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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무 봉을 세워 면허시험장을 만들었다. 잘 돌아야 합격이다. 쓰러뜨리면 안 된다. 과거에 급제한 양 좋아했다. 처진 사람은 다음 기회를 봐야 한다. 필기와 실기를 다 넘겨 면허증 받는 걸 보고 부러워했다. 어쩌면 그걸 받을 수 있을까. 팔이 덜덜 떨려 실기 세 곳을 지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국가시험처럼 어려웠다.
자동차 학원에서 코스 연습을 했다. 그곳을 자로 재서 학교 뒤 운동장에 그려놓고 연습했다. 교실마다 분필 가루를 모아 하얗게 줄을 그었다. 또 을숙도 빈터에서도 운전했다. 새로 생긴 사상면허시험장에서 겨우 합격하니 대단한 기쁨이다. 이리 힘들 줄 몰랐다. 연습하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움직이나.”
버스와 트럭이 좁은 길을 달린다. 덩치 큰 차를 몰다니 대단하고 끔찍하다.
“가득 짐 싣고 갔다.”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다니는 게 신기하다. 차를 다 모나. 특별한 사람만 갖는 줄 알았다. 택시는 직장의 일이고 자가용은 부자가 운전사를 고용해서 모는 것으로 여겼다. 쇠붙이 큰 차가 빨리 달리니 놀란다. 그 철마가 스르르 가는 게 대단하다. 목적지를 단숨에 간다. 사람을 여럿 태우고 다니니 더 가관이다. 이렇게 빨리 가는 차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를 받게 됐다. 운전사는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차를 사 몰아야 한다. 동료 선생 중에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 타 보면 내부 치장을 잘해 향긋하고 번쩍인다. 복잡한 시내 교통신호를 잘 지키며 다니는 것도 뛰어나다. 먼 곳을 여행하는 것도 수월하다. 맘만 먹으면 어디든 쉬 간다. 여러 사람이 타고 짐도 트렁크에 많이 실어 조그만 승용차가 보기보다 당차다.
“차를 가져봤으면”
브리사를 구했다. 붉은 자주색으로 자그만 하다. 골골하는 중고로 오르막을 겨우 기어간다. 옆 동료 안용기 선생이 몰다가 싫증이 나는가 가져가란다. 그걸 몰고 집으로 갔다. 처음 차를 운전하니 날아가는 기분이다. 포근한 것이 여간 안락한 게 아니다. 아이들이 타 보고 핸들을 만지며 툭툭 치고 야단났다. 태우고 집 주위를 몇 바퀴 돌았다.
“이게 우리 차 맞나.”
버스로 동동걸음 출근하다 느긋하게 간다. 천천히 좌우를 보면서 오른다. 복병산 언덕은 힘 드는가 시동이 꺼진다. 줄줄 밀려내려 바닥에서 다시 올라야 한다. 웽하고 힘내야 겨우 넘어간다. 옆에 탄 선생이
“왜 이리 무섭게 모나.”
집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 일을 어쩌나. 급히 조퇴하고 집으로 갔다. 타라 해서 서울 가자 나서니 그 먼 곳을 이 차로는 안 가겠단다.
“기차로 가요.”
내 운전이 불안한가. 안 타겠다고 떼를 쓴다. 장모가 입원했다는데 빨리 가자면 승용차가 낫다 달래여 겨우 떠났다. 몬 지 며칠 안 돼 익숙지 못한 차를 끌고 간다니 기가 차는가. 마음 놓을 수 없단다. 하나도 겁이 안 난다. 잘 됐다 연습도 할 겸 위로도 하니 편리할 데가 있나. 운전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기차는 무슨, 차로 가는 게 얼마나 편한데.”
출발하면서 정비소에 들러 장거리 길 나설 건데 타이어며 윤활유를 봐 달라 했다. 천천히 가면서 휴게소마다 쉬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아낸 무섭다면서도 타 보니 괜찮은가 이내 잠에 빠진다. 초겨울 밤은 춥다. 온풍을 틀어도 떨려서 안 되겠단다.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잠을 잘 수 없다. 소리도 요란하고 졸려서 휴게소에 들어가 한숨 잤다. 자정을 넘으니 적막한 도로가 무서운가 보다.
나도 지쳐 곤하게 떨어졌다. 오슬오슬 추워서 깼다. 배이순 장모가 어찌 됐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달리는데 새벽 안개가 자욱하다. 뒤에서 빵빵하기에 보니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왜 이러는가 세웠더니
“뒤 번호판 불이 꺼졌다.”
만지면 껌벅거리고 온다. 낡아 온전한 게 없다. 서울이 가까우니 가로등이 휘황찬란하다. 길가에 세워 쉬는 운전자에게 서울역 쪽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가다가 굴을 지나고 우로 빠져 어디 어디로 가란다. 굴이 몇 개나 되니 어찌 찾아가겠나. 다시 지나는 경찰차를 불러 물었다. 똑바로 가다가 중앙선으로 붙으란다.
엉거주춤 더듬거리니 가는 꼴이 불쌍했던가. 앞서며 손으로 따라오란다. 경광등을 켜서 따르기 쉽다. 얼마를 가다가 손으로 갓길을 가리킨다. 보니 목적지에 닿았다. 날이 훤히 밝았다. 고맙단 인사도 못 했는데 벌써 어디로 가 버렸다. 서정수와 정보 처남이 밤새 옆을 지켜서 잠 못 잔 퍼석한 모습으로 아침을 들고 있다. 장모는 치료받고 누워계셨다.
배달 오토바이가 급히 가면서 어깨를 부딪쳤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머리를 다쳤으면 어쩌겠나. 맏이는 밥이 안 넘어가는가. 술을 홀짝홀짝 마신다.
“야 용감하다. 금방 면허 따 여길 왔나.”
“정길이 데리러 가자.”
밤새 올라온다고 헤맸는데 철원을 가잔다. 막걸리 광고로 유명한 일동 이동이 나온다. 비포장을 먼지 자욱이 날리며 전방으로 향했다. 거기도 멀다 이정표 따라 끝없이 간다. 이러다 북으로 넘어갈 것 같다. 점심 들고 한숨 자다 오후에 막내 정길 내욀 태워 내려왔다. 그날 밤 내일 출근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
서울 시내를 운전했으니 주행이 좋아졌다. 택시 기사에게 차비를 주고 고속도로 입구까지 바래다 달라 했다. 복도 노란 등불을 보고 잘 따라간다. 한참 가다가 보니 빈 차 등불이 많아졌다. 어느 것인지 몰라 이것저것 따르다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길가에 대고 쉬는 자가용 운전자에게 부탁하니 친구 간인가 얘기하다 말고 앞장서 간다. 우측 손짓으로 빠지란다. 반가운 부산이정표가 보인다. 속도를 내도 고속도로 운전이 안전할 것 같다. 먼 철원을 갔다가 와선가 더 부드럽게 달렸다.
가는데 안개가 심하다. 앞이 안 보인다. 조마조마 천천히 가는데 짐 트럭 꽁무니가 갑자기 나타난다. 급히 우측으로 피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갓길에 대고 한숨 잤다. 잠이 퍼붓는다. 빵- 하더니 경찰차가 와서 여긴 위험하니 빨리 가란다. 막 야단친다. 아득한 부산까진 멀고 멀다. 밤새도록 내려오니 서서히 날 밝아오는 아침이다.
“아아 서울 행차가 끝났다.”
바가지가 있어서 뭣에 쓰는가 했는데 비 오는 날 앞 유리에서 줄줄 한다. 바닥에 빗물을 퍼내는 그릇이었다. 창유리 쇠가 삭아 떨어져서 물이 샜다.
“바지가 다 젖는다.”
접착제를 떡칠하듯 발라 뒀는데 좀 덜하다가 더위에 녹아 또 벌어졌다. 쇠가 삭아 흐물거리고 푸석푸석하다. 정비소에서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차체가 부서진단다. 쇠가 이렇게 종이처럼 됐나. 어찌할 수 없다. 자주 고장 나고 녹슬어 파삭파삭하니, 짧은 날 함께 있다가 정들기도 전에 폐차장으로 가져갔다.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부품을 뜯어내기 위해 겉을 두드렸다.
“그동안 고마웠다.”
어루만지고 돌아서 나오는데 그런다.
“잘 가세요.”
“창문을 번득이며 쳐다본다.”
그런 차를 몰고 여름 겨울 방학 때면 가족을 태워 고향을 찾아갔다. 가다가 고장 나면 어쩌려고 겁도 없이 나다녔다. 경주를 지나 의성, 안동, 봉화를 간다. 적막한 갑령고개는 얼마나 높은지 굽이굽이 올라가야 했다. 높은 산을 골골 몰면 힘 드는가 보다. 열이 펄펄 난다. 강가에 세워놓고 ʻ풍덩풍덩ʼ 목욕하다 식은 뒤 출발했다. 겉은 자주색으로 귀태가 흘렀다.
부모님 모시고 이곳저곳 쉽게 구경시켜 드리는 게 재미였다. 저녁 먹고 바람 쐬자며 문단 쪽으로 갔다. 갑자기 불이 꺼져 깜깜하다. 더 갈 수 없다. 겨우 길가에 대고 보니 사방이 까막눈이다. 밤이 이리 어두운 줄 몰랐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가끔 반딧불이 휘저어 다닌다. 개구리가 그리 요란하게 울어댔다.
“논으로 들어갈 뻔했다.”
손전등을 밝혀 차내를 살폈다. 어디가 고장 난 줄 몰라 이리저리 찾다가 퓨즈를 갈아 끼우고서 불이 켜졌다. 여분을 가지고 다녔다. 부모님은 걱정이 없다. 내가 잘 고치는 줄 알고 느긋하시다. 뒤에서 오순도순 지난 얘기 꽃을 피웠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불이 나가 앞이 안 보일 때 자칫 길 아래로 구를 뻔했다. 겨우 멈춰선 게 고맙지만 철렁하다.
쉬는 시간 둘러앉아 차 얘기 중에 자가용 말이 나오자
“꿀쩍 썩은 구루마가 자가용은 무슨”
“몰풍스럽긴 구루마라니 달구지가 저절로 갈 수 있나.”
사흘이 멀다고 쏘다녔다. 운전하는 게 즐거워 어디든 가자면 밤중에도 나간다. 그런 차가 없어졌으니 견딜 수 없다. 을숙도 텃밭을 하면서 차 믿고 저물어 들어오곤 했다. 이제 어쩔거나. 몰고 싶어 손이 심심하다. 간을 키웠나 차 없이는 불편하다. 시무룩하게 지나니 안됐는가. 아내가
“어디 헌차를 찾아보세요.”
내 눈엔 브리사만 보인다. 하나 구해 몰고 왔다. 역시 검붉은 색이다. 수리점을 차리려나 바퀴를 뺏다 끼우고 엔진오일 넣으며 벨트도 갈았다. 닦고 기름치고 잘한다. 떠들썩한 앞 유리도 일찌감치 폐차장에서 바꿨다. 배기관도 낡아 소리가 생기자 교체했다. 바래진 낡은 도색이 표가 나 한 김에 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붉은 게 새 차가 됐다.
“이 차 이름이 뭐냐.”
“벤츠다.”
비 오는 날 저녁 학원 앞에 대고 딸 기다리는데 옆을 지나는 학생의 말이다. 언양 절 앞 주차장에 들어가 잠시 쉬는데 등산객이 보더니
“이 차가 안 죽고 아직 살아있나.”
“그 양반 멀쩡한 차를‧‧‧.”
같은 차를 산 이상철 친구와 가족을 태우고 개관하는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아갔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울 아래 충청도까지 갔다. 전국에서 모여 북적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잃어버리면 찾기 어려워 앞뒤로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안 보이면 기다렸다가 가곤 했다. 인산인해였다. 여러 관을 관람하는데 긴 줄을 따라가야 한다. 시간이 지체되어 더디기만 하다. 아이들과 삼일운동을 경험했다.
내려올 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부산까지 왔다. 무사히 다녀온 것을 기뻐하고 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똑같은 차가 고물고물 다니니 다들 쳐다본다. 고장 없이 잘 갔다 온 것이 대견하다. 친구는 처음 운전하면서 잘 따라다녔다. 자신감이 생겼는가 또 가잔다. 이 선생도 차 모는 게 힘들지 않고 재밌는가 보다.
“거릿귀신이 붙었다.”
방학이 되자 견딜 수 없는가.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갔으면 한다. 울진 쪽으로 갔다. 작아도 예쁘게 생긴 차들이 귀엽다. 몰아보면 힘없어 빌빌거려도 겉으로 보긴 참하다. 그래서 문지르고 닦으며 광을 내서 다닌다. 하룻밤 자고 보니 더 가고 싶은가 아득한 저 강원도 정선을 가잔다. 여기서 얼마를 더 가야 하고 산길이어서 물어물어 달려야 한다.
“가마득한 멀고 먼 곳이다.”
황지를 간 적이 있다. 친구 이을수 선생과 여름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맑은 정선 시냇물에 목욕했다. 시원하게 흐르는 넓은 강에서 첨벙거렸다. 여러 높은 고개를 넘고 넘다 보니 엔진 주위에서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났다. 끓는 물이 튀고 증기기관차처럼 뿜어져 나왔다. 겁이 나서 그늘에 대고 쉬며 식길 바랐었다. 장성을 지나 황지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보닛이 뜨거워 터질 것 같다.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모르면 물어야 한다. 그 고물차를 끌고 먼 곳을 가니 용감하다. 둘이니 혹시 고장 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두고 한 차로 내려오면 된다. 정선 시장과 화원 계곡을 둘러보고 해거름 해서 내려가려 한다. 생각하니 천 리 길이라 갈 것 같지 않은가. 아낸 짜증을 냈다. 하도 멀어서 집에 가지겠나이다.
“부산 집이 아득하다.”
달래면서 조심조심 내려갔다. 정말 멀다 멀어. 아들은 옆에서 의자를 젖혀 뒤로 누웠다. 아내도 밤이 깊어지니 졸려 모로 잔다. 정처 없이 희미한 불빛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달려간다. 울진 포항 언양 부산까지 오니 새벽이다. 운전을 실컷 했다. 아니 신물이 난다. 집에 들어가니 날이 샌다. 엎드려 곤히 자고 나니 삭신이 쑤셔댔다.
“별 탈 없이 다닌 게 고마워라.”
그래도 며칠 지나면 그때뿐 또 나가고 싶다. 미쳤다. 브리사 친구와 학교 동료 셋이서 가족을 태우고 지리산으로 가잔다. 며칠 전 고생한 건 생각이 없다. 가기로 했다. 지리산 입구에서 만나자 약속이다. 코란도를 모는 한상모 선생과는 한마을이어서 같이 떠났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질 않아서 집으로 했다. 집에도 안 받아 두절 됐다. 길이 엇갈려 헤어졌다.
하는 수 없이 둘만 갔다. 앞서거니 뒤따르면서 달렸다. 골짝에서 하룻밤 잤다. 다음날 성삼재를 넘어 하동으로 내려갔다. 섬진강 기슭에 대고 쉬면서 친구에게 또 전활 했다. 이번엔 통화가 됐는데 입구에서 자고 주위를 돌고 있단다. 도시에 잘 되는 전화가 나서면 이렇게 안 될 수 있다. 정선은 함께 하고 지리산은 갈라서 만나지 못했다. 지리산이 엄청 넓고 웅장하다. 험한 재를 잘 다닌 게 그저 감사하다.
여러 도와 많은 군으로 둘러싸였다. 지리산이 그렇게 방대한 산인 줄 둘러봐서야 알았다. 육이오 때 숨어든 공비들을 소탕하는데 십 년 긴 세월이 걸렸다. 수만 명이 은신했다니 웅장한 산이다. 입구가 하나둘이 아니다. 곳곳에 등산로가 있는 걸 몰랐다. 약속을 잘해야 했다. 두리뭉실하고 흐리멍덩하게 했더니 이렇게 됐다. 내 차를 따르면서 처음 길을 잘도 갔다. 쉴 때마다
“어찌 그리 잘 가냐.”
“오르막도 거뜬히 가네.”
힘이 들어 골골하며 갔는데도 보기에 그런가 보다. 자주 고쳐도 나갔을 때는 괜찮았다. 집 주위나 수리점 가까운 곳에서 멈춰 선다. 정비소에 가기 쉽다. 주인을 고생시키지 않는 차다. 내 손으로 잘 고친다. 더울 땐 자주 문을 열어야 하는데 팔을 쉬게 한다고 창문에 걸쳤다가 푹 내려간다. 올려도 올라오지 않아. 뜯어서 고쳤다. 일일이 정비소에 갈 수 없다. 반 수리공이 돼간다.
“기름 만지는 게 언성스럽구만.”
“고쳐서 움직이는 게 재밌어.”
벌벌 가기는 해도 나 같은 차는 드물다. 역시 차체가 삭아 못 쓰게 됐다. 마침 액셀이 쓸만한 게 있어 샀다. 좋아 보였다. 좀 크고 회색이 그럴듯하다. 여름에 길 나섰다가 비를 만나 진탕을 다녔다. 돌에 비비적거리며 흙이 묻어 형편없다. 거금도 바닷가 해수욕장 마을에서 하룻밤 잤다. 두 대로 넷 집에서 갔다. 이선생, 우선생, 경선생 댁이다.
“자주 가자.”
“방학 때마다.”
자갈 해수욕장으로 아담하고 한산했다. 아낸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아이들처럼 물이 좋은가 ʻ후절펑ʼ 거리며 수영을 즐긴다. 강물과 합치는 곳에서 낚시로 꼬시래기를 잡았다. 한 번에 두세 마리씩 끌려 올라와 재미가 쏠쏠했다. 꽤 굵다. 여기 되겠나 하고 던졌는데 그렇게 많이 잡혔다. 회 치고 끓이며 맛나게 먹었다. 하루 더 묵었다.
“집에 가면 뭐하노 더 있다 가자.”
“무슨 성 마을과 송광사도 가 보자.”
자주 고치긴 해도 그런대로 잘 다녔다. 논문을 지도했던 교수가 차를 학교 운동장에 세워뒀으니 가져가란다. 자기는 탈 일이 없어 그냥 두니 사용하란다. 갑자기 또 차가 생겼다. 부랴부랴 타던 차를 아는 인쇄소에 주고 탔다. 하얀 게 큼직하다. 캐피탈이다. 뽀얀 게 아주 깨끗해 보인다. 안은 넓어 비행기나 기차 자리 같다.
“달구지 말을 듣더니 자가용답다.”
“뭣이 굴러들어온다더니 넝쿨째다.”
덩치가 커 세워두면 안정감이 있다. 백색이 깔끔해 보인다. 어디 다녀도 도드라져 표가 난다. 엉덩이 안테나가 쭉 올라와 치솟은 게 경찰 백차 같다. 그런데 이것도 얼마 못 가 기름이 줄줄 샌다. 뒷좌석을 들어내니 기름통이 보인다. 허술하다. 흘러넘치질 말아야지 제어봉 감지기가 있어 조절하는데도 그렇다. 뜯어고치려 해도 엉성해서 연료가 넘실거린다.
“헌차에 데어 벗겨졌다.”
출렁거려 도로와 바닥에 흐르니 위험해서 다닐 수 있나. 거기다 몸집 큼직한데 흔들림이 있다. 달리다 보면 어지럽게 간들거림이 느껴진다. 세울 때나 시동 켜면 요란하다. ʻ아르르르ʼ나 ʻ삐로로로로ʼ 소리를 지른다. 지나는 사람들이 놀랐다.
“이크 이게 무슨 소리야.”
“차가 노래하나.”
하나하나 고장이 심해지더니 가다가 서길 잘한다. 학교 뒷길은 좁고 경사져서 발동이 꺼지면 오르내리는 차를 막아 낭패다. 다시 켜도 이내 꺼지길 거듭한다. 실실 뒤로 밀려 내려간다. 좁아서 자칫 잘못하면 담을 밀쳐 학교 마당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땐 어찌해야 하나. 브레이크를 오른발로 꽉 밟고 왼발을 꼬아 액셀을 눌러 엔진을 켠다.
얼른 잘 바꿔 발을 붙여야지 울컥하고 또 꺼질 수 있다. 겨우 움직이니 차에 진력이 생긴다. 모는 차마다 고장이 잘 나고 돈도 많이 들어가 힘들다. 고치는 것도 가끔이어야지 맨날 고치다 볼일 다 본다. 최두고 교수가 준 것을 아껴 오래 타려는데도 잦은 멈춤으로 엉거주춤하다. 연료통이 불날까 걱정이다. 그리 엉성하게 만들었을까. 뒤에 앉으면 기름 냄새가 심하다. 엉덩이가 축축한 게 젖어오는 기분이다.
하는 수 없이 폐차하고 소나타를 구해 탔다. 여러 차를 없애니 갖다 버리는 게 익숙하다. 언제 끊겼는지 안 낸 교통 범칙금이 다 나온다.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냈다. 뭣이 날아오면 금방 내곤 했는데 그런 게 있었나. 물먹는 하마가 아니라 돈 먹는 차들이다. 좀 생기면 거기 밀어 넣다가 거덜이 난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눈먼 송아지 엄마 요령 소리 듣고 따른다더니 차 밑에 들어가는 게 엄청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아직 말끔해 잘 다닌다. 새 차 비슷하다. 까만 차여서 고급스럽다. 붉고 회색에다 하얀색, 이젠 검은 차를 몰았다. 골고루 만져 본다. 고물이란 고물은 다 거쳐 간다. 아담한 「이에프소나타」는 퇴직할 때까지 편히 태워준 고마운 차다. 딸 아들이 중고차만 모는 게 안 됐는가 새 차를 사 줬다. 큼직한 그랜저이다.
“팔자에 새 차가 있었나.”
처음은 고치면서 고생해도 즐거웠는데 하도 많이 하니 실증이 생겼다. 새 차는 십 년을 타도 가다가 서는 일이 없다. 기름 넣는 일 밖에 할 줄 모른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자동차 회사에 고맙다. 긁힌 곳에 녹도 슬지 않는다. 에어컨도 쉰내 나는데 그런 게 없다. 달리면 어느 틈바귀에서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데 조용하다. 탄내가 조금씩 나는데 난방도 깔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 차와 외제 차 하는가 보다.
재직 때 이런 걸 몰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다양한 것을 사용한 것이 좋은 경험이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다닌 것이 어딘가. 고장 나도 먼 곳에서 애먹인 일이 없어 고맙다. 캐피탈 준 최 교수 소개로 몽골 울란바토르 국제대학교에 강의를 얻어갔다. 다니자면 눈 덮인 추운 곳이어서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구했다. 십 년 넘게 사용한 일본산 ʻ혼다스트림ʼ이다. 7인승으로 참배 맛같이 사근사근하다.
바깥 한대 세워뒀다가 꽁꽁 얼었다. 밀어도 가지 않고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찍찍 그러기만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말도 안 통해 난감하다. 대학 직원들을 불러 밀고 지하로 가져갔다. 얼마나 뻑뻑한지 여럿이 힘껏 밀어야 했다. 쇠붙이가 차가워 손이 언다. 배터리 충전이 나갔다. 다른 차에 집게로 연결해서 발동시켰다.
“크르릉 걸린다.”
한번은 밤 강의를 하고 나오니 또 얼었다. 밤중에 어쩌나 누굴 부를 수도 없다. 두고 걸어가려니 양복 차림이어서 추위에 힘들다. 마침 옆에 대는 차가 있어서 부탁했다. 손짓으로 하니 알아들었는가 배터릴 쑥 빼 와 시동 걸라 한다. 거꾸로 대더니 걸렸다. 돈을 거절하면서 콧노랠 부르며 어디로 가 버렸다.
“술을 거나하게 들었나.”
밤엔 지하에 대고 낮에는 햇볕을 받게 했다. 수도 주변 가까운 곳을 가 봤다. 톨강 주위가 아름답다. 물 있는 곳이 공원이다. 여름은 짧은데 꽃들이 빨리 피고 씨 맺어야 하므로 땅에 붙어 잔잔히 수다스럽게 올라왔다. 한꺼번에 활짝 웃는다. 앉아서 보면 온 천지가 꽃이다. 깔고 앉았다. 민들레가 팍삭 엎어지고 자빠졌다.
“노란 물통을 쏟아부었다.”
동쪽 고비 사막에 들러보니 풀들이 소복소복 나 있어 뭔가 봤더니 부추였다. 이게 여기 이렇게 많나. 뜯어서 먹었다. 냄새가 맞다. 꽃도 같다. 민들렌 들큼한 게 맛있었는데 이건 써서 못 먹겠다.
“전 부친 정구지가 쓰다.”
나란톨 시장에 가 봤다. 입장룔 받았다. 드넓은 시장을 한 바퀴 도는데 여러 시간 걸린다. 인구 삼백만 중 대부분이 수도에 운집해 산다. 칭기즈칸 때 생활용품도 나오는 것 같다. 사용하던 온갖 구닥다리가 다 모였다.
아파트와 단독이 있지만 잘 사는 사람들이고 아직 옛날 천막 겔에 사는 사람이 많다. 그도 저도 집 없는 사람은 땅속에서 산다. 수도와 온수관이 지나는 곳곳에 구멍이 있다. 얻어먹으며 거기 들앉아 산다. 나라에서 한기를 막기 위해 온수를 보낸다. 들어가 보니 여러 개 방이다. 바깥은 살을 에는데 따스한 훈기가 돌았다.
“저 안쪽은 고참이고 입구 쪽은 신참이 사는 것 같다.”
언어를 배우려고 애썼다. 부적 같은 암호 글은 쓰이지 않고 키릴문자인 러시아 글자를 쓰고 있다. 고려 때 백여 년간 지배했다. 아름답다와 정낭, 하루방, 마마, 김치, 수라 등 아직 그때 사용하는 말이 남았다. 마산엔 지금도 소금을 물에 담가 먹던 몽고간장이 있다.
사는 게 형편없다. 하루가 지루하다. 우리 옛날 모습이다. 선진국에 가야지 이런 델 왔나.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기독교 선교대학이다. 몇 곳 더 있었는데 불교가 센 나라여서 대놓고 전도가 어렵다. 가르치면서 바른 자세와 곧은 언행으로 믿음을 심어줬다. 자비량으로 생활해야 했다. 어려워 굶주리는 선교사도 있다. 매연이 자욱해 살기 어렵다. 석탄과 기름, 나무, 동물 변, 타이어, 플라스틱, 비닐을 마구 땠다. 서울 아들 집에 오니 차를 잘 몰고 있었다.
부모 차를 몰면 사고도 덜 나고 안전하다 일렀다. 보니 차가 찌그러졌다. 주행 중 벽을 들이받아 앞부분이 엉망이 된 것을 수리했다. 졸다가 사고를 냈다. 몸 안 다치길 다행이다. 차만 부서졌는데 원상대로 고쳐놨다. 그래도 잘 간다. 더 좋아진 것 같다. 속도를 내기에 모는 게 늘 불안했는데 덜컥 일내고 말았다. 자신 있는가 몰았다 하면 과속이다.
“얼마나 빠른지 날아가는 것 같다.”
요리조리 피하면서 남보다 앞서야 직성이 풀린다. 이제 정신 차리겠구나. 혼쭐이 났다. 이번엔 부산집에 차를 세워두고 페낭으로 갔다. 삭풍에 옷깃을 여미다가 훈풍으로 풀어진다. 교회 목사가 소개해 줘서 갔다. 차를 몰려니 통행이 다르다. 한 도로에서 교행하는 게 아니라 가고 오는 길이 틀리다. 지난날 영국 연방이어서 우리완 달라 운전하기 어렵다.
“왕이 있는 나라는 거의 좌측통행이다.”
남북으로 기다랗다. 회교국으로 온갖 종교가 다 있다. 육지와 연결된 페낭 대교는 현대에서 시공한 거대한 연륙교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도 고층건물이 있는데 삼성에서 지었다. 중간쯤 40층에 건너는 다리도 만들었는데 자랑스럽다. 나가보면 한국이 잘 살고 선진국인 걸 알 수 있다. 다니는 차가 현대와 대우 기아가 보인다.
“고향 깜둥 강아지를 본 듯 반갑다.”
ʻ소명ʼ과 ʻ창끝ʼ이란 영화를 보니 선교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가련하다. 내가 본 여기는 그렇게 수고하는 것 같지 않다. 다 비용을 들여야 하니 힘이 드는가 보다. 어떤 이는 돈을 벌어서 기독교 마을을 도와주고 있다. 찾아가 보니 사는 게 어렵다. 호숫가 산골짝에 정자같이 움막을 치고 살았다. 아이들이 아기를 낳아 안고 다녔다.
“말레이는 인구 증가를 위해 조산을 봐 주는가.”
코끼리가 다니며 밀칠까 해서 주위 나무숲을 베었다. 먹을 것과 입을 옷가질 갖고 갔다. 약품도 주었다. 사냥과 물고길 잡아먹고 사는 것 같다. 어려워도 노상 웃고 사는 게 불쌍하다. 비는 시도 때도 없이 줄줄 내린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소낙비가 쏟아진다. 그곳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진흙탕에서 뒹굴었다. 추녀에 비 피하는데 한쪽엔 축구 한다고 흙을 덮어썼다.
흠뻑 젖자 이왕 이렇게 된 몸 아이들과 함께 물에 풍덩 풍덩 뛰어들어 세탁과 목욕을 겸했다. 다 차로 다녀야 하는데 동쪽 중부 산악까지 가고 오며 코란도가 수고했다. 야생코끼리가 산기슭에 배설을 아무 데나 했다. 덩어리가 엄청스레 크다. 같은 나무가 넓게 정돈돼 있다. 고무나무와 팜나무였다. 생고무를 만들고 튀김이나 연료로 쓰인다. 사철이 없어 나이를 물으면 잘 모른다. 계절이 없어 맨날 그냥 그날이다.
화단에 흔하게 보던 봉선화와 코스모스, 달리아. 채송화, 해바라기가 이곳의 꽃이었다. 개울에 금붕어도 놀았다. 벼는 일 년에 세 번 짓는데 씨 뿌려 백일이면 먹을 수 있다. 이삭만 베어내고 마르면 태워 뒤집고 물 대서 볍씰 넣었다. 대부분 밀림이고 개간은 얼마 안 된다. 숲엔 뱀, 호랑이 등 맹수가 다니고 낮에 달려든다는 뎅기열 모기가 있어 위험하다. 맹수에 물린 것보다 모기 피해가 더 크다.
여름에 입는 팔 짧은 남방과 세탁할 때 쓰는 가루 세제 사분도 이곳 말이다. 여기 쌀은 풀기가 없어 퍼석하다. 차진 것은 일본과 한국에서 먹는다. 찐득한 음식을 싫어한다. 비싼 두리안을 먹는데 수박 크기이고 굵은 가시가 돋았다. 갈라서 먹으니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약하다. 역겨워 구역질이 올라온다. 삭은 홍어처럼 처음은 먹기 힘들다.
“이름만 예뻤지 썩은 송장 냄새다.”
더워서 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앉아도 덥고 서도 그러니 기를 펼 수 없다. 추운 게 나은 것 같다. 사탕 수숫대를 질겅질겅 씹고 다녔다. 단물 빨아먹는 게 옥수수 수수깡과 비슷하다. 작은 원숭이가 버글버글하다. 음식을 던지니 약삭빠른 놈이 가로채 숲으로 들어간다. 겁도 없이 차도에 나와 무얼 달라는 눈빛이다. 몸집 작은 것들이 어지럽게 나돌아쳤다.
저가 항공기는 인터넷으로 표를 구해야 한다. 두 번 타야 하니 번거롭다. 박 목사가 그걸 끊다니 하며 놀란다. 그래도 혹시 서울 아니 잘 못 타 다른 곳으로 날아갈까 걱정이다. 페낭에서 쿠알라룸푸르 공항까지 사모를 동반시켰다. 나를 데려갔던 김영호 목사는 그곳에 남아 선교 활동을 했다. 평생 추억으로 남을 일이다.
아내와 탁구 치러 강서구 체육공원으로 가다가 공항로에서 신호대기 중 ʻ쾅ʼ 하면서 세차게 뒤를 들이받았다. 내려보니 내차 트렁크는 멀쩡한데 추돌한 차는 앞이 부서져 조각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깨지고 찌그러져 김이 무럭무럭 난다.
“깜박 졸다가 그만.”
“미안합니다.”
설설 빌며 고개 숙였다. 가장자리에 대고 깨진 차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서비스에 가니 비용이 많이 나온다. 당장 안 되고 순번에 밀려 몇 달 뒤여야 한다며 협력 정비소를 소개해 줬다. 대차도 없고 거기 역시 수리비가 만만치 않다. 양순한 가해자에게 보험부담이 될 것 같아 아는 수리점에 갔다. 겉은 들어갔다 나온 게 우그러들지 않았지만 속은 철판이 쑥 들어갔다.
그걸 갈아 넣고 다른 것도 교체해야 한다. 며칠 걸려 고쳤다. 그래도 사고 날은 괜찮은 줄 알고 몰고 가 탁구 쳤다. 아내가 트렁크를 들여다보고 푹 빠져있어서 알게 됐다.
“차도 신기하지.”
“들어갔다 나오나.”
처음 차를 갖고 오니 아들 석주가 야단이다. 타고 들로 산으로 가잔다. 딸 주옥이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내만 돈 많이 들어갈 텐데 뻘쭘하다. 먼저 찾아간 곳이 가지산이다. 가을 단풍으로 물든 알록달록 계곡이 멋지다. 언양 쪽으로 잘 가는데도 빨리 가고 싶은가.
“가는 꼴을 보니 3시 돼야 도착하겠네.
밀려 서행이다. 뒷좌석에서 방방 뛰고 소리 소리치고 노랠 부른다. 조용히 있던 딸도 같이 덩달아 춤추고 노래한다. 엄마는 손뼉 치고
“잘한다.”
구색을 갖춘다. 맞장구 치니 머리가 천정에 닿는다. 꾸물거리는 고물차를 이리 좋아하나. 가는 곳 휴게소마다 쉬어간다. 석남사 앞에서도 한참 쉬었다. 뛰더니 얼음과자를 먹는다. 가족이 좋아하니 더없이 좋다. 진작 이럴 걸 했다. 그렇게 분탕을 치던 석주와 주옥인 벌써 장가들고 시집갔다. 아내와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태우고 목포를 갔다. 말만 듣던 유달산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봤다. 여가수 노래비도 만져 보며 올랐다 내려와 선 밥을 지어 점심을 먹었다. 우중충한 날씨여도 다니니 모든 게 아름답다. 영산강 하구언을 지나며 드넓은 강물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뻥 뚫린다. 차로 찾아가니 이웃이다. 생각만 하면 금방 닿으니 이게 바로 축지법이 아니고 뭐겠나. 도인이 따로 없다.
경기도 성남 딸 집과 서울 광진구 아들 집을 이웃 다니듯 한다. 아내도 운전면허를 얻어 교대로 가니 수월하다. 자다가 바꿔 몰고 간다. 천 리 아니 만 리라도 갈 것이다. 봉화 영주 부모님께도 쉬 간다. 근무 날 빼곤 빤한 날이 없다. 어딜 가도 나다녀야 했다. 이제 나들이 벽이 생겨 들앉아 있질 못한다. 싸다녀야 했다. 단단히 모진 병에 걸렸다.
가끔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는데 뭔가 봐도 잘 모른다. 정비소에 가니 엔진오일이 부족하다. 냉각수가 모자란다. 별것 아닌 게 껌벅거려 걱정이다. 배터리 표시와 벨트도 나타났다가 없어진다. 어떨 땐 여러 개 나타난다. 이것들이 떼거리로 나타나 시윌 한다. 누굴 겁주려나. 석주가 졸다 둑을 들이받고 탁구 치러 가다가 뒷부분이 받쳐 부서졌다.
“골병이 들었나 시들피들하다.”
조금씩 고장이 생기며 빌빌한다. 잘 다닌다 했는데 십 년을 넘기니 늙어서인가 여기저기서 삐거덕거린다. 그래도 닦아놓으면 새 차다. 반짝반짝한다. 어디 갔다 대놔도 덩치가 커 기죽지 않는다. 스르르 나가면 작은 차들이 비킨다. 교회 예배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간다. 마스크하고 악수도 없이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다닌다.
“양복을 걸치다 간편복을 입고 간다.”
점심 같은 건 식당이 문 닫아 안 먹은 지 오래다. 예배 전에 열 재고 소독약 바른다. 이름과 전화번홀 적는다. 떠날 때 또 약 바른다. 앉을 땐 지그재그로 뚝뚝 떨어져서 앉아야 한다. 얼굴을 천 조각으로 막으니 얼른 누군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쳐도 그런가 한다. 그러니 차가 나가면 내 차가 커서 좌우로 비켜섰다.
골병이 든 차는 정신 줄을 놨는가 불이 자꾸 들어온다. 어디가 나빠선가. 없어지곤 해서 무뎌졌다. 철철 소리가 나 밑을 보니 연료통을 감싼 쇠줄이 벗겨졌다.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게 왜 떨어질까. 목욕탕에서 나와 시동을 거니 반응이 없다. 쓰다 달다는 말이 없다. 윤 사장에게 연락하니 이내 와서 배터릴 갈아줬다.
“쌩쌩하다.”
기어가 후진이 안 된다. 탁 막히는 게 들어갈 생각이 없다. 연락하니 몰고 오란다. 기어가 말 안 듣는데 어딜 갈 수 있냐니까.
“전진은 되잖아요.”
말은 그럴듯하다. 앞으로만 가는 차를 어르고 달래듯 끌고 갔다. 중고 기어로 바꿨다. 가다가 선다. 가기 싫단다. 그러길 자주 하니 낭패다. 또 고쳤다. 괜찮더니 계속 그런다. 미안한가 이번엔 꽂았던 걸 빼버리고 아예 다른 것으로 바꿨다. 잘 간다. 폐차하는가 걱정이었는데 잘 됐다. 겨우 고쳐 다니는데 난데없이 덜컥 에어컨이 또 고장 났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뜨신 바람이 쏟아졌다. 더운 날 찬바람 없이 다닐 수 있나.
“떼거리로 고장 난다.”
“아모르 파티”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왜 이러나. 누굴 골탕 먹이려는가. 감천 윤 사장에게 가니 뭐 뭐가 나갔단다. 며칠 내내 고쳐야 했다. 이제 괜찮겠지 서늘한 에어컨을 켜서 다녔다. 가뿐가뿐한 게 잘 나간다. 그럼 그렇지 내 차가 얼마나 좋은데. 내리고선 지붕을 툭툭 쳐서 수고했다고 위로해 줬다.
“더 고랑떼 먹이지 말아라.”
비용이 중고찻값보다 많이 들었다. 크게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부서지게 하는 일이 없었다. 수십 년 안전하게 다닌 건 조심한 것과 운전 솜씨가 좋아서였다는 생각이다. 서울 동쪽 명일동 큰 교회 원로목사의 ‘은혜’라는 설교를 듣고 반성하며 숙연해졌다. 평생 무사고였다는 말에
“천만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였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어린아이를 무슨 수로 피할 수 있나. 뒤에서 들이받는 것을 어떻게 알고 대처하나.
“걸맞은 말씀이다.”
당구 치는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차 태워 가까운 곳을 바람 쐬고 점심 먹는다. 오훈 복식 당구를 한다. 오늘은 내 차례다. 처음은 양촌 이태영 선생 차로 거제도 칠천량 전적지와 가덕도 외양포를 다녀왔다. 몇 달 뒤엔 금산 박정호 차로 웅천도요지를 갔다. 또 청암 구인선 선생 차로 헐고 새로 지은 삼천포 본가를 가 회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웅동 김달진문학관을 둘러보고 성흥사 시원하고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태종대 열차를 타고 수국 축제도 봤다. 산 중턱 태종사가 온통 둥근 꽃 수국으로 덮였다.
수국을 보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아이스크림을 팔기에 예전 그리운 모습이 떠올라 하나씩 물었다. 빙과 장수가 갖고 온 앵무새가 낯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팔에 올라와 목덜미로 다녔다. 얼음과자가 입안에서 붙어버렸다. 당겼더니 입안 살이 찢어져 피가 묻어난다. 처음은 붉은 얼음과자인가 했다. 이렇게 꽝꽝 얼어서 붙을 수 있나. 메고 다니는 예전 ‘아이스케키’ 통인데.
오늘 나는 어디로 갈까 하다가 화명수목원으로 갔다. 공항로를 따라 대동 사장교를 건넜다. 바로 터널을 지나 산으로 올랐다. 보니 산성이다. 중턱에 수목원을 만들었다. 주차장에 대놓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봄날 싱그러운 자연을 맘껏 감상했다. 몰랐던 꽃 이름을 하나하나 살펴 외웠다. 코로나로 실내식물원은 개방하지 않았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가 흐르는 여울물과 함께 귀를 즐겁게 했다. 부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어쩜 공기가 이리 맑나.”
낙동강 강마을에서 어탕 점심을 먹고 떠났다. 더워 에어컨을 켰는데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창문을 내리는데 반쯤 열리곤 멎었다. 비 올 때 돌아가는 창 닦기가 맑은 날 저절로 천천히 왔다 갔다 하다간 중간에 멈춰 섰다. 귀신 들린 것처럼 이상한 짓만 한다.
“빠가사릴 잘 먹었는데”
“가는 게 비실비실하다.”
낙동강 하구언을 넘었다. 하단 오거리를 지나서 괴정 쪽으로 간다. 점점 힘이 없어 골골하는 것 같다. 당구장까진 잘 가야 할 텐데 조심하면서 살얼음 밟듯 갔다. 불안한가. 다 못 가 삼익아파트 앞에서 서둘러 우우 내린다. 천천히 윤 사장 정비소를 찾아가야 했다. 괴정 사거리를 도는데 그만 멎는다. 더 가지 못하고 엔진이 꺼진다. 핸들도 빡빡해 꼼짝 않고 점멸등도 켜지지 않았다.
바로 다대포로 빠지는 지하철 승강기 앞이다. 좀 넓기는 해도 큰 차들이 돌기는 부딪칠 염려가 있다.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간다. 다시 시동 걸려도 먹통이다. 찍찍 소리도 안 난다. 비상등을 켜야 하는데 그것도 말 안 듣는다. 붙였다 뗐다 하는 긴 화물차가 굽어서 돌다가 섰다. 뒷부분이 받칠 것 같은가 가라고 손짓해도 멈칫멈칫한다. 연신 고갤 숙이고
“미안합니다.”
버스도 빙 도는 게 어렵다. 굽실굽실 인사를 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 안에서 승객들이 눈이 휘둥그레 내려다본다. 머리 허연 사림이 동동거리니 누구 한 사람 왜 그러냐 말이 없다. 조금 안쪽으로 대면 좋을 텐데 밀어도 꿈쩍 않으니 이를 어쩜 좋나. 지나는 사람에 도와달라 했다. 선뜻 들어오며 옆 사람을 부른다. 함께 밀었다.
“너무 밀면 노점상을 들이받는다.”
앞바퀴가 턱에 닿아 더 갈 수 없다. 그도 좀 아는가 시동을 걸어본다고 앉았다. 고맙단 말도 못 했는데 어디로 가고 없다. 뒤늦게서야 생각이 난다. 윤 사장에게 도와달라 연락했다. ʻ예ʼ 했는데도 빨리 오지 않아 애태웠다. 갑자기 전화번홀 찾으니 어디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 보험회사 생각이 한참 뒤에 났다.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겪은 뒤에‧‧‧.
수첩에 적어뒀는데 안 갖고 다닌다. 요즘은 전화기에 다 있다. 지명과 좌우 방향을 대니 이내 전화가 왔다. 곧 가겠다며 끊고 기다리니 앵- 하면서 나타났다. 앞에 대고 핸들을 잡아 완력으로 힘껏 꺾었다. 나는 꼼짝 않더니 돌아간다. 밀어 앞바퀴를 올렸다. 정비소에 내려놓고 가 버린다. 비용을 말하지 않고 잘 고쳐 가라며 훌쩍 떠나갔다. 보험사에 빨리 연락했으면 덜 고생했을 텐데 왜 생각이 안 났을까. 바쁘니 둥둥거리고 멍청해졌다.
발전기가 나갔단다. 자동차에 무슨 그런 게 있었나. 그게 왜 갑자기 나갔나. 계기판 불이 왔다 갔다 하더니 벌써 발전을 멈췄는데 남은 충전 힘으로 다녔다. 그것이 중요하대서 새 걸로 바꿔달라 했다. 방전된 것을 보충하고 발전기는 교체한 뒤에 집으로 왔다. 차가 애물단지다. 들어간 게 얼만데 또 말썽인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서 고장 났다. 친구들을 목적지 가까이에 내려 주고 큰길 가에서 멈췄다. 길 가운데 섰으면 어쩔 뻔했나. 부딪쳐 사고라도 났으면 그 낭팰 어찌 감당했겠나. 눈알이 빠져도 그만하길 다행이라 하잖는가. 언제 그랬냐는 둥 멀뚱멀뚱한 차는 주인이 나타나면 방긋방긋 앞 유리가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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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수고하셨서요
한 번 읽었는 것 같은데... 퇴고하셨서요
수필집에서 보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