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시가 되어가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뒤척이다 그냥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궁시렁 징징거리기라도 해야 좀 잠을 잘 것 같아서.
. 두어 달이나 씨름하며 간신히 좀 나아진 아내의 꼬리뼈와 엉덩이 욕창. 마냥 좋아하려는데... 다시 새 일이 생긴다. 소변이 주륵 새어나오는 실금이 만만치 않다. 몇 번이나 소변을 빼고도 돌아서면 또 나오고 기어이 해결이 안 된다. 나오지 말아야할 소변은 새고 나와야할 배변은 또 안 나와서 애먹는데 간호사가 결국 와서 소변주머니를 시술했다. 초저녁부터 씨름하며 열 번도 더 닦고 속옷을 갈아입히고 다시 소독하며 낑낑 매다가 자정 넘은 시간에... 한 달도 안 되는 최근에 벌써 3번째 소변주머니를 찬다. 아내는 꾸역꾸역 슬픔과 속상함을 울먹거리다 다시 삼켜 넘긴다.
. ‘아, 지겹다. 살아 낸다는 게...’
숨 꾹 참다가 질식하면 어떤 느낌일까? 문득 참 고약한 호기심이 몰려온다.
. 나도 멋지게 반짝이고 눈물 나게 감동적인 한편의 완성작품처럼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잡동사니 조각 가득담은 자루를 짊어지고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짊어지고 종착지까지는 가려고 아예 작정을 했다.
. 그럼에도 내가 힘든 건 이럴 때다.
. 피하지 못하는 병원비? 그치지 않는 환자의 증상? 24시간 간병으로 오는 고단함? 아이들 부모노릇 때우기? 내 계획으로 사는 인생 끝장난 거?
. 뭐 하나 하나씩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 병원비는 허락되는 그 순간 까지만 가는 거고 돌아가며 괴롭게 몰려오는 질병 후유증은 원래 그러니 간병 고단함은 길어지면서 적응도 되겠지 아이들은 한해씩 갈수록 자립할 것이고 내 꿈이야 다 접고 돌아서서 살 수 있다.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 그런데, 하나 하나씩은 어찌하던지 버티고 나가보는데 정말 죽도록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몽땅 담긴 보따리가 어깨에 올려 질 때다. 어느 순간 동시에 몰려와서 나를 올라타는 느낌은 너무 무겁다. 외로움에 빠질 때가 그렇고, 오늘처럼 두어 가지가 겹쳐서 일어날 때면 그만 주저앉고 만다.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 "뭐요, 날더러 뭘 더 참고, 뭔 희망나부랭이를 입에 달고 살라는 거요? 난 못해요. 아니, 안 해요!"
. 목까지 올라오다가 늘 도로 내려간 못 다한 말이 또 기어오른다. 아마도... 언제까지고 난 못 할 것이다. 그 마지막 한마디 원망을. 가능하면 안 하고 생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빈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 한마디를 뱉고 나면... 정말 마지막이 되고 말 것이니까.
누구보다, 나보다 열배 백배는 괴로울 아내가 그 마지막말을 가슴속에 가두고 참고 사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거다. 한 번 내뱉으면 어느 누구도 더 살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고 그것은 뱉은 한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도미노처럼 가족 전부를 무너지게 할 것이다. 그걸 아니까, 그래서 마지막 한마디라고 하는 것이니까...
. 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예전에는 사람이 정말 만만한줄 알았는데 살면서 점점 아니란 걸 알게 된다.
. '하나님이야 무섭지만 사람 그거 뭐!'
. 정말 그랬다. 대충 속일 자신도 있었고 사람이야 지나 나나 거기서 거기니. 반면에 모르는 게 없고 없는 곳이 없는 하나님의 존재는 그럴 수 없었다.
.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참 많이 착하고 결코 불의를 용서 못하는 겉모습을 가졌다.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길을 끝까지 걸어갈 능력이 과연 있을까? 만약 그런 능력이 없는데도 서로에게 강요한다면?
. 아내는 상태가 심해지면서 그만큼 내 두려움은 커지고 감당키 힘들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심지어 가족 형제조차 그런 심정을 용납하지 않았다. 말로는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도 그 속에는 좌절금지 조건을 달았다. 말로만이 아니라 자주 보이는 내 흔들림과 징징거림에 등을 돌리기도 했다.
. 그래서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슬퍼도 감추기로 작정했다. 밤이 새고 창밖이 환해지도록 잠 못 들면서도 남들에게 내색을 안했다. 털어놓고 몸부림치고 내색 한들 어차피 불편만 주고 훈계나 야단만 돌아오니. 사람들은 입을 닫으면 잘 지내는 줄 안다. 씩씩하고 의젓하다고도 한다. 모든 불행과 고민이 다 해결되어 문제가 없다고까지 단정하기도 한다. 사실은 더 심각한 상태로 들어가는 위험한 단계일 수도 있는데도.
. 그러다가...좀 더 짐이 무거워지면 다시 또 쏟아 낸다. 처음의 하소연과는 다른 신음을. 그렇게 비슷한 모양이지만 많이 다른 침묵과 수다를 반복한다. 다만 마지막 한마디를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꽁꽁 틀어막으면서. 아직은 더 살아야할 상황이라서. 할 일이 남아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