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이라도
어느 날 나의 고해성사(告解聖事)에서 사제(司祭)께서는 보속(補贖)으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좋은 일 하시이소."라고 하셨다.
여태까지 내가 했던 좋은 일, 나쁜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좋은 일을 한 게 별로 없었다. 그 대신 나쁜 일(짓)을 한 것은 다 헤아
릴 수 없었다. '사촌(四寸)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한 것처럼 나의 나쁜 짓거리들
은 거의 시기(猜忌)와 질투(嫉妬), 질시(嫉視)에서 비롯돼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날마다 좋은 일 한 내용을 적어놓기로 하였다.
날이 갈수록 하루에 한 한 번이라도 좋은 일 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오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는 유리조각이나 사금파리, 유리
병, 못 등은 거의 치우고 다녔다. 줍고 치울 때마다 이것들에 찔리고 베여 피 흘리며 신음했던 어렸을 적 나와,
일찍이 어린이들의 이러한 고통을 미리 막아 주기에 앞장섰다는 페스탈로치를 떠올려가며.....
주섬주섬 주워 주머니나 가방에 넣다보면 지나가던 사람이 힐끔힐끔 되돌아보며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페스탈로치의 경우처럼 경찰로부터 검문검색(檢問檢索)을 당한 일은 없었지만, 의심의 눈살은 더러더러 받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길 가장자리에 날카롭게 깨진 박카스 병이 버려져 있었다. 곧 바로 주워 손가방에 넣고 걸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누군가가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으며 " 손가방! "하였다. 화들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그 사람을 비껴서며
"이 사람아! 누군데 이러는가? 고얀~"이라고 하였다.
"아, 미안합니다. 경찰입니다."라고 하면서 신분증을 내어 보였다.
가방 속을 들여다 본 경찰관, 죄송하다는 말 거푸거푸하며 다행스럽다는 얼굴인지 실망한 얼굴인지 선뜻 알아 볼 수 없는 표정으로 내빼듯 종종걸음질하였다.
나는 오늘 좋은 일과 그렇잖은 일 동시에 한 셈인 듯하여, 잘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받아든 기분으로 집에 들어섰다. (끝)
댓글
백치20.10.25 08:40
하루에 한 번이라도....글을 읽으면서 백치도 내 하루에 대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사제께서 님께 주신 보속을 백치도 같이 받은 기분인데요, 그동안 어떠한 백치였는지에 대해서도
고뇌의 시간에 빠져봅니다.
아무튼 좋은 일과 그렇잖은 일을 동시에 체험하셨으나 ㅎㅎㅎ 좋은 일 쪽으로 점수를 드리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솔바람소리님...^^
가람20.10.25 09:28
그렇게 길가에 널려 있던 쓰레기 집는데 같이 걷던 사람이 왜 그런 것을 줍느냐고 오히려 얼굴을 찡그리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참 못마땅했고 그 후로는 함께하기를 피했는데 결국 내가 너무 작은 그릇의 마음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바람소리님, 하루에 한번이라도 좋은 일하는 우리가 되어 보기를 기원합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애플20.10.25 12:34
좋은일 하시네요.~~
여울목20.10.25 15:04
쉽지 않은데 참 좋은 일 하십니다.
저도 천주교 신자인데요 성당에서 만나는 신자분들을 보면 신앙심은 깊으나 인간관계나 일상생활에서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불교, 천주교, 개신교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우리는 잘 되게 해 달라고, 소원 이루게 해 달라고
무언가를 요구를 하며 지극정성으로 빌곤 하는데 저는 그런 분들의 생각과는 반대입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신께 잘되게 해 달라고 빌기 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선한 행동을 실천하고 내 행동에 덕을 쌓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지요. 그래서 내가 실천 할 수 있는 한에서 아주 작은 것 부터 선한 행동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
솔바람 소리님의 글을 읽으니 제 생각과 비슷하신듯 하여 반갑게 읽었습니다.
솔바람 소리님!
참 좋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경찰관이 오해를 하여 살짝 속상하셨겠지만 솔바람 소리님의 선행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번 좋은 일 하기"로 보속을 주신 그 신부님의 속깊이를 헤아려봅니다.
물소리20.10.25 21:45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을 하자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남해20.10.25 21:50
쉽지 않은...좋은일 하시는군요. 그 경찰관, 확인하곤 그냥 내빼 버리던가요?
민중의 지팡이, 좋은 지팡이라도 하나 드리고 가야 맞제.ㅎ
우목(愚目)20.10.26 10:04
마음은 있어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데, 참 좋은 일을 하시네요...!!
Heidi20.10.26 22:04
저도 요즘 반은 타의(강아지)에 의해 조금 착한일 하고있어요.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개 두마리를 키우시다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신지 한달보름정도 되었는데 개 두마리만이 집을 지키고 있어요.
정원에 일가며 그 집 들려 아이들 밥 주고 물주고 한번 쓰다듬어주고 다녀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냥 못 지나가겠더라고요.
맘에 걸리는 건 그집 들어가는 것이 불법은 아닐까 걱정 되더라고요.
렐라20.10.27 14:26
아이 어릴 때 애향심 키워주고자 동네 쓰레기를 줍게 시켰었죠
지나던 경철관이 "꼬마, 봉사활동하니"하고 묻더랍니다
그냥 줍는다 하니 오히려 이상히 보더라는 아이 말이 생각나네요
엄마는 악? 선?, 아이는 선?....ㅋㅋㅋ
선과 악에 대한 생각없이 살았네요
솔바람소리님~ 글 읽고 퍼뜩 정신듭니다
'좋은 일 해야지'하는 의식만 있어도 훨씬 사회분위기 좋아질터인데....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는 일에 좀더 신경써야겠다는 생각 해 봅니다
이를테면 박스에서 테잎떼어내고 버리기, 스치로풀에서 종이나 스티커 떼어 내고 버리기 등등...^^
잘 읽었습니다
청향/정연균20.10.27 17:46
삶에 쫒기다보면 무심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가짐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솔바람소리님은 의인이십니다.
임세규20.11.06 07:42
하루에 한번이면 일년이면 365번이죠.
좋은일, 사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비록 행동하지 못해도) 생각하는 선한 마음을 갖는 것 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을 실천하시는 솔바람소리님은 대단하시네요. 좋은 하루 되셔요~
솔바람소리작성자 20.11.09 14:06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나날 가지시기 바랍니다.
박민순20.11.15 19:28
저도 길을 가다가 빈 술병이나 빈 음료수병이 나딩굴거나 깨져있으면
주섬주섬 주워다 우리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다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바라보긴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좋은 일하시는 솔바람소리님께
큰 격려의 박수 보냅니다.
솔바람소리작성자 20.11.18 01:02
감사합니다. 박민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