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학사를 보면 과분하게 대접받고 있는 문인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소홀하게 대접받고 있는 문인들이 있지요.
소설가 이태준은 후자에 속하는 분입니다.
남과 북에서 철저히 버림받은 소설가...
해방 전후에 이태준은 유명작가였습니다.
그의 수필 '무서록'은 큰 인기를 얻었지요.
무서록 중에서 한 단락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필력이 대단한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이태준은 두서없이 쓴 글이라 하여 제목을 무서록(無序록)이라고 붙였지요.
책 제목의 겸손성에 또한번 놀랍니다.
그가 쓴 책에 관한 단상을 살펴볼까요?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상허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용담리에서 부친 이창하와 모친 순흥 안씨의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1909년 이태준의 가족들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를 하는데 그 해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도 1912년에 사망하게 되니 이태준은 10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삼남매는 철원의 친척집에 맡겨지고 됩니다.
철원 용담리의 봉명학교를 졸업한 이태준은 살길을 찾아 고향 철원을 떠나게 되고
배재학당에 합격하였지만 입학금이 없어 진학하지 못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1924년 학교 비리에 맞선 동맹휴교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을 당하고
이 땅에 더 이상 살지 못하고 가까스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상지대에 입학하면서 문학에 눈을 뜨게 됩니다.
가난 때문에 더이상 일본 유학생활을 할 수 없어 귀국한 이태준은 1933년 박태원, 이효석, 정지용과 '구인회'를 조직해요. 이 구인회 활동은 6.25 전쟁이 끝난 후 북에서 숙청 당하게 되는 이유가 되지요.
1946년 43세 되던 해 월북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지만,
결국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비판받고 숙청당하게 됩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소홀하게 대접했던 소설가 이태준....
정갈하고 단아한 표현을 두고 사람들은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이라네"라고 했습니다.
이태준은 자신의 고향마을의 지명을 그대로 소설에 인용합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월정리, 새술막, 떡전거리, 밤가시의 지명들은 그가 고향에 애정을 가진 작가였음을 나타내는 주는 것이지요.
소설가 이태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오늘입니다.
성북동의 수연산방이 월북 전 이태준 선생이 살았던 집이라는데
지난 번 성북동 나들이 때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했습니다.
성북동에 있는 수연산방....
수연산방은 1934년에 그가 직접 지어 살던 곳입니다.
정지용 시인이 질투를 할 정도로 정갈한 조선 기와집....
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대추나무를 집 둘레에 심고 병풍처럼 처진 북악을 바라보면서 글을 썼다는 수연산방은....
지금은 전통찻집이 되어
그 옛날의 풍취는 느끼기 어렵다 합니다.ㅠㅠ
사라져가는 것들....
그것들을 붙잡고 싶어 나선 철원 여행길...
부모님의 고향이어서 그런지 참으로 포근했던 여행길이었습니다.^^
첫댓글 최규순 선생님이 '무서록'을 읽고 쓴 글이 생각납니다. '아무데나 펴서 읽어도 되는 책, 하지만 담긴 글은 마음에 깊이 박혀 후볐다'는... 얼른 무서록을 읽고 싶습니다.^^
선생님 말씀 들으니 저도 무서록 읽고 싶어지네요. 이태준은 동화작가이기도 했지요. '몰라쟁이 엄마'는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는 ^^
몰라쟁이 엄마도 못 읽었어요. 그것도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책에 관한 단상을 새기며...저는 오늘 연수초 도서관에 가서 책14권을 빌려왔어요^^ 총20권까지 가능하다 하였지만...가방끈이 끊길까하는 괜한 걱정에 꾸역꾸역 14권만 담았어요^^ 이태준 선생님의 삶을 보니 너무 고단해보이나...문학이 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아..위안삼아 봅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너무 많네요^^
문학은 분명 고단한 삶에 크나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책 읽는 요즘을 보면 책에 대해 어덯게 이야기할까 궁금해집니다. 어루만지고... 이게 없어졌는데.
책은 어루만지며 읽어야 제맛인데...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