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벌귀족 사회
약온 8세. 선 9세. 정 10세
고려 문벌 귀족들은 중서문화성과 중추원을 중심으로 관리직을 독점하였다.
공음전과 전시과에 따르는 과전(관리에게 주는 토지)은 물론
공음전(공신에게 주는 토지)등 막대한 농토와 임야를 찿이하였다.
녹봉까지 현물로 받아 경제적 부와 사회적 여려가지 특권을 누렸다.
대표적인 가문으로 인주이씨(경원이씨 또는 인천이씨),
해주최씨, 경주김씨, 문화유씨 등이다.
신라 귀족출신 문벌들은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이들은 왕실과 혼인으로 세력을 키웠으며
새로 진출하는 세력은 고위관직에 승진하기가 어려웠다.
문벌 귀족 사회의 전성기는
문종 년대(1050)~인조 연대(1150)까지 100년간 지속되었다.
신진관료와의 대립으로 나타난 것이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이다.
문별 귀족사회가 전개되면서 대표적인 문벌은 인주이씨로
문종때부터 인종 때까지 80년간 세력을 잡았다.
이 시대 동방이학의 종사라 불리는 김양감이 두 아들중 장남인
8세 사청공 휘 약온
1059년(문종14)-1130년(인종9) 고려 전기 문신, 구명은 의문, 자는 유승 .
시호는 사청, 아버지는 문안공 양감, 어머니는 증 서해군 대부인 최씨다.
예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상의국의 붕어(정6품)부터 지추밀원사와 참지정사를 지낸다.
인종 1년(1122)에 수태부 문화시중 판 도호부사(종1품)를 치사하였다.
이때에 문벌귀족의 대표적 가문인 인주 이씨가
문종 때부터 인종 때까지 80년간 세력을 장악하였다.
이자겸이 대표적 인물로서 정준(6세)의 외손자였다.
공께서는 성품이 공손하고 청렴하시어서 세도가인 이자겸과 인척간이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았고 남에게 교만한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시호는 사청(思청)이다.
아들 선(9세)은 벼슬이 병부시랑이었다.
선의 아들 정(10세)은 고려 충혜 왕조에 호부시랑 호부사로
재임 중 유배되어 자손이 이곳에 살았다.
광산김씨 약사, 광산 김씨사.
편집 선국. 202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