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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究竟施
云何爲菩薩의 究竟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假使有無量衆生이 或有無眼하며 或有無耳하며 或無鼻舌과 及以手足이라 來至其所하야 告菩薩言호대 我身이 薄祜하야 諸根殘缺이로소니 惟願仁慈는 以善方便으로 捨己所有하야 令我具足케하라하면 菩薩이 聞之하고 卽便施與호대 假使由此하야 經阿僧祗劫토록 諸根不具라도 亦不心生一念悔惜하고 但自觀身이 從初入胎로 不淨微形과 胞段諸根이 生老病死하며 又觀此身이 無有眞實하고 無有慚愧하야 非賢聖物이라 臭穢不潔이며 骨節相持요 血肉所塗며 九孔常流에 人所惡賤이라하야 作是觀已하고 不生一念愛着之心하며 復作是念호대 此身이 危脆하야 無有堅固하니 我今云何而生戀着이리오 應以施彼하야 充滿其願하고 如我所作하야 以此開導一切衆生하야 令於身心에 不生貪愛하야 悉得成就淸淨智身이라하나니 是名究竟施니 是爲菩薩摩訶薩의 第六施藏이니라
"불자들이여, 무엇을 보살의 최후의 보시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가령 눈이 없거나 귀가 없거나 코가 없거나 혀가 없거나 손이 없고 발이 없는 많은 중생들이 이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박복하여 불구자가 되었으니, 바라옵건대 인자하신 이여, 좋은 방편으로 당신에게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시하여 우리의 모든 근(根)이 구족케 해주소서' 하거든, 보살이 듣고는 곧 보시하여 주며, 가령 그때부터 아승지 겁을 지내도록 여러 근(根)이 불구라 하더라도, 잠깐이라도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스스로 관하기를 '이 몸이 처음 태에 들 때부터 부정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러 근을 형성하여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라' 하며.또 관(觀)하기를 '이 몸은 진실하지도 않고 부끄러움이 없어서 성현의 물건이 아니며,
더럽고 불결하여 골절이 서로 연속하고 피와 살이 싸고 있으며, 아홉 구멍에서는 나쁜 것이 항상 흐르는 것이로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잠깐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또 생각하되
'이 몸은 연약하고 위태하여 견고한 것이 아니거늘 내가 무어라고 연연하랴, 마땅히 저들에게 보시하여 그의 소원을 채우리라, 나의 이렇게 하는 것으로 일체중생을 인도하여 몸과 마음에 애착을 내지 않게 하고, 청정한 지혜몸을 얻게 하리라' 하나니, 이것을 최후의 보시라 하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6 보시하는 장(藏)이라 하느니라."
*
구경시(究竟施): 최후의 보시
*
운하위보살(云何爲菩薩)의
구경시(究竟施)오
*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가사유무량중생(假使有無量衆生)이
혹유무안(或有無眼)하며 : 혹 어떤 이는 눈이 없고
혹유무이(或有無耳)하며: 혹은 귀가 없고
혹무비설(或無鼻舌)과: 혹은 코와 혀가 없고
급이수족(及以手足)이라 : 그리고 수족이 없는데
내지기소(來至其所)하야 : 그곳에 와서
고보살언(告菩薩言)호대 : 보살에게 고하되
*
아신(我身)이: 내 몸이 지금
박호(薄祜)하야 : 박복하고, 호(祜)자도 복 호자다.박복해서
제근잔결(諸根殘缺)이로소니 : 모든 근이 구족하지 못하고 손도 떨어져 나가고 눈도 멀고 귀도 어둡다. 그러니
유원인자(惟願仁慈)는 : 오직 원하옵노니 어진 분께서는
이선방편(以善方便)으로 : 좋은 방편으로써
사기소유(捨己所有)하야 : 당신 것을 버려서
영아구족(令我具足)케하라하면 : 나로 하여금 구족하게 하라. 그러니까 장기기증 좀 하십시오. 라는 말이다. 그러면
*
보살(菩薩)이
문지(聞之)하고 : 그 말을 듣고
즉변시여(卽便施與)호대 : 곧 보시를 하되
가사유차(假使由此)하야 : 가령 이것을 말미암아서
경아승지겁(經阿僧祗劫)토록 : 아승지겁을 지날 때까지
제근불구(諸根不具)라도 : 모든 근이 불구하더라도
역불심생일념회석(亦不心生一念悔惜)하고 : 한 생각도 뉘우치거나 아까워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
단자관신(但自觀身)이: 다만 스스로 관하기를 이 몸이
종초입태(從初入胎)로 : 처음 입태할 때로부터
부정미형(不淨微形)과: 아주 부정하고 아주 보잘 것 없는 핏덩어리와. 부정미형이라는 말이 그 말이다.
포단제근(胞段諸根)이: 세포덩어리다. 세포덩어리의 모든 근들이
생노병사(生老病死)하며: 생노병사함을 관한다.
그런 것을 관찰한다는 말이다.
우관차신(又觀此身)이 : 또 관찰한다. 우리 몸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 이 정도 늙었다.
무유진실(無有眞實)하고 : 이 몸이 또 진실한 것이 없으므로
무유참괴(無有慚愧)하야 :참괴할 것도 없고
비현성물(非賢聖物)이라 : 현성의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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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예불결(臭穢不潔)이며: 아주 냄새 투성이고 불결하고
골절상지(骨節相持)요 : 뼈 마디가 서로 서로 보고 서로 의지하고 있고
혈육소도(血肉所塗)며 : 피와 고기덩어리로써 발려서 얼기설기 묶여있는 것이 우리 육신이다.
구공상류(九孔常流)에 :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물이 흘러서
인소오천(人所惡賤)이라하야 :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바다.
작시관이(作是觀已)하고 : 이러한 관을 짓고 나서는
불생일념애착지심(不生一念愛着之心)하며 : 일념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다시 이런 생각을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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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신(此身)이 : 이 몸은
위취(危脆)하야 :연할 취(脆)자다. 아주 위태롭고 연해서 조금만 칼끝에 찔리거나 바늘끝에 찔려도 바로 피가 나고 상처를 입고 교통사고가 나면 사정없이 몸뚱이가 부서진다. 그러니까 위치다. 그래서
무유견고(無有堅固)하니 : 견고함이 없으니
아금운하이생연착(我今云何而生戀着)이리오: 내가 지금 뭐하려고 이렇게 애착하느냐.
‘끽감애양(喫甘愛養)하여도 차신(此身)은 정괴(定壞)요,착유수호(着柔守護) 하여도 명필유종(命必有終)이라’ 우리가 이 구절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우고 듣는다.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에 나오는 말이다.
애착하고 그리워 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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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이시피(應以施彼)하야 : 내가 응당히 저 사람에게 보시를 해서
충만기원(充滿其願)하고 : 그 원에 충만하고
여아소작(如我所作)하야 : 내가 지은 바와 같이 해서
이차개도일체중생(以此開導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을 잘 가르쳐 개도해서
령어신심(令於身心)에 : 몸과 마음에
불생탐애(不生貪愛)하야 : 탐애를 내지 않게 해서
실득성취청정지신(悉得成就淸淨智身)이라하나니:모두가 청정한 지혜의 몸을 얻도록 한다.
값어치 없는 이 고기 덩어리는 보시하고 그 대신에 아주 뛰어난 지혜의 몸, 청정한 지혜의 몸을 얻을 것이다.
시명구경시(是名究竟施)니 : 이것의 이름이 구경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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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육시장(第六施藏)이니라 : 제육시장이니라.
십무진장 가운데 여섯 번째 시장까지 마쳤다.
7, 慧藏
(1) 如實知義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慧藏고 此菩薩이 於色에 如實知하고 色集에 如實知하고 色滅에 如實知하고 色滅道에 如實知하며 於受想行識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集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滅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滅道에 如實知하며 於無明에 如實知하고 無明集에 如實知하고 無明滅에 如實知하고 無明滅道에 如實知하며 於愛에 如實知하고 愛集에 如實知하고 愛滅에 如實知하고 愛滅道에 如實知하며 於聲聞에 如實知하고 聲聞法에 如實知하고 聲聞集에 如實知하고 聲聞涅槃에 如實知하며 於獨覺에 如實知하고 獨覺法에 如實知하고 獨覺集에 如實知하고 獨覺涅槃에 如實知하며 於菩薩에 如實知하고 菩薩法에 如實知하고 菩薩集에 如實知하고 菩薩涅槃에 如實知하나니라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지혜로운 장(藏)이라 하는가. 보살은 색(色)을 사실대로 알고, 색의 집(集)을 사실대로 알고, 색이 멸(滅)함을 사실대로 알고, 색이 멸하는 도(道)를 사실대로 알며, 수. 상. 행. 식(受想行識)을 사실대로 알고, 수. 상. 행. 식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수. 상. 행. 식이 멸함을 사실대로 알고, 수. 상. 행. 식이 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알며, 무명(無明)을 사실대로 알고, 무명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무명이 멸(滅)함을 사실대로 알고, 무명이 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알며, 애(愛)를 사실대로 알고, 애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애가 멸함을 사실대로 알고, 애가 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알며, 성문(聲聞)을 사실대로 알고, 성문의 법을 사실대로 알고, 성문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성문의 열반을 사실대로 알며, 독각(獨覺)을 사실대로 알고, 독각의 법을 사실대로 알고, 독각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독각의 열반을 사실대로 알며, 보살을 사실대로 알고, 보살의 법을 사실대로 알고, 보살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보살의 열반을 사실대로 아느니라.“
*
혜장(慧藏): 혜장을 설하다
*
지혜의 무진장이다.
*여실지의(如實知義): 지혜로 모든 법을 사실대로 알다
*
사실과 같이, 존재의 실상과 같이 여실하게 안다는 뜻이다.
*
불자(佛子)야
하등(何等)이
위보살마하살(爲菩薩摩訶薩)의
혜장( 慧藏)고 : 지혜의 무진장이냐
*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어색(於色)에 : 색, 물질, 이 몸뚱이를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안다. 실상과 같이 안다. 사실대로 안다. 허망하지만 이렇게 분명히 있고, 분명히 있으면서도 또 순식간에 사라질 허망한 몸이다.
그 양쪽을 어디도 치우치지 않고 제대로 아는 것이 여실히 아는 것, 중도적으로 아는 것이다.
앞에서도 중도 이야기를 했지만 여실히 안다는 것은 중도적으로 아는 것이고, 사실대로 실상대로 아는 것이다.
너무 몸뚱이에 집착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뚱이를 함부로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이 몸에 대한 중도적 관념이다.
*
내가 전에 봉암사 선방에 있을 때 어떤 수좌가 대중들이 공양할 때는 공양을 안하고 있다가 나중에사 설거지 할 때 가서 공양을 했다. 그것도 남은 음식, 지난 음식, 어제 먹던 것만 거둬가지고 먹는 것이다.
그 맘이야 오죽 좋은가.
그런데 그것은 자기 몸을 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먹고 입고 하는 것을 몸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좋은 일만 한다고 그렇게 하는 스님이 있었다.
나중에 그 스님은 송광사 선방에서도 같이 있었는데 화두가 제대로 안되니까 내가 부전을 보던 관음전에 와서 법당 마루에 머리를 쾅쾅 찧어서 피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성의를 다해서 열심히 정진을 했다.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는가 모르겠다.
이 육신에 대해서 색에 대해서 여실히 알고
색집(色集)에 :이 육신이 모인 그 원인이다. 집(集)은 육신의 원인이니까 거기도
여실지(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색멸(色滅)에 : 이 육신이 소멸하는 데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알고
색멸도(色滅道)에: 색이 소멸하는 데 대한 도(道) 역시
여실지(如實知)하며:여실히 알고
어수상행식(於受想行識)에: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안다.
색수상행식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수상행식집(受想行識集)에: 수상행식의 집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여실히 알고
수상행식멸(受想行識滅)에 : 수상행식의 멸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수상행식멸도(受想行識滅道)에 : 수상행식을 소멸하는 도 팔정도라고 할지 거기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며: 여실히 알며
어무명(於無明)에 : 무명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알고
무명집(無明集)에
여실지(如實知)하고
무명멸(無明滅)에
여실지(如實知)하고
무명멸도(無明滅道)에
여실지(如實知)하며
어애(於愛)에 : 애에 대해서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알고
애집( 愛集)에 : 애의 집에 대해서
여실지(如實知)하고
애멸(愛滅)에 : 애의 멸에 대해서
여실지(如實知)하고
애멸도(愛滅道)에 : 애의 멸도 대해서
여실지(如實知)하며
어성문(於聲聞)에
여실지(如實知)하고
성문법(聲聞法)에
여실지(如實知)하고
성문집(聲聞集)에
여실지(如實知)하고
성문열반(聲聞涅槃)에
여실지(如實知)하며
어독각(於獨覺)에
여실지(如實知)하고
독각법(獨覺法)에
여실지(如實知)하고
독각집(獨覺集)에
여실지(如實知)하고
독각열반(獨覺涅槃)에
여실지(如實知)하며
어보살(於菩薩)에 : 보살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알고
보살법(菩薩法)에
여실지(如實知)하고
보살집(菩薩集)에 : 보살이 보살이 되게 된 원인 그것이 집(集)자다. 거기에 대해서도
여실지(如實知)하고 : 여실히 알고
보살열반(菩薩涅槃)에
여실지(如實知)하나니라 :여실히 안다.
이것이 지혜다. 지혜의 장은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것이다.
(2) 自利
云何知오 知從業報諸行因緣之所造作은 一切虛假하야 空無有實하야 非我非堅固며 無有少法可得成立이니라
"어떻게 사실대로 아는가. 업을 지어 과보(果報) 받는 일과 행(行)의 인연으로 짓는 것임을 알며, 온갖 것이 허망한 것이어서 공하고 실지가 없음을 알며, '나'도 아니고 견고한 것도 아니며 조그만 법도 성립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
자리(自利): 사실대로 아는 뜻을 해석하다
*
운하지(云何知)오 : 어떻게 여실히 안다고 하느냐. 아는 것을 여기 이야기 해놓았다.
다음에 나오는 이 두 줄이 중요하다.
지종업보제행인연지소조작(知從業報諸行因緣之所造作)은:업보와 모든 행위의 인연으로 조작한 바 지은 바는
일체허가(一切虛假)하야 : 일체가 다 헛것이고 거짓이다.
공무유실(空無有實)하야 : 그리고 텅 비어서 실다운 것이 없다. 왜냐 업보이기 때문이고 모든 행위의 인연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비아비견고(非我非堅固)며 : 인연으로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일체허가이고 공무유실이다. 실다움이 없다.
그래서 아도 아니고, 견고함도 아니며
무유소법가득성립(無有少法可得成立)이니라 : 조그만 법도 가히 성립될 게 없다.
뭐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
뭐가 그러면 제대로 됐느냐?
내가 늘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당체,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승(僧)도 아니고 속(俗)도 아니고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하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있는 참사람, 차별이 없는 참사람이다.
승이다 속이다 남자다 여자다 그런 차별이 없는 당체가 바로 차별없는 참사람이고 주체다. 주인공이다.
그것은 조작이 아니다.
그걸 참나라고 하고 참사람이라고도 하고 참마음이라고도 하고 진여자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은 조작한 것도 아니다. 인연으로 생긴 것도 아니다.
인연으로 생긴 것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어차피 인연의 힘이 다하면 없어진다.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힘줘서 당겨 쏘았는데 10미터 올라가고 20미터 올라가고 30미터 내지 100미터를 올라간다 하더라도 화살을 당겼던 인연의 힘이 떨어지면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것으로는 답이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해서 쌓았든 답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조작을 떠나고 인연을 떠나고 업보를 떠난 참사람, 차별없는 참사람, 지금 아무 조건과 차별없이 이 말을 듣고 있는 그 당체, 실체, 그 하나만을 가지고 불교는 큰소리치는 것이다.
특히 선불교는 이거 하나 가지고 큰소리친다.
어느 종교 어느 철학도 이거 가지고 큰소리치는 종교, 철학은 없다. 그것은 당장 눈앞에 있다. 어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서방정토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이렇게 역력고명하다.
지금이 49재를 지내는 철인데, 49재는 왜 지내느냐? 바로 역력고명한 그 한물건 때문에 지내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다 허망한 것이다.
인연, 업보 온갖 수행 그리고 모든 행의 인연으로 조작된 것은 일체가 허가(虛假)다. 공해서 실다운 것이 없다. 아주 작은 먼지만한 것도 성립될 것이 없다.
그러나 역력고명(歷歷孤明)한 그 한 물건은 이 우주를 꽉 채운다. 지금 이 순간도 우주를 꽉 채우고 있다.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3) 利他
欲令衆生으로 知其實性하야 廣爲宣說하나니 爲說何等고 說諸法不可壞니라 何等法이 不可壞오 色不可壞며 受想行識이 不可壞며 無明이 不可壞며 聲聞法獨覺法菩薩法이 不可壞니라 何以故오 一切法이 無作無作者며 無言說無處所며 不生不起며 不與不取며 無動轉無作用이니라 菩薩이 成就如是等無量慧藏하야 以少方便으로 了一切法호대 自然明達이요 不由他悟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실다운 성품을 알게 하기 위하여 널리 연설하느니라. 무엇을 말하는가. 법을 파괴할 수 없음을 말하느니라. 무슨 법이 파괴할 수 없는가. 색을 파괴할 수 없으며, 수. 상. 행. 식을 파괴할 수 없으며, 무명을 파괴할 수 없으며, 성문법. 독각법. 보살법을 파괴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법이 지은 것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함께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동(動)하는 일도 없고 작용도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렇게 한량없는 지혜로운 장을 성취하고, 조그만 방편으로 온갖 법을 아나니, 자연히 분명하게 아는 것이요, 다른 이로 인하여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
이타(利他): 실다운 성품을 알게 하려고 법을 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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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령중생(欲令衆生)으로 : 중생으로 하여금
지기실성(知其實性)하야 : 여기 실성이 나온다. 실다운 성품을 알아서
광위선설(廣爲宣說)하나니: 널리 설명한다.
내가 늘 걸핏하면 무위진인 차별없는 참사람을 가지고 이야기 하듯이 참마음, 참나, 참사람, 진여자성, 법성, 불성 이 다 같은 의미다. 쉽게 말하면 한마음이다.
그 실성을 가지고 실성을 알아서 널리 설명하나니
*
위설하등(爲說何等)고 :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설제법불가괴(說諸法不可壞)니라 : 제법은 가히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등법(何等法)이 : 무슨 법이
불가괴(不可壞)오: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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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불가괴(色不可壞)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불가괴(不可壞)며
무명(無明)이
불가괴(不可壞)며
성문법독각법보살법(聲聞法獨覺法菩薩法)이 : 성문법 독각 법 보살법이
불가괴(不可壞)니라:불가괴다.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바람이 불어서 바다에 무수한 물결들이 일어난다.
그 물결의 모양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 한방울의 물을 떠서 보면 물이라고 하는 그 실체는 변함이 없다. 불가괴다.
물결은 순간순간 변하므로 무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물이라고 하는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색수상행식이니 성문연각 보살법이니 하는 것이 불가괴라고 하는 것은 그 실체 그 실상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물이 어떻게 생겼다, 파도가 크다 작다 세수대야의 물이다 컵에 떠있는 물이다 이걸 가지고 논할 것이 아니고 컵의 물이나 세수대야의 물이나 바께쓰의 물이나 전부 물이라고 하는 실체에 대해서는 영원한 것이고 변함이 없는 것이고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하이고(何以故)오
일체법(一切法)이
무작무작자(無作無作者)며 : 지음도 없고 짓는 자도 없으며
무언설무처소(無言說無處所)며
불생불기(不生不起)며 :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아니하며
불여불취(不與不取)며 : 주는 것도 아니고 취하는 것도 아니며
무동전무작용(無動轉無作用)이니라 : 무동전 무작용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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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성취여시등무량혜장(成就如是等無量慧藏)하야 : 이와 같은 한량없는 지혜의 무진장을 성취해서
이소방편(以少方便)으로 : 작은 방편으로써
요일체법(了一切法)호대 : 일체법을 요달하되
자연명달(自然明達)이요 : 자연히 저절로 깨달아 아는 것이고
불유타오(不由他悟)니라 :불유타오다.
중요한 말이다.
일체법을 요달하되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고 자기속에서 아는 것이다. 남이 아무리 귀가 닳도록 천번 만번 억만 번을 알려줘도 아무 소용이 없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하나의 작은 인연은 될 수가 있어도 결국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 속에서 느끼고 알고 깨닫는 것이지 다른이의 깨달음을 말미암지 않는다.
다른 이를 말미암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답이 다 있다. 자기 속에 답이 다 있다. 불유타오다.
불교의 가르침은 위대하다.
이런 것이 위대한 것이다.
(4) 十種不可盡
此慧無盡藏이 有十種不可盡일새 故說爲無盡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多聞善巧가 不可盡故며 親近善知識이 不可盡故며 善分別句義가 不可盡故며 入深法界가 不可盡故며 以一味智莊嚴이 不可盡故며 集一切福德에 心無疲倦이 不可盡故며 入一切陀羅尼門이 不可盡故며 能分別一切衆生語言音聲이 不可盡故며 能斷一切衆生疑惑이 不可盡故며 爲一切衆生하야 現一切佛神力하야 敎化調伏하야 令修行不斷이 不可盡故니 是爲十이니라
"이 지혜의 무진장은 다할 수 없는 것이 열 가지가 있으므로 무진(無盡)이라 말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많이 들어 공교함을 다할 수 없으며, 선지식을 친근(親近)함을 다할 수 없으며, 글귀와 뜻을 잘 분별함을 다할 수 없으며, 깊은 법계에 들어감을 다할 수 없으며, 한결 같은 지혜로 장엄함을 다할 수 없으며, 온갖 복덕을 모으되 고달픈 마음이 없음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 다라니문에 들어감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중생의 말과 음성을 능히 분별함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중생의 의혹 끊음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중생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실력을 나타내어 교화하고 조복하며 수행함이 끊어지지 않게 함을 다할 수 없는 연고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
십종불가진(十種不可盡): 지혜의 무진장은 열 가지 다함이 없다
*
차혜무진장(此慧無盡藏)이 : 이 지혜의 무진장이
유십종불가진(有十種不可盡)일새: 열 가지 가히 다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이니
고설위무진(故說爲無盡)이니: 그래서 무진이라고 말한다.
*
하등(何等)이
위십(爲十)고
소위다문선교(所謂多聞善巧)가 : 소위 많이 듣는 능력, 많이 듣는 기술, 많이 듣는 선교방편, 많이 듣는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많이 듣는 능력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고다.
우리가 들으려면 얼마든지 듣는다. 다문이 참 중요하기 때문에 첫 번째로 나온 것이다.
이런 더운 날에 여러분들이 먼길을 이렇게 오신 이유도 무엇인가? 한마디라도 법에 대해 들으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문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삼혜(三慧)가 문(聞) 사(思) 수(修)다. 듣고, 사유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 수는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 문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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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선지식(親近善知識)이 : 선지식을 친근하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이다.
궁극의 선지식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 다음으로는 이 화엄경 같은 가르침이 훌륭한 선지식이다.
선분별구의(善分別句義)가: 경전의 한구절, 그 구절에 담겨 있는 뜻을 잘 분별하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이다.
입심법계( 入深法界)가 : 깊은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불가진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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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미지장엄(以一味智莊嚴)이: 한 맛의 지혜로 장엄한 것, 전부 지혜로 장엄한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이다.
다른 복덕이니 유루복은 복이 좀 있다한들 몇 푼어치 안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간혹 생활하는데 약간 편리할 뿐 부러워할 것이 없다. 호텔에서 잘 것을 여관에서 자면 되고, 비싼 차 타지 말고 중고차 1500cc쯤을 타면 되고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거기에 찔리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대신에 지혜로 무장해야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 이 지혜로 무장해놓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다. 나는 무장이라는 말을 가끔 쓰는데 무장 보다는 장엄이 더 좋겠다. 지혜로써 장엄해 놓으면 아름답기 이를 데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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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일체복덕(集一切福德)에: 일체 복덕을 모으는데 있어서
심무피권(心無疲倦)이: 전혀 마음에 피로함이 없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고며
입일체다라니문(入一切陀羅尼門)이 : 일체 다라니 문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이며
능분별일체중생어언음성(能分別一切衆生語言音聲)이: 중생의 온갖 음성을 분별하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이다.
중생의 온갖 음성을 분별하는 데 다함이 없다.
무슨 4개국어, 5개국어가 문제가 아니고 닭소리 새소리 개소리도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정오에는 닭이 울고 저녁에는 왜 우는지, 닭은 닭대로 뜻이 있을 테니까 그것까지도 다 알아듣는 것이다. 그런 소리를 하면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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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단일체중생의혹(能斷一切衆生疑惑)이 : 일체 중생들의 의혹을 능히 끊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며 : 불가진고며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을 위해서
현일체불신력( 現一切佛神力)하야 : 일체 불신력을 나타내서
교화조복(敎化調伏)하야 : 교화하고 조복해서
영수행부단(令修行不斷)이 : 하여금 수행을 끊지 않게 하는 것이
불가진고(不可盡故)니 : 불가진고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5) 慧藏의 利益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七慧藏이니 住此藏者는 得無盡智慧하야 普能開悟一切衆生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7 지혜로운 장이라 하나니, 이장에 머무는 이는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어 일체중생을 널리 깨우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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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장(慧藏)의 이익(利益): 지혜의 장에 머무는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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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칠혜장(第七慧藏)이니 : 제7 혜장이니
주차장자(住此藏者)는 : 이 지혜의 장에 머무는 자는
득무진지혜(得無盡智慧)하야 :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보능개오일체중생(普能開悟一切衆生)이니라 : 결국 내가 얻자고 하는 것은 일체 중생을 능히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가 선행을 했다든지 깨달음을 얻었다든지 하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동참하게 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이다. 『108자재어』의 제일 뒤에 보면 ‘선행하는 것을 알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라고 했다.
우리는 상 낸다고 자꾸 오해를 하는데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보상을 받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서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 문수경전연구회에서도 공양 들어온 것을 자꾸 알리는데 알리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 중에는 자기가 공양올린 것을 극구 못알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알리는 것이 좋다. 알려서 다른 사람 동참하게 하고, ‘참 훌륭한 일이다’ 하고 환희심을 내게 하는 것이지, ‘내가 공양 얼마 냈으니까 나를 대접해주세요’하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읽고 나서 나는 ‘우리가 너무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였다.
우리는 알리는 것을 상낸다 라고만 편협하게 알고 있었는데 결코 상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안된다고도 나와있다.
여러사람에게 알려서 같이 환희심을 일으키게 해주는 것, 같이 동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니 여러분도 무슨 좋은 일을 한다면 소문을 많이 내기 바란다.
‘아 이번에 내가 이걸 했다.’고 꼭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을 ‘좋은 일 조금 해놓고 상냈다’ 라고 볼 건 아니다.그 사람이 좋은 일 해놓고 대가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냥 알릴 뿐이다. 그런 내용이다.
날씨도 더운데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보살의 원력
“도행스님, 도행, 왜 가? 조금 이따가 가.”
큰스님께서 다른 스님들과 이야기 하시다가 절만하고 물러나시는 도행스님을 불렀다.
“잘 있었어? 몇 번 못봤나?”
“네 두 번 결석하게 됐습니다. 도반이 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시킨다고.”
“거봐 내가 착착 안다고 사중에 별고 없고?”
“사중에 지금 안 있습니다. 경주에 있습니다.”
“스님들 여럿 있는데? 방 얻었어?”“입원한 도반 방에 있습니다. 도반이 암 말기였는데 좋아졌어요. 의사가 처음에는 환자 품위 갖춰서 죽게끔 준비하자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준비했거든요. 그런데 1차 여섯 번 항암치료하고 의사가 ‘스님 희망이 생겼어요. 제가 희망을 갖고 싶어요. 한 3번 더합시다.’ 하더라고요. 간 뒤에 붙어 있던 것도 거의 다 녹아버리고 흔적만 있대요. 그래서 고거 마저 한 세 번 더 녹이면 가능하겠다고 모레 다시 입원시켜야 해요.”
“음 잘 됐네. 경주 동대 병원에?”
“네. 사람 먼저 살려야 되니까. 그래도 혼자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어요. 요즘 광명각품 보고 있습니다.”
“책을 이렇게 잘해놨으니 공부하기 좀 좋나. 도행스님은 이제 회상을 열어서 좀 가르쳐야 돼”
아마도 큰스님은 이 말씀을 하려고 도행스님을 부르신 모양이었다.
도행스님이 한숨처럼 대답하셨다.
“아이고 스님, 그냥 편하게 살래요. 편하게 그냥 공부 열심히 하다가 인연 닿으면 하고.”
“보살이 원력이 있어야지.”
큰스님 말씀에 도행스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보현보살 원력으로 차츰차츰 해야죠. 요번엔 시간이 있길래 여기 갔다 와야겠다 해서 왔습니다.”
“도반이 그렇게 중병이 걸려가지고 있으니. 간병도 보살행이라.”
“강원 도반인데 소임 내놓고 시기가 잘 맞았어요. 소임을 살면 간병을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니까요. 그래도 희망이 생겨서 간병하는 사람도 좋고, 받는 사람도 좋고 그렇습니다. 다음에 조금 더 해놓고 결석 안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도행스님이 물러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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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선원에 늘 듣는 화엄경 약찬게 소리가 빈 방에 가득했다.
“혜명화 사인하자.”
하고 큰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17권의 속지를 펼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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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책상마다 ‘눈 속의 발자국’이라는 책이 올려져 있다.
‘눈 위에 발자국이 아니라 눈 속의 발자국이라니?’ 자세히 보니 영어 제목에도 ‘Footprints in the snow' 라고 써져있다.
큰스님이 법고산사에서 한 권 얻어오셔서 1년새 5만권이나 찍어서 법보시 하신 ‘108자재어’를 쓴 성엄스님의 자서전이라고 했다.
큰스님은 이 책에 대해서 법회 때 설명해 주실거라고 했다.
언제나 초발심
보살의 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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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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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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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