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어떻게 다룰수 있을까?
사랑, 행복, 기쁨만 내 안의 감정이 아니다. 불안도 내 안의 감정이다. 뇌과학자인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어 불안은 진화의 산물이며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의 모호함과 불명확함을 다루기 위해서 우리의 몸은 '불안'이라는 상태와 감정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면하면 될까? 상자 속에 넣고 꽁꽁 잠가버리면 될까? 아니다. 불안은 그런 대상이 아니다. 딛고 일어선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어느 틈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아이러니하게도 회피하거나 감추려 할 때 불안은 점점 더 커진다.
그런데 불안은 언제 왜 생겨날까? 불안은 앞일을 예측할 때 생겨난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불명확해서, 그 일이 언제 일어날지 불명확해서, 만약 일어났다면 언제 끝날지 불명확해서, 그리고 그 일이 닥쳐왔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불명확해서 생기는 것이다. 결국 불안은 인간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부터 함께 살아온, 만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찾아오는 존재 같은 것이다.
그림책 '불안'은 "이제 난 그것을 만나 볼 거야"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불안을 ‘때때로 나를 어지럽히고, 무섭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저 아래로 사라져버리고, 또다시 나타나는 그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구멍 위로 올라와 있는 파란 끈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끈을 위로 잡아당긴다. 엄청난 줄다리기 끝에 만난 건 엄청나게 큰 보라색 새였다. 부리부리 노란 눈에, 커다란 꽃분홍색 부리는 어찌나 심술궂게 생겼는지, 그런데 파란 끈의 다른 한쪽이 커다란 새 다리에 묶여 있다.
불안 그림책에 등장하는 ‘커다란 새’는 이야기 치료의 창시자인 화이트 박사가 고안한 ‘외재화 대화(externalized conversation, 外在化對話)’ 기법과 유사하다. 외재화는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불안을 밖으로 끌어내어 ‘커다란 새’로 객관화시킴으로써 불안이라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룰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불안’을 분리시킴으로써, 불안의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적 이야기(alternative story)를 발견하는 것이다.
맞닥뜨린 새가 커서 놀라, 숨지만 계속 나를 쫓아온다. 도망치다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왜 끈을 잡아당겼을까 후회하다가 잠이 들지만, 깨어 보니 여전히 옆에는 파란 끈이 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끈을 잡아당긴다. 문을 열어보니, 커다랗던 새가 어느새 나보다 더 작아진 것이 아닌가? 빙고! 계속 나를 따라다니지만 이제 싫지만은 않다. 아직은 두렵지만 이제는 작아진 불안이라는 새와 얘기도 할 수 있다. 잠든 새를 쳐다보며 ‘어쩌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다리에 묶인 파란 끈을 풀어준다. 어쩌면 불안도 나라는 사람에게 묶여 오도 가도 못했던 건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우르릉꽝! 번개가 친다. 깜짝 놀란 나와 불안은 서로 끌어안으며 “괜찮니?”,“응 괜찮아!” 말한다. 불안과 친구가 된 순간이다.
2021년 12월의 마지막 날, 불안 그림책의 저자인 조미자 작가를 만났다. 선물로 건네는 불안 그림책 면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에게 위로받는 나의 감정!', 그렇다. 물론 처음에는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옆에 가만히 다가가서 불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 기분과 느낌을 들려줄 때, 나와 불안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받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다. 그 시작은 '이제 난 그것을 만나 볼거야‘다짐하고, '끈'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쩌면 여러분도 마음속 그 '끈'을 잡아당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지도 모른다. 홧팅!
첫댓글 작년에
조미자작가님의 그림책전시를 개최하였는데 그 때 작가님의 작품중
걱정상자와 불안의 새 깃털에 대해
작가님과 주고 받았던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커다란 새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풀렸네요^^
불안의 끈을 천천히 당겨봐야겠어요~
그러셨군요^^ 작가님은 오리를 그리셨다는데..저는 그냥 커다란 도도새로 보여서..
이 글 쓰고 난 다음에 파란끈 풀러주는 것 때문에, 작가님과 잠깐 통화했는데, 그때 작가님이 저 새를 '오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제눈엔 도도새처럼 보여서ㅋ ㅋ 그냥 새로 두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