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윤 춘 화
일을 마치고 달뜬 마음으로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내 마음도 모르고 신호등이 가는 길을 자꾸 막아선다. 오늘따라 차는 더 많고 더 천천히 움직이는 듯하다. 분위기가 어색하면 어쩌나, 눈물부터 나면 어쩌지 하는 염려보다 얼마나 자랐을까, 빨리 안아보고 싶다는 설렘으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져 간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건 거의 한 달 만이다.
만난 지 3년 반이 지나 우리는 이별했다. 날마다 보던 아이들이었기에 보고 싶은 마음이 켜켜이 쌓여 가고 있었다. 다시 만나면 어렵게 한 이별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아 참고만 있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말에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아이 돌보미’라는 일을 시작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만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어리고 터울이 짧아 엄마 혼자 돌보는 일이 힘들어 도움을 요청한다고 하셨다. 처음 시작하는 일에 긴장하며 아이들을 만난 첫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얼굴을 바라보던 첫째 아이는 낯도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백일도 되지 않은 둘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첫째 아이와는 산책과 놀이를 많이 했다. 비가 오면 장화 신고 길에 고인 빗물에서 첨벙첨벙하며 까르르 웃던 웃음소리가 생생하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걸어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보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아 질문이 쏟아진다. 쉴 새 없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면 알면서 모른다고 하지 말라며 토라지기도 했다. 둘째 아이와는 뒤집기, 걸음마, 말하기 등 여러 가지를 함께 처음으로 시작했다. 내 품에 안겨 우유를 먹고 잠을 청했다. 잠든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삐쳐서 우는 모습에도 웃음이 나고, 떼를 쓰는 모습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함박웃음을 지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할머니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고, 아이가 다쳐 혼비백산할 때도 있었다. 힘들다고 해서 등을 내어주면 신나서 선생님이 최고라며 띄워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 삶에 활력소가 되어 주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자랐다. 겨우 말을 하며 종종걸음을 걷던 아이는 내 흰머리를 보고 놀리기도 하고, 달리기는 자기가 더 잘한다며 경주를 하자고 한다. 누워서 방긋방긋 웃던 아이는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이제는 둘이서 놀이를 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스스로 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내가 도와주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가 하면 혼자 할 수 있는데도 꾀를 부리며 도움을 바라기도 했다..
‘이제 이별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나서 ‘그래 맞다. 더 잘하자’ 다짐하며 혼자서 이별을 준비해 나갔다. 장난을 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좀 더 미룰까’ 하고 주저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아 나갔다. 더 많이 웃어주고 안아주며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연말이 다가와 아이 엄마와 다음 해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과 내 상황을 설명하며 내 역할을 여기까지 하면 좋겠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차분히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김없이 날은 다가왔고 아이들을 꼭 안아주며 다시 만나자고 했다. 겨울방학이라 여행을 준비하던 아이들은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부모님과 서로 감사했다며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여러 생각이 몰려와서 한참 동안 차에 앉아 있어야 했었다.
드디어 도착한 곳에 반가운 얼굴이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미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다가 "선생님이다!" 외치며 와락 품에 안긴다. 언니와 엄마에게 선생님이 왔다고 알려 주는 목소리가 춤을 추는 듯하다. 엄마와 밀린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옆에 앉겠다고 다투며, 보고 싶었다, 언제 우리 집에 올거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등 끊임없는 재잘거림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은 잘하고 있다고 한다.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면 서로 챙기며 놀고 있고, 아빠도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학습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노심초사했는데 이제는 누워서도 공부가 생각난다는 말을 한다며 신기해하셨다.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아이들에게는 이제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는 내 말이 맞는 것 같다며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해주셨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엄마 차에 태우니 같이 타라고 한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 안 된다고 하니 다음에 꼭 오라고 하면서도 떼는 쓰지 않았다. 한 번 더 안아주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같이 가자고 떼를 쓰면 어쩌나 했는데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이별의 순간을 맞는다. 갑작스러운 이별도 있고 준비된 이별도 있지만 어떤 이별이든 늘 아쉬움이 남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잘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나서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도 후회스러운 일이 많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도하며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