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 장판옥에 모셔진 조씨 본관별 명록
충신위 32인 중 조씨 본관별 명록
병조 판서 조극관(趙克寬) 양주 조씨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정평공(靖平公) 계생(啓生)의 아들이다. 태종 갑오년(1414, 태종14)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계유정난 때 이양(李穰), 황보인(皇甫仁)과 같은 날에 죽었는데, 아우 수량(遂良)과 종제(從弟) 번(藩)도 연좌되었다. 영종 정축년(1757, 영조33)에 복관되었다.
별단(別壇) 236인 중 조씨 본관별 명록
사람들의 죽음은 정단(正壇)에 배향된 여러 사람들과 차이가 없으나 사실이 조금 소략하여서 별단(別壇)의 맨 앞에 배향하되, 또 죽음의 선후로 서열을 정하였다.
평안도 관찰사 조수량(趙遂良), <평안 감사 조수량(趙遂良)> *양주 조씨
조수량은 관극(克寬)의 아우인데, 세종 경자년(1420, 세종2)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안완경은 세종 계묘년(1423, 세종5)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진년(1436, 세종18)에 중시에 합격하였고, 이현로는 세종 무오년(1438, 세종20)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계유정난 때 윤처공, 원구, 이명민이 안평대군과 무리를 짓고서 수량, 완경, 경유와 연결시킴으로 해서 모두 죽고, 현로도 안평대군에게 붙어서 화복(禍福)을 이야기하였다가 죽었다.
절제사 조석강(趙石岡), 계유정난 때 모두 안평대군의 당에 연좌되어 죽었다.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조완규(趙完珪)*한양 조씨, 조순생(趙順生)*한양 조씨,
갑술년(1454, 단종2) 안평대군의 무리에 연좌되어 죽은 사람들이다.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조유례(趙由禮)*평양 조씨,
을해년(1455, 세조1)에 우의정 한확(韓確), 좌찬성 이사철(李思哲) 등이 의논드리기를, “양빈(楊嬪), 상궁 박씨, 금성대군 이유, 한남군 이어, 영풍군 이천이 유례, 문치 등과 반란을 모의하였습니다. 그들의 죄를 다스리소서.” 하여, 유례 등이 모두 연좌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별시위(別侍衛) 조청로(趙淸老), - 아들 – 영서(英緖)
연좌되어 죽은 사람은 1백 90인이었다.
병사(兵使) 조숭문(趙崇文) - 승(勝)의 매부임 *옥천 조씨
조철산(趙哲山) - 숭문의 아들임
성균관 사예 조충손(趙衷孫) *한양 조씨,
군기 녹사(軍器錄事) 조번(趙藩)*양주 조씨- 극관(克寬)의 사촌 동생임 -, 조계동(趙季同)ㆍ조귀동(趙貴同), - 모두 번(藩)의 아들임 ·조향동(趙香同)·조석강(趙石岡)·조유례(趙由禮)·
성균 생원 조청로(趙淸老)·
환관 조희(曺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