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vs '남들'
세상에 태어나
나 밖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린 언제 '제대로' 알게 되었을까?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구분없이
한 몸으로
얼마간 살다가
차거운 공기 속으로 나와
의사에게 "찰싹" 볼기를 맞고,
첫 울음 소리를 내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다른 사람,
남의 존재를
절실히 알게 된 걸까? 그 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태초의 혼란 속에서도
엄마의 따스한 가슴에 안겼을 때
뱃속과는 다른
엄마의 손길, 숨소리, 목소리, 내음,
그리고
생명의 젖줄로 이어져.
다음부터 안길 때마다
엄마의 가슴을 향해
입을 오물거리게 되는
'관계의 모양새'를 갖추고,
만족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확실히 해 간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우리'가 된다.
엄마 말고도
아빠, 형제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삼촌들...
가깝고, 먼 친척들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들,
이렇게 알아가는 세월,
그 세월만큼 쌓인 삶의 역사를
머리 속에 분류하고 정리한다.
누가 '우리'로 가름되나?
누가 '남들'로 분류되나?
그리고 그 나눔에서
각 사람들과
어떻게 느끼고,
표정짓고,
거리두고,
행동할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힌다.
얼굴 맞대고 살아야할 이웃 뿐 아니라
한번도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도
굳이 "다르다" 구분하는
사회 버릇을
속 깊이 새긴다.
사회 계층, 인종, 성별, 나이,학력, 직업, 출신지역, 정치 성향, '좌' 대 '우' 이념, 종교, 벌이의 차등, 외모, 성격,사는 지역, 아파트 평수, 조상의 출생 지역 ,...
'남들'로 제껴놓는 항목이 많을 수록,
'우리'에 속한 사람의 수는 적어진다.
그리고 '남들'과 '우리' 사이에
장벽을 굳건히,
그리고
높게 쌓을 수록
'남들'에 관심두지 않고,
배제하고,
적대하고,
방어하고,
공격하며
마치 적인양
살게 된다.
'우리'만 중요하여,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못된 버릇이 하나 더 있다.
길고 긴 '남들' 조건 목록 가운데
하나만 걸려도
그 빆에 어떤 삶의 영역도
모두 깡그리
미움으로,
거부하고
제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가지에만 걸려도
그 사람 전체를 '남'취급하여
아예 울타리 밖으로
목숨걸고 내몰고 만다.
그러니 '우리'의 범주에 얼굴을 디밀 수 없게 한다.
이렇듯
'우리'와 '남들'을 갈라놓게
만드는 건 누굴까?
가까운 가족에서 출발한다.
유난히 시댁과 친정을 비교하는
엄마의 불편한 마음을 보며 자랐나?
다른 사람을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 하는 엄마였던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볼까
전전긍긍하는 엄마였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찾아
적극으로 도와주던 엄마였던가?
내 집 살림만 반짝반짝 윤이나게
쓸고 닦는 엄마였던가?
오지랖 넓어 밤새워 걱정할
이웃이 끊이지 않는 엄마였던가?
어디 엄마만일까?
"네 앞가림만 잘 하면 된다"는
가훈을 심각하게 되 뇌셨던 아버지셨던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말씀을
가훈 삼으신 아버지 품에서 자랐나?
그리고 어느 시대를 살고 있나?
나라를 구해야한다는
어려운 시절인가?
경제제일주의가 깊히 물든
이른바 풍요의 때인가?
어떤교육을 받았나?
마음을 살찌우는 교육이었나?
대기업 취업이나 고시 준비 교육이었나?
어떤 친구를 두었나?
높은 뜻을 꿈 삼는 동지가 되는 친구인가?
개인 성취만을 목적삼는 친구인가?
그리고도
또
어떤 처지에서도
자기가 얼마나 귀를 열고,
눈을 부릅뜨고,
얼마나 유연하게 마음 먹는 사람인가?
얼마나 깨어 있었나?
참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정신을 품었나?
'남들' 과 '우리'를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이른바 똑똑한 삶보다
저마다 다 다른 '남들'이
'우리'로 같이 살 날이 오기를
바라 본다.
기도한다
ㅁㅇㅎ
첫댓글 우왕~~~
선생님
엄청 빠르시네요!!!
덥고 습한 날씨에
여러가지 편치 않으실텐데
이렇게 시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거의 쓸 말을 다 한 것 같은데..
마음에 드나요?
@문은희 어디 제 마음에만 들겠어요?
이 글 읽는 사람들에게 생각할거리를 한가득 주셨는걸요.
나와 상대방을 구분하는게 자연스러운 발달단계이듯이,(내가 남이 될 수없는걸 아는거니까요.)
우리와 남들도 같은 무게로 분별하는 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배제하는 이기심에서 출발하는게 문제라는 말씀이시죠?
어디서든지 나는 '우리'에 속해야한다는 기대나 요구도 남을 배제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각자 다른 생각을 할 기회, 그리고 공유함으로 생각을 키울 기회가 되는 것이 좋겠지요.
선생님 이 글은 다 쓰신 건가요? 마지막에 계속합니다라고 하셔서 더 쓰시나 싶기도 해서요 들어와보면 이야기가 길어져 있어 좋았어요. 근데 이젠 알쏭달쏭해서요.
'우리'vs'남들' 글을 다섯번쯤 읽은것 같습니다. 처음 읽을때는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어요. 엄마... 나오는 부분에서요. 지금 제가 따르고 행동하는 근거인 엄마이지만 또 엄마야...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아버지도 나오고, 친구, 교육.. 등등 그리고 제게는 남편, 아이도 있으니 제가 그들을 우리라고 여기는 이유, 제가 남들이라 할때 어떤 마음으로 구분지어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라 생각했어요.하지만 이 구별이 그냥 뿌리깊어서인가 구별한다는걸 구별하는게 어렵습니다. 우리로 여길때는 생각 안하고 쉽게 편하게 마음대로 살아왔고 남들로 여길때는 가차없이 내 몰았기에 또 생각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음을 느껴요...
'우리' 사이도 서로 다르고, '남들'도 다른데 그 다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것!
'우리'라 해서 마음 편하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니고, '남들'의 다름도 눈여겨보는 마음을 담아가기를 기도하지요.
태어나 볼기짝 맞을 때부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게 태어나자 마자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구나. 하나만 걸려도 우리가 아닌 남들을 만들어버리는 마음은 어떻게 생겼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우리가 잘살아야 한다, 우리들 앞가림만 열심히 하자는 부모님에게서 경직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지내왔던 세월도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똑똑하다 생각했었나, 그러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보고 함께할 마음을 키우지 못했었나 떠올립니다. 나와 다른 남과 함께살기 아직도 저에게는 숙제입니다. 하지만 갈등의 순간들이 걸리는 순간들이 함께 살기 해나가는 진정한 기회라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살고자 합니다.
고마워요. 이런 생각의 과정이 삶을 주름잡는 것일지니!
제가 학교 다닐 때도 경쟁이 치열했지만 요즘은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대학갈 때는 성적만 반영됐었는데 요즘은 다양한 학교활동을 하는 것에도 가산점을 주어서 학생들이 동아리 같은 비교과 영역 활동도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학교의 모든 생활을 생기부에 반영하고 점수화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경쟁이 일상에 벤 느낌이에요. 내신도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존재하니 친구들과 도우며 공부하면서도 늘 긴장하게 되고요. 선생님 입장에서도 1등급이 안 나오면 우리 아이들이 대입에 불리해지기 때문에 1등급을 만들기 위해서 시험 문제가 점점 치졸해져요. 너무 쉽게 내면 100점이 많아져서 1등급이 안 나오고 전부 2등급이 되거든요. 같이 사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게 애들한테 얼마나 다가갈까 싶은 생각이 항상 들어요. 혼자서는 안 된다, 같이 살아야 된다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이 그냥 듣기 좋은 소리로 흘려 들을 수도 있겠다 싶거든요.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당장 내가 중요한 대학에 가는 게 급하거든요.이런 교육의 한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그렇게 보는 선생님의 안목이 바뀌면 어떨까요. 아이들을 성적이 아닌 다른면으로 보고 표현하고 다르게 관계를 맺으면 아이들이 다른 삶의 면을 느끼고 알게 되고 소중하게 받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태어남과 동시에 마주했던 '남'이라는 존재에서 엄마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되는 과정들을 떠올리니 나에게서 시작되어 아이들과 만나고 지내왔던 장면들이 연결되요. 나에 부모로부터 받은것과 결핍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가는 작업을 그동안 해 왔던거구나 싶어요. 그럼에도 아직도 제대로 된 해석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고 사니 선생님에 이 글이 또 시작이 될거같아요. 오랫동안 부모님에 사랑을 의심하고 그들에 결핍을 두고도 이해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갈 수 없고 탓하고 부족함을 원망하는 마음에 사로잡히기 일수예요. 다른 관계에서도 그러기 쉬운 이유가 아닐까싶어요.
어떤 부모님도 완벽한 사랑을 줄 수 없어도 나름 최선을 다 했을 거예요. 부족함 투성이일지라도... 부족하게 엉성하게 한 사랑도 푸근하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정님 가끔 다른 부모들이 다른 것을 비교하며 마치 그들이 더 우수하다는 듯 보아 온 것 아닐까요? 다른 기준을 가지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모님의 한계 안에서 그분들의 마음을 골라 골라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