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재능이 아니라 지루한 장부 정리를 꼼꼼하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융의 성격 유형을 알면 재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감각적 유형의 사람은 현실적이고 사실 관계를 빨리 파악한다. 직관형 삶은 본질을 꿰뚫고 가능성을 직감한다. 사고형이 논리적 분석을 잘 한다면 감정형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관계 지향적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재능은 아니다. 물건을 파는 일도 재주고 지루한 장부 정리를 꼼꼼하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예술적 기교나 감각만 재능이 아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재능은 따로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독창적 관점을 제시하는 직관적 능력도 재능이다.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능력도 눈여겨볼 재능이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 보이나 단순한 일을 성실하게 하는 재능도 칭찬받을 덕목이다. 선량한 사람과 사악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알고 옳고 그른 것을 섬세하게 분별하는 능력도 높이 사야 할 미덕이다.
열등한 기능이 과잉 보상되어 우월한 기능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열등한 기능이 과잉 보상되면 우월한 기능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 보상된 열등 기능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우월한 기능과 달리 본인에게는 노력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데다가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월한 기능 대신 열등한 기능을 주기능으로 사용하면 경쟁력이 없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왼손은 연습해서 익숙해져도 오른손만은 못한 법이다. 익숙해진 듯해도 힘이 더 들고 서툰 것이 열등한 기능의 특징이다.
열등한 기능으로 살아가는 삶은 본성에 반하여 쉽게 지치고 피곤해져 건강에도 좋지 않다.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를 강조한다. 우월성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탁월함 또는 내재한 가능성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아들러의 우월성 추구는 타고난 우월한 기능을 살리라는 뜻인지 열등한 부분도 노력해서 우월성으로 추구하라는 의미인지 모호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만일 우월성 추구가 열등감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삶이 아닐 수 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열등한 부분을 적당히 보상할 필요는 있으나, 열등한 부분을 노력해서 우월하게 전환시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고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열등감 보상과 우월성 추구를 주장하나 개인의 어떤 부분이 우월한 기능이고 열등한 부분인지에 관해 언급하지 않아 융의 성격 유형론과 비교해 아쉬운 부분이다.
자신의 재능을 살린다 해서 혹은 우월성을 추구한다 해서 남과 비교해 우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고유한 재능을 살린다 해서 아웃라이어(outlier)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평균보다 못해도 상관없다. 모두 고유한 역할이 있고 나름대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능 중 우월한 기능이 타고난 재능이고 이것을 살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도 갈고 닦아야 빛이 나는 법이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이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또한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한다. 환경적 요인으로 실패와 좌절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는 집착과는 다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먹고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전통적 교육이 그래 왔고 자기 계발서도 그렇게 쓰고 있다. 실패를 본인의 미약한 의지와 부족한 노력 때문으로 보고 있어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재능없이 의지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능력이 부족한데 노력만 한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우월한 기능과 열등한 부분을 알아야 한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경쟁하는 것은 당연히 힘든 일이다.
재능을 살리기 위해 인격의 다른 부분을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격의 다른 부분이 재능을 받쳐 주지 않으면 재능이 빛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재능을 살리라 해서 우월한 부분의 재능만 살리고 열등한 기능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열등한 기능이 재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격의 다른 부분이 받쳐 주지 않으면 재능을 살리기 어려워진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 또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경우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재능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재능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열등한 기능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뛰어난 예술가도 어느정도의 경제적 개념은 필요하다. 아무리 신경 쓰기 싫어도 말이다.
재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평소 열등한 기능도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살릴 필요가 있다. 열등한 부분을 살리는 일은 자신감을 갖게 하고 의외로 삶에 재미를 더해 주기도 한다. 열등한 부분을 인정하고 의식적으로 살리는 일은 온전한 자신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열등한 기능을 살려서 우월한 기능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다 하더라도 다른 부분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타고난 재능을 살리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되어야 할 바가 되는 일이고 자기실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