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순간의 결정
강신홍
오송지하차도 참사에서 시민을 구조한 훌륭한 사람들도 있고 한편 도움을 베풀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생존자도 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할 문제들과 늘 부딪치며 살아야한다. 그런데 그 결정이 순간에 이루어져야하고 더욱이 생명과 연관되는 때는 매우 어려워진다.
교사초임 때 1박2일의 교사 연수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수를 마치고 아침에 학교로 돌아가려고 배정된 버스에 탔을 때 한 군인이 버스에 올라 좌석 칸칸을 살피며 제일 뒤에 앉아있었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전날 탈영병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바라 탈영병을 찾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군인은 내가 앉아있던 버스 제일 뒤 줄 구석에 와 칼빈소총을 앞좌석 턱에 얹고 앉더니만 칼날 같은 소리를 질렀다. 교사들의 머리가 순식간에 의자 맡으로 숙여졌다. 출발하라는 뜻이었으나 운전사가 멈칫하는 사이 총알이 앞창을 깨트렸다. 서둘러 기사가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운전사를 위협한 한 발의 총알은 미쳐 고개를 온전히 숙이지 못한 한 여선생의 머리끝을 관통하고 말았다.
잠시 후 군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바리게이트를 쳐 버스의 진행을 막았다. 순간 기사는 옆문으로 도망 가버렸다. 군과 탈영병 사이에 대치가 벌어졌다. 졸지에 교사들은 인질이 되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나이 든 한 교사가 탈영병에게 여교사들은 내보내주기를 청했다. ‘안 돼’라는 반응이 없기에 조심스럽게 한 사람 씩 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튕겨 올랐다. 탈영병에게 총 맞은 선생을 조치하기 위해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다. 응답이 없었다. 허락한 줄 알겠다고 말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탈출해야한다는 순간적인 생각에 옆에 앉은 송 선생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이미 시신이 된 여교사를 양쪽에서 들었다. 탈영병의 총구가 내 등을 향하고 있어 등골이 오싹한 가운데 정신없이 여선생들을 따라 나갔다.
여교사들과 우리는 군부대 교회로 옮겨져 다른 버스의 교사들과 합류했다.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심할 때 차 안에 있는 동료들이 떠올랐다. 나만 살자고 다른 동료들을 방치한 채 나왔다는 사실에 순간 당혹스러웠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한낮의 햇살이 꺾기는 즈음 사건이 끝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내가 나온 후의 버스 안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한 교사는 자기가 1종 면허가 있으니 운전하겠다고 자청하고서는 운전석 문으로 탈출을 했고, 두 교사는 군 당국과 교섭을 해보겠다고 나왔고 탈영병 주변에 있던 두 명의 교사만 남게 되었다. 그 사이에 군에서는 목사를 가장한 군인이 다가와 자수를 권하기도 했고, 빵을 공급해 허기를 면하게 했다고 한다. 극적인 순간은 자신들을 향해있던 탈영병의 총구가 초점을 잃었을 때 남아있던 두 남교사는 탈영병을 향해 몸을 던져 제압한 후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고 잠복해 있던 군인들이 들어올 수 있었다.
나의 당혹스러움은 처음 여교사 이외의 다른 희생자는 없었기에 잊혀 졌지만 이따금 나의 행동에 대해 의문이 떠오르곤 했다. 지금 나이에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사회적 경험도 많아지고 개인적 환경도 바뀌어졌기에 달리 행동하게 될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더 데이스>라는 영화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극도의 위급한 상황에서 간 나오토 일본 수상은 철수 하려는 동경전력 간부들을 향해 “60살이 다 된 간부들은 현장으로 가서 죽어도 돼, 나도 갈 거야, 사장도 회장도 각오하고 임해”하고 외친다. (이 말은 실제 수상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며 멘트(압력을 빼는 일)를 하려는 사람에게 현장 소장은 “이 곳은 60이 넘은 우리 늙은이에게 맡기고, 너희 젊은 녀석들은 빨리 집으로 가. 이후부터 시작되는 길고 긴 회복의 과정은 너희들이 힘을 써 줘야지.”
또 다른 장면 하나. 당시 곡창지대였던 후쿠시마에서 재배된 농산물의 구매를 두고 고민하던 한 유명한 일본생협 운동가는 그곳의 농민들을 위해 “60이 넘은 사람은 이 농산물을 먹자...노인들은 먹어도 방사능 영향이 적고, 후크시마는 우리 세대가 누리고 지은 죄 값이니까...”
탈영병 사건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두 교사도 내 기억으로는 60 나이에 가까운 분들이었고 사건 후 명예 퇴직하였고 한 분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내 나이 고희를 넘겼다. 이제는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의 자리에 의연히 대처하고 싶다.
첫댓글 강선생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묶어 놓은 글 이곳에 풀어놓으셔요.
독자가 되어드릴께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