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방문을 기념해 무려 3,700만 달러나 들여 지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로 중간에 있는 아파레시다 성당에 모인 신자 수천 명에게 말했다. “기독교 신앙은 5세기 넘도록 인디언 삶과 문화를 일구는데 공헌했습니다. 예수 강림과 복음 전파는 콜럼버스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 시대 문화를 털어내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연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 속에서 열망하던 구세주였습니다.”라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1492년 10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나서 정복자들이 쳐들어올 무렵 라틴아메리카에는 아스텍족, 잉카족, 마야족을 모두 9,0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1세기 반이 지난 뒤에 3,500만으로 줄었다.
볼리비아는 다민족 공화국이다. 990만 인구 가운데 꿰추아 인디오가 30퍼센트, 아이마라 25퍼센트, 백인과 인디오 혼혈인 메스티조가 30퍼센트, 백인이 15퍼센트를 이룬다. 스페니시가 공용어지만, 인디오 토박이말이 함께 쓰인다. 안데스 고산지대와 아마존, 넓게 펼쳐진 땅에서 콩·커피·코카·목화·옥수수·사탕수수·쌀·감자가 넉넉하게 자란다. 임업, 광산업이 발달해 목재·주석·아연·텅스텐·은·금·철·납·석유·천연가스가 넘쳐나는 자원 부국이다. 게다가 세계 최대 염호 쌀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에 묻혀있는 클린 에너지리튬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컴퓨터·휴대폰에 쓰이는 백색 황금으로 수십조 달러 가치가 개발을 기다린다. 그런데도 볼리비아는 남미에서도 에콰도르, 파라과이와 더불어 가장 가난한 개발도상국가다. 소수 백인들이 수백 년 동안 글로벌 기업과 결탁해 부와 권력을 모두 거머쥐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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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가 대통령
2005년 12월,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볼리비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어 제193대 대통령에 오른 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Juan Evo Morales Ayma(1959-)는 500년 굴욕과 한을 마감하는 마침표를 찍었다. 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온 누리 원주민 형제자매들이여. 오늘 타와나쿠에서, 볼리비아에서, 원주민 시대가 새로이 열립니다. 평등과 정의를 찾아가는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우리 겨레가 뭉쳐 힘을 모을 때만 식민지국가를 청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고 했다. 이어서 “모든 자원과 자본을 소수가 움켜쥐는 것은 온 누리 가난한 사람을 보듬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천연자원을 민영화 해 수많은 문제를 풀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체 게바라가 우리에게 물려준 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 이뤄내야 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볼리비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아이마라, 케추아, 모헤뇨들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에보 혼자만 대통령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대통령입니다.” 고 말을 맺었다.
어릴 적 네 형제를 모두 영양실조로 잃은 에보. 아이마라 족 어버이는 남은 세 아이를 어떻게든지 살리려고 몸부림쳤다. 양치기, 낙타농장 잡부, 공장 잡부, 빵장수, 순회악단 단원으로 여러 직업을 오가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이때부터 현실정치에 커다란 반감을 가졌다. 코카 재배자 노동조합 지부에 입회한 에보는 원주민을 비롯한 소외계층 권익신장에 힘쓰며, 기존 정치권에 대항 세력을 모으는데 힘썼다. 그 뒤 권력층에 모아진 혜택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며 만든 사회주의운동당(MAS) 당수가 됐다. 2003년과 2005년에는 경제난과 빈부격차 해소, 마약 원료인 코카 재배 억압 반대운동을 벌여 두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해 12월, 조기 대통령선거를 관철해 소외된 사람들 지지를 바탕으로 53.74퍼센트라는 지지율로 볼리비아 사상 첫 원주민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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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영예를 일으키겠다
에보 모랄레스는 세 가지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먼저 광산, 석유, 농업에서 일어나는 부를 되찾고 둘째 가난하고 전쟁 셋째 식민지 나라에서 벗어나 다민족을 보듬는 나라 세움이었다. 라틴아메리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천연가스와 석유가 나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볼리비아. 2006년 5월 1일 볼리비아 군대가 산알베르토 가스 시설을 접수한 것을 비롯해 에너지 주권회복에 들어갔다. 그 바탕에는 뜻밖에도 북해 심해에서 석유시추와 경영에서 세계가 권위를 인정하는 노르웨이가 주저하지 않고 엔지니어를 파견해 적극 도왔다. 노르웨이 전문가들은 지역별 석유와 가스 생산 수익성을 정확히 셈했다. 이들이 보여준 치밀하고 끈질긴 작업에 힘입어 볼리비아 정부는 글로벌 기업들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새로운 법령은 18퍼센트는 기업이 나머지 82퍼센트는 나라가 가진다고 했다. 2006년부터 소급 적용한 계약은 바로 빛을 발했다. 볼리비아정부가 석유회사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은 2003년에 고작 2억 2천 만 달러였으나, 2006년에 13억 달러 2007년에는 14억 달러로 늘었다. 에보 모랄레스는 석유와 가스에 이어 광산 공략에 들어갔다. 2006년 광물 수출액은 126퍼센트나 늘었고 금액으로는 10억 달러에 이르러 같은 해 볼리비아 GDP 14.7퍼센트나 됐다. 그밖에 북아메리카 기업들이 쥐고 있던 제철과 전기 분야도 공공부문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볼리비아 역사를 바꾸기를 바란다. 잃어버렸던 우리 역사를 되찾는 데는 500년이 걸렸지만, 500년이 넘도록 지켜나가겠다.” 취임 초부터 잉카제국을 되살릴 꿈을 꿨던 모랄레스가 2008년 승부수를 던졌다. 나라 사람 60퍼센트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신헌법 제정 추진이었다. 2008년 8월에 실시한 국민소환 투표에서 67.4퍼센트란 높은 지지를 받아 재신임을 받은 모랄레스는 2009년 2월 지방자치제와 원주민 권익 확대, 대통령 연임 허용을 골자로 하는 신헌법이 제정했다. 헌법 고갱이는 원주민 부족들이 경작해 온 땅에 집단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일이었다. 헌법에는 또한 ‘어머니 지구’, 곧 ‘파차마마’ 권리도 포함됐다. 그해 12월에 치룬 대통령 선거에서 64.08퍼센트 득표율로 2차 결선투표를 치르지 않고 재선에 성공했다.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타파를 주장하는 독립주의자로 에보 모랄레스를 사람들은 ‘볼리비아 체 게바라’라 부른다.
해발 4000미터 고지 리마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은 어김없이 새벽 5시면 불이 켜진다. 깨끗한 정치를 뿌리내리려고 하는 모랄레스는 제 허리띠를 졸라 매어 월급은 1만800 볼리바노스 (US 1800달러)로 무척 겸손하다. 부정부패 척결과 친 서민 정책을 펼치는 에보 모랄레스, 국빈을 맞는 대통령 복장은 인디오들이 즐겨 입는 알록달록한 털실로 짠 스웨터를 입고, 길고 둥글게 깎은 머리로 친근한 여느 인디오 차림과 다름없다. 볼리비아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부정을 멀리하고 외톨이나 힘겨운 서민을 보듬는 소탈한 정치가 그립다.
변택주-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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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미는 그나마 다행입니다_()_
어머니 지구, 파차마마의 권리도 인정해주는 에보 모랄레스....
어머니 대지와 아버지 하늘을 모시는 효자 에보 모랄레스, 정의를 바탕으로 살기 좋은 정토를 일구어 가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