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춘이가 나온 고등학교 동창들은 해마다 춘계기행을 간다. 국내 명소는 거의 섭렵하였다. 심지어 홍도도 가고 울릉도도 다녀 왔다. 해외에는 가지 않는 것으로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금년은 재탕이지만 진해 벚꽂을 구경하고 충무에서 일박한 다음 외도를 구경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이 고등학교는 별로 이름이 없는 학교이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학생이 많아서인지 단결이 잘 된다. 보면은 K고교라든지 S고교는 모레알이다. 각개전투형이다. 제 잘난 척만 하지 서로 도울 줄을 모른다. 그러나 도성고등학교는 촌놈들이 많아서인지 의리가 있고 잘 뭉친다. 동창 중에 누가 경조사가 있으면 5~60명은 온다.
금년 연초 정기총회에서 임원개선이 있었는데 원춘이가 총무로 지명되었다. 독일병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융통성이 없고 마지매지만 경리 하나는 똑 소리나게 할 것이라며 통과 되었다. 그러나 사교성이 없고 너무 꽉 매껴서 총무감으로는 마땅치 않다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원춘이는 ROTC 헌병장교 출신으로 군에 있을 때 사병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것을 동창들은 알고 았었기 때문이다. 귀대가 1~2분만 늦어도 기합을 주고 복장이 조금만 거슬려도 과도한 기합을 주어 악명이 높았는데 어느 동창 아들이 군에 복무할 때 원춘이 한테 당해서 동기 간에 소문이 난 것이다. 그리고 말도 상대방 속을 뒤집어 놓기 일수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총무가 되자 마자 의욕을 보여 동창회 명부를 정비하고 동창회 회칙 개정안을 내 놓았다. 당장에 닥친 중점사업인 춘계기행 준비도 열심히 했다. 여행 출발일이 와서 버스에 타자마자 <여행 중 주의 사항>이라며 A4 용지에 빽빽히 적힌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출발 시간은 절대 엄수할 것, 차내에서는 소변 관계상 음료수는 한 캔만 마실 것, 사진을 찍느라 이동에 지장을 주지 말 것, 경비의 회비내 지출을 위하여 식사 시 상에 제공된 음식과 술이외는 추가 주문하지 말 것, '노래방에서는 회원 당 노래는 꼭 한 곡만 부를 것' 등 이런 것들이었다. 잔소리꾼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이번 여행은 잡치겠는데 하며 여기저기서 웅성 거린다.
사단은 진해 벚꽃 구경을 하고 충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일어 났다. 목이 마르다며 누가 맥주 한 캔을 달라고 하였다.
원춘이는 버스에 탄 전원에게 맥주 한 캔씩을 일률적으로 배급하였다. 먼저 맥주를 달라고 한 친구가 원춘이 보고 한 캔을 더 달라고 하였다. 원균이는 한마디로 이 요구를 짤랐다. 무안을 당한 그 친구가 식식 거리자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느 동창이 내꺼 먹으라며 맥주를 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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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단은 충무에서 일어 났다. 저녁은 모처럼 충무에 왔으니 생선회를 먹자고 의견을 모았다. 원춘이는 이러면 회비가 초과한다고 난색을 표하다가 모두들 회 먹기를 원하니까 그러면 반드시 자기가 주문하는대로만 먹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고 횟집에 들어 갔다. 과연 충무 생선회는 맛있었다. 신선한 것이 서울에서 먹는 것과는 완전 달랐다. 누가 모처럼 충무에 왔으니 입에 호강 좀 시키자고 추가 주문을 하였다. 그러니까 원춘이가 그러면 안 된다고 주문을 짤랐다. 다들 김이 샜다. 즐기자고 여기까지 온 것인데 이 나이에 돈 몇 푼을 아껴야 하나하며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최근에 토지 보상을 받아 돈이 좀 있는 동창이 호기를 부리며 자기가 쏠테니 마음 놓고 먹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균이는 그러면 단체생활에 뒷 말이 난다며, 먹고 싶으면 나가서 먹으라고 하였다. 자연히 먹는 것 가지고 어쩌고저저고 한다고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결정적 사단은 노래방에서 일어 났다. 노래를 잘 하는 어느 동기가 한 곡조 더 불르겠다며 한참 트롯트가 간드러지게 넘어가는데 원춘이가 노래방 기계를 꺼 버렸다. 떠날 때 나누어준 규칙대로 해야 한다는 거였다. 노래 부르던 동창은 식당에서 회를 추가 주문했던 친구였는데 드디어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규칙은 무슨 비러 먹을 규칙이냐며 네 멋대로 만든 규칙이지 동창들 의견이나 들어 뵜냐고 핏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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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원춘이가 투덜 대니까 그 친구는 분을 못 참고 이런 기분으로는 여행을 계속할 수 없다며 밤 차로 서울에 가겠다고 횡하니 나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외도에 가는 배를 타려고 버스에 승차했는데 어느 누가 이런 기분으로는 외도고 뭐고 집어치고 서울로 가자고 주장했다. 갑론을박이 쏟아져 나왔다. 노골적으로 원춘이가 총무를 하는 한 춘게기행은 가지 않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원춘이는 '한번 정한 규칙은 지켜야지, 이래서 사회에 정의가 없는거야. 난들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빡빡하게 구나. 우리사회는 법이 있으나 마나야. 악법이든 무어든 규칙을 만든 이상 지켜야지 요리저리 피해가니까 우리 사회가 이 모냥 이 꼴이야...'하며 마이크를 잡고 정색을 하며 일장 연설을 한다.
이러자 어제 밤 핏대를 올렸던 동창이 '매사에 융통성이 있어야지 예외없는 원칙이 어디 있어? 사정 변경 원칙이란 것도 있는데 형편에 따라 유두리 있게 규칙을 적용해야지 뭐 이 따위로 빡빡하게 굴면 동창회 다 깨져 버려...'하며 열을 올린다
외도 구경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 오는 버스에는 모두 벌레 씹은 표정으로 서먹서먹 침묵만 흘렀고, 괜히 원춘이 같은 놈을 총무로 뽑아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며 후회에 가득찬 표정들이었다. 단결력 자랑하던 도성교등학교 동창회도 이제 모래알이 될 것이 뻔했다.
첫댓글 7순이 다 되도 원리 원칙대로...그러지 말고, 좀 융통성 있게하자며....슬슬 "패"가 갈라지네요. 일본인들은 한 사람이 "깃발"을 들면 그 사람 하자는데로, 시키는데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만 한국사람 3명이면 두사람과 한사람...4명 보이면 둗 둘씩....미국 LA에 동기동창이 30여명이 있는데 4-5명은 별 관심없고 나머진 딱 두 패로 나눠서 만나고...한국 사람들 "지방색" "학연" 으로 이리 뭉치고 저리 헤치고....지구가 멸망할때까지 그리 할꺼구만...불쌍하다 할껀가..잘났다고 그럴껀가...남 과 북이 찢어진것도 모자라..
이 글은 세태를 풍자적으로 그린 것이지만 너무 원리원칙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회가 하두 편법과 불의가 횡횡하니까 원촌이 같은 자도 양념같이 좀 있어야 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쪽 사정을 좀 아는데 말씀하신대로 교포들은 왜 편을 잘 가르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