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임시 휴교 유감
아침 6시께 일어나 밖을 나가니 비가 참 많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아침보다 더 거센 비다. 이 비를 보니까 문득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 지우가 떠올랐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생들이 학교 가는 건 무리라고 여겨졌고 오늘 임시 휴교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그치기는커녕 더 굳세게 내린다.
아침 8시께 TV를 켜니 부산 여러 곳에 물난리가 났다. 그중 수영교차로도 물에 잠겼다. 수영초등학교 어린이 중 일부는 수영교차로를 지나야 한다. 물인 잠긴 도로를 어린이가 걷는다는 것은 위험한 요소가 많다.
이렇게 장대비가 내릴 때 왜 휴교조치를 하지 않는지 참 답답하다. 내 손녀는 해운대 신시가지에 살고 초등학교가 바로 아파트 옆인데다 통학로가 약간 경사져 빗물이 괼 곳이 없다. 그렇지만 빗줄기가 너무 거세 저학년 어린이들은 우산을 바로 받치고 걷는 것도 힘들 것 같다.
오전10시 TV를 보니 9시20분에 초등학교 휴교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중학교 고교는 여름 방학이 시작됐단다. 하필이면 이렇게 물 폭탄처럼 비가 쏟아지는데 초등학생들은 등교를 하고 중고등학생은 방학이라니 이도 씁쓸한 뉴스다.
더구나 초등학교 임시휴교도 아이들이 집에서 나오기 전에 해야지 아이들이 집을 나온 뒤에 하다니 뒷북 치고는 요란하고 웃기는 뒷북이다. 비는 계속 거세게 내리는데 휴교조치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센 빗속을 힘들게 등교 했는데 등교하자마자 다시 강한 빗속에 집으로 가라고 하니 어린이들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또 집으로 돌아가라는 선생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할까.
더구나 임시휴교 조치로 집으로 가는 도중 불어난 빗물에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책임을 떠나 어린생명을 보호하는 어른들의 자세가 너무 안이하지 않은가.
이왕 등교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 젖은 옷도 말리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오전 11시께가 되니 비는 약간 술지막하다. 12시를 넘긴 뒤부터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고 오후 4시께는 햇살이 쏟아졌다.
이로 미루어 임시휴교 조치는 이래저래 참 잘못됐음에 틀림없다. 다행히 방송이나 신문에 초등학생이 등하교 길에 변을 당했다는 기사가 없어 안도 했지만.
학교 당국자는 아침에 내리는 물대포 같은 비를 보면서 자신의 손자나 아들이 학교 가기가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바로 임시휴교조치를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하지 않을까. 무슨 일이든 결정을 내릴 때 누가 가장 먼저 혜택을 받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혜택 받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중 약자가 많을수록 그 조치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특히 내 손자 같은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 이는 더욱 신속해야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파트 단지는 초등학생들 등교시간이 아침10시로 늦춰 졌음을 8시30분께 알렸고 9시20분에는 임시휴교 조치가 내려졌음을 다시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단독 주택이 즐비한 우리동네에는 이런 조치를 알려주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물론 초등학생들도 8시가 지나면 거의 집에서 나와 학교를 간다.
아파트에 살면 학교에서 내린 조치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단독주택에서는 이를 알 수 없다는 건 형평성은 고사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다. 아파트 사는 사람 대부분이 단독주책 사는 사람보다 잘 살아서 초등학교 등하교까지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갖게 할까 걱정이 된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라 진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이 글에 싣지 않을 수 없다. 학교 교장선생님에게 이런 악천후 등에 대비해 임시휴교의 결정권이 주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어느 초등학교도 휴교조치를 내리지 않아 교육청에서 일괄 임시휴교 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물 폭탄 같은 비가 내리는 데도 임시 휴교령을 스스로 내리지 못한 교장선생님의 생활태도에 영향을 받아 혹시나 우리 아이들이 결단을 내릴 시기에 눈치나 보며 시간을 보내고 엉거주춤 할까 걱정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나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경우 자립은 불가능하다. 자립이 불가능하면 민주주의도 활짝 꽃피고 열매 맺기 어렵다. 장맛비 정말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