
부엌에 서서
뜨거운 촛농을 제 발등에 붓는 소리.
부엌에서는 한 여자의 피가 삭은
빙초산 냄새가 나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어요
촛불과 같이
나를 태워 너를 밝히는
저 천형의 덜미를 푸는
소름끼치는 마고 할멈의 도마 소리가
똑똑히 들려요
수줍은 새악시가 홀로 허물 벗는 소리가 들려와요
우리 부엌에서는…….
-문정희 「작은 부엌 노래」
정현종의 시에서는 부엌과 관련하여 여러 은유적 표현을 쓰고 있다. 얼핏 보아 찬사로 보이지만, 이 시의 부엌은 사전적 의미와는 상관 없이 희생이나 헌신, 봉사 정신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여성을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응당 봉사라는 추상적 가치로 포장해 가부장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시에도 <사람 살리는 자리 거기이니>와 <밥하는 자리의 공기여>, <생선 비린내>등의 환유가 쓰였으나 대부분의 은유이다. 제목부터 <기리는>이라는 표현은 부엌을 미덕에 견준 은유이다. <권력의 원천>, <이타의 샘>, <보이는 세계를 위한 성단>, <사람 살리는 자리>, <몸을 드높이는 노동>,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 등이 모두 은유이다. 이에 반해 문정희의 시에서는 환유가 두드러진다. 포스트주의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에서는 환유가 많이 쓰이듯 이 작품에도 <삭아가는>, <찌개를 끓이는>,<간을 맞추는>, <빙초산> 냄새 등으로 부엌에서 나는 냄새로 여성의 노동공간을 가리키는 환유적 표현을 썼다. <한 사람은 큰방에서 큰소리 치고>의 <큰소리>, <뜨거운 촛농을 제 발등에 붓는 소리>의 <발등>, <저 천형의 덜미를 푸는 소름끼치는 마고할멈의 도마 소리가 똑똑히 들려요>의 <덜미>와 <천형>등은 모두 여성이 처한 위치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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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라는 개념은 아주 정확히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일반적으로 알레고리는 형상화하려는 대상과 의미 사이가 자의적이다. 또한 세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설명이 가능하며 대개 독자의 성찰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강하다. 바로 첫 번째 특징, 형상과 의미가 자의적이기 때문에 메타포와는 엄연히 구별되며, 이미지와 사물이 여러 특징으로 맞물려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직유와도 다르다. 엘리자베스 프렌첼은 알레고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알레고리는 결코 그 자체로서 가치와 기능을 지니지 않고, 언제나 다른 어떤 것을 지시한다. 형상과 의미는 갈라지고, 교환이 가능하다. 알레고리의 합리주의적 성격에 따라 형상의 자리에 관념이 들어온다. 다시 말해 그 의미는 지적(知的)으로 잡아낼 수 있다. 심볼이 여러가지 색채로 빛나며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알레고리는 개별적인 부분까지 규정되고, 해석될 수 있다. 알레고리는 기호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어서 주석이나 열쇠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그 뒤에 숨어있는 사유영역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 알레고리는 저절로 열리는 법이 없다."
알레고리는 고도의 지적·합리적 추론이 필요하므로 알레고리 텍스트를 해석하려면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념사적으로 보면 알레고리는 언제나 심볼과도 비교된다. 알레고리는 의도와 다르게 말하는 것이고 서술구조에 의존한다. 그러나 심볼은 기호와 의미사이의 친화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페터 뷔르거는 상징과 알레고리를 근대 시민 계급의 발전과 관련시켜 고찰했다. 그는 상징 개념이 기초한 "화해의 패러다임"은 상승하는 시민계층의 낙관적 세계관과 조응하여 "역사의 변화를 지진계처럼 예민하게 그려내던 현대 초기의 작가들"에 의해 공격받았고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알레고리가 현대미학의 발전에 발맞춰 부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호에 자의적 의미를 창작하고 묶어내는 알레고리는 현대적 기법이라는 것이다. 20C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위기 의식 속에서 알레고리는 다시 확산된다. 정신사적으로 보면 알레고리는 현대미학과 존재론적 의기 의식과 관련이 깊다. 알레고리 작가들은 언어 쓰임에 있어 관습화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를 사용한다. 이러한 기호는 서술 문맥과 서술 구조를 항시 함께 고려하는 분석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독자의 능동적인 성찰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확장된 알레고리 개념에는 패러디나 풍자같은 서술 양식도 포함된다.
참고 문헌
김욱동,「은유의 정치학, 환유의 정치학」,『은유와 환유』,민음사, 2000
박성창, 『수사학』,문학과 지성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