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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빅투스(invictus)- 굴하지 않는 영혼
Invictus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인빅투스, 굴하지 않는 영혼
시야는 온통 어둠의 구렁텅이
나를 휘감고 있는 칠흑의 밤으로부터
나는 그가 어떤 신이든지
내게 불굴의 영혼을 주셨음에 감사드린다.
옥죄어 오는 어떤 무서운 상황에서도
나는 굴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곤봉으로 얻어터지는 운명에 처해
머리에 피가 나도 고개 숙이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로 범벅이 된 이곳 너머로
공포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짓눌림의 세월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태 두려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 운명의 두루마리가
얼마나 형벌로 채워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1849∼1903)가 쓴 시, 인빅투스(invictus)를 졸역해 보았습니다. 제가 번역해서 별로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의 번역이 저에게는 상황 전달이 충분치 않게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온통 어둠의 구렁텅이, 짓눌림의 오랜 세월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보물섬]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가 그의 친구이지요. 스티븐슨은 그의 친구, 헨리를 [보물섬]에서 목발을 짚고 다니던 유명한 외다리 실버 선장으로 등장시킵니다.
어니스트 헨리는 12세 때 폐결핵에 걸렸지요. (제가 폐결핵에 걸린 나이와 같네요. 저도 만 12세에 폐결핵에 걸려서 1 년 휴학을 해야 했지요) 저는 잘 치료가 되었지만 헨리는 나중에 오른쪽 다리에도 감염이 되어 오랜 세월 무진 고생을 합니다. 그의 의사들은 왼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절단수술을 받아야 목숨을 건진다고 했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답니다. 대신 3년에 걸쳐 끈질긴 치료를 받으며, 지독한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포탄으로 중상을 입어 의사들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거부하고 대신 뼈를 깎아내는 극심한 고통의 수술을 받았던 사부 성 이냐시오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투스’는 고통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 지닌 영혼의 광휘가 빛납니다. 인빅투스(invictus)는 라틴어로 ‘굴하지 않는’이라는 뜻이지요. 시인이 영시의 제목을 굳이 라틴어로 단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영어의 모태가 라틴어이지요. 더 근원적인 상황을 그리려면 고어(古語)가 지닌 힘이 필요하나 봅니다. 이 시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영혼, 정신은 굴하지 않는 사람의 놀라운 힘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인빅투스’를 번역하고, 이곳에서 나누는 것은 실은 27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남아공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애송시이기 때문이며, 그에 관한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9년 작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에 대한 영화 감상을 나누고 싶은 까닭입니다.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백인과 흑인이 하나 되는 남아공을 꿈꿉니다. 이 영화에 만델라가 국가대표 럭비팀 주장을 불러 이 시를 읽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고 하면서. 그 영감으로 1년 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암시를 주지요. 우승으로 백인과 흑인이 하나 되는 화합의 물꼬를 터달라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입니다. 영감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감은 시에서 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 우리말 제목, '우리가 꿈꾸는 기적:인빅터스'는 일반적으로 백인들에게 한 때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라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정치적 기적과 최약체팀으로 평가받았던 남아공의 럭비월드컵 우승이라는 두 가지 '기적'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에 기적이라는 제목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인빅터스’, 불굴의 정신, 굴하지 않는 영혼, 시의 영감에서 나오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신뢰가 기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인빅터스’에서 만델라 역을 제가 좋아하는 배우, 모건 프리먼이 맡았습니다. 아, 그의 특유의 미소, 그것은 바로 만델라의 상징인데,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인종차별정책을 하던 나라였지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아공의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들려드립니다.
남아프리카 백인은 원래 보어인의 후손입니다. 보어인이란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이민으로서, 이들은 흑인을 착취하여 금과 다이아몬드를 채굴했습니다. 물론 채굴 활동을 통한 이익은 백인만 가졌을 뿐, 흑인에게는 돌아가지 않았지요. 그들은 철저한 인종차별 정책을 썼습니다. 백인 전용이라는 뜻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바로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다 아시지요.
흑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백인이 아니면, 모두 차별했지요. 인종차별은 아시아계에도 적용되어 모한다스 간디도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 인도 노동자를 위한 인권 운동을 실천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백인들의 우월 의식은 도데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요? 백인들은 비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교육을 악용했습니다. 우선 학교에서는 흑인에게 백인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 노동만 가르칠 뿐,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이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은 종교적 그리고 법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도 1961년 헌법 개정, 20여 개에 달하는 인종차별 법안 제정과 개정이 행해졌는데, 하나같이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악법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흑인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폭력 항쟁으로 백인의 부당한 지배와 차별에 저항했습니다. 실제로 흑인들은 여러 차례에 걸친 무장항쟁을 통해 자신들을 탄압하는 백인에게 저항하였습니다. 그 한 가운데 넬슨 만델라가 우뚝 서 있습니다.
흑인들의 저항을 받은 백인 지배층은 1990년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지도자를 석방해야 했습니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 최초로 흑백 연합 정부(흑인의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백인의 국민당 연합)가 수립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는 넬슨 만데라에 대해서도 간단히 나눕니다. 만델라는 참으로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들의 잘못에 대한 어떤 조치가 필요했지만, 그는 그것을 참으로 지혜롭게 합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택합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지요. 투투 대주교는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민사상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과거사 청산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는 가해자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줌으로써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고, 놀랍도록 성공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과거사 청산이 아무 문제가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아니고, 이제 흑백 간의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도 아니지만, 잘못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면서도 응징이 아니라, 용서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과거사 청산의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옵니다.
백인이 주도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평생을 투쟁해 온 만델라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는 새로운 시대의 비전으로 사회 통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인 흑백 갈등의 골은 너무나 깊었습니다. 만델라는 오랜 갈등을 끝낼 통합의 길을 모색하던 만델라는 어느 날, 1995년 자국에서 열릴 예정인 럭비 월드컵에서 이에 대한 힌트를 얻습니다.
만델라는 즉시 남아공 럭비 대표팀의 주장 프랑수아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맷 데이먼이 프랑수아의 역을 맡았습니다. 그의 묵직한 연기도 영화를 빛나게 합니다. 시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 참으로 부럽습니다. 국민 통합을 위해 '우승해 달라'는 뜻을 전해 받은 프랑수아는 경기만 나가면 패하는 대표팀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지요. 그 고심의 과정에서 만델라가 보여주는 용서의 정신, 자기를 27년 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을 용서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놀라며, 자주 영감에 빠진 듯 보이는 눈동자를 지닌 맷 데이먼의 연기는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영화, ‘인빅터스’는 “도대체 만델라가 누구야”라고 말하는 백인들과 만델라를 환호하는 흑인으로 인파가 나뉜 남아공의 한 거리를 비추며 시작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우리는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이스트우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싸워온 사람, 결국 그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만델라의 모습을 그리는 그의 시선은 참으로 그답습니다. 흑백의 통합을 향한 그의 열정, 진정한 리더로서의 강한 면모,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여, 자기의 소신,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불굴의 정신을 그리면서도 떠나버린 아내의 빈 자리, 반항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그의 외로운 인간적인 면모도 상징적인 모습을 비추어 줌으로써 은근히 드러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모건 프리먼은 참 짝꿍이 맞는 감독과 배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모건 프리먼의 그 특유의 뒷모습을 통해 대통령 이전의 인간 만델라의 인간적인 외로움, 인간애를 잘 그리고 있으니까요. 감독은 그의 특유의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 이런 모습을 세심하게 다룹니다. 예를 들면,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준비하던 만델라가 텅 빈 침대를 바라보는 모습이라든가, 가족에 대해 묻는 백인 경호원의 질문에 하려던 그럴 기분이 아니라며 산책을 그만두고 돌아서는 모습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고뇌, 마음의 갈등을 잘 보여줍니다.
저는 남아공의 대통령, 만델라가 아니라, 그의 퇴임 후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서 느끼게 된 인간 만델라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영화, ‘인빅터스’는 제가 좋아하는 그의 특유의 미소에 담긴 그의 온화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당선은 되었지만, 참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요. 백인들에게는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로 알고 있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대단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 상황을 대통령 취임 첫날에 잘 보여줍니다. 백인 직원들은 보따리를 싸고 떠날 채비를 끝내 놓았습니다. 만델라는 이들을 집무실로 불러 말합니다.
“떠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피부색, 언어, 이전 정부와 일했던 경력 때문에 떠나려 한다면 남아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필요합니다.”
자기 입맛에만 맞는 사람으로 다 갈아치워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 모 전 문화부 장관을 하던 사람이 문득 생각납니다. 전 정부에 있던 사람은 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를 세워 그런 대통령의 주구 노릇을 했던 한심한 사람 말입니다.
만델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당연히 흑인들로 구성될 줄 알았던 경호팀에 전에 일하던 백인들을 불러들입니다. 측근들의 항의에 만델라는 목숨이 달린 경호팀에 흑백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설득하지요. 두말할 필요 없이 대통령으로서 경호원은 자기의 생명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리를 자기를 미워하는 줄 뻔히 아는 백인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보통 영감으로는 불가능하지요. 흑백이 하나로 일하는 모습은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내야 하는 막중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감이며 용기이지요.
그런 영감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 바로 만델라입니다. 억압을 받았던 흑인들은 이제 자기들의 대통령 만델라가 멋진 복수를 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델라가 꿈 꾼 것은 그런 복수가 아닙니다. 아니, 진정한 복수는 바로 용서와 화해라는 것은 안 만델라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는 흑백 통합의 무지개 국가 즉 화해의 시대를 엽니다. 그 상징의 하나가 바로 경호팀이며, 또 하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럭비팀입니다.
만델라는 흑백의 통합을 위해서 영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영감을 시, 특별히 ‘인빅터스’에서 얻은 그는 이제 스포츠라는 현대의 자극제에서 얻고자 합니다.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스포츠만큼 힘을 지닌 것도 없습니다. (스포츠에도 ‘인빅터스,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니까요.) 2002 한일 월드컵을 경험한 우리는 이것을 잘 알지요.
만델라는 흑백이 하나 되는 남아공, 무지개 국가를 건설하며 ‘희망의 아프리카’를 주도하기 위해 기존의 백인들 위주의 럭비팀, 스프링복스를 절묘하게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측근들, 체육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미 백인들 위주의 기존 럭비팀, 스프링복스를 해체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지만, 만델라는 그 결정은 틀렸다고 설득합니다.
만델라가 보여주는 진실은 기존의 잘못된 상황이라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함, 통합을 통해서만 그것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야 말로 하나 되는 일치, 통합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스프링복스의 주장 프랑수아와의 대화를 통해, 이런 정신, 영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프랑수아는 만델라에게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그에게 애인이 묻지요. 어떤 사람이냐고. 그가 답합니다. 이제까지 내가 만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그는 아마 달리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강한 인상을 받으면, 말은 힘을 잃게 마련이니까요.
영화에서 가장 깊이 남는 대사를 나누며 두서없이 쓴 긴 글 마칠까 합니다.
프랑수아는 정말 궁금하여 만델라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27년간 가둔 자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만델라가 그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키고 공포를 없애 준다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네.”
글: 류해욱 천주교 신부(홍천영혼의 쉼터 원장) 출처: 교리신학원43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만델라 같은 분이 지구 한 켠에서 산다는 건 동시대인들에게 축복이죠. 6~7년 전, 만델라의 전기(어린이용)를 본 적이 있어요. 가장 인상에 남았던 대목. 만델라가 20대 후반에 결성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입니다. 청년연맹 조직인데 그 구성원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흑인 청년들이 모여 만델라를 돕습니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이(변호사라든가)도 있었는데 싸움만 한 게 아니라 때로는 실용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더군요. 정말이지 만델라 못지않은 사람들이더군요. 350년 이어온 인종분규를 화해로 이끈 이면에는 결코 한 사람만 우뚝한 건 아니었다고 봅니다. / 인빅투스 번역,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