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제
최원오 교수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334년경-397년)는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황실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종교의 자유와 권위를 지
키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한 교부이다. 그의 인품과 학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고,들 다 서방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11쪽)
암브로시우스는 키케로(기원전 106-43년)의『의무론』을 뼈대로『성직자의 외무를 집필했다. 키케로가 아들을 위해『의무론』을 썼듯이, 암브로시우스도 아들과 같은 성직자 양성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이 성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덕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직자들만을 위해 저술되지는 않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작품을 통해 성경의 본보기에 바탕을 둔 보편적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복음에서 찾아낸 삶의 규범과 생활 원리를 담아낼 그릇으로 키케로의『의무론』을 활용하면서도, 고전 철학과 윤리 사상을 끊임없이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그리스도교 윤리 교과서’인『성직자의 의무』가 탄생하게 된다. (11-12쪽)
☕ 성경에 바탕을 둔 최초의 그리스도교 윤리교과서다.
암브로시우스는 복음의 빛으로 사추덕을 해석하고,올바름과 이로움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시도한다. (13쪽)
☕ 사추덕은 예부터 중요시 한 덕이다.
키케로가 지혜로운 사람을 이상적 인간으로 내세웠다면, 암브로시우스는 참으로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의 본보기를 성경에서 찾아 제시한다. 키케로가 자연법과 로마 시민법을 윤리의 토대로 삼았다면, 암브로시우스는 하느님의 법에 뿌리 내린 새로운 사랑의 윤리를 세운다. (13쪽)
☕ 사랑의 윤리는 하느님의 법이다.
스토아학파는 연민과 동정 때문에 평정심을 잃는 일 없이 정념에서 벗어난 청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성직자의 의무』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하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분배 정의,공동선과 사회적 연대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며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의 원천이기도 하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그리스도교 행복론도 펼쳐진다. (13쪽)
☕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은 가능하다.
암브로시우스의『성직자의 의무』는 교부 시대를 지나 중세의 긴 세월을 가로지르면서 성직자와 공직자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이자 유럽 정신의 토대가 되었다. ‘서양의 목민심서(牧S心書)’라 할 수 있다. (14쪽)
암브로시우스의 생애
암브로시우스는 334년경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암브로시우스(동명이인)는 트리어에 관저가 있는 갈리아 지방 총독이었다. 어린 시절 엄격한 초등교육을 받았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세 자녀(마르켈리나,사티루스, 암브로시우스)를 데리고 로마로 갔다. 암브로시우스는 그곳에서 인문 교육을 받았다. 누나 마르켈리나는 353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티베리우스 교황의 집전으로 수도복을 입었으며, 형 사티루스는 공직에서 물러나 암브로시우스의 주교 행정을 돕다가 378년에 세상을 떠났다. (14-15쪽)
젊은 암브로시우스는 시르미움의 법원에서 변호사로 짧게 활동했고, 프로부스 총독의 고문으로 일했다. 일찌감치 출셋길에 올라선 암브로시우스는 서른여섯 살 무렵(370년) 밀라노에 행정소재지를 둔 에밀리아 리구리아 지방 집정관이 되었다. (15쪽)
당시 황실이 있던 밀라노에서는 니케아 정통 신앙파와 아리우스파가 서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끝난 뒤였지만 380년 이전까지 밀라노는 서방 아리우스파의 거점이었고 니케아파는 여전히 소수였다. 밀라노의 아리우스파 주교 아욱센티우스(355-374년 재임)가 죽자,후임 주교 선출을 둘러싸고 니케아 정통 신앙파와 아리우스파 사이에 극심한 대립이 벌어졌다. 저마다 자기 사람을 주교로 밀었기 때문이다. (15쪽)
집정관 암브로시우스는 도시 질서를 통제하고 공정한 주교 선출을 감독하고 중재하기 위해 신자들이 모여 있던 대성당에 갔다. 성당에 들어선 암브로시우스가 신자들에게 연설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어린이가 “암브로시우스 주교!”라고 외쳤다. 그러자 정통 신앙파, 아리우스파 할 것 없이 모두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외치며, 놀랍고도 믿을 수 없는 일치로 암브로시우스를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했다. (15-16쪽)
☕ 놀라운 일화다.
세례를 미루던 관습에 따라 어릴 적부터 예비 신자 신분이었던 암브로시우스는 망설였지만*,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권고를 받아들여 세례받은 지 이레 만인 374년 12월 7일에 주교품을 받았고, 지니고 있던 모든 금과 은을 교회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16쪽)
㈜ : 예비 신자나 새 영세자를 주교로 서품하는 것은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법규 2)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신학 지식도 사목 경험도 없는 공직자로 지내다가 갑자기 교회의 중책을 떠맡게 된 암브로시우스는 그때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법정과 관직에서 낚여 와 사제직을 맡게 되었는데, 나 자신이 배우지도 않은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기도 전에 먼저 가르치기 시작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먼저 배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쳐야만 합니다.” (암브로시우스, 『성직자의 의무』1,1,4) (16쪽)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밀라노 교구의 사제 심플리키아누스의 지도를 받아 성경을 깊이 깨우치는 일이었다.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암브로시우스는 필론과 오리게네스의 성경 주석을 익혀가면서,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자신이 받은 신학 교육을 심화하고 사목 활동을 준비했다. 특히 성경은 하느님 백성에게 건네줄 생수를 긷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16-17쪽)
암브로시우스는 아리우스파 선임자가 서품한 모든 성직자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곧바로 충성했다. 다른 한편 그는 일리리큼 지방의 비어 있는 주교좌들에 니케아 신앙의 주교들을 임명하고, 381년 아뀔레이아 교회 회의에서 삼위일체 논쟁을 마무리했다. (17쪽)
암브로시우스는 주교 직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황제를 겪었다. 특히 어린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375-392년 재위)를 앞세워 밀실에서 환관 정치를 하던 유스티나 황태후의 부당한 권력과 타협할 수 없었다. 황실은 아리우스파에게 대성당을 넘기도록 회유하고 협박했지만, 암브로시우스는 단호하게 거부하며 신자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여러분,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저는 결코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폭력으로 맞받아칠 줄 모릅니다. 저는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탄식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무기와 군인과 고트족에게도 맞서는 나의 무기는 눈물입니다. 이것이 사제의 갑옷입니다. … 황제는 교회 위에 있지 않고 교회 안에 있습니다.” (17쪽)
386년 성주간 첫날인 성지주일에 들이닥친 무장한 군인들이 성 밖의 표르티아나 대성당을 강제로 빼앗고, 재의 수요일에는 미사를 드리던 성 안의 새 대성당마저 포위했을 때 거기 모인 백성들은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의했다. 시편을 노래하고 찬미가를 지어 부르며 목숨마저 걸었던 비폭력 저항은 마침내 군인들을 물리쳤고, 국가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서 교회의 자율적 권위를 지켜내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18쪽)
390년, 데살로니카에서 일리리큼 속주의 군사령관 부테리쿠스가 군중에게 살해되었다. 격노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엄벌을 명령했고,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죽어간 시민은 7,000명을 헤아렸다.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이 잔혹한 폭력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던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어 교회에서 규정한 참회를 요구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0년 성탄절에 용포를 벗고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그제야 암브로시우스는 그를 다시 성찬에 받아들였다. (18쪽)
암브로시우스는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그리스도인 황제 테오도시우스에게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리고 바로 그 엄정함 덕분에 암브로시우스는 오히려 황제들로부터 영적 권위를 인정받고 종교의 자유를 지킬 수 있었다. (19쪽)
암브로시우스는 적대자들마저 감동하게 하는 탁월한 인품의 소유자였으니, 자신을 견제하던 로마 시장 심마쿠스가 뽑아 세운 밀라노의 신임 수사학 교수 아우구스티누스마저 “아버지처럼” 맞아주고 "주교답게" 무척 반기며 호의를 베풀었고, 그 인연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5,13,23 참조.) (19쪽)
☕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적 만남.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수많은 민중의 힘겨운 사정을 쉴 새 없이 돌보았고, 사람들이 없을 때면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꼭 필요한 음식으로 육신에 기력을 불어넣거나 독서로 정신을 새롭게 했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6,3,3 참조) (19쪽)
그가 자신을 위해 청한 것이라곤 이런 것들이었다.
“당신은 잃어버렸던 저를 불러주셨으니, 이제는 주교인 제가 당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참되고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하시어, 제가 죄인들을 꾸짖기만 하는 교만한 인간이 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울게 하소서.”(암브로시우스, 『참회』 2,8,74) (19쪽)
암브로시우스는 끊임없이 절제하고 단식하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수도승같은 수행의 삶을 살았으며, 암브로시우스 홀로 감당한 성무 집행과 사목 활동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다섯 주교가 매달려야 겨우 수행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의 거의 모든 작품이 사목 활동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토록 힘겹고 분주한 일정 속에서 영적 성찰과 저술 시간을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20쪽)
☕ 암브로시우스 성인은 대단히 성실한 인물이다.
파비아의 주교 서품식에 참석하고 밀라노에 돌아온 뒤(397년 2월) 암브로시우스는 병으로 드러누웠다. 그는 죽음 앞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더 오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쪽)
☕ 주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397년 성 토요일(4월 4일) 새벽에 선종한 암브로시우스는 그 이튿날인 부활절에 주교좌 대성당에 묻혔다. 그의 나이 예순셋이었다. 오늘날까지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공경받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는 암브로시우스의 주교 수품일인 12월 7일에 그 축일을 기념한다. (20쪽)
핵심 주제: 올바름(義)과 이로움(利)
안중근의 유묵 가운데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이 유명하다. 이로움(利)을 보거든 올바름(義)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는 『논어』헌문(憲問)편의 한 대목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옥중에서 써내려간 이 유묵에는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인생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노라는 단호한 결의가 꿈틀거린다. (24쪽)
의리(義利)에 관한 동양의 논의는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펼쳐졌다. 기원전 44년 스토아 철학 전통의 키케로가 아들 마르쿠스를 위해 저술한 『의무론』은 올바름(義)과 이로움(利)에 관한 대표적 성찰이다. 그 뒤 388-390년경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을 위한 첫 윤리 교과서인 『성직자의 의무』를 펴냈는데, 이는 올바름과 이로움에 관한 최초의 그리스도교적 해석이며, 곧이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올바름과 이로움을 향유와 이용 개념으로 토착화한다. (24-25쪽)
『성직자의 의무』는 서양 고전을 통한 그리스도교 사상의 토착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암브로시우스는 전통적인 사추덕을 수용하면서도 그리스도교 덕행의 탁월함을 강조한다. 개인과 공동의 삶에 관한 윤리를 강조하는 스토아학파의 이상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의 복음적 생활 방식을 훨씬 더 선명하게 제시한다. 따라서 『성직자의 의무』는 형식에서는 키케로의『의무론』에 기대면서도, 내용으로는 키케로의 철학을 뛰어넘어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윤리를 마련한 셈이다, (26쪽)
그리스 철학보다 ‘더 오래된’ 권위를 지닌 성경의 본보기를 내세워 올바름과 이로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암브로시우스의 논리 전개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불명예스러운 이로움보다는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나봇과 파렴치한 이익을 챙기고도 파멸한 아합 임금과 이제벨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27쪽)
암브로시우스는 파렴치한 이익은 '통속적 이로움’일 뿐, 올바름에 대한 사랑을 지닌 이로움과는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추악한 것은 이로울 수 없으며, 올바른 것은 이롭지 않을 수 없다."(『성직자의 의무』 3.14,90) 이런 통속적 이로움이 결코 올바름을 이겨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올바름으로 이로움을 이겨내야 한다.(『성직자의 의무』 3.6,37 참조) 그런 의미에서 “올바름은 이로움에 앞서고, 이로움은 올바름을 뒤따른다.”(『성직자의 의무』 3,9,60 참조) 또한 “아무것도 올바름보다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성직자의 의무』3,22,128) (28쪽)
암브로시우스가 올바름과 짝으로 설명하는 이로움은 통속적 의미의 이로움을 뛰어넘는다. 그런 까닭에 암브로시우스는 이로움을 이윤이나 사리사욕과 같은 통속적 개념과 혼동하지 말고 돈 욕심을 떠올리지 말라고 거듭 경고한다. (28쪽)
"이런 이로움은 이윤을 남길 기회를 찾고, 인간들의 습성으로 말미암아 돈에 대한 열망으로 변질된 왜곡되고 뒤틀린 이로움을 뜻합니다. 사실 통속적으로는 이처럼 돈벌이가 되는 것만 이롭다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손실을 추구하는 그런 이로움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성직자의 의무』 2,6,26) (28쪽)
암브로시우스는 이로움이란 돈과 관련된 이익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건한 신심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신심은 모든 면에서 이롭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약속해 주기 때문입니다.”(1티모 4,8 참조)라는 바오로 서간의 한 대목처럼, 우리가 성경에서 부지런히 찾기만 한다면 올바른 것은 이롭다고 일컬어진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직자의 의무』 2.6,23 참조) (28-29쪽)
참된 의미의 이로움은 언제나 올바름과 연결되어 있으며(『성직자의 의무』3.14,90 참조.), 공동의 이로움[公益]에 어긋나는 개인의 이로움[私益]도 결코 이로울 수 없다는 것이 암브로시우스의 확신이다.
"개인의 이로움이 모든 이의 이로움과 같으며, 공동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이롭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직자의 의무』 3,4,25 참조.) (29쪽)
☕ 사익보다 공익을 중요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올바른 것은 이롭지 않을 수 없다.”(『성직자의 의무』3.14,90 참조) "올바른 것은 이롭고, 이로운 것은 올바르기 때문이다."(『성직자의 의무』 3,7,52) 이것이 올바름과 이로음에 관한 암브로시우스의 결론이다. 한마디로 참된 올바름과 참된 이로움을 추구해야 하고, 그럴 때 올바름은 이로움이고 이로움은 올바름이 된다는 것이다. (30쪽)
“올바름 이로움 사이에 차이가 있듯이, 향유해야 할 것과 이용해야 할 것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 올바른 것을 향유해야 하고, 이로운 것을 이용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여든세 가지 다양한 질문』 9,30) (31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올바름이란 인간이 향유해야 하는 최고선이고 '영적 아를다움’ 자체라고 정의하면서, 동시에 이로움도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신적 섭리’라고 부른다. 이로운 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배려로 마련된 것이니 필요에 따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31쪽)
부(富)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어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고 보는 스토아 철학 역시 '올바른 이용’을 강조했다. 키케로도 파나이티오스의 가르침을 따라 "올바르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이롭지 않고, 이롭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올바르지 않다."(키케로, 『의무론』 3,7,34 참조)고 강조한다. (32쪽)
향유와 이용이라는 주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요 작품과 사상에서 되풀이되는 중심 개념이며 『그리스도교 교양』 제1권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향유와 이용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향유란 그 자체 때문에 어떤 사물에 애착하는 것”이고, “이용이란 그것이 사랑할 만한 것일 때,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33쪽)
"향유란 어떤 사물을 그 자체 때문에 그 사물에 애착하는 것이다. 이용이란 그것이 사랑할 만한 것일 때,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 사멸할 인생에서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는 우리가 행복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면, 이 세상을 이용해야지 향유하면 안 된다. … 향유해야 할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그리고 동일한 삼위일체이시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교양』 1,4,4-1,5,5) (33쪽)
☕ 향유해야 할 것은 하느님이요, 세상은 수단이다.
인간은 ‘그 자체 때문에’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을 향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1,22,21 참조) (34쪽)
☕ 인간은 하느님 때문에 사랑받아야할 존재다.
어떤 대상을 목적으로서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향유이고, 다른 이유, 곧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이용이라고 본다면, 인간은 이용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웃도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수단인가?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세속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명백하게 그릇된 것이지만, 하느님을 위하여 또는 하느님 안에서 자신과 이웃을 이용할 수 있다. (34쪽)
“하느님을 향유하고 하느님 안에서 이웃을 향유한다."*는 『신국론』의 진술이 가장 균형 잡힌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라 하겠다. 훗날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견해를 받아들여 "주님 안에서”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형제를 종착지가 아니라 매개로서 향유”해야 하는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참조) (35쪽)
㈜ :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 안에서 인간을 향유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는데, 하느님 안에서 인간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은 자신에게 궁극적 목적을 두지 않고 하느님 안에 마지막 희망을 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삶 치고 대상을 잘못 이용하고 잘못 향유하는 삶보다 타락하고 허물 많은 삶이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10,10,13) (35쪽)
☕ 누구를 사랑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달려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향유와 지상 사물에 대한 이용을 구분하고, 하느님 사랑과 자기 사랑, 사회적 사랑과 사사로운 사랑을 구별하며, 좋은 의지와 나쁜 의지를 구분하고, 좋은 사랑과 나쁜 사랑을 구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떤 대상을 사랑하느냐의 문제다. (35-36쪽)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열망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더 사랑하고 무엇을 덜 사랑해야 하는지,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 사랑의 위계질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질서 있게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해야 할 것을 선하게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해야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덕행이 생기므로, 사랑의 질서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간결하고 참된 덕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한다. (36쪽)
☕ 사랑의 질서는 참된 덕이다.
이 사랑의 질서는 사랑의 대상을 네 가지로 설정한다. 곧 ‘우리 위에 있는 것‘, ‘우리 자신’, ‘우리 이웃’, ‘우리 아래 있는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1,23,22 참조) 분명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우리 위에 있는 최고선이며, 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진리의 빛에서 벗어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기 육체에 대한 사랑’ 밖에 남지 않게 되고, 인간 정신은 자신과 그 육체 말고는 다른 무엇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자신에 대한 사랑, 이웃 사랑, 육체에 대한 사랑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이기적 탐욕으로 전락하고,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사랑으로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36-37쪽)
☕ 자기 자신도 하느님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다.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심지어 영원한 것과 영원한 행복을 향한 '열망’(= 탐욕)마저 선하다고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 32,22 참조) 그러므로 무엇을 사랑하는지 늘 성찰하고 부지런히 살피라는 것이다.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사랑하고,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질서 있는 사랑’이다. (37쪽)
☕ 맞다. 내가 보기에도 쓸데 없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물들을 온전하게 보는 사람은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이치에 맞는 사랑을 품은 사람으로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일 없고, 덜 사랑할 것을 더 사랑하지 않고, 더 사랑해야 할 것과 덜 사랑할 것을 동등하게 사랑하지 않고,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는 일 없다.””(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1,27) (37쪽)
☕ 사랑은 질서다.
올바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고, 그릇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탐욕이다. 사랑과 탐욕은 무엇으로 구별되는가? 사랑과 탐욕은 그 원하는 대상으로 말미암아 구별된다. 탐욕은 돈과 명예, 권력과 쾌락 같은 허망한 것들에 애착하지만, 사랑은 참으로 인간답고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 탐욕은 눈앞의 이익을 좇지만, 사랑은 올바름을 추구한다. 추악한 것을 탐닉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대상이 정말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참된 행복이 달려 있다. (38쪽)
☕ 사랑할 대상이 생겼다면 그것이 진정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사람이 사랑하는 바를 소유할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 행복한 사람은 사랑하는 바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만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시편 상해』 26,7) (38쪽)
☕ 행복한 사람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되, 무엇을 사랑하는지 스스로 살펴야 한다. 탐욕은 억누르고 사랑은 일깨워야 한다. 무질서하고 정화되지 않은 사랑은 탐욕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사랑을 정화하십시오. 도랑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정원으로 돌리십시오. 세상을 향해 지녀온 그대의 사랑을 세상의 창조주를 향하여 돌리십시오. 누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사랑하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게으르고 진절머리 나는 비참한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대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눈여겨보십시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사랑, 곧 이 세속을 사랑하는 것을 탐욕이라 합니다. 탐욕은 누르고 사랑은 일깨우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시편 상해』 31,2,5) (38-39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올바름을 인간이 사랑해야 할 궁극적 대상, 곧 향유해야 하는 최고선인 아름다움 자체와 동일시했다. 그리고 이로움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거룩한 섭리라고 했는데,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이로움도 올바름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상을 이용해야지 향유하면 안 된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1,4,4)는 바오로 서간과 성경의 핵심 원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39쪽)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정직을 내팽개치며, 도덕적 삶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올바름보다는 유용성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이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은 '통속적 이로움’을 참된 이로움으로 착각하고 혼동하는 데서 비롯한다. 참으로 이로운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름과 맞설 수 없는 법이지만, 수익을 올리고 이윤을 창줄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최고선’이 되어버리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지배하는 오늘날 인간과 생태를 도구화하는 '통속적 이로움'이 이로움을 넘어 올바름으로 둔갑한 까닭이다. (40쪽)
☕ 경제 만능인 오늘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잔인한 것은 그 무엇도 이로울 수 없기” (키케로. 『의무론』 3,6,46)때문이며, "추악한 것을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재앙이기"” (키케로, 『의무론』 3,7,49 참조) 때문이다. (40쪽)
☕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얼마나 끔찍한가!
목적을 도구화하는 일은 이미 현대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폐기의 문화’라고 탁월하게 통찰했다.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53항 참조) 인간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폐기의 문화’는 목적이 도구화된 대표적 사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에 기대자면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향유해야할 대상이지만, 오늘날 인간은 효율성과 수익의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이윤 창출과 돈벌이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사랑과 연대에 바탕을 둔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이로움에 대한 그릇된 해석과 왜곡을 바로잡는 일이 필수적이다. (41쪽)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랑의 질서에 따라 세상 명리(名利)에 초연하여 올바름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제시하는 인간의 길이다. (41쪽)
☕ 사랑해야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질서다. 이 질서에 따라 올바름을 추구하는 삶이 인간의 길이다.
『성직자의 의무』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아우구스티누스가 404년경에 쓴『편지』에 처음 나온다. 거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의무론』에는 유익한 가르침이 가득하다고 썼다. (아우구스티누스, 『편지』 82,21 참조) 카시오도루스(580년경 사망)도 『성직자의 의무』가 교회의 가르침에 입문하는 데 유익하다고 한다. (42쪽)
12세기에 이르러서는 교부 시대를 훨씬 지난 인물임에도 ‘최후의 교부’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교부 문헌에 정통했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1090-1153년)가 자신의 작품 『삶의 질서』에서 『성직자의 의무』를 즐겨 인용했으며, 특히 제1권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기도 했다. (43쪽)
중세의 거장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도 『신학 대전』에서 『성직자의 의무』 가운데 많은 대목을 직접 인용했다. (43쪽)
첫댓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랑의 질서에 따라 세상 명리에 초연하여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동서양에서 공동으로 제시하는 인간의 길이다."
"개인의 이로움이 모든 이의 이로움과 같으며,
공동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이롭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