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1 / 이생진
- 진혼곡
실미도까지 가는데 나는 무인도처럼 말이 없었다 <실미도>를 본 다음 날 멍든 가슴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나는 바위처럼 엎드렸다 바위 밑에 바위들도 엎드리고 있었다 바위에 달라붙은 석화가 죽은 체하고 있었다 바위에 술을 붓고 수평선과 함께 흘린 눈물이 노도를 타고 내게로 왔다 내가 지은 죄도 노도에 밀리고 있었다
* <실미도> ; 2003년 12월 24일 개봉된 영화 제목
실미도, 꿩 우는 소리 / 이생진
꿩! 꿩! 너도 혼자 나도 혼자 혼자란 제 발걸음소리에도 마음에 금이 가는 법 저 꿩이 뭘 안다고 하지만 알몸으로 도망쳤다 돌아온 윤회 꿩! 꿩! 대답이 없네 너와 나는 뭣 때문에
생막걸리 / 이생진
시도 경쟁인데 막걸리도 경쟁이다 서울생막걸리와 국순당막걸리 그리고 나 생生 시인 단골가게에서 국순당막걸리를 들고 주인에게 물었다 "전에는 국순당막걸리가 비쌌는데, 오늘은 서울막걸리가 비싸네요" "업자들 농간이죠"
어젠 서울막걸리를 샀고 오늘은 국순당막걸리를 샀다 나는 싼 것이 좋다 시도 싼 것이 좋다
서산 - 내 고향 / 이생진
내 고향 서산에도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가 나의 유년을 키워줄 무렵 나는 하늘보다 바다가 좋았다 그러던 바다가 이젠 없다 사람들은 가난한 바다를 몰아내고 광활한 들을 들여왔다 그러고는 겨울마다 철새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그만큼 부유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나는 그 바다가 그리워 갈매기처럼 파닥인다 어머니가 차려놓은 일곱 식구의 밥그릇이 그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다 바다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 나도 없다 그리움이란 없을 때 피어나는 꽃 같은 병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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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시인의 33번째 시집 <실미도, 꿩 우는 소리>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우리글시선' 74번으로 출간되었다. 136쪽에 '머리말'과 시작품, 후기와 연보가 실려 있다.
이생진 시인은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외딴 섬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섬의 정경과 섬 사람들의 뿌리 깊은 애환을 시에 담아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섬에서 돌아오면 인사동에서 섬을 중심으로 한 시낭송과 담론을 펴고 있다.
시집으로『그리운 바다 성산포』『독도로 가는 길』 『인사동』『우이도로 가야지』등이 있다.
/ 홍해리 시인
시집 후기 / 이생진
살아서 시를 쓰고 그 시를 모아 살아 있을 때 시집으로 묶어 낸다는 것은 시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이지 나이 먹을수록 세상이 고맙고 시가 고마워진다. 비록 실생활에서는 고달프고 짜증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로 살아남을 때 산 보람을 느낀다.
죽음으로 가는 행보가 빨라짐에 따라 섬으로 가는 행보도 빨라졌지만 아무짝에도 서둘 필요가 없다.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 앞바다나 고향에서 가까운 서해 연안 그리고 내 시의 고향인 제주도, 그런 곳에서 서성대다 갈 것이다.
시집은 나에게 바다가 보이는 창문 같아서 자꾸 여닫게 된다. 누가 내 시집을 읽고 그 자리에 버린다 해도 시는 詩集에 들렀다 가는 것이 도리이다.
그동안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조금 손질해 올린 것이 더러 있다. 시집에 올라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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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를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그리움은 없을 때 피어나는 꽃
낙엽지는 가을엔 더욱 그러합니다.
좋은시 감사합니다
건필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