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걸작을 만들었나 |
<살인의 추억>은 의심할 것 없이 2003년 최고의 기대작이다. 그 영화가 드디어 온다.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감독은 재무장했고, 송강호는 운동화 끈을 조였으며, 김상경은 별천지를 경험했다. 80년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상상한 것보다 더 소름 끼치게 뛰어나다. 기쁜 마음으로 걸작을 추천한다. 이 특집은 당신이 알아야 할 <살인의 추억> 전초전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당신의 반응은 필경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부슬부슬 속으로 말아드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추적추적 밖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신의 반응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귓가에 감기고 눈주름을 흔드는 유머에 자지러지거나 묵직하게 피부를 진동시키는 화면의 무게에 자지러지거나. 미리 감히 호들갑을 떨며 말하건대, 80년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관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대단한 걸작이다. 나는 이 영화를 생각하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1986년 9월 15일 첫번째 희생자 이완임 사건에서부터 1991년 4월 3일 마지막 희생자 권순상 사건까지, 6년에 걸쳐 벌어진 일명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하 '화성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연쇄 살인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전대미문의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다.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2km 지역 내 논밭과 야산에서 벌어진 이 사건들로 13세 여중생에서 71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10명의 부녀자들이 흔적 없는 범인에게 동일한 수법으로 강간 살해당했다. 당시 거주 인구 3만, 유동 인구 2만의 태안읍을 지키고 있던 경찰 병력은 다섯 명이었으며,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후 30만 명의 경찰이 동원돼 3천여 명의 용의자들을 잡아들였지만 범인은 검거되지 않았다. 수년간에 걸친 자료들은 범인이 현장 지리에 밝다는 점, 범행 후 침착하게 시체를 학대한 점, 성 경험이 적은 어린 사람일수록 강하게 나타나는 성기 도착 증세를 보인다는 점, 경찰의 단속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가까스로 '범인은 30세 미만의 대담하고 집요한 성격의 마을 주민으로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가진 변태 성욕자’라는 프로파일링을 내놨고, 1990년 11월 9차 사건에서 발견된 범인의 정액에선 그가 B형 혈액형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설 ‘철갑 경찰’의 작가 이상언은 범행 현장에서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등 총기류에서 발견되는 금속 원소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토대로 범인이 20대 후반의 미군 장교라는 가설까지 내놨다. 하지만 가설뿐이었다. 침착하게 피해자의 가슴을 면도날로 난자하고 음부에 복숭아 조각과 모나미 볼펜과 숟가락을 집어넣었던 범인은 사라졌다. 희생자의 가족들과 관련 수사관들도 분노와 열패감을 안고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10명의 희생자와 80년대의 상관관계 그런데 당신은 그때 분노했었나? 그때 당신은 어두운 밤 인적 없는 야산의 야릇한 이미지를 연상하며 잠깐 궁금했던 것 이상으로 화성 사건에 관심이 있었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1차 이완임 사건이 나고 5일 후에 '86 서울아시안게임'이 개막했고, 3차 권정분 사건이 발생한 86년 12월 12일로부터 이틀 뒤 장정구가 11차 방어에 성공했으며, 5차 홍진영 사건이 발생한 87년 1월 10일로부터 6일 뒤 서울대생 박종철군 사망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6차 박은주 사건이 있었던 87년 5월엔 부천 성고문 피의자 문귀동의 첫 공판이 있었고, 8차 박상희 사건이 발생한 88년 9월엔 '88서울올림픽'이 개막했기 때문이다. 화성 사건은 신문 한 귀퉁이 가십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채 격동하고 있던 8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사회의 급물살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지 못했던 분노와 슬픔을 끄집어낸다. 그는 화성 사건을 급속히 시야에서 사라지게 한 바로 그 시간들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반항조차 못하고 죽은 10명의 여자와 그 여자들을 도와줄 수 없었던 시대와의 상관관계였다. 2000년 8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내놓은 6개월 뒤 봉준호 감독은 9년 전에 사라진 화성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4년 전 배우 김뢰하(그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조용구로 등장한다)의 소개로 화성 사건을 소재로 한 김광림 원작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봤던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희곡은 결국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 된다. 시나리오를 쓰며 봉준호 감독을 사로잡았던 숙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범인에 가까운지, 최소한 감독이 생각하는 프로파일을 새로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연히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로부터 서구 사회의 영원한 미결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에 관한 만화책 ‘프롬 헬’을 받았을 때,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태동시키고 미해결로 남길 수밖에 없었던 시대라는 사실에 생각이 다다랐다. 이렇게 해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화성 사건이 벌어졌던 제5공화국 말기에 관한 이야기로 몰아붙인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이 개막하고 공권력이 정권의 부화뇌동에 휩쓸리던 시대, 감독의 표현을 빌면 “한마디로 ×같은 시대”는 “시골 여자들까지 챙겨줄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화성 사건은 민생을 치안할 수 없었던 어처구니없고 나사가 빠져 있던 “5공 말기 연쇄 살인 사건”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봉감독은 두 개의 인상적인 이미지를 병치시킨다. 하나는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환영 퍼레이드에 동원된 여학생들의 모습과 데모대의 시위를 진압하느라 있는 대로 동원된 경찰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몇 번째인가 사건이 벌어지던 날 밤, 지역 경찰서 강력반 신반장(송재호)이 경찰 2개 중대를 본부에 요청했을 때 그들은 모두 데모를 막느라 서울에 가고 남은 병력은 한 사람도 없었다. 수사 능력이 부재해 경찰서 정문을 옮기라는 무당의 지시까지 따라야 했던 화성 사건의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은 영화 속에서 형사들이 무당의 말대로 범행 현장의 흙을 물 묻힌 종이에 뿌려 범인의 얼굴이 떠오르길 기다리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풍요로운 농촌 들녘 영화는 촬영 전 봉준호 감독이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성실하게 반영하면서 시작한다. 화성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하며 발로 쓴 그의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시나리오는 첫 장면을 ‘푸른 하늘 아래 노랗게 출렁이는 벼들 너머로, 멀리 경운기 한 대가 오고 있다... 뜬금없이 화면에 툭~ 등장하는 젊은 여자의 시체... 여전히 평화로운 새소리와 햇살 아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들. 무덤덤히 보여지는 젊은 여자 박보희의 시체는 뭔가 생경한 느낌마저 준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서로 전혀 안 어울리는 게 뒤엉키는 것을 좋아한다.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보다 오히려 아주 서정적이거나 아름다운 시골 풍경에서 시체들이 연이어 나오는 그런 이미지”라고 말했던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범죄 영화의 풍경으로 첫 장면을 연다. 발로 뛴 시나리오만큼이나 발로 뛴 로케이션은 이 장면을 위해 전북 부안의 넓은 들녘을 찾아냈고, 1986년 10월 23일(영화는 연쇄 살인의 시간적 배경을 1986년 한 해의 가을과 겨울로 한정한다)에 발견된 첫번째 희생자의 시신과 주인공 박두만 형사(송강호)를 이 장면에서 소개한다. 당신이 <살인의 추억>에 놀라게 될 첫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돌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여러 개의 가지가 개별적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묵직한 줄기로 엮여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정공법에 관한 가장 뛰어난 예시로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 정공법에 복속하는 것 중 하나가 공간 묘사다. 전남 장성, 화순, 무안, 함평, 해남, 보성, 전북 부안, 정읍, 남원, 익산, 김제, 충남 서천, 홍성, 강원 횡성을 오가는 6개월간 90여 회의 로케이션 촬영은 경기도 일대 익명의 공간 하나로 그려지면서 드라마의 강력한 발진을 위해 순순히 묶여 든다. 하지만 그 교묘한 ‘장소의 통일성’보다 기막힌 것은 공간이 하나의 영화 언어로서 유기적으로 스토리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풍요로운 농촌 풍경은 우리가 꿈꾸는 평온한 낙원이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참혹한 살인이 연속해서 벌어지는 지옥이다. 그런데 또 이 ‘낮의 평화’는 서울에서 자원해 내려온 형사 서태윤(김상경)이 시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냉랭하고 의심 어린 공기를 포함한다. 어떻게 이 모든 표정이 하나의 공간에서 그려질 수 있는지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다. 공간이 서서히 변할수록 보는 이의 심정도 스멀스멀 여러 곳을 기어다닌다. 이 변화무쌍한 농촌 공간은 여러 개의 반사면을 가진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뒤엉킨 살인 사건과 번잡한 시대의 윤곽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미술감독 류성희의 고민이자 성과이기도 하다. 예컨대 겉보기엔 여느 경찰서와 달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수사 본부는 곳곳의 디테일과 좁고 답답한 밀폐감을 통해 사건을 대하는 경찰들의 심리적 공간으로 전환된다. 카메라와 빛은 겸손하지만 강력하다. 어디에서도 튀지 않는 대신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관객을 향해 정조준 발사하는 봉준호의 무기는 보이지 않는 실탄들로 장전돼 있다. 이렇게 조합된 공간은 관객이 드라마에 몰입하는 데 있어 어떠한 훼방꾼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공법이다. <살인의 추억>을 보는 내내 당신은 박두만이나 서태윤이 느끼는 심정의 흐름에 거의 예외 없이 전염될 것이다. 지나간 시대와 경천동지할 이례적인 사건을 배경 삼고 있는 이 영화가 현실감의 밀도로 꽉꽉 채워져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대 유감 너머에 있는 박두만과 서태윤 정말 놀라운 것은 감정을 직조하는 봉준호의 재주다. 당신은 이 영화가 시대를 얘기하기 위해 다른 것을 먼저 들이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박두만과 서태윤, 두 형사의 속마음이다. 특히 영화 속에 설정된 세번째 용의자, 박현규(박해일)가 등장한 뒤로 휘몰아치는 격정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봉준호 감독은 무식한 시골 형사 박두만과 나름대로 과학적 수사를 위해 노력하는 서울 형사 서태윤이 벌이는 수사극에서 시대를 읽는다. 80년대의 공권력을 비난하는 영화가 그 공권력을 대변하는 형사들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촬영 당시 FILM2.0과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80년대 후반에 내가 대학 다니면서 씹었던 그 공권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영화에선 주인공이다. 재밌는 게 당시 사건 맡았던 형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점점 그 사람들한테 애정이 생겨 갔다는 것이다. 그 형사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막 운다. 정말 잡고 싶었다고. 얘기 들어보면 못 잡을 만하다. 점쟁이 찾아 다니고 체모 수사한다고 근처 공장 직원들 털 뽑으러 다니고. 하지만 심정적으론 안타깝다. 거기서 시대적 한계와는 또다른 감정적인 뜨거운 지점이 나온다. 그런 형사들에 대한 답답함, 혐오감과 동시에 의지에 대한 공감과 동정심. 그래서 이 영화는 코미디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살인의 추억>의 중심이다. 어이없는 수사로 관객을 웃겨주던 그들이 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사건에 매달렸는가. 그들을 좌절시킨 것은 범인인가 시대인가. 그들은 시대가 허용해준 희대의 연쇄 살인극에서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정공법으로 똘똘 뭉친 이 영화가 논리 정연한 시대 유감을 넘는 것은 이 부분이다. 당신은 <살인의 추억>에서 클로즈업의 기능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첫번째 용의자였던 동네 바보 백광호의 진술을 녹음하는 장면이다. 그는 두번째 희생자 이향숙이 죽던 날 밤의 정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을 향해 서서히 근접해 들어간다. 그런데 그 인물은 백광호가 아니라 박두만이다. 봉준호는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극의 핵심 정보가 노출되는 이 장면에서 용의자가 아니라 형사의 얼굴에 집중한다. 주인공은 사건이 아니라 형사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도 안 되는 직감 수사로 일관하던 박두만의 사건에 몰두하는 집념이 그의 표정 속에 어떻게 달구어지고 있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다음, 박두만과 서태윤, 조용구가 두번째 용의자였던 조병순을 좇아 채석장에 들어가는 장면이다. 헐떡거리며 뒤쫓아온 미지의 사내가 똑같은 옷을 입은 수많은 노동자들 중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들의 얼굴을 카메라가 따라잡는다. 여기서 김형구 촬영감독은 사이즈와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클로즈업을 사용한다. 겸손했던 앵글을 생각하면 대단히 파격적이다. 봉준호 감독은 일련의 수사 과정 속에서 점점 지쳐온 형사들이 얼마나 이 광대 놀음을 끝내고 싶었는지 단숨에 보여준다. 세번째 용의자 박현규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서태윤의 분노한 얼굴 측면을 빠르게 다가가는 망원 클로즈업이 잡아냈을 때 게임은 끝난다. 이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형사들의 슬프고 집요한 마음에 동조하게 만드는 정공법의 정체다. 당신은 어째서 영화의 후반부에 이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형사들을 내가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처음부터 영화는 사건의 바닥을 기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에 강하게 밀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슬프다. 첫번째 용의자 백광호를 범인으로 단정 지은 박두만 일행이 풀밭 현장 검증에서 엉키고 넘어지는 트랙킹 슬로 모션 숏은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심장 박동의 정돈되지 않는 질서와 깊은 상처를 보여준다. 이 무시무시한 감정의 연출은 당신에게 숙제 하나를 던져줄 것이다. 박두만과 서태윤이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범인을 잡고 공적을 세우는 것에서 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평화로운 황혼녘의 들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다시는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너무 멀리 와버린 심정으로, 두 형사의 신념과 동요는 또 하나의 여행을 한다. 지랄 같은 작업이 만들어낸 것들 스스로 곪아가는 형사들은 자주 원숭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박두만의 육감 수사와 서태윤의 과학 수사가 대립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태윤은 박두만을 닮아가고 박두만보다 더 지저분한 차림새의 서울 형사 서태윤은 끊임없이 궁시렁 거리며 어린애처럼 화를 낸다. 낭만이라곤 터럭만큼도 없어 보이는 박두만은 동네 여자 곽설영과 사랑을 나누며 의외의 인간미를 풍긴다. 이 영화엔 범죄 스릴러의 수위를 무너뜨리는 이상한 비술이 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는 한참 동안 웃을 수 있는 여유와 호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내 그 에너지는 장르와 시대에 대한 평면적 접근을 넘어 감정의 풍성한 진폭을 만들어낸다. 이것 참, 질투 나는 솜씨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도리어 폐쇄적인 면이 있었다. 단편영화 <지리멸렬>의 우화적인 이야기들이 그랬고, <플란다스의 개>가 학교 사회의 비겁함을 다루는 방식이 그랬다. 가령, 서태윤이 서서히 미쳐가는 모습을 경찰서 불빛 조명과 비현실적인 하이 앵글, 그리고 정신 나간 읊조림으로 포장하는 이 영화의 어떤 부분들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관객의 이해를 도모하는 연출과 기가 막힌 표현술 사이의 간극을 한꺼번에 줄일 수 있는 비법을 발견한 것 같다. 이 소름 끼치는 축지법도 질투 난다. 김무령 프로듀서의 작업 일지엔 봉준호 감독이 “이 직업이 참 이상한 거예요. 그죠? 이게 무슨 지랄이랍니까?”라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적혀 있다.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 이야기를 실제로 재현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여 세계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영화가 지랄 같다는 얘기다. 봉준호는 그 지랄이 창조하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프레임 안의 공간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한 소리일 거다. 봉준호는 시대와 과거를 다루는 상투적인 방식으로부터 탈출하면서 단박에 더 앞서 나간다. 현장에서 “봉테일”이라 불렸던 것처럼 디테일이 어떻게 거대한 구조를 완성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더 놀라운 것은 패배와 좌절과 고단한 발버둥에 관한 이 영화가 지독한 절망 다음에 어떤 숭고함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목적하는 것에 다가가는 인간의 잰 발걸음은 흥이 난다. 목적하는 것에 거의 다다른 인간의 격렬한 흥분은 매력적이다. 목적하는 것으로부터 배신당해 주저앉은 인간은 한순간에 인생을 돌이킨다. 이 과정은 살아간다는 행위에 숭고함을 부여한다. 비루함이 고결해지고 인생이 가치 있어지는 순간이다. <살인의 추억>엔 그것이 모두 담겨 있다. 아, 조연으로 등장하는 조용구 형사 역의 김뢰하, 용의자 백광호 역의 박노식, 신동철 반장 역의 송재호, 구희봉 반장 역의 변희봉도 놓치지 마시라. 건질 고기가 너무 많은 저수지지만 그래서 즐거운 영화다. |
|
첫댓글 모두 Injung~~!! ㅋㅋ
영화도... 도 평론도 넘 멋지다.... 그래서 멋진 영화구나...하는 생각이 절도 든다...아...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것 만으로도 뿌듯해지네~^^
JSA이후로 좋은 한국영화 본것같다.정공법이 뭔지 모르겠지만 영화정말 잘만든것같아. 마지막 부분 터널신은 정말 압권이었어.
송강호가 우리나라 배우라는것에 자부심이 느껴져... 머라그러더라...말도 멋지게 하던데...자기연기가 이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무모증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