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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재물을 맡겨 주신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재산을 얻을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하늘의 이슬과 산뜻하게 하는 소나기로 땅에 물을 대신다. 그분은 땅을 따스하게 하는 햇빛을 주심으로 만물에게 생기를 주시고 초목을 무성하게 하사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것을 당신께 돌리기를 요구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로써 이 돈을 하나님을 존경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저희의 재물의 일부분만이 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종교적 목적과 구제 사업을 위하여 얼마의 돈을 떼 놓은 후에 그 나머지는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 주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한 용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돈을 한푼 한푼 쓰는 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지의 여부가 나타날 것이다.
돈은 큰 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돈이 하나님의 자녀의 수중에 있을 때는 그것이 주린 자의 양식이 되고, 목마른 자의 마실 물이 되고, 헐벗은 자의 옷이 된다. 그것은 또 압제받는 자에게 방어물이 되고, 병든 자에게 도움의 방편이 된다. 그러나 돈을 생활 필수품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전진시키는 목적 이외에 사용할 것 같으면 그 돈은 모래와 마찬가지로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아껴 모아서 사장(死藏)해 둔 재산은 쓸데없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의 저줏거리다. 그 재산은 이생에서 하늘 보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심을 빼앗는 올무가 된다. 하나님의 큰 날에 사용하지 아니한 달란트와 등한히 한 기회를 들어 그것을 소유했던 자들을 정죄할 것이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했다.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1-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재물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조심성 없이 쓰는 것을 시인하지 않으신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고 하신 절약에 대한 그분의 교훈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자기가 가진 돈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하는 자는 그 돈을 경제적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절약하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양을 내고 방종하는 데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줄 자금은 더욱더 부족하게 된다. 쓸데없이 허비된 모든 돈이 그것을 허비하는 자들로부터 행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그것은 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재간을 개발함으로 당연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존경과 영광을 하나님께로부터 빼앗아 버린다.
친절한 마음과 애정친절하고 관대한 마음과 애정과 영적 사물을 빨리 깨닫는 이해력 등은 귀한 달란트인 동시에 이러한 달란트를 가진 자는 중대한 책임이 있다. 이 모든 달란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장점을 가진 것만으로 만족히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에 이런 특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환경만 좋으면 그들은 큰 일과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희는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궁핍한 자에게 한푼도 주지 않는 인색한 사람의 편협함을 업신여긴다. 그들은 그같이 인색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으며, 또 그가 잘못 사용한 달란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희는 자기 자신과 이러한 편협한 자들을 비교해 보고 저희는 그들보다 훨씬 좋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해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 자신을 속이고 있다.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는 자질은 그들의 책임을 더 중하게 할 뿐이다. 남보다 많은 애정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친구뿐만 아니라 도움이 요구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애정을 베풀어 주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 지고 있다. 사교성(社交性)도 또한 달란트로 볼 수 있다. 이 달란트를 우리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몇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이기주의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같이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 곧 사교성을 이용하지 않고 버려 두는 사람은 저희가 인색하다고 멸시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죄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너는 주의 뜻을 알고도 그것을 행치 않았다는 선고가 내려질 것이다.
달란트는 활용함으로 증가됨달란트는 사용할수록 증가된다. 성공은 우연히 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에 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수행함으로 얻는 것이다. 즉 믿음과 깊은 사려와 덕성과 견인 불발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보수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선물을 다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더욱 큰 선물을 갖게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부족한 재간을 이적을 통해 채워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활용할 때 그분은 우리의 온갖 능력을 증가시키고 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와 협력하실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참된 희생을 기울임으로 우리의 능력은 증가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굴복시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하사 우리로 하여금 옛 버릇을 억제하고, 괴벽한 성질을 극복하게 하시어 새 습관을 기르게 하신다. 우리가 성령의 격려를 존중히 여기고 순종할 때 우리의 마음은 넓어져 성령의 능력을 더욱 많이 받게 될 것이며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행하게 될 것이다. 잠자고 있던 능력이 각성되고 마비되었던 기능이 새 생명을 받게 된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겸손한 교역자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처럼 크고 거룩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인격을 고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가장 고상한 정신력과 영적 능력을 요하며 마음과 생각을 강하게 하고 순결하게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갈 때에 연약한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되며, 그의 노력이 얼마나 단호하게 되며, 그 결과가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 놀라게 된다. 많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겸손하게 시작해서 한편으로는 더욱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자기가 아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여 주는 사람은 온 하늘의 보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빛을 나눠 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명백하게 된다. 우리의 지식을 더욱 많이 활용하고 우리의 능력을 더욱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지식과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노력할 때마다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재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것 같으면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재물을 주실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할 때 우리의 심장은 원기를 북돋우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박동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애정은 더욱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타게 되고, 우리의 온 그리스도인 생애는 더욱 실제적이고, 더욱 열성 있고 더욱 기도하는 생애가 될 것이다.하늘에서는 사람의 가치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역량(力量)에 따라 평가된다. 이 지식은 모든 능력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과 연결시키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는 일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협력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는 데 이는 우리로 하늘의 사물에 대하여 더욱 많은 지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더욱 밝고 더욱 분명한 견해를 갖게 된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된다. 선함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본성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寫本)이 되는 품성을 계발하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닮아감에 따라 하나님을 알려는 우리의 역량을 더욱 늘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늘 세계와 더 많이 교제하게 되고, 영원한 세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한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었다.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사람은 가장 적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었다. 이 사실에는 사람이 자기가 받은 천부적 재질이 적다 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만일 저희가 어떤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큰 기쁨을 가지고 그 일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희는 작은 일에서 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이 점에 있어서 오해한다. 주님께서는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사람의 품성을 시험하신다.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하는 데 등한히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불성실한 종임을 증명했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비록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한 달란트를 감추었던 것처럼 역시 땅에 감추었을 것이다. 그가 한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가 하늘의 선물을 멸시했다는 증거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눅 16:10)된다. 그것이 작기 때문에 작은 일의 중요성이 경시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 작은 일이 인생의 실제적인 훈련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는 사실상 요긴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작은 일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기 때문에 우리의 품성 건설에 여러 가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사람이 지극히 작은 의무에 불충실함으로써 저희 창조주께 마땅히 돌려야 할 봉사를 돌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불 충실함의 영향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는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침으로 받을 수 있는 은혜와, 능력과, 고상한 인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를 떠나 생활하므로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주를 섬기는 일에 실족하게 된다. 작은 일에 바른 원칙을 따라 살지 아니하므로 그가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큰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한다. 생애의 사소한 일을 취급하는 데 나타나는 결점이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에까지 미친다. 그는 자기에게 익숙한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하여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품성을 이루게 되어 그 품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현세적인 또는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사람은 오직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 연단을 받아 장차 더욱 큰 책임을 지게 되었을 때에도 충실히 행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고관들과 접촉하게 하신 것은 이 이방 사람들이 참 종교의 원칙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니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야 했다. 그가 어떻게 그처럼 영예롭고 책임이 큰 직책을 맡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을까? 그의 온 생애를 빛나게 한 것은 작은 일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몹시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으므로 주님께서 그와 협력하셨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단 1:17)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다니엘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 이 세상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다. 그분은 큰 일에는 물론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까지도 우리가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를 바라신다.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사실 때에 작은 일을 신중히 하라는 공과를 가르쳐 주셨다. 구속의 대사업은 항상 그분의 마음에 짐이 되었다. 그분이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실 때에는 그 일에 당신의 정신과 육체의 모든 정력을 다 쏟으셨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일상 생애와 천연계에서 가장 단순한 것들을 주목해 보셨다. 그분의 가장 귀한 교훈은 바로 그가 천연계의 가장 단순한 사물들을 비유로 삼아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진리를 설명하신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 중에 가장 비천한 자의 궁핍함도 못 본 체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의 귀는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다 들으셨다. 그분은 그 많은 무리 중에서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당신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도 감지하셨다. 믿음으로 살짝 건드린 그 여인의 행위는 응답을 받았다. 그분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을 때 그의 부모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강한 능력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자기가 입었던 수의(壽衣)를 개서 적당한 자리에 놓으셨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가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업은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 일을 하기로 그리스도와 언약을 세웠다. 이 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불충실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작은 일에 충실하시고 양심적으로 행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노력하고 감화를 끼치는 모든 분야의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사다리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 당신이 주시고자 하는 재능을 소유함으로써 당신을 영화롭게 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상한 경륜을 따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또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지능에 있어서나, 총명에 있어서나, 기술과 지식에 있어서 우월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천부(天賦)의 재능을 많이 받지 못한 자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들로 저희에게 있는 것을 선용하고 저희 품성 가운데 약점이 무엇임을 살펴서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그것들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힘쓰도록 하라. 우리는 우리 생애의 모든 면에 진실함과 충성심을 나타내도록 하고 또 그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특질을 잘 배양하도록 해야 한다.태만한 습관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실수를 저질러 놓고 그것을 저희의 건망증으로 돌리면 충분한 변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변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지력이 부족하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저희의 정신이 강화되도록 수양해야 한다. 잊어버리는 것도 죄요, 태만히 하는 것도 죄이다. 그대가 만일 태만히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그대는 자신의 구원을 등한히 하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가 되고 만다.
큰 진리는 작은 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신앙 원칙이 매일의 생애의 사소한 일에도 실천되어야만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만 자기가 하는 일에 최대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직접 종교적인 사업에 관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희의 생애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생각해서 저희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만일 저희가 하는 일이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면 저희 자신을 하나님의 대가족 가운데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얕잡아 보지 말아야 한다. 정직하게 하는 일은 무엇이나 축복이 된다. 신실하게 그 일을 하므로 앞으로 더욱 고상한 일을 맡을 수 있는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바쳐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가장 큰 봉사로 받으실 것이다. 성의를 다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연금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면한 의무를 행하라고 명하신다. 만일 이 의무가 가정에서 하는 일이라면 가정을 즐거운 장소가 되게 하기 위해 그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이행해야 한다. 그대가 어머니라면 그대의 자녀를 그리스도를 위해 양육하라. 그 일도 목사가 강단에서 하는 일처럼 하나님을 위한 일이다. 그대의 일이 주방에서 하는 일이라면 가장 우수한 요리사가 되기 위하여 힘쓰라. 건강에 좋고 영양이 풍부한, 식욕을 돋우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대가 음식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할 때, 마음에 가장 좋은 사상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라. 만일 그대가 밭을 경작하거나 그 외 어떤 다른 사업이나, 직업에 종사한다면 그 일에 성공하도록 하라. 그대가 하는 일에 그대의 온 정신을 쏟으라.
그대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라.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입장에 서 계시다면 응당 하셨으리라고 생각되는 그대로 행하라.
그대의 달란트가 아무리 적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쓰일 곳을 가지고 계시다. 그 한 달란트가 지혜롭게 사용된다면 그 달란트에 부과된 사업이 성취될 것이다. 우리가 더하기 법(加算法)에 따라 작은 일에 충실하게 행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곱하기 법(乘算法)에 따라 우리를 위해 역사하실 것이다. 이 작은 것들이 주의 사업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가장 사소한 일들을 행할 때에도 산 믿음이 금실처럼 그 일을 통해 이어지게 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하는 매일 매일의 일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촉진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예수를 쳐다보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행하는 모든 일에 활기를 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달란트를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금 쇠사슬로 더욱 고상한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다. 이것은 참된 성화이다. 왜냐하면 성화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매일의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은 저희에게 어떤 큰 일이 맡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희는 저희의 야망을 만족시킬 큼직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생애의 평범한 의무를 신실하게 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평범한 일은 저희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저희는 날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나타내 보일 기회를 놓쳐 버린다. 저희가 어떤 큰 일을 기다리는 동안에 생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으로써 할 바 일을 마치지 못한 채로 저희의 한평생이 지나가 버린다.
반환된 달란트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과 회계하실 때에 달란트에 대한 반환금을 엄밀히 따지실 것이다. 이루어진 일이 그 일을 한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게 된다.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저희가 받은 원금과 남긴 이익금을 모두 주님께 돌려드렸다.
그렇게 함으로 저희는 자신들이 세운 공로를 주장하지 않는다. 저희의 달란트는 저희가 받은 것이었다. 저희가 다른 달란트를 더 남겼으나 원금이 없었더라면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저희는 다만 자기들의 의무를 행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원금이 주님의 것이었으므로 이익금도 그분의 것이다. 구주께서 그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셨다면 저희의 일은 영원히 파산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달란트를 받으실 때 주인은 그 공로가 모두 종들에게 있는 것처럼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에게 갚아 주셨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만족이 넘쳐 흘렀다. 주인은 그들에게 축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몹시 기뻤다. 주인이 그들의 모든 봉사와 희생에 대하여 갚아 주시는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주인이 그들에게 빚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에 사랑과 친절이 흘러 넘치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말하셨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게 해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과 충성심과 사랑의 봉사이다. 사람이 선하게 되도록 하고 하나님께로 이끌리게 하는 성령의 감동은 다 하늘 책에 기록된다.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신 일꾼들은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저희의 도움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보게 될 때에 주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희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사업에 참여할 특권을 갖게 될 것인데 이는 저희가 이 세상에서 주의 사업에 참가함으로써 하늘에서 일할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국에서 어떠할 것이냐가 우리가 현재 이 세상에서 어떠한 품성을 갖고 있으며 어떠한 태도로 봉사에 참여했느냐를 반사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마 20:28)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분이 이 지상에 계실 때에 하시던 일인 동시에 하늘에서의 그분의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일한 데 대한 보상은 우리가 오는 세상에서 그분과 같이 일할 수 있는 보다 큰 능력과 광범위한 특권을 갖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저희가 하늘의 선물을 등한히 여긴 것을 핑계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저희의 잘못을 찾아내서 벌을 주시려고 끊임없이 감시하시는 각박하고 압제적인 분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시지 않은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요, 심지 않은데서 거두려고 하시는 분이라고 비난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유와 봉사를 요구하시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하나님은 각박한 주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 중에 그분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다윗왕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했다. 창조와 구속을 통해서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현세와 내세의 모든 축복에는 갈바리의 십자가의 인이 찍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리켜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하시는 각박한 주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악한 종의 비난은 전혀 당치 않은 것이었으나 주인은 그것을 반박하지 않으시고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취하셔서 그의 행위가 전혀 핑계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 달란트를 잘 사용해서 주인에게 이익이 되게 할 온갖 방법과 수단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주인은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고 말하셨다.
우리의 천부께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지 않으신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능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에게로 돌려 드릴 수 있는 것들이다.“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눅 12:48).
우리 각자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일점이라도 적게 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봉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정확히 따지신다. 사용하지 않은 재능에 대해서도 선용(善用)한 것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주께서는 책임을 추궁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달란트를 바르게 사용했더라면 될 수 있었던 그러한 인물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마땅히 했어야 할 것을 성취하지 못한 데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사용하지 아니한 달란트의 결과를 영원한 세상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얻었어야 할 모든 지식과 재능을 얻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우리의 일에 그분의 지시를 따른다면 그분은 책임을 지시고 그 일을 성취시켜 주실 것이다. 그분은 성심으로 한 우리의 노력이 성공할 지에 대해 추측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실패에 대하여 생각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실패를 모르시는 분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과 무능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것인 동시에 그분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에게 지워질 짐 때문에 불평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을 인색한 주인으로, 일할 능력도 주시지 않고, 덮어 놓고 요구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게으른 종의 정신을 겸손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이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겸손으로 옷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고, 포부가 신통치 않고 살아가는 데 겁이 많고, 실패가 두려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원하시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때때로 그분은 위대한 사업을 행하시기 위하여 가장 미약한 그릇을 택하신다.
이는 당신의 능력이 약한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표준에 따라 갑은 크고 을은 작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표준을 따라 판단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크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께도 크게 보이고, 우리에게 작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께도 작게 보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재능을 평가하고, 우리의 일을 택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지도록 정해 주신 일을 짊어지고 그분에게 나아가 쉼을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의무를 행하고 하나님과의 동역자로 인정받은 것을 인하여 기뻐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
빼앗긴 달란트
게으른 종에게는 아래와 같은 선고가 내렸다.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이 선고에도 신실한 종에게 상급을 주실 때와 같이 최후의 심판 때에 받을 보상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점진적으로 받게 될 보수에 대한 말이 포함되어 있다. 물질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계(靈界)에서도 그러하다. 사용하지 않는 능력은 약해지고 쇠퇴해 버린다. 활동은 삶의 법칙이며 게으름은 죽음을 의미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사람이 자기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기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증가한다. 이 재능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점점 쇠퇴해져서 마침내 거두어지고 만다. 그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은 마침내 나누어 줄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확실히 자기의 재능을 쇠약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그것을 파괴해 버리는 과정을 걷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어느 누구도 이기적 생애를 살고 이기적 욕망을 만족시킨 다음에 저희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라. 그들은 이기심이 없는 사랑의 기쁨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합당치 못한 자가 된다.
그들은 하늘에 가득 차 있는 순결한 사랑의 분위기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천사들의 노래와 거문고 소리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의 과학은 일종의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큰 심판날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지 않은 자들과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만을 기쁘게 하면서, 표류하는 생애를 산 자들을, 온 세상의 재판장께서는 악한 일을 행한 자들로 취급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받는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과 살인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반드시 형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등한히 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교회 예배에 즐겨 참석하고 설교 듣기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자신을 위해 사는 일에 저희 일생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비유 중에 나오는 불충실한 종과 같이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으라”는 선고를 받을 때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저희의 축복을 마땅히 이용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않고 그 축복을 저희만이 누리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봉사 사업에 참여하기를 회피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희는 일할 능력이 없다고 핑계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할 능력이 없는 그처럼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셨는가? 아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이러한 무능력은 저희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며 그들이 고의(故意)적으로 그렇게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그들의 품성 속에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으라는 선고의 결과를 보게 된다. 저희의 달란트를 계속해서 오용(誤用)함으로 그들에게 유일한 빛이 되시는 성령이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는 선고는 그들이 선택한 영원한 운명에 하늘의 인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