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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원놀음, 그 성스러운 시간의 체험
영양 원놀음은 경북 북부지방인 영양에서 농한기를 이용하여 진행되었던 재판극 놀이다. 마을 주민들 중에서 학식 있는 자를
원님으로 정하고, 그 이하 육방관속, 통인, 사령, 관노 등의 여러 가지 배역을 미리 정해 권력행사와 재판을 모의하며 놀았는데,
주로 부유한 농가의 대청마루나 마을 광장이 무대였다. 원님이 마을 주민 중 아무나 죄인으로 불러들여, 죄를 만들어서 벌을
선고하고, 그 벌을 면제해주는 대가로 주안상을 요구하면, 벌을 받은 사람은 술과 음식을 내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배불리 먹고 흥겹게 놀았다. 이 놀이는 정초에 마을의 풍년농사와 안녕을 비는 놀이 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웃마을과 함께
노는 놀이가 되기도 했으며, 각 집집마다 돌며 놀아주고 모금과 모곡을 하여 마을의 공동기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00년 영양 일월면 주곡리에서 대규모의 원놀음 행차가 있었는데 풍악소리와 행렬이 위풍당당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영양원놀음은 거의 사라져가던 것을 영양주민들이 재현하여 보존하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9년 영양 원놀음 리플릿에서 인용).
2009년 5월 9일 오후 4시, 영양군의 산나물축제에서 공연된 영양 원놀음은, 머시아 엘리아데가 말한 '축제의 본질, 성스러운
시간의 재생'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원님행차에서 닫는 마당에 이르는 모든 과정들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구조로 진행되었다. 민담과 민속, 놀이와 춤을 푸짐하게 펼쳐냈고, 신화적인 요소를 통해 현실 세계와 신성한 세계를
연결하고자 했던 원놀음은, 한 편의 연극을 넘어서 마을 공동체의 제의이자 축제가 되었다. 관객들은 공연진과 후원단체가
준비한 잔치국수를 먹으면서 나눔과 풍요의 기쁨을 체험했고, 공연장에 세워진 암수서낭의 금줄에 정성껏 소원지를 꽂음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기원하는 마음으로 공연 마당에 동참했다.
원놀음 공연에 앞서 진행된 원님행차는 100여명의 지역민이 만들어낸 길놀이였는데, 여덟 살의 아이들부터 칠십에 이르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올해는 원놀음 보존회원들뿐만 아니라, 수비면, 청기면, 영양읍에 있는 공부방
아이들이 평소 연극수업을 통해 연습해온 탈놀이, 공동체 인형, 포이, 장다리로 참여했으며, 달뫼 마을의 풍물패도 원님 행차에
합류하였다. 그야말로 세대 간의 벽을 넘어 지역민에 의한, 지역민의 화합과 대동을 위한 놀이를 실현한 것이다.
▲ 원님 행차 중, 장터에서 난장을 틀고 있는 공연진과 아이들
원놀음 참가자들은 그동안 연습했던 영양군 문화의 집 앞에서 공연의상을 정갈하게 갖춰 입고 모두 다함께 마음을 담아 고사를
지냈다. 그리고 암수서낭- 만장- 풍물패- 해와 달 거대인형- 원님과 6방 - 암행어사와 어사 사령의 순으로 출발하여 읍내 장터와
축제장을 지나 원놀음이 펼쳐질 영양군청 잔디광장까지 길놀이를 진행하였다.
일월산을 대표하는 해와 달을 거대인형으로 만들어서 들고 있는 아이들, 영양의 대표작물인 고추를 포이로 만들어서 돌리고
있는 아이들, 장다리를 타고 힘차게 두 팔을 휘저으며 걷고 있는 아이들,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대와, 하늘과
땅과 동서남북의 지킴이를 상징하는 육방들이 공연장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공연 마당에서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신성한
세계에서 당도한 신들을 연신 합장을 하며 맞아주신다. 초월적인 존재들을 축제의 공간으로 모셔오고, 영양 지역에 깃든
신화의 세계를 재현하는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원놀음 공연장으로 가고 있는 원님 행렬
원님 행차 행렬이 마당에 들어서서 난장을 틀고 마무리되자 곧바로 가마놀이가 시작된다. 사령들이 빈 가마를 들고 다니면서
관객들 사이에서 원님을 찾는다. 관객을 한 명 골라서 혹시 원님이 아니냐고 묻고는 가마에 태웠다 내렸다 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것은 원님이 낮은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상징한다.
▲원님을 찾고 있는 가마꾼들, 관객 한 명을 원님으로 모시고 원님놀이를 한다.
드디어 원님이 등장하면서 마당이 정돈되면, 정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장단이 연주되면서 벽사마당이 열린다. 동서남북,
천지를 관장하는 장군들이 벽사춤을 추면서 판의 부정을 씻어내고 청신을 행한다. 장소익 연출은 6방 관속을 동서남북과
천지를 관장하는 장군으로 상징하여 의상의 색상과 탈 모양, 각 존재의 춤 동작 하나하나를 신성과 연결시켰다.
이방은 하늘을 관장함과 해를 상징하고 한해의 풍농을 기원한다. 호방은 땅을 관장함과 달을 상징하며, 밭을 정리한다. 예방은
동쪽을 지키며 봄 씨앗의 두려움과 파종을 표현한다. 형방과 병방은 각각 남쪽과 서쪽을 지키면서 여름날의 가뭄과 싸운다.
공방은 북쪽을 지키면서 폭풍으로 무너진 둑을 보수하고 보를 관리한다. 이러한 협력의 결과로 '원님'이라는 결실이 맺어지는
것으로 기존 원놀음을 개작했다.
▲부정을 씻어내고 신을 청하는 벽사마당
2009년 원놀음에서 송사(재판의 진행)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무명베 송사 사건으로 무명베를 서로 자기가 주인이라고
우기는 상황에서 관객과 원님이 주인과 사기꾼을 가려낸다. 두 번째 송사는 효에 대한 것으로 관객을 불러내어 즉흥으로
이루어진다. 마당 안으로 들어온 관객들을 죄인 또는 증인이나 배심관이 되게 하여 전통 원놀음이 가진 본래의 즉흥성을
충분히 살려내었다.
원놀음은 원님에 대한 해석이 핵심적인 부분이다. 바보 원님, 어진 원님, 지혜로운 원님, 난폭한 원님 등,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원님들 가운데 영양 원놀음의 원님은 어떤 원님이었을까? 선글라스를 끼고 촐랑거리며 춤을 추는 원님, 관객들은
원님의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와 몸짓을 보면서 박장대소했다. 그는 송사를 따분하게 여기고 여자만 밝히는 날라리 원님이다.
육방관속은 원님을 구슬려 재판을 진행시키느라 진땀을 흘린다.
그러나 이 날라리 원님의 재판은 엉터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엔 누구나 공감하는 판결이 나오기 때문에 관객들은
두 번 웃는다. 가령, 무명베 송사에서 두 사람이 모두 무명베의 주인이라고 우기는 상황이 있었다. 원님은 관객들을 배심원으로
불러내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편으로 가서 무명베를 잡고 하는 줄다리기 시합을 시킨다. 양쪽 관객들은 힘껏 줄다리기를
했는데 한쪽 편이 어이없게도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지고 만다. 승리한 편의 관객들은 함성을 지르고, 진편의 관객들은
억울해하며 제자리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있다. 허구의 상황을 너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연극의 재미가 돋보였다.
원님의 판정은 줄다리기의 승부와 달랐다. 그는 줄다리기에서 진편을 무명베의 주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자신이 정성껏
짠 베가 찢어질까봐 손을 놓아버린 여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순간 관객의 희비가 교차하는데,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들
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 원님이 무명베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베 당기기 시합을 시키고 있다.
풍자와 역설로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원님이 된다. 놀이의 힘과 개성이 넘치는 원님을 보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재미있어한다.
범접할 수 없는 원님이 아니라, 친근하면서도 지혜로운 원님, 권력을 앞세우기보다는 낮은 곳에 내려와 있는 원님이야말로, 옛날
이나 오늘의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관객들이 대동놀이의 판에 들어와 춤을 추고 난장을 풀면서, 2009년의 영양 원놀음 공연은 끝났다. 관객들은 막걸리와 떡을
나누어먹고, 원님의 복장을 입어보기도 하고 가마놀이도 하면서 원놀음의 여운을 맛본다. 동서남북과 천지를 관장하는 장군들이
관객들이 돌아가는 길목에 서자 많은 관객들이 그들에게 합장을 한다. 사회자가 장군의 옷을 만지면 복이 온다고 하자 관객들은
줄을 서서 너도나도 옷을 만지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축제는 재현된 신화 속에서 신들을 발견하고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며, 인간은 이런 축제를 통해 본원적 존재와의
교감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하나의 축제이기도 했던 2009년의 영양 원놀음은 관객과 배우, 축제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
에게 성스러운 체험의 시간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2009 원놀음을 준비한 사람들
영양 산나물 축제를 1주일여 앞둔 토요일 오후, 영양 원놀음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러 갔다. 작년까지는 산나물 축제
본무대에서 공연했지만, 올해는 영양군청 앞 잔디광장에서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깔린 원형무대는
영양 원놀음 보존회원 10여 명과 자원봉사자로 보조 출연하는 영양고등학교 학생들 20여명, 원놀음 연습을 구경하는 지역주민
들로 활기에 차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연습하러 온 암행어사와 어사 사령들을 맡은 영양 고등학교 남학생들 덕분에 광장은 화창한 하늘처럼 밝은
웃음으로 넘쳤다. 고등학생쯤 되면 연극을 어렵게만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데, 그들은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습에 동참하고 춤도 잘 추었다. 자세히 지켜보니, 보여주기 위해 잘 짜인 작품을 반복하는 연습이
아니었다. 대사를 외우고 연기 연습을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배우들의 움직임도
놀이의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사출두 마당에 출연하는 고등학생들은 '거울놀이'와 '가마놀이' 등의 연극놀이를
하면서 즉흥적으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연기가 아닌 놀이가 되다 보니 흥이 절로 나고, 흥이 나다보니 춤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 원놀음 보존회원들과 가마놀이를 연습하는 영양고등학교 학생들
원놀음 보존회 회원들을 만났다. 회원들 대부분이 직장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었다. 연극이 뭔지 잘 모르지만
영양의 전통문화를 되살려내자는 뜻을 가지고 선후배의 끈끈한 우정으로 2007년에 창립한 것이 영양 원놀음 보존회이다.
보존회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원놀음을 연습했으며, 연습으로 자정을 넘기는 날도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보존회 사람들을
두고 농담 삼아 '원놀음 보존회'를 '원놀음 보존교'라고 부를 정도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원놀음 보존회원들과 원놀음을 공연하느라 모두들 애쓰셨지만, 지면의 한계 상, 원놀음보존회원 하광팔, 김원경, 연출을 맡은
장소익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하광팔 회원(형방 역, 소도구 담당)
옛 어르신들에게 원놀음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하는 게 늘 아쉽다.
우리 원놀음 보존회가 영양 원놀음을 잘 복원하여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고 싶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화가 이중섭씨를 다룬 연극 '꿈을 먹는 젊은이들'에 아역배우로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영양 공회당이라는 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는데, 세 달 동안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공회당에서 공연했다. 그 때의
추억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연극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 것이다. 올해 원놀음은 스케일이 크고 대본을 암기하여 반복 연습하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배우들이 각자의 순발력과 즉흥성을 발휘해야하는 이번 원놀음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노는 기분이 들게 하고 연극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
김원경 회원(이방 역, 의상 담당)
2007년도에 원놀음 공연을 보고 재미있어서 2회 공연에는 북을
치고, 3회 때부터 배역을 맡아 공연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원놀음은 '늪'이다. 한번 빠지면 계속해서 빠져드는 늪. 올해서야 비로소 원놀음다운 원놀음을 한 것 같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예전에는 원놀음이 뭐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원놀음의 근본을 물어올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원놀음을 공부한다. 연습 초기에는 대본도 주지 않고 연습을 시키는 연출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황만 던져주고, 배역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사를 하게 만드는 데 공부하지 않으면 연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자료를 찾아보는 등,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하게 되었다.
장소익 연출
박제화된 민속이 아니라 지역사람들이 실제로 향유할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로 만드는 것이
주된 연출 방향이었다. 현실과
공연의 경계를 허물고 그것을 통해 제의의 성격을 되찾고 놀이로서의 공연을 구현하고자 했다. 원놀음 행차에서 남서낭과
여서낭, 해님과 달님이 마을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난장을 트는 것, 가마놀이에서 관객들이 가마를 타고 원님이 되어보는
것을 통해서 원님은 낮은 곳에서 온다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제의와 놀이의 과정이다.
잘 짜인 재판과정을 보여주기보다 관객과 더불어 즉흥적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통해서 공연은 단순히 볼거리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영양 원놀음은 원래, 마을 사람들을 죄인으로 불러들여 즉흥적으로 놀았던
것이고, 즉흥성과 놀이를 복원하는 것이 원놀음을 오늘에 재현하는 키워드인 것이다. 척박한 곳에서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대부분 40대가 넘도록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연극을 하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영양 땅에서 자라나 마을을 지키면서
문화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영양 원놀음 보존회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영양의 큰 문화적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가 없으면 식민지와 다를 바 없다. 일제강점기에 의해 사라졌던 우리문화, 그것을 대체한 미국문화가 판치는
시대에,
식민지성을 타파하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가꾸어나가는 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인식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부심을 갖고자 연습에 임했다. 이것은 분명 21세기 문화발전에 좋은
씨앗이요, 출발점임에 틀림없다.
축제는 무엇보다도 시간의 재생을 통해 존재를 재생토록 한다. 축제는 역사적이고 세속적인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영원한 출구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축제의 성스러운 시간이 곧 새로운 삶의 탄생인
신화적 시간을 통합하도록 하는 행위인 것이다 - 머시아 엘리아데.
-글쓴이 임은혜 극작가'나무닭움직임연구소' -출러 걸처라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