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사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390 비로사
비로사(毘盧寺)는 신라말 고려초의 명승 진공대사(眞空大師)가 다시 지은 유명한 사찰이다.
이곳에는 2구의 불상이 있는데 원래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광배는 깨진 채 버려졌다.
높이 1.13m의 아미타불은 원만한 얼굴과 당당한 어깨로 현실적 사실주의가 잘 반영되어 있다.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싼 형태이며,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바닥을 위로 하고 양 손의 엄지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높이 1.17m의 비로자나불은 단정한 얼굴과 안정된 신체의 형태로
아미타불과 같이 현실적 사실주의를 잘 나타내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얇게 빚은 듯한 평행계단식 주름으로 자연스럽게 보인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모양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모양이다.
두 불상은 단아하면서도 선의 특징, 몸의 자세 등이 대체적으로 9세기 후반 석불과 비슷하고,
동시에 나란히 아미타·비로자나불이 같이 있다는 점에서
9세기 통일신라 화엄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라 하겠다.
희방사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는 희방사(喜方寺), 희방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두운조사가 창건했다.
호랑이가 물어온 경주 호장의 딸을 살려주고, 그 보은으로 시주받아 창건한 사찰이란다.
절 이름도 은혜를 갚아 기쁘다는 뜻의 희(喜)에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方)을 붙여 희방사라 칭하였단다.
1568년(선조 1)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625전쟁으로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
희방사에는 훈민정음 원판과 월인석보 원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지금은 조선 영조 때 만들어진 희방사 동종이 유명하다.
1953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에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226)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희방사에는 현재 대웅전이 2채가 있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이 최근에 지어진 대웅보전이고,
작은 다리 건너의 아담한 건물이 본래의 옛 대웅보전이다.
옛대웅보전 오른쪽에는 종루가 있다.
동종(경북유형문화재 제226호)은은한 종소리로 유명한 희방사 동종은 비교적 안정감이 있고,
조선 후기 범종의 한 유형인 혼합형식의 종으로, 전통적인 수법에 외래 요소인 쌍룡의 용뉴와 띠장식이 합해져 있다.
이 동종은 원래 조선(朝鮮) 영조(英祖) 18년(1742)에 주조(鑄造)된
충북(忠北) 단양(丹陽) 대흥사(大興寺) 종으로 승장(僧匠)인 해철(海哲)과 초부(楚符) 등이 제작한 중종(中鐘)이다.
형태는 쌍룡(雙龍)의 종뉴(鐘) 아래 포탄형의 종신(鐘身)이 연결되었는데,
그 외형선은 볼록한 종정(鐘頂)으로부터 구연부(口緣部)를 향해 벌어지면서 내려 오는 선형(線形)을 그리고 있다.
종뉴는 다소 도식화(圖式化)되어 단지 종을 매다는 기능만 지녔을 뿐이다.
종신은 중앙의 쌍줄 띠장식을 중심으로 윗부분에는 둥근 모양의 범자(梵字)로 된
상대(上帶) 아래 연화당초문(蓮華唐草紋)의 유곽대(乳廓帶)와 연화문의 종유(鐘乳)로
구성된 4개의 유곽과 연화가지를 쥐고 있는 4구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이 교대로 배치(配置)되었으며,
아랫부분에는 종복(鐘腹) 근처에 명문(銘文)이 배치되고
구연부에는 연화문과 당초문의 2단으로 된 하대(下帶)가 둘려 있다.
이 동종은 전통적(傳統的)인 수법(手法)에 외래요소(外來要素)인
쌍룡의 종뉴와 띠장식이 가미된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범종(梵鐘)의 한 유형인
혼합형식의 종으로 비교적 안정감 있는 자료의 범종이다.
첫댓글 자광거사님 내외분 너무 보기좋은데요 해탈심 보살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으며 감상 잘하고 나갑니다.
산행도 힘드신데 사진 감사드립니다.이제 산악인이 다되었습니다 ^*^
해탈심 언니~~사진 잘보구 갑니다!!!ㅋㅋㅋ내 사진도 감쏴~~~~!!! 담에 나두 찍어 올릴께요!!!!!
해탈심 보살님 ! 정말 열심히 찍으 셨네요 덕분에 감상 잘 하고 갑니다.
보살님 요목조목 감사합니다 함께하신 회원님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