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쉰 여행3 - 난쉰구전 운하 소연장 앞에서 송나라시대 옷을 입은 처녀들을 보다!
2023년 10월 30일 수향마을 시탕(西塘) 에서 택시를 타고 근 한시간을 달려서는 저장성 후저우시
난쉰전에 도착해 湖州南浔古镇亚朵酒店(호주남심고진업타주점)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30분을 걸어 강남의 10대 수향 마을 난쉰구전 (南浔古镇 남심고진) 서문으로 입장합니다.
난쉰구전 (南浔古镇 남심고진) 은 자유입장이며 중요 건물에 입장할때는 그때 마다 입장권을 끊어야 하는데
이 수향 마을은 700년 역사를 가진 마을로 부자들의 동네라고 불리며 3모작을 하고 실크를 생산하는
풍요의 고장이니 사조지부(絲組之府) 에 쌀과 물고기가 풍부해 어미지향(魚米之鄕) 으로 불려왔다고 합니다.
중국의 양자강 이남인 강남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남자들이 살림을 하는데.... 여자들이
드세다기 보다는 여자들은 섬세한 손으로 누에에서 생사를 뽑고 비단을 짜니
손가락이 상하면 안되는지라 설거지와 뻘래등 집안일은 남자들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운하변에 오래된 대저택이 보이니 小蓮莊(소연장) 이라는 주택인데 규모가 어미어마하며 소연장 외에도
유명한 백간루(百間樓) 에다가 장석명 구택, 장정강 고거, 남심 문원, 가업장제루에 문씨제호 등 입니다.
400년된 백간루(百間樓) 는 결혼때 신부가 100명의 하녀를 거느리고 온다고 하자 그들
을 모두 기거할수 있도록 연이어서 지은 집이라고 하며 옆에는 博陽開元
(박양개원) 이라는 호텔이 보이는데 연회실이며 침실과 거실에 식당이 화려해 보입니다.
중국은 명나라 영락제 시절에 정화가 이끄는 대규모 함대가 무려 일곱차례나 대원정에 나서 동남아를
지나 인도를 넘어 아라비아와 아프리까까지 항해하면서 여러나라에서 조공을 받고 무역하였습니다.
1차 원정 (1405.6.15.-1407.9.2) : 난징에서 출발하여 장강을 따라 동중국해로 나가 참파, 수마트라
를 거쳐 인도네시아의 팔렘방에 갔는데 화교 중국인 해적 진조의가 왕을 몰아내고
지배자 노릇하던 곳이었다. 이후 더 서진해 말라카 해협을 지날 때, 진조의의 해적단과
교전해서 남중국해를 주름잡던 진조의를 생포해 압송하기 위해 뱃길을 돌려 난징으로 돌아왔다.
명나라 영락제는 정화의 원정 성과에 만족했고 명나라에 와서 무역과 향락을 즐기던
외국인들에게도 관대한 태도를 보였으나, 광둥성 출신의 한족으로서
해금령을 어기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해적인 진조의에 대해서는 처형을 결정했다.
인도양의 여러 나라들이 명나라 함대에 신뢰를 보내게 되었고, 이후
정화는 여러 나라들간의 크고 작은 분쟁에서 중재를 맡게 되었다.
2차 원정 (1407.9.13 - 1409 여름) : 돌아온지 10일후 출발해 태국, 자바, 실론을 거쳐 인도 서해안인
캘리컷에 도달했다. 실론(스리랑카)에서 한문, 타밀어, 페르시아어 의 3개국어로 된 비석을
남기는데, 이 비석은 한동안 잊혀졌다가 1911년 재발견되어서 정화의 원정이 여기 닿았음을 증명했다.
3차 원정 (1409년 10월 - 1411년 7월) : 난징을 출발해 실론 감폴라 왕국을 정벌해 알라케스와라왕을
사로잡아 데려왔다. 이 때 감폴라 왕국은 일부러 정화의 상륙을 허용하며 콜롬보에 정박하던
정화의 본대로 부터 정화를 떼어놓으려 했으나, 정화와 그 부하들이 왕궁을 급습하여
왕과 왕족과 신하들을 모두 잡아버리는 바람에 전열을 정비해 보지도 못하고 명군에게 제압 당했다.
영락제는 그를 사면하여 평민으로 만들고 왕위를 난징에 온 실론의 대사로 부터 추천받은 옛 왕족의 후예인
파라크라마바후 6세에게 넘기며 알라케스와라도 실론으로 돌려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실론에서는 파라크마라바후 6세가 1412년 코테(Kotte)에 새 왕국을 개창하여 코테 왕국(1412년 ~ 1597년)
이 들어서게 되었다. 캘리컷에서 더 서진하여 페르시아만을 거쳐 홍해상의 아덴에 도착했다.
여기서 뱃머리를 돌려 귀환했고, 귀환 중에 조공국 수마트라왕의 요청을 받아 반란 세력을 토벌해 주었다.
4차 원정 (1413년 11월-1415년 8월) : 아프리카 케냐까지 도달했고, 말린디 특사가 "기린" 을 조공
했다. 원래 이것은 giraffe 로 상상종인 기린과는 다른 동물이지만, 특사가 이것을 게린
(Gerin) 으로 발음하자, 중국인들은 발음과 모양의 유사성에 이를 상상속의 동물인 기린으로 여겼다.
영락제는 매우 기뻐하여 큰 상을 내리고 그림으로 기록하라고 명령했다. 현재 남아있는 판본은 청나라 때 원본
을 보고 그린 모사작이다. 이후 중국인들은 이 동물이 신화속의 동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현재는 장경록
(长颈鹿, 목이 긴 사슴) 으로 부른다. 중국인의 무역활동은 인도 보다도 훨씬 서쪽인 호르무즈 까지 확장되었다.
5차 원정 (1417년 6월 - 1419년 8월) :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 닿았다. 중간에 갈라진 분함대는
1420년 여름에 귀국했는데 귀환할 때 얼룩말, 코뿔소 같은 아프리카의 귀한 동물을 실어 왔다.
6차 원정 (1421년 1월 - 1422년 8월) : 1~5차 원정으로 데려왔던 조공사절을 돌려 보내기 위한 원정
이었다. 그리하여 항해기간은 비교적 짧았다. 본대에서 갈라진 분함대들이 아프리카,
인도와 아라비아의 여러곳으로 퍼져나가 30여개국에 달하는 사절들을 고국에 돌려보냈다고 한다.
항해중단기 (1422-1430) : 1424년 명나라 함대의 보급기지 노릇을 하던 팔렘방에서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났고, 한 왕자측이 개입을 요청하여 중재하기 위해 정화의 함대가 가서 팔렘방
왕을 책봉하고 난징에 귀환했으나, 돌아오자 영락제가 이미 한달 전에 붕어한 (1424.7)
것을 알았고, 홍희제가 즉위했으나 천도 및 재정상의 이유로 이후의 원정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홍희제는 베이징을 싫어했기 때문에 다시 난징으로 재천도하려 했고, 정화를 수비태감에 임명해 천도의
사전 정지작업을 맡겼다. 정화는 1425년 난징의 재건임무를 맡아 여러 천도작업에 종사했고, 특히
난징의 불교사찰인 대보은사 재건을 떠맡게 되었다. 홍희제 는 난징으로 오지도 못하고 1425년 붕어했다.
7차 원정 (1431년 1월 - 1433년 7월) : 선덕제는 항해 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는데
정화를 대신할 인물이 없다고 7차 항해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이 때
이슬람 교도인 정화는 메카에 도달해 참배한 것으로 보이며 돌아오는 중 사망했다.
원정대는 정화의 부관인 환관 왕경홍이 지휘하여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다시 항해의
재개가 논의 되었으나 정화를 대신할 인물이 없었고 이런 해외진출에는
반대가 많아 선덕제는 외정을 삼가고 내정에 치중하면서 항해 사업은 막을 내렸다.
이후 중국은 쇄국정책으로 들어가 청나라에 이르기 까지 자급자족을 하다가 1840년 아편전쟁에서 영국
에 패배해 5개 항구를 개항하게 되면서 인근 상하이가 개항되니 "생사 수출이 급증" 하게 됩니다.
생사의 70% 는 난쉰 인근에서 생산되었으니 이로 4코끼리(유씨, 장씨, 방씨, 고씨), 8소, 72돈구(누렁이?)
라는 거상들이 탄생하였으니..... 4 꼬끼리는 그 부로 철도, 부동산, 전당포 및 은행업을 일구었습니다.
운하를 다니다가 동쪽으로 나가니 큰 문이 보이는데 여기가 난쉰구전의 정문으로 관광객
들이 엄청 많이 보이고 학생들도 많은데 매표소가 있으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저기서 표를 끊을 법도 하건만.... 거의 무시하고 들어가는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다시 운하로 돌아와서는 나룻배며 옛날 송나라 의복을 입은 처녀들이며 아이들을 보다가 중국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판다곰이떠오르는데.... 이규열 기자는 동아일보에 “ 유튜브 속 테마
파크... 킬링 콘텐츠의 비결은? 에버랜드, 유튜브 성장 전략“ 이라는 기사를 올린게 떠오릅니다.
에버랜드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속 ‘환상의 나라’로 거듭났다. 공식 채널의 구독자 수는 113만 명으로 국내
여행레저 업계에서는 최초로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기업이 운영하는 유튜브로서도 이례적인 숫자이다.
매번 조회수 100만은 거뜬히 찍는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 의 영상이 현재 핵심 콘텐츠다.
푸바오가 만 4세가 되는 내년 2024년 짝짓기를 위해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올해 5월 알려지자 푸바오 영상의 조회수가 급증하며 판다 신드롬이 일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흥행은 에버랜드를 향한 발길로 이어졌다. 올해 6월 에버랜드 판다월드 일평균
방문객 수는 푸바오의 인기 역주행이 시작된 5월 첫째 주에 비해 2배 수준으로 늘어
났다. 올해 3, 4월 대비 최근 에버랜드 판다 관련 굿즈 일평균 매출은 80%가량 증가했다.
에버랜드는 2011년 온라인 가짜뉴스를 바로잡는 목적으로 공식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개설
한 바 있다. 또 2019년 이후 대(大)유튜브 시대가 펼쳐지자 주요 마케팅 채널로서 유튜브를 키워나갔다.
DBR (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9월 2호(377호) 에 실린 에버랜드의 유튜브 성장 비결을 요약해 소개한다.
에버랜드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2016년 푸바오의 아빠, 엄마인 러바오, 아이바오가 대나무
‘먹방’ 을 하는 영상이 조회수 248만 회를 기록하며 한 차례 가능성을 입증했다.
2020년 7월 푸바오 탄생 직후부터 ‘판다로그’, ‘판다스틱 베베’ 등의 코너를
연재하며 아기 판다의 성장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채널이 크게 성장했다.
한편 직원들이 직접 출연하는 예능 채널 ‘티타남’에는 놀이기구 바닥에 어떤 물건들이 떨어
졌는지 주워 보는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실험 콘텐츠, 캐스트(아르바이트생) 의
퍼포먼스 영상 등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던 중 2022년 4월 초대박을 쳤다. 바로
‘소울리스좌’ 영상이 2022년 유튜브가 뽑은 대한민국 최고 인기 동영상 1위로 선정된 것이다.
영상 속 김한나 캐스트는 ‘영혼 없는 눈빛’과 이와 대비되는 생기 있는 목소리, 정확한 발음으로
랩을 하듯 아마존 익스프레스 탑승을 안내했다. “퇴근은 하고 싶어도 할 일은 하는
내 모습과 비슷하다” 라는 등의 반응을 받으며 재미와 공감을 끌어냈다. 이후
에버랜드는 쇼츠, 1시간 몰아 보기등 소울리스좌 영상을 올리며 300만∼1000만 조회 수를 올렸다.
동물 특화 채널 ‘뿌빠TV’는 운영 초기엔 더빙을 통해 동물들이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영상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1년간 모은 구독자는 3000명에 불과했다. 사육사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푸바오를 돌보던 강철원 사육사가 합류하며 현재의 인기 코너 ‘전지적 할부지 시점’ 이 탄생했다.
첫 에피소드 방영 이후 “사육사 목소리가 인위적이지 않아 더빙보다 훨씬 좋다”는 등의 호평이 잇따르자
핵심 코너로 키우기 시작했다. 구독자 수는 전지적 할부지 시점 이전인 2022년 1월 3만2000명에서
현재 54만 명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를 담당하는 김수진 프로는 “각 콘텐츠가
알고리즘으로 연결돼서 노출 및 구독자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 유튜브의 일등 공신은 ‘임플로이언서’로 활약하는 직원들이다. 판다 영상들은 사육사와의 ‘케미’ 가
강조된 이후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 8월 패널서비스 설문 조사 결과 푸바오의 인기 비결 1위로 ‘사육사
할아버지와 끈끈한 케미’(38.2%) 가 꼽혔다. 소울리스좌 열풍의 주인공 역시 외부인이 아닌 내부 직원이었다.
영상 속 직원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 솜씨를 뽐내지만, 전문적인 유튜브
교육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강 사육사는 “원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고객들을 응대 하다 보니..... 말하기를 즐기게 됐다” 라고 말했다.
사육사, 캐스트 등 관객들을 응대하는 직원들은 안내,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직접 진행하며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특히 베테랑 사육사들은 동물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송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도 한다. 본업에 요구하는 역량과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역량이 일치하기에 유리한 부분도 있다.
‘ZCC(Zoo Creator Club)’ 는 개인 창작자들에게 공식적인 촬영 권한을 부여해 에버랜드
의 유튜브 창작자로 활약하게 하는 제도이다. 심사 과정에는 사육사들이
지원자들의 기존 영상을 검토하며 이때 잘못된 정보, 자극적인 편집 여부 등을 살펴본다.
지난여름 ZCC인 ‘진진TV’ 채널은 호랑이들이 무더위 속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개했다. 에어컨이 설치된 내실
과 야외 방사장을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 중인 호랑이들의 모습을 촬영해 폭염 속 동물에 대한
대중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촬영 시간 등도 사전에 협의해 촬영으로 일반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일도 막는다.
한편 푸바오가 중국에 가면 에버랜드 유튜브의 동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프로는 “푸바오가 중국에 돌아가도 중국 측과 협의해 주기적으로 푸바오의 소식을 전할 것”
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24년에 푸바오는 짝짓기를 위해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