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서핑(Modern Poetry Surfing)]
1. 우리나라의 현대시는 1908년 육당 최남선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신체시를 발표한 것을 효시로 삼는다. 이조말기 가창을 전제로 한 고전 시가나 개화 가사, 창가와는 달리 자유스러운 형태의 과도기적인 형태의 신시로부터 2000년대 현재까지의 한글시를 통틀어 현대시라고 구분한다.
현대시는 자유시, 모더니즘과 순수시, 저항시를 중심으로 하는 광복이전의 시, 광복의 환희, 가난과 이상향을 지향했던 광복이후-1950년대의 시, 산업화와 민주화를 열망하는 현실참여를 추구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게 되는 1990년대 이후의 시로 시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의 시는 아직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진정한 대표작을 가리기 어렵다. 또한 현대시는 형식에 따라 자유시와 정형시인 시조로 대별할 수 있으며, 자유시는 서정시와 산문시로 구분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현대시의 흐름은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개인적인 산문시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2. 2008년 KBS 1TV가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프로그램 ‘시인만세’의 방송에 앞서, 1만8298명을 대상으로 ‘국민 애송시’ 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10위까지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 김소월의 진달래꽃(1557표)
2위 윤동주의 ‘서시’(1377표)
3위 김춘수의 ‘꽃’(667표)
4위 윤동주의 ‘별 헤는 밤’(409표)
5위 천상병의 ‘귀천’(372표)
6위 한용운의 ‘님의 침묵’(288표 )
7위 이형기의 ‘낙화’(282표)
8위 정지용의 ‘향수’(244표)
9위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220표)
10위 김소월의 ‘초혼’(194표)
- 또한 시인 179명이 참여한 ‘시인 애송시’ 설문조사 결과, 10위까지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 윤동주 <서시>
2위- 김춘수 <꽃>
3위- 한용운 <님의 침묵>
4위- 서정주 <국화 옆에서>
5위- 김소월 <진달래꽃>
6위- 유치환 <깃발>
7위- 박목월 <나그네>
8위- 정지용 <향수>
9위- 서정주 <동천>
10위- 김수영 <풀>
- 이상의 국민과 시인의 애송시에서 중복된 5편을 포함한 15편을 분석해보면,
(1) 시인들의 출생연도는 1945년 해방 전이 14명, 해방 후가 1명이다. 애송시 15편의 작가 13명 중에 생존 작가는 1명(도종환) 뿐이다.
(2) 1945년 해방 전에 발표된 시는 7편, 해방이후 발표된 시가 8편이지만 귀천(1970년), 접시꽃당신(1985)을 제외하고는 1960년대 이전에 발표된 시이다.
(3) 애송시의 발표당시 시인의 평균나이는 32세, 해방 전이 27세이며 해방 후는 36세다.
- 이러한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1) 애송시는 도종환(1954년), 천상병(1930년), 이형기(1933년)를 제외하고 1920년대 이전에 출생한 시인들의 작품들이다.
(2) 애송시의 발표연도는 동천(51세), 님의 침묵과 풀(47세), 귀천(40세)을 제외하면, 시인이 순수하고 감정이 풍부한 평균 30세 전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진달래꽃(20세), 초혼(23세), 서시와 별 헤는 밤(24세), 향수(25세)와 깃발(28세)은 20대 시인의 작품이다.
(3) 시의 주제들은 이별(진달래꽃, 초혼, 낙화, 접시꽃 당신), 존재와 삶의 본질(꽃, 귀천, 국화옆에서, 동천, 나그네, 님의 침묵, 풀), 고향과 이상향(깃발, 향수, 별 헤는 밤, 서시) 등으로 다양하며,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4) 애송시는 초중고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많은 시작품 중에서 선정되었다.
(5) 설문의 대상인 일반국민과 시인의 구성을 알 수는 없지만, 평균 나이 30-50대를 중심으로 본다면 1950년-1970연대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해방 전후(1920-1950)의 시와 세태의 영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았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6) 그러나 1970-1980년대에 태어난 30-40대의 일반국민이나 시인은 해방 전의 시와 세태를 체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1990-2000년대에 태어난 10-20대의 일반인들은 풍요로운 세태와 변화된 가치관의 영향으로 전혀 새로운 세대임이 분명하다.
3. 서정시는 시의 3대 부문(서사시·서정시·극시)의 하나로 작자 자신의 감동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읊은 운문으로 된 문학 작품을 말한다.
한국 현대시에서 김소월(金素月), 한용운(韓龍雲), 정지용(鄭芝溶), 김광균(金光均), 김영랑(金永郞), 조지훈(趙芝薰), 박목월(朴木月) 등을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산문시는 산문체 형식을 지닌 서정시를 말한다. 또한 정형시와 같이 명확한 운율형식이 없으며, 자유시와 같은 뚜렷한 리듬이 없다. 리듬은 없어도 시의 형태상 압축과 응결에 의한 시의 정신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형식상으로는 산문의 요소를 지녔지만, 내용은 시적 제반 요소를 갖추고 리듬의 단위를 시의 행에 두기보다 문장의 한 문단에 둔다.
한국에서는 김억이 번역한 투르게네프의 작품 <비렁뱅이>가 산문시의 효시이며, 이후에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정지용의 <백록담(白鹿潭)>,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 등이 있다.
- 2014년 11개 신문사에서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11편과 시조 5편을 보면(아래), 현대시 초기에 왕성하던 서정시는 자취를 감추고 산문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일정한 형식을 갖춘 시조들조차 산문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2014 신춘문예당선시집]을 보면 각 당선자가 발표한 당선작뿐만 아니라 신작시 5편씩까지 서정시는 찾을 수 없다.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 있다(대화)’,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알)’, ‘난다 냄새 난다 나는 내가 긁어 부스럼이라 냄새난다(옹이)’, ‘오빠 내가 화장실에 가다가 들었거든, (갈라진 교육)’,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뱀을 아세요?)’, ‘겨울, 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온다(오리시계)’ 등등.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의 첫 구절들이다.
앞에서 거론한 애송시는 서정시가 주류인데 비하여, 2014년도 신춘문예는 산문시 일색으로 현대시의 본류가 임무교대를 하였다.
그 이유는 심사위원들이 산문시에 당선 기준을 두고 있으며, 서정시는 시인 지망생들의 치기로 치부하며 응모자조차도 산문시로 현대시의 본류가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11개 신문사 신춘문예 심사위원 25명 중 중복된 위원을 제외하면 20명이며, 이들의 출생연도는 1930년대가 1명, 1940년대가 5명, 1950연대가 10명, 1960연대가 4명이다. 심사위원의 나이는 50대-6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에게도 산문시가 당선작 결정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심사위원들의 기준에서 보면, 김소월이나 정지용같은 서정시인들이 응모를 했다 해도 한편도 당선권에 들지 못할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국민과 시인의 애송시는 1930년대 이전의 서정시를 선호하면서도, 신춘문예의 당선 기준은 산문시라는 점이다. 국민과 시인들은 이상적인 시로 서정시를 생각하면서, 보편적인 시의 형태를 산문시로 여기는 이중적인 기준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 2014년 신문사 신춘문예 시와 시조 당선작.
시: 한국일보- 김진규 <대화>
서울신문- 박세미 <알>
매일신문- 박주용 <옹이>
경향신문- 심지현 <갈라진 교육>
부산일보- 윤석호 <뱀을 아세요?>
동아일보- 이서빈 <오리시계>
한국경제- 이소연 <뇌태교의 기원>
세계일보- 이영재 <주방장은 쓴다>
중앙일보- 임솔아 <옆구리를 긁다>
문화일보- 최찬상 <반가사유상>
조선일보- 최현우 <발레리나>
시조: 서울신문- 구애영 <바람의 책장>
중앙일보- 김 샴 <바둑 두는 남자>
동아일보- 김석인 <바람의 풍경>
매일신문- 이나영 <흑점(黑點)>
조선일보- 정승헌 <꽃피는 광장>
4.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의 문화에 대한 견해를 진화론적 견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비유의 독창성과 힘이다. 문학에서 서정적 표현은 작가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독자의 마음에 전달하는 장치이다. 소설에서는 감정을 공유하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언어는 더 서정적이어야 한다. 창작예술은 인류가 추상적 사유능력을 계발했을 때 가능해진 진화적 발전의 한 유형이다. 그 뒤에야 인간의 마음은 모양이나 사물의 종류나 행동에 대한 심적 주형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개념의 확고한 표상을 다른 마음에 전달할 수 있었다.”
문학의 한 장르인 시에서 서정시와 산문시, 시조에서 어떠한 시의 경향이 더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가 일정한 형태의 쏠림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현대시에서 서정시나 산문시, 시조의 형태는 그 완성도와 감동에 따라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현대시가 노래의 가사가 된 것도 수없이 많다. 정지용의 향수는 시라기보다 한편의 노래로 더 유명하다. 현재의 팝송이나 발라드 등의 음악가사는 한편의 서정시다. 랩은 한편의 산문시가 되었다. 이제 서정시는 설 자리를 잃었고, 시조는 마지막 명맥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면 현대생활에서 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활력소를 삼는 것이다. 즉 미래의 희망을 나누는 것이다.
1970년-1980년대에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애송시는 고전에 속할 것이다. 기껏해야 애송시 정도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산 1만5천여 명에 달하는 시인들 중에서 살아서 존경을 받고, 죽어서 추앙을 받는 시인은 극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의 수많은 시인들은 잊혀 질것이며, 그들의 그 많은 시들은 대표작 한 두 편이 남아 기억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영변의 양산 진달래꽃은 바나나 껍질로 변해있을 것이며, 질화로와 짚베개는 알 수도 없는 물건이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이삭을 줍던 곳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도시에서는 별을 헬 수도 없을 것이고, 옥수수밭에 만든 무덤은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변한다. 문학뿐만 아니라 세상사가 시대를 경과함에 따라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기하급수적인 과학과 문화의 발달은 과거를 돌아볼 필요성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인류의 문화 속에서 문학과 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진화하고 변모해 갈 것이다. 100년 후에 현대시가 생명력을 지니고 존속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존속한다 해도 그 시대와 같은 이해와 감동을 전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존재가치가 있고 시대를 초월한 시들만이 몇 편 전해질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시인들이란 외로운 인류일 수밖에 없겠다.
5. 2000년 은퇴 후에 그동안 영어금융용어정리, 수채화, 여행, 자서전 등에 관심을 가졌으나, 늦게 시작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20대에 뜻을 세우고 평생을 진전해도 이루할 수 있는 성과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사다. 그러한 것이 세상사라는 것을 고희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이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자손들이 할아버지가 이러한 고민도 했구나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누구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할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그런 일들의 하나로 훌륭한 시작품을 찾아 해매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시 중에서 주관적이기는 하나 본인의 마음에 감명을 주는 시를 골라 보았다. 해설과 관련문건을 검색, 정리한다. 불행하게도 선별한 시들의 범위가 대부분 1990년 이전의 시들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1990년 이후에 발표된 시들에 대하여는 자료수집과 능력이 미치지 못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애송시를 시작으로 본인이 선별한 100여 명의 시인과 250여 편의 현대시를 개관하고자 한다. 전문적인 문학평론이 아니라, 현대시의 바다에서 파도타기(surfing) 정도로 보아 주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