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6 이집트여행을 마치며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한 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났겠다.
기력이 떨어지면 의욕도 반감되기 때문이다.
열 발짝 걸을 것을 다섯 발자국으로 줄이게 된다.
의욕이 앞서서 한꺼번에 많은 곳을 방문한다면 또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을 테니
여유롭게 천천히, 세밀하게 관찰하며 기록을 한다거나 이야기꺼리를 만들면 좋겠다.
새로운 곳을 방문했으니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장면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사진이 많으면 나중에 다시 보게 될 때 “여기가 어디지?”하고 헤메게될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 놓는 게 필요하겠다.
-
세계 75개국 이상은 다녀 봤다는 노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다른 일행들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을 때 그들은 이곳저곳 둘러보는 게 일이었다.
“왜, 사진촬영 안하세요?” 했더니 “지금 있는 사진도 다시 볼 새 없을 거고,
내가죽으면 그 많은 사진들 처치하는 것도 큰일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지론(?)이다.
-
한 여행마니아가 한 말씀 거들었다.
“여행이 순탄하거나 순조로우면 재미없다. 여행기간의 중반 쯤 되어서
한번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술에 만취한 사람이 생긴다거나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간다거나 여권을 분실하는 사람이 생기는 등
물론 자신이 당사자가 되는 건 싫고요!”
“나만 아니면 괜찮다. 아니, 참 재미있을 거다.” 그런 거였다.
사실 사건 당사자가 된다 할지라도 인명이나 신체에 큰 손상이 없다면,
확실한 이야기꺼리는 갖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서 이번 여행 중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콥틱 교인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시위현장을 못 가본 게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타흐릴광장(Midan Tahrir) 근처 나일강변 도로를 점유하고 벌어지는
집회 현장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는데 그 주변은 교통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나일강 : 놀고 있네! 여행객들이 없으니...
-
이스칸다리아(알렉산드리아)해변
타흐릴광장 근처의 호텔을 나서서 람세스광장까지는 걸어도 될 만한 거리다.
그러나 배낭을 메고 몇 발작 걷고 보니 꾀가 난다. 택시를 잡았다.
흥정? 1달라면 넉넉하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호객소리도 우렁차다.
“이스칸다리아! 이스칸다리아!”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미니버스다. 5불 정도다.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노점상 스케치를 한다.
밖에서 창안을 기웃거리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젊은이들이 고맙다.
“나? 한국인이야!”
-
정신없이 드나드는 각종 차량행렬,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서는 행인들...
사람이 차도에 들어서면 자동차는 무조건 스톱이다. 사람위주의 교통문화인가?
차에 오른 지 1시간이 넘었다. 빈자리를 다 채우지 못해서 출발을 안 한다.
아직도 8자리가 남았다. 복잡한 정류장 풍경은 좀 낯설었다.
-
이곳저곳에서 하늘을 가르는 고성들이 오간다.
이집트인들이 다혈질인가 보다.
아히람에서 람세스로 오는 길에서 승객과 운전자의 설전이 벌어졌다.
“내려달라는데 왜 그냥 가냐?” “차가 밀려서 세울 수가 없지 않느냐.”
“내가 내릴 곳을 너무 많이 지나쳤다. 내린다는 곳에 내려줘야 할 것 아니냐.”
“꼭 내리고 싶은 데서 내릴 거라면 택시를 탈 것이지...”
다른 승객들은 안중에도 없다.
씩씩거리던 언쟁은 승객이 차문을 쾅 닫고 내려서야 종쳤다.
무함마드 후리덤이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다혈질이니 괘념하지 말라.” 한다.
그런데 아침에도 버스 정류장에서 고성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그래도 신체적인 충돌이 없는 게 신기하고 다행이다 싶다.
-
버스는 아직 기다리는 중인데 길 건너편으로 청년 두 명이 비닐 천을 바닥에 깔고 있다.
노점상으로 티셔츠 등 옷가지를 진열하고 있다.
오늘 얼마나 팔 수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지... 누가 안다고 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불확실성의 미래에 큰 기대를 걸고 살아간다.
오후 2시나 되어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우선 숙소부터 찾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오페라하우스 앞을 지나고,
몇 개의 극장을 지나쳐서
그렇게 그냥 지중해변까지 왔다.
해변 길에서 팔레스타인 국기가 판매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데모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땅전쟁으로 주변국에 흩어져 사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간혹 테러리스트로 비춰지긴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으로서는 너무 억울하다.
천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 뿌리내리고 살던 땅에서 뜬금없이 내땅이라고 비집고 들어온
유대인들에 의해서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으니... 이들에게 평화공존이란 무엇인가?
-
해변의 잘 가꾸어 놓은 공원에는 그늘을 찾아서 두셋씩 모여앉아 담소하고 있다.
중앙에는 ‘싸이드 자그룰’의 동상이 버티고 서서 해안을 바라본다.
자그룰은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이집트 독립의 기초를 놓은 정치인이었다.
싸이드 자글룰 동상
-
아! 바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 넓은 품이 좋고, 그 풍랑에 반짝이는 파도가 아름답고,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오는 그 바닷바람, 바닷내음이 너무 좋다.
이집트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나는 선택받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지중해변
-
"I can`t move as my mind. So I`ll visit only one site daily." -Pa.
"Cheer up! Don`t hurry n take care the health. Fitting!" -Hyun J.
딸과 주고받은 메시지다. 다시 시내로 발길을 옮긴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를 못 찾아서 묵직한 배낭이 아직도 등에 매달려 있다.
시내로 얼마쯤 걸었을 때 작은 공원광장과 로마시대의 유적지가 나타났다.
가운데는 무함마드 알리의 동상이 서 있다.
알리는 무함마드의 딸 화티마와 결혼했고, 반대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시아파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슬람의 순교자다.
알리의 동상
-
모핫산(Mohassen)이라는 박사를 만났다.
모핫산 박사 -열심히 설명중이다.
-모나미153을 선물 했다.-
-
핫산은 정상(頂上)이라는 의미이고,
모핫산은 핫산이 많다는 의미이고, 천국이 가깝다는 뜻도 있다나...
고고학을 전공했다면서 로마유적지를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디든지 가이드를 해 주겠다며 치근대는 그에게 전화번호와 주소를 따고 헤어졌다.
알렉산드리아는 바닷바람 쐬는 걸로 마무리 했다.
로마의 유적지
-
여행은 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너무 짧으면 아쉽고,
너무 길다면 지루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여행경비가 넉넉하다면 좋을 것이다.
어디서 잘까,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니...
-
이젠 요르단으로 되돌아가야겠다.
-
카이로에서 누웨이바로 가기위해 아침에 타흐릴을 떠났다.
‘도루그만 스테이션’은 제법 규모가 큰 버스정류장이다.
쇼핑가, 극장과 카페테리아가 함께 있다.
아침 9시에 출발한다는 ‘East Delta Travel' 버스를 탔다.
약속을 지키리라는 기대를 하며 사는 게 불가능(?)한 문화일까.
10시35분에서야 출발했다. 오후4시에 ‘니힐’휴게소 그리고 타바를 경유하여
오후 7시20분 누웨이바 도착. 버스 안에서 8시간 이상을 보냈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아침 8시에 출국장으로 갔다.
-
누웨이바 대합실에는 많은 이집트인들이 요르단을 가려고 기다린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며 뱃시간을 기다린다.
-
카이로에서 버스를 함께 타고 온 뚱보가 반가워한다.
자르까에 취업해서 요르단을 간단다.
그의 이름도 길다. ‘마흐무드 아흐마드 앗싸이드 이스마일 무함마드’(24세)다
-
오후 1시 출항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시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이라는 것과 여유로움이라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집트 뿐 아니라 요르단에서도 기다림에는 이력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참...! 쉽지 않네요!”
스케치하는 낙이 없었다면 정말 지루할 뻔 했다.
오후 6시에 ‘압바라’라 불리는 대형트레일러 운반선은 누웨이바를 출발했다.
여전히 내 손에는 작은 스케치북이 들려져 있었다.
-
오후7시40분 아카바항에 도착, 입국수속에 또 시비가 붙었다.
“What`s problem?” “No problem!”
판에 박은 질문과 대답이다.
“어머니 이름은? 부인 이름은? 직업은? 지금 요르단에서 하는 일은? 암만 주소는?”
시시콜콜한 질의응답이 다 기록이 되면서,
인터넷검색과 몇 차례의 전화 통화확인이 진행되고 나서야 상황 끝,
오후 9시30분이다. 항구 안에서 밤을 맞이했네...
-
두 번 겪고 싶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많은 사람을 만난 좋은 경험이었다고 기록할 거다.
체력이 달려서 힘들었지만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다.
쌀람!
-관-
첫댓글 특별한 취미를 가지셨네요.
요르단선교사로 있으면서 비자여행이란 게 필요해서 주변국을 드나들었던 것입니다.
요르단체류를 위해 시리아나 레바논 혹은 이스라엘을 자주 드나들던 중에
요르단철수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이집트로 모험을 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