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孫氏의 中興祖 ?林君 孫昭 4 - 『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孫昭 | 경주손씨 2007.03.25 18:14 눌인http://blog.daum.net/ydoy0000/10356909
慶州孫氏의 中興祖 ?林君 孫昭 4 - 『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孫昭
여하튼 慶州孫氏의 中興祖라 할 수가 있는 孫昭는 1433년(世宗 15)에 태어나 1484년(成宗 15) 享年 52歲로 卒하였음은『朝鮮王朝實錄』이나『丙子譜』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世祖實錄』,『睿宗實錄』,『成宗實錄』등 歷代王朝實錄에 活動相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그의 生涯를 살펴 볼 수 있다.
孫昭영정
孫昭가 實錄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世祖 8년(1462) 11월 12일자이다. 이때 孫昭는 注書로 迎秋門과 崇禮門?興仁門에 머물렀는데 王이 孫昭를 屯地山 氷庫에 보내어 修葺의 勤慢을 살피게 하였다는 내용이다(實錄 7輯 556面). 이듬해인 世祖 9년 2월 21일자에는 蓬原府院君 鄭昌孫 등 文臣이 製策한 것을 가려서, 注書 孫昭 등 11인을 뽑아서 아뢰었다는 記錄이 나오며(實錄 7輯 568面), 그 해 9月 20日 梁誠之를 同知中樞院事로, 尹贊을 承政院 左承旨 知兵曹事로, 李坡를 右承旨 知禮曹事 등으로 삼을 때 孫昭는 南怡?梁震孫 등과 더불어 1階級 더 올라가게 되었다는 記錄(實錄 7輯 588面)이 나온다.
이듬해인 世祖 10년 1월 11일 醫方類聚 校正에 많은 錯誤를 일으킨 것과 관련 孫昭 등 10人이 罷職 당하는 記事(實錄 7輯 601面)가 있다. 그러나 그 해 7월 6일 集賢殿을 罷한 뒤부터 文士를 振勵할 방도가 없고 人才가 드물고 적었기 때문에 나이 어린 文士를 뽑아서 모두 本官을 가진 채 藝文館의 官職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學業을 닦게 하는 “兼藝文”이라는 制度를 만들었을 때 孫昭는 孫比長?洪貴達?成俔 등과 함께 兼藝文으로 選拔된 記事(實錄 7輯 634面)로 보아 바로 復職된 것 같다.
또 7월 27일 慶會樓에서 王이 左?贊 崔恒?同知中樞院事 梁誠之?吏曹?判 洪應?刑曹?判 任元濬과 承旨?入直한 諸將?兼司僕 等이 入侍한 가운데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서 임금이 梁誠之 등에게 命하여 여러 學門(天文門?風水門?律呂門?醫學門?陰陽門?史學門?詩學門)을 나누어, 각 學問에 6人의 어린 文臣을 配定하였다는 記事가 있다. 이때 孫昭는 醫學門에 들어가게 된다(實錄 7輯 638面). 11월 13일 司憲府에서 兵曹의 批目에 安印할 때 正郞 丘致??朴叔秦과 佐郞 孫昭가 먼저 나갔는 것과 관련하여 鞫問을 당한다는 記錄(實錄 7輯 659面)이 있고, 11월 30일 이와 관련 司憲府에서 右承旨 李坡와 佐郞 崔敬止를 각 杖 1백 대에 流 三千里, 正郞 朴叔秦?丘致?, 佐郞 孫昭는 杖 80대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니 律에 따라 처리할 것을 상소(實錄 7輯 660面) 하였으나, 12월 4일 임금은 李坡?孫昭는 용서하고, 丘致??崔漢禎은 罷職시키고, 崔敬止는 告身을 빼앗게 하였다는 記錄(實錄 7輯 661面)이 있다.
11년 10월 9일자 實錄에 孫昭는 兼藝文으로서 御定한《周易口訣》과 先儒 陽村 權近의 口訣의 다른 곳을 찾아 標를 붙이고 또 兼藝文들과 左右로 편을 나누어 날마다 殿講하였다(實錄 7輯 707面)는 記述이 있다. 이로 미루어 孫昭의 學問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世祖 13년(1467) 7월 3일 李施愛의 亂과 관련 平虜將軍의 從事官으로서 孫昭가 王께 아뢰는 記事가 나온다. 이때 王은 黃斯允?孫昭 등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와서 李施愛와 軍官이 抗戰한 상황 및 兵馬의 强弱과 旗鼓의 많고 적음을 자세히 陳述하게 하였는데 이를 상세히 잘 설명한 것과 관련하여 즉시 黃斯允은 堂上官에 任命되고, 孫昭는 爵 1級을 더하게 되며, 內帑의 弓劍을 내어서 孫昭와 黃斯允으로 하여금 스스로 골라서 차게 하였으며, 이들에게 御札을 내려 주었다는 記錄(實錄 8輯 93面)이 있다.
그 해 9월 20일 李施愛 亂의 平定과 관련하여 임금이 征伐에 從軍하였던 諸將들을 東郊에서 맞이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將帥들의 軍功의 等級을 議論하였는데 이때 孫昭는 張末孫과 더불어 2等功臣이 되어 敵愾功臣이라는 號를 받았다. 王은 功臣들에게 田土 等을 下賜하였으며, 官階도 올려 주었다는 記錄(實錄 8輯 122面)이 있다.
9월 24일 世子가 百官을 거느리고 임금의 誕辰을 하례할 때 孝寧大君 李補?河東君 鄭麟趾?高靈君 申叔舟?上黨君 韓明澮?領議政 崔恒?左議政 曹錫文?大司憲 梁誠之 등과 더불어 敵愾功臣으로 孫昭가 參席한다는 記錄(實錄 8輯 124面)도 있다. 또 9월 26일 임금은 河東君 鄭麟趾?領議政 崔恒?大司憲 梁誠之와 文臣들에게 새로 지은 刑典을 受敎하게 하였는데 文臣들의 명단에 孫昭가 포함(實錄 8輯 125面)되어 있다.
그 해 11월 2일 李施愛 亂과 관련 精忠出氣 敵愾功臣 崇祿大夫 議政府 左贊成兼 世子侍講院 貳師 兵曹判書 五衛都摠府都摠管 春秋館知事 光山君 金國光 등을 불러 下敎하는 記事가 나온다. 이 때 精忠出氣 敵愾功臣 通訓大夫 內贍寺 正(正3品 堂下官以下)인 孫昭에게도 下敎하는데 그 全文은 實錄 8輯 138面에 나타난다.
이듬해인 世祖 14년(1468) 5월 4일 僧 守眉가 圓覺寺의 佛油를 募緣하고 洛山寺를 營建하는 것과 관련 여러 고을의 民間에게 弊를 끼치는 자가 많다는 상소와 관련, 임금은 內贍寺 正인 孫昭를 보내어 鞠問하게 하였는데(實錄 8輯 183面), 이틀 후인 5월 6일자 實錄에 그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다. 그 후 世祖와 睿宗이 昇遐하였고 孫昭는 外官職에 나아갔는데 成宗 2년(1471) 11월 26일자 實錄에는 星州牧使인 孫昭를 留任시켜달라고 星州의 吏民이 上言하였으며,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는 記錄(實錄 8輯 614面)이 있다. 1472년(成宗 3) 6월 29일 孫昭는 正3品 堂上官의 官階인 通政大夫 工曹?議가 되었고(實錄 8輯 668面),
그 해 11월 16일에는 從2品 官階인 嘉善大夫가 되어 ?川君이 되었는데(實錄 8輯 695面), 그 이듬해인 4월 5일자 實錄에도 같은 내용이 나타난다(實錄 9輯 15面). 1473년 6월 28일 孫昭는 嘉善大夫로 安東大都護府使가 되는데(實錄 9輯 34面) 3年 뒤인 成宗 7년 1월 26일 王이 宣政殿에 나아가서 몸소 政事를 처리하는데 있어 吏曹와 兵曹에서 三望을 갖추어 계품하여 落點하였다. 이때 孫昭는 嘉善大夫 鷄川君이 되었으나(實錄 9輯 306面), 그 해 8월 21일 아버지가 늙어서 慶州로 돌아가 奉養하기를 王에게 빌어 특별히 本職을 띠고 돌아가게 하였다는 記錄(實錄 9輯 374面)도 있다.
11월 17일에는 嘉善大夫 行晉州牧使로 삼았다는 記錄(實錄 9輯 394面)이 있다. 이듬해 1월 3일 晉州牧使로 德山縣監 愼自齊와 辭朝하여 守令으로서 最善을 다하여 奉行하겠다는 記錄(實錄 9輯 405面)도 나타난다. 1480년(成宗 11) 5월 21일 孫昭를 다시 嘉善大夫 ?川君으로 봉하였다는 記錄(實錄 10輯 128面)이, 成宗 15년 2월 17일 病으로 慶州에 退居한 孫昭가 이날 辭職하였는데, 祿은 잃지 않게 하였다는 記錄(實錄 10輯 570面)도 나온다.
實錄에 나타나는 孫昭의 마지막 記事는 成宗 15년 4월 11일자의 別世記事(實錄 10輯 584面)이다. 그 후에도 孫昭는 實錄에 여러 번 登場하는데, 中宗 3년 1월 7일자 實錄에는 大司憲 張順孫이 孫昭가 敵愾功臣이 되었는데도 그 아버지에게 蔭職을 주지 않았다는 내용(14輯 219面)이고, 아들이자 議政府 右?贊인 孫仲暾 사망 관련기사(17輯 110面)도 있다.
또 원로 훈신이 사직 후에도 녹봉을 계속 지급할 것을 상소하는 것과 관련된 기사로 宣祖 37년 12월 19일(25輯 13 面), 光海君 1년 12월 27일(31輯 478面) 등이 그것이다.
손소의 묘소
(경상북도는 2006년 10월 16일자로 “양민공 손소 및 정부인 류씨의 묘비, 석인상” 일괄(6기, 포항시 소재), “경절공 손중돈 및 정부인 최씨의 묘비, 석인상” 일괄(6기, 포항시 소재) 등 4건을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4건의 문화재를 지정함으로써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는 총 1,695점(국가지정 550, 도지정문화재 643, 문화재자료 502)이 되었다)
2002년 11월 14일 답사
첫댓글 아~조금 답답하다..한자 공부를...
미안합니다. 책에 발표한 글이라.... 한자는 아래한글로 복사하여 바꾸기 하면됩니다. 왕조실록 9月 20日 梁誠之를 同知中樞院事로, 尹贊을 承政院 左承旨 知兵曹事로, 李坡를 右承旨 知禮曹事 등으로 삼을 때 孫昭는 南怡?梁震孫 등과 더불어 1階級 더 올라가게 되었다는 記錄(實錄 7輯 588面)이 나온다. 라는 점을 알려드리기위하여...
눌인님 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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