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교육
교사들 사이에서 뭔가 근본적인 거리감과 벽을 느낄 때가 많다. 운동권도 아니었는데 나 스스로 너무 급진적인가 생각되기도 한다. 전교조건 아니건 상관없이 비슷하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겠지만, 나는 학부생시절부터 지금까지 교사들 안에서 근대교육의 신화와 허위의식을 줄곧 발견한다. 내가 젊은 시절 비판했던 허위의식과 신앙을 젊은 교사들에게서 여전히 만날 때 막막하고 무력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세대차와는 또 다른 단단한 학교의 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의 고민이 나만의 것일까? 젊은 시절에도 적응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적응할 수 없다.
허위의식이란 실체가 없지만 자신이 자라난 환경에서 저절로 습득된 관념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기초지식에 대한 믿음, 중립성 유지의 강박, 능력주의에 대한 신앙이 그렇다. 대체로 이러한 신앙은 사회적으로 뒷받침되고 강조되며 교육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근본이데올로기가 된다. 한국인으로서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의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신앙을 내면화하고 있다. 더구나 교사들은 사범대를 나오며 이런 신앙에 더 모범적으로 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교육기술자가 되기를 선택했고, 그렇게 양성된 국민교육이라는 신앙의 성직자들이다.
이 신앙은 근대 국민교육의 기본틀이며 국가주의의 교리에 부합한다. 그런 점에서 교사들은 기존사회의 관념과 형식을 전수하는 기능을 교사의 역할이라는 규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보수주의자들이다. 교사들의 성향은 대체로 합리적 보수주의자이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서 비판적 교사는 비합리적 권위에 저항하지만 합리적 권위는 용인한다. 기존사회의 권위주의 형식을 비판하더라도 이미 자신 안에 내장된 관념은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근대기획을 진짜 인간과 시민의 삶을 위한 교육이냐 물을 때, 그건 권력자의 국민국가 건설과 통치를 위한 위계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교육시스템이며 신화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교육은 조선시대의 교육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는 유교이데올로기 국가를 위해 관학이 있었다. 바로 향교와 성균관이다. 그리고 지배를 합리화하고 위계를 보증하는 과거제도라는 시험제도가 관료주의의 정당성을 지탱했다. 하지만 시험공부를 하다가 참된 인간의 삶을 위한 공부가 멀어지자 이를 비판하며 서원운동이 일어났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참된 공부가 아니라며 사학 서원이 등장했지만 곧 서원도 명문서원이 자리잡으며 지배를 합리화하고 위계를 보증하는 계급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지방대학 기능을 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하면 기본교과가 떠오를 것이다. 천자문과 사서삼경이다. 거기에 빽빽한 교과들은 현대의 교육제도보다 더 치밀하고 정제된 지식의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선비들은 소위 기본교과들을 깊이 훈습한 책상물림으로 공부의 도사들이었다. 시험공부를 하건 하지 않건 지식은 그들의 절대적 교양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양반이라는 30% 지배계급의 질서는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그들에게 문제는 과거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과연 지금의 한국교육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시험제도가 위계와 지배의 합리화 수단이라는 것은 불변하다.
한국사회에 전조교가 등장하며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내세웠던 1980년대 이반 일리치의 <탈학교사회>와 파울로 프레이리의 <민중교육론>은 근대 국민교육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데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가 오히려 무지와 복종을 조장하는 학교의 역기능과 지식 위주의 은행저축식 교육을 비판했다. 프레이리는 중남미가 안고 있는 문맹교육에서 출발해 단순히 문자를 배우는 언어교육을 비판하며, 광부면 광부의 삶과 필요 그리고 문제에서 출발해 자기 스스로를 언어로 표현하며 자신을 구속하는 사회문제를 의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의식화교육을 제안했다. 의식화교육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과 문제에 무자각했던 침묵하는 이들에게 언어를 통해 문제를 조명하고 스스로 해결해갈 수 있는 각성을 대화의 교육을 통해 함께 길러가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으로 1980년대 한국사회와 만나 민족민주인간화의 전교조 운동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1차 제도권 안에서 벌어진 교육운동이었다.
그 뒤 1990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학교 밖에서 급격히 대안교육 운동이 번졌다. 1980년대 전교조 운동이 프레이리의 문제의식과 친근했다면, 1990년대 대안교육 운동은 일리치의 탈학교 사상과 외국의 다양한 대안학교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노동의 의식화에서 시민의 의식화로 시대적 과제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 교육운동은 근대국가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은 공통적이다. 근대국가주의 교육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 착각이었다. 근대국가주의 교육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에서 자란 대부분의교사들이 저항이 아니라 순종과 순교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페미니즘이 사회의 중대 담론이 되었고, 현실에 영향력 있는 교육도 유튜브 이후 챗GPT로 변화할 듯하다. 인간이 더 이상 AI와 경쟁할 수 없는 AI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적 삶을 위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가 근본과제로 도래했다. 아이들은 도래할 인간 없는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생존에 급급하다. 근대인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은 인간의 위계와 기득권을 지키거나 획득하기 위한 싸움에 매몰되고 살겠지만 AI는 인간을 넘어 진화를 계속할 것이다. 비관적이지만 인간의 권력과 지배욕 때문이라도 역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학교는 여전히 교과, 교과서, 지식, 시험 중심이다. 학생들은 핸드폰에 푹 빠져 강제 기제가 없다면 자발적 복종의 길을 걷듯 액정만 바라본다. 학교에 대한 복종도 문제지만 액정에 대한 복종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근대교육에서 유일하게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주체의 힘이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환경과 문제에 대한 의식이며 각성이다. 삶은 어차피 자극-반응의 피드백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에너지가 필요하고 피곤하다. 그러다보니 효율을 따지고 인간화 대신 자동화를 추구한다. 안락하기 위해 불편을 제거하지만, 안락이 쾌락이 되고 쾌락 밖에는 불감의 지배를 받는다. 현대인들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스템 안에 갇혀 소비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이미 쾌락과 불감에 깊이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체란 코인을 모으고 쓰는 소비자일 뿐이다. 불감을 전제로 하는 비인간적 사회 안에서 쾌락을 향유하는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기계와 권력에 종속될 뿐이다.
그렇다면 챗GPT시대에도 여전히 학교의 과제는 인간화이며 인간화란 주체의 각성과 생각, 그리고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시작은 문제의 인식이며 의식의 각성일 것이다. 안심입명의 명상이 아니라 인간적 삶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각성이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의식화 과제는 근대사회의 시민 과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사는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번뜩이며 과제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문제일 수 있고, 자연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이 처한 나 자신의 총체성에서 비롯된 과제다. 어린 시절 대부분은 내 문제 안에 매몰되어 있고, 내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회문제로 나아가는 심리적 진행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인간적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고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AI시대의 대세가 가진 파괴력과 속도는 막강하고 인간의 길은 희미하다. 이런 와중에도 우린 근대의 신화에 사로잡혀 권력복종과 위계싸움에 매몰되어 있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1년씩 피라미드의 단계를 밝아 올라가면 정점에 서는 안정된 구조와 시스템 자체가 환상이다. 신기루는 무너졌지만 우린 여전히 몽유병처럼 근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델피의 신탁처럼.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살라. 실존을 위한 고투를 교사도 학생도 인간의 길로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래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