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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잃어버린 문명 - 석기시대의 비밀(The Lost Civilizations of the Stone Age)
· 저자 - 리처드 러글리(Richard Rudgley) 저 / 윤소영 역
· 정가 - 12,000원
· 분량 - 420page
· 출판일 - 2000년 2월(초판 1쇄)
· 출판사 - 마루
· 평가 - ★★★★★
· 批評
오랜만에 서평을 쓰는데다가, 오랜만에 전공서적에 대한 서평을 쓴다.
이번 추석 때 책 3권을 읽자고 목표했는데, 이제 겨우 1권 마무리했다. 남은 이틀 동안 2권을 읽을 수 있으려나~모르겠지만 일단 다 읽은 놈부터 처분하겠다! 이 책의 제목을 한번 잘 보자. 필자는 처음에 이 책을 딱 보고 ‘아~이거 또 공상에 가까운 얘기를 쏟아 붓는구나~미스테리한 발견물들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초거대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보다~’라고 느꼈다. 그런데 일단 책장을 넘겨보니 일단 목차부터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맨 처음의 ‘서문’과 맨 뒤의 ‘후기’를 읽어보니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바로 구입을 결정해서 집에 와서 읽기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그동안 논문이다, 일이다 중간 중간 읽다 말다 하다가 방금 겨우 다 읽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필자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내용이었으며(필자의 전공이 역사고고학이다 보니 더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읽으면서 내내 멍~한 기분이 들 정도로 쇼킹한 내용도 많았다. 어쨌든, 인류 문명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으면서 완전히 맛이 갈 정도로 감탄했었던 기억이 났는데(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최근에 구입한 『문명의 붕괴』까지 전부 다 읽고 한 번에 서평을 쓰려고 아껴두는 중! 추후 공개할 생각이다),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올해 읽었던 고고학 전공서적 중에서 Top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일단 뭐부터 쓸까? 생각해보니 내용이 하나같이 전문적이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지라 먼저 목차를 소개하고 각 챕터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필자가 애용하는 3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봤더니 책 표지가 없는 곳도 있었으며, 모두 다 목차나 간략한 내용 소개가 없어서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정보를 얻을만한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예스24에 1개, 알라딘에 1개뿐이어서(평점은 나쁘지 않은 듯~별 4개 정도) 독자들이 이 책에 알 수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판사의 홍보 정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알려지지 않으니 점점 인기도 시들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예스24에서는 절판까지 됐다).
암튼 목차부터 다뤄보자. 서문과 후기를 제외하고 총 19장인데, 앞서 언급했지만 서문과 후기만 읽어도 이 책의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서문이나 후기를 먼저 보고 결정하셔도 괜찮을 듯 싶다.
1장 석기시대
2장 조어(祖語)
3장 새로운 로제타석
4장 고대 유럽의 기호 : 문자인가, 선문자(先文字)인가
5장 구석기시대 글쓰기의 기원
6장 원시과학
7장 족문(足紋)에서 지문(指紋)까지
8장 지금은 수술 중
9장 석기시대의 외과수술
10장 불을 이용한 제조 기술
11장 다시 맷돌로
12장 석기시대의 광업
13장 오커, 대지의 피
14장 비너스상 : 성적 대상인가, 성의 상징인가?
15장 종유석의 노래
16장 최초의 화석 사냥꾼들
17장 빌징슬레벤의 네 개의 뼈
18장 성지의 조각상
19장 새벽의 돌인가, 위조의 새벽인가?
자아~목차 한번 보시라.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처음에 이 목차를 보고 ‘오잉!! 뭐야? 석기시대를 논하는데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목차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석기시대를 논하며서 지금 ‘文明’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것도 모자라, 언어와 문자, 과학과 예술, 의술, 제조업과 광업, 음악, 신앙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런던대학에서 사회 인류학과 종교적 의식연구로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학에서 ‘고대에 사용된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식물’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50대의 왕성한 고고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고고학과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며, 아직 이런 연구를 수행할 정도의 수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감히~). 그래도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아났다. ‘아아~침착, 침착!’ 그렇게 심호흡하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겼다.
저자는 ‘신석기혁명’ 같은 용어를 부정한다(제목에서부터 드러나지 않는가). 이는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가 어느 한순간 ‘펑!’ 하고 잘나진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마치 고대 한국사회가 불교 도입과 공인으로 갑자기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발돋움했다고 보는 견해와 같다고나 할까? 얼마전 개봉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라는 영화를 보니 프레데터가 자신들의 유희(?)와 성인식(?)을 위해, 인류에게 문명을 전수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에일리언을 기르게 한 뒤 종종 찾아온다는 설정이 나오던데 정말 그렇다면 또 모를까...). 위대한 고든 차일드 선생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인류 문명을 정의해버리면 우리는 미싱링크(Missing link)가 발견돼도 무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 또한 그런 우려를 범하지 않기 위해 1장에서 석기시대에 대한 개괄을 좍 설명한다. 흔해빠진 기존의 설명과는 다르다. 뭐 어떤 석기를 쓰고, 동굴에서 살고, 뭘 먹고 살았고...이런 얘기는 없다. 다만, 기존에 석기시대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슈가 되었던 유적들과 논쟁이 된 문제들을 나열함으로써 독자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래도 석기시대에서 혁명적인 어떤 요소가 등장해 문명이 생겼다고 할 텐가?’라고 말이다.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되는 선문명, 우수한 석기시대의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차탈휘익크(여기에서는 카탈후이우크로 표기되어 있다) 유적, 지중해 몰타섬과 고조섬의 석기시대 신전들, 일본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등등. 아주 흥미로운 얘기들로 1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2장으로 넘어가면 여기서부터 5장까지는 주로 언어에 대한 부분이다. 흔히 문명의 척도로써 꼽는 것이 ‘문자와 언어’인데, 저자는 이미 구석기시대 때부터 이런 문화가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뭐 저자가 주장한다기보다는 이미 기존에 주장된 것을 정리한 것이지만 암튼). 2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군과 어족의 뿌리가 상당히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내용이 主인데,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잘 읽고 넘어가보자(필자도 딱히 할 말이 없다. -.-;).
개인적으로 3장의 내용을 재밌게 봤는데, 여기에서 쇼킹한 내용이 드뎌 나온다. 바로 수메르와 같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알려진 문자 활동의 기원이 더 이른 시기의 주변 지역에서 이미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총, 균, 쇠』를 보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지정학적인 조건, 활용할 수 있는 동 · 식물의 풍부함, 농업과 군집을 가능하게 한 자연조건 등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문명에서는 문자와 산수, 제사와 신관, 정치와 전쟁 등이 생겨났고, 중동의 문명은 외계인이 전수해 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당연하게’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에 반대한다. 드니즈 슈만-베세라는 근동에서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효과적인 회계 방식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방대한 양의 증거를 확보하였는데, 이는 3,500~3,100년 전에 이런 문자나 숫자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존 견해보다 4,000~5,000년이나 이른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움을 감출 새도 없이 책은 빠르게 4장으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저자는 한술 더 뜬다. 4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고대 유럽에서 문자 발생의 요소들이 구석기시대때 이미 엿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문자라고 하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또한 ‘맹아기의 문자’와 ‘진정한 문자’를 구분할 필요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고대 유럽에서 확인된 서판이나 유물들이 확실히 어떤 기호체계를 이루고,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들의 연대가 6,000~7,000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기존 상식의 벽에 도전해야만 한다. 중동에서 생겨난 인류 최초의 문명적 요소 중 하나인 문자 활동은 그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개하고 인류가 살기 어려웠다고 여긴 고대 유럽에서 생겨난 원시적인 문자 활동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계속 이어져 5장에서 저자는 후기 구석기시대, 더 이르면 중기 구석기시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미 어떤 信標와 같은 상징물을 인지했으며, 우주론적인 상징(형이상학적인 추상의 범위?)까지도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해석에 있어 초보적인 연구단계지만, 이 분야에 대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뭐 필자도 문명과 문자가 꼭 양립해야만 하며, 상호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대한 영토와 체계적인 조직을 일궈낸 고대 잉카 문명에서도 철기나 기병,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자나 숫자 체계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허술했지만 그들은 눈부신 문명을 이뤄냈다. 이는 한자 문화권에 속한 고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양서』와 같은 중국정사 조선전을 보면 신라는 6세기에도 문자 대신에 신표를 사용했다고 하지 않는가. 전 세계에서 문자를 가진 문명이나 집단이 오히려 적다는 것을 보면 이를 두고 문명의 보편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 상한을 중기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에는 쉽사리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아! 이제 6장이다. 한 1/3 정도 지나왔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또 큰소리를 친다. ‘과학’이라...과학이라...석기시대때 원시과학이라. 과학이란 말과 석기시대와 잘 어울리는가? 암튼, 책장을 또 넘겨보자. 먼저 저자는 손도끼의 규격화를 언급하고 있다(144쪽의 그림 20을 보면 이해가 확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추상적 사고 과정을 통해 손도끼가 대칭성을 갖고, 길이와 너비 사이에 일정한 규격성을 갖게끔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도구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아마 오랜 경험에 의한 가장 쓰기 편한, 가장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어 갔을 것이다), 하나의 비례 표준에 맞춰져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멋지지 않은가? 국내에서 손도끼에 대한 이런 연구 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그 다음에 나온 네안데르탈인들의 매장풍습에 스며든 천문인식, 여러 소수민족의 숫자를 세는 민족지적 사례, 벨기에에서 발견된 빗금이 새겨진 뼛조각(이걸 두고 숫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데에는 필자도 동의하지만 어떤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책에 나온 것처럼 이견이 많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헝가리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태음력을 표시했을 것으로 주장되는 석기 등도 충분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冊曆에 대한 주장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역시나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스톤헨지와 같은 거대한 석조건축물에 대해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고 있는 지금 언제 기존 상식이 뒤집어질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7장은 뭐 민족지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고대 사냥꾼으로서 인류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등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예술적인 부분을 다룰 줄 알았는데 필자의 예상을 빗나갔고, 뭐 상식적인 내용이므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8장과 9장은 의술에 대한 부분인데, 8장에서는 먼저 유럽인들이 묘사한 소수민족(미개하다고 알려진)들의 민족지적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도 소수민족은 현대적인 의술이 아니라 그들만의 자생적인 의술을 시도하고 있고, 그 성공률은 상당히 높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9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석기시대 의술의 흔적들을 짚어내고 있었다. 먼저 천공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도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조금 더 언급하겠다. 이미 석기시대 때부터 뇌 수술은 실시되었는데, 오늘날도 상당히 어렵다고 여겨지는만큼 당시 의학 수준을 짐작하는 대표적인 수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개골은 쪼아내고, 그 안의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천공술이 유럽에서는 석기시대 이후로 오히려 퇴색하여 중세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석기시대가 더 잘났으며 그 이후에는 퇴색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이다! 기억하기를!). 이러한 천공술은 치아 수술에도 적용되었는데, 그 역시 놀랄 정도로 정교했다고 한다. 석기시대때 이미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예전에 <로마> 시즌 1을 보면서 폴로의 머리에 박힌 철편을 뽑아내기 위해 천공술을 실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상당히 묘사를 잘 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 수천 년 이전에도 아마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10장은 어떻게 보면 기존에 잘 언급이 안 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불이라고 하면 구석기시대때 처음으로 불을 쓰기 시작했다, 라고 언급하고 나서 청동기와 철기시대때 금속가공을 위해 불을 잘 다루기 시작했다~라고 언급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간의 구석기시대와 불은 크게 연관이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큰 것이 사실이다(오히려 석기제작과 연관되어 물의 사용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며 신석기시대때 토기 제작을 언급해야 겨우 불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석기 제작에 사용된 부싯돌 등의 재료에 열처리를 하는 얘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열처리를 통해 처트(chert 혹은 角巖 : 가장 잘 알려진 부싯돌 재료)를 좀 더 쉽게 박편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석기 가공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한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돌니 베스토니체와 인근 유적에서는 2만 6,000년 된 토제품 6750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500~800℃의 불에서 의도적으로 열충격을 통해 폭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무당과 같은 일종의 심령술사가 일종의 사냥 의식곽 같은 제사를 위해 그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싯돌에 대한 열처리나 이러한 토제품의 의도적인 열충격 등이 토기 제작, 금속 제작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수천 년 앞서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필요에 의해, 기능을 위해,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순히 제사와 유희, 어떤 의식적인 부분을 위해서도 기술은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훗날 토기를 제작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자 후손들은 선조들이 다른 곳에 사용했던 방법을 차용했던 것 뿐이었다.
11장의 ‘맷돌’은 석기시대 도구에 대한 기존 상식의 한계를 상징한다. 흔히 맷돌은 여성이 쓰는 것으로서 농경을 통해 나온 곡물을 가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 8만 년 전의 멧돌 잔해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토된 바 있다(당연히 이런 주장은 대체로 부인되고 있다). 남아공 플로리스배드 유적에서는 뭔가를 갈아 생긴 마모의 흔적이 남은 석기(4만 8,900년 전)가 확인되었고, 남아공 부시먼록셸터 유적에서는 4만 3,000년~4만 7,000년 전의 맷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호주 커디스프링스 유적에서도 3만년 된 맷돌이 확인되었다. 당시 이들 지역에서 농경이 있었을까? 더 놀라운 것은 맷돌질보다 절구질은 그보다도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활비비(불을 피울 때 쓰는 도구로 천공술에서도 사용된다)와 창을 더 멀리, 손쉽게 던질 수 있게 도와주는 투창기 등 저자는 다양한 도구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비단 돌로 만들어지지 않아 오늘날 다 썩어버린 수많은 도구들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흔적들이 오늘날 확인되고 있다고 말이다. 도구를 통해 과거 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까지 고찰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챕터였다.
12장은 광업에 대한 부분인데, 오커(ocher : 철광석)라는 것을 여기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슴뿔로 만든 채굴도구로 지하 수십 m 아래에서(유고슬라비아 루드나 글라바의 동광은 깊이가 20m가 넘는데, 유적은 최소한 7,000년이 넘었다) 석기시대인들이 오커를 캤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선사시대 유럽에서의 채광기술을 조사한 결과, 석기시대 채광기술은 후기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1,200년경이 되어야 겨우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천공술과 마찬가지로 채광기술 역시 중간에 공백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장 역시 오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건 철광석이다. 즉, 석기시대때 철광석을 사용하기 위해 채광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이걸로 철기를 만들지는 않았으며, 그들은 이 붉은 색을 이용해 바디 페인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쇼킹한 얘기를 하나 더 한다. 맷돌과 절굿공이가 흔히 농경의 새벽을 선포하듯 아주 후대에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은 곡물이 아닌 오커를 가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장에서 나온 불을 이용한 열처리가 필요했고 말이다. 지금까지 주욱 봐왔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아 하나로 귀결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석기시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14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뚱뚱한 비너스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손보기 교수가 언급이 되어 있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뷜렌도르프의 비너스(가장 널리 알려진)’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성적 모티브를 가진 조각상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뭐 전체적인 내용이나 결론은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너스상이 단순히 다산의 상징이나 성욕의 대상으로 이해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가진 우주론적 의미의 상징이다. 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뭐 이 정도? 암튼 여기도 별로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챕터다.
그리고 드디어 15장! 이 책에서 가장 쇼킹했던 부분인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자그마한 타악기 등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거대한 동굴의 종유석을 그대로 악기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여기에 나온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서, 저런 연구까지 했을까 싶었다. 뭐 현대에 동굴 안에 식당을 꾸민다거나, 동굴 안을 개발해 관광이 가능하게끔 한다거나, 실제 파이프 오르간을 안에 들여놓아 웅장한 음색을 낸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때 동굴을 악기로 썼다니. 그저 충격일 뿐이었다.
16장은 생각의 전환을 조금 더 하게끔 하는 챕터였는데, 석기시대 사람들도 자기들보다 이른 시기의 문물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국 노퍽에서는 조개화석이 박힌 손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조사자는 손도끼 제작자가 정 가운데에 부채꼴의 아름다운 조개화석을 돋보이게끔 손도끼를 만들었다고 자신한다. 또한 남아공 마카판스가트의 사람 얼굴 모양이 새겨진 자갈 역시, 그 신기한 모양에 석기시대 사람이 수집했다고 이해한다(왜냐하면 그 자갈에 찍힌 사람 얼굴 모양은 조사 결과,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고 판명됐으므로).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사람을 묻고 그 위에 꽃다발을 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니 넘어가려고 했는데, 뒷장에서 더 놀라운 얘기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네안데르탈인의 미적 감각에 의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갖다놓았다는 것도 있지만 죽은 사람이 내세에 도움이 되라고 갖다놓은 약초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천공술을 해내고, 훌륭한 사냥꾼이자 도살꾼이었던만큼 절개수설에 능했던 그들이므로 약초학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하~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절로 무릎을 쳤다. 단순히 애도의 의미가 아닌 내세에 대한 생각, 어떤 의도가 있는 행위였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17장은 16장 마지막 부분(약초학과 꽃에 대한 내용)과 연결되어 네안데르탈인의 곰 숭배 의식(기존에 알려져 있던 상식)이나 여러 의식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었으며 18장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16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매장의 복합체는 두 개의 상수(매장 구조물과 사람의 유골)과 두 개의 변수(분묘의 부장품과 관련 시설)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런 복합체는 중기 구석기시대라는 먼 옛날에 등장했으며, 그때 이후 그 어떤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이나 설계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17장 말미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인류 발달사에 대해 표준 모형과 누적 모형이 있다. 전자는 초기 미술로 증명되는 상징적 활동의 폭발과 인류 혁명이라고 묘사되는 것의 폭발적 출현을 의미하며, 후자는 상징적 행동의 기원을 전기 구석기시대나 중기 구석기시대에 두는 것인데, 시간이 오래 될수록 시간의 파괴력과 극적인 지질학적 · 기후학적 변화를 견딘 유물이 적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18장에는 다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역사시대의 수렵 채집인이 때때로 농업적 생활양식을 채용하기를 내키지 않아 한 것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기 때문인 것처럼,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일상성에 기초해서 계속 사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전한 종류의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뒤에 일어난 보다 단순한 석기 제작 기술로의 회귀는 필시 그런 석기가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변화 욕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그런 과감한 발명품들이 우연히 잊혀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9장에서 저자는 말한다. 지금 호모 에렉투스가 기존에 알려진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점에 고향(아프리카)을 떠나 아시아나 유럽,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을 기존 상식의 벽에 맞춰 모두 무시해야만 하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말미에 재밌는 실험고고학적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유적에서 육안으로 석기 및 박편과 자연적으로 깨진 돌을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필자와 같은 비전공자는 당연하겠거니와, 전공자조차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하물며 신석기시대때 간석기가 아닌 더 이른 시기의 뗀석기라면).
그래서 실험을 했단다. 한번은 유적 주변에서 나는 규암 표본을 선택해서 200번 정도 찍는 작업과 400번 정도 절단하는 작업을 거친 후 마모흔적을 실제 석기와 비교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결과를 쉽게 안 믿는다고 한다. 또한 어떤 이는 유적 주변의 경사면 바닥에서 2,000개의 자연적으로 생성된 돌멩이들을 조사한 결과,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는 12~15m 높이에서 규암 자갈 100개를 던져 깨뜨린 뒤 바로 그 박편을 수습해 실제 석기와 비교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인공 유물들로 보이는 박편화하고 파괴된 돌멩이들은 이것들과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더 많은 석기를 상대로 실험을 하면 닮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타자하는 유명한 원숭이만큼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한다. ^^). 즉, 사실은 사실대로 믿자는 것이다.
최근 베레카트람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미술이 최소한 25만 년 전에 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뼈에 일부러 모양을 새기는 것은 전기 구석기시대 때로 올라간다고도 한다.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연유로 이스라엘 하요님 동굴에서 나온 후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인정하고, 똑같은 유적에서 나온 중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한다. 중기 구석기시대의 뼈가 후기보다 더 광범위한 표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타르타리아의 서판이 수메르 문자보다 늦은 시기라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이를 문자 시스템의 하나로 인정하다가, 그것들이 수메르 문명보다 앞선 것이라고 밝혀지면서 기존 논점을 모두 폐기한 것도 해당될 것이다(마치 전통고고학을 비판하는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나? -.-;).
전반적으로 필자에게는 상당히 유익하고 재밌었으며,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와 비교하면서 읽을만한 것도 많았고, 외국으로 나가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고마운 책이었다. 다만, 비전공자나 일반인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지금까지의 인기도와 서점 내에서의 홍보현황만 봐도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하지만 고고학이나 인류 문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좀 참고 읽다보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도판이나 도면 등이 많이 없기도 하고, 글자체나 자간, 글 간격도 다소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지만 이런 것들도 한번 이겨내 보시기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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