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김치가 약간 시어졌지만 그래도 먹을만합니다.
집에서 기른 고춧가루로 담가서 처음엔 아주 고운 빨강이었지만 익으니 조금 빨간색의 선명도가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좋은 고춧가루의 선명함은 김치를 늘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합니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김치가 빨간 건 좋은데 너무 빨개서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홍도 아닌 진홍빛의 김치였는데 맛도 괜찮았으나 부자연스러울만큼 지나치게 빨간 색깔이 께름칙했는데 나중에 나오면서 보니 중국산 김치였습니다.
중국산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전에 TV에서 중국에서는 희나리가 난 고추를 걷어다가 빨강색 물감을 들여 고춧가루로 만들어 판다는 프로를 봤습니다.
희나리는 고추 안쪽에 흰 곰팡이가 핀 고추를 말합니다.
곰팡이가 핀 고추에 빨강물감을 들이면 깜쪽같이 빛깔 고운 고춧가루로 재탄생하는 겁니다.
이런 고춧가루로 담근 김치를 먹을까 싶어서 찝찝한거지요.
중국산 김치처럼 색은 고운데 너무 고와서 뭔가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젊은 시절에 이단의 논리에 현혹되어 빠져서 이십년이나 헛세월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단의 논리는 새빨간 김치처럼 먹음직해서 빠져들기 쉽지만 알고보면 희나리와 같은 무서운 죄를 교묘한 논리의 물감으로 염색한 해로운 고춧가루와 같은 겁니다. 나쁜 김치를 먹으면 고작 병에 걸리지만 이단에 갔다가는 영혼이 죽게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부자연스러운 빨강색이 있을수 있습니다.
부모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녀들에게 너무 율법적인 교육을 시켜서 아이들이 오히려 교회를 싫어하게되고 나중에는 엇나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속에 있는 죄의 희나리를 믿음처럼 보이는 위선과 거짓으로 감추고 행위만 강조하는 거지요.
이런 사람들, 이런 가정은 뭔가가 부자연스럽습니다.
진짜 고추와 물들인 고추의 차이점도 부자연스러움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없듯이 진정한 신앙은 늘 자연스럽습니다.
행위를 강조한 나머지 숨막히게 하지 않습니다.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합니다.
늘 자신의 희나리같은 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물감 들여 속이지 않는 우리 교회에는 그래서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