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시대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일그러트리는지를 보는 것은 늘 묘한 감동과 여운을 주곤하지요.
풋풋한 젊음의 열정을 속삭이던 입술이 어떻게 거짓과 간계로 물들어 가는 지를 보는것은 괴롭지만
그 현실과 이상.. 머리와 가슴의 부조화... 그안에서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은 늘상 상투적임에도 또 늘상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한 내가 평이 상당히 좋은 이 영화를 본건 다분히 배우 양조위를 보기 위해서였지요.
허나 파격적인 노출에 에 끌린것이 아니냔 볼멘 소리도 들었던 무지 억울했던 기억이 있군요.
물론 .... 아니... 뭐쫌은 그런 의도가 무의식중에 섞여 있었는지도 .....쿨럭...^^;;
하지만 분명 그 명성에 걸맞는 빛나는 연기.. 빛나는 연출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배우 양조위의 빛나는 연기와 탕웨이란 신인 여배우의 도발적인 연기..
그밖에 동양인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보여주는 이안감독이 빚어내는 섬세한 변주곡은
역사란 거대한 수레바퀴아래 조용히 사그러간 젊고 순수한 열정.. 사랑 ...
그 쓸쓸함에 대하여 조용히 읖조리기 때문이지요.
여기 한 여자와 한남자가 있습니다.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여자는 제 생애 최대의 연기를 선보이고
그런 여자의 연기를 남자는 시종일관 냉정하고 의미심장한 눈으로 지켜봅니다.
대략 유혹하는 자와 유혹당하는 자의 숨가쁜 연기 대결이랄까?
시선과 시선의 엇갈림... 밀고 당기는 은근한 추임새가 매혹적인 탱고를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드라마 개늑시서 그랬더랬죠.
최고의 스파이는 자신이 스파이라는 자각이 없는 자라고...
이를 색계에 대입해 보면 여주인공이 연기해야할 최고의 연기란
주어진 역할의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면없이 희. 노. 애. 락을 얼굴에 드러내며 최고 경지의 예술이 지니는
복잡하고 다양한 숨은 감정을 청중... 즉 유혹해내야 하는 대상인 그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볼수있음을 알수있습니다.
때문에 안과 밖의 경계가 나뉘지 않는 그들의 최고의 연기는
가면뒤에 숨어 그 예술의 경지를 높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진짜 얼굴을 이용함에 있어
헐벗은 육체의 적나라하고 고통스런 정사씬으로 시각화되는 장면에 있는 거구요.
물론 혹자는 그 속에서 음란한 욕망의 편린을 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보는 내내 무척 괴로웠더랬죠.
서로의 가장 안쪽에 닿기 위해 지배하고 지배당하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고통스러웠거든요.
그건 사랑이었을까요?.....
몸을 통해 맞부딪혀 오는 상대의 체온으로 부터 도망칠수가 없습니다.
숨통을 죄이듯 제 몸 이곳저곳을 하나하나 무장해제시키고 잠식시켜오며
그 심장부....가장 깊고 내밀한 곳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상대를 뿌리칠수 없어 몸부림치지요.
이제 들켜버릴지도 몰른다는 두려움과
상대가 아닌 제 자신이 먹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뒤섞인
묘한 충만함과 희열감으로 일그러진 남녀의 미묘한 표정변화는 그래서 압권이라고 볼수있습니다.
그렇게 어디서 부터가 연기인고 어디서 부터가 현실인지 그 경계조차 모호해 지는 시점...
비로서 여자와 남자는 서로 그토록이나 원하던 상대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안쪽에 닿게 됩니다.
그들의 연극은 사랑을 맹세하는 남자의 반지와 여자의 목숨을 건 헌신으로 극의 최절정, 클라이막스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모든 연극이 그러하듯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열정적인 환호와 눈부신 순간은 한순간일뿐
연극이 끝난뒤에 기다리는 건 텅빈 객석.. 텅빈 무대.. 초라한 현실의 공허함입니다.......
여자는 무대밖으로 담담히 끌려나가고 남자는 홀로남아 여자가 없는 텅빈 무대의 어둠속에 잠깁니다.
또다시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 피폐한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죠.
무대밖 죽음을 앞둔 여자와 그녀의 동료들도 다르지않습니다.
다만 다른것은 그녀의 동료들은 이 불완전하고 비극적인 극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는듯
그녀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개의치않는다는듯 담담히 앞을 바라보는데 있지요.
그녀는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러웠던 걸까요?
담담한듯 모든것을 내려놓은듯한 여자와 뒤이어들리는 짧은 총성이 묘한 여운을 주며
그렇게 모든것이 끝나고야 맙니다.
그들생의 최고의 연기... 최고의 무대...
하지만 남은 것은 6캐럿 다이아 반지의 화려한 반짝임만큼이나 공허한 쓸쓸함뿐입니다.
..... 그것은 진정 사랑이었을까?....
알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가 무대고 어디서부터가 객석인지
어디서부터가 연기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이었는지 말이죠.
다만 알수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그러했듯
그 역시 홀로 남은 무대... 그녀가 떠난 어두운 객석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먹먹한 가슴... 그 좁고 쓸쓸한 어깨가 어둠속에서 조용히 조금 흔들렸다는 것 뿐입니다....
연극이 끝난뒤의 텅빈 객석과 무대사이의 경계선에 선채
언제까지나 망연자실 서있던 그녀와 그의 엔딩씬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