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차르트는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고 여듧 살에 공식 석상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의 뛰어난 작품 또한 수백 곡에 달한다. 이런 모차르트를 두고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천재적인 음악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골프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타이거 우즈'는 어떨까. 그의 아버지 '얼 우즈'는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할 만큼 어린 아들에게 골프채를 똑바로 쥐고 공을 제대로 치는 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프로 골프선수로 메이저 대회에서 5승을 포함해서 총 25회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박세리 선수에게 그의 아버지가 없었다만 과연 골프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 박세리 선수의 바탕에는 재능을 떠나 그의 아버지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이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진정한 가치는 천재라거나 재능이 특출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재능을 떠나서 노력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2. 며칠을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구름이 낀 흐린 날이 잦더니 오랜만에 화창한 햇살이 드러났다. 비록 기온이야 제법 차가워졌지만 얼음이 얼고 쌀쌀한 날씨가 겨울에는 제격이다.
날씨도 쌀쌀하고 하늘이 맑아서 그런지 산책길도 오랜만에 더없이 그윽하고 좋았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고 안정이 되지 않으면 가끔 책을 읽는다. 특히 수행이 깊은 법정 스님이 남긴 책을 읽다 보면 가끔씩 채찍이 되어 마음을 안정시키게 되고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수행이 깊은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 어린 가르침은 자신을 다스리는데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3.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땐 육신을 괴롭히면 좋다. 어제는 편의점에 근무하면서 바닥을 한번 쓸고 났더니 마음이 가라앉았고 조금 고요해졌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를 하나 가지고 있다. '나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화두인데 좋은 양식이 되고 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이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한번 옮겨보겠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단지 바라보는 것은 아무 부담 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안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증거이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이 허술하기 때문이고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면 가능한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고 잃는 것인지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잃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마라. 사람의 허물을 보지 마라. 남이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마라. 다만 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을 보라.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은 그는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눈으로 보는 것에 탐내지 말라. 속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하라.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날 때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의 영역을 침해하면서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도 해치고 이웃에게도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전문 지식을 익히고 그 길에 한 평생 종사하는 것도 그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런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맑히고 있다.
법정 스님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1932년에 태어난 본명이 박재철이다. 1994년에 '맑고 향기롭게'라는 시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이란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정책이나 제도의 개선을 위해 압력을 행사하는 활동들을 말한다.
그런데 그때 시민운동으로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고 영향을 끼쳤는지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스님이 산으로 들어와서 수행이 깊어지면서 강연을 하고 저술활동을 통해 더 많은 공감대와 국민적인 지지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역설적으로 행동보다는 산속에서의 수행이 더 좋았고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해야 맞겠다.
4. 나는 한동안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이란 끝이 아니라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 눈을 뜨고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제 성장을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과 수행이 진실로 뒤따라야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오직 참선으로 수행을 일관해온 선구자가 있다면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랴. 그는 이미 득도의 한 경지에 올라 지혜로운 가르침을 전해주지 않겠는가.
그러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수행이 진정으로 깊은 지의 여부가 아니겠는가. 교회의 목사가 되었던 사찰의 스님이나 또 저술활동을 하는 작가라도 말이다.
오랜 수행으로 안으로 갈무리된 수행자의 노안에서는 깊은 지혜로움과 넓은 혜안이 숨어있고 그런 것이 진정으로 빛나고 가치 있음에 틀림없겠다. 물론 나도 그런 길을 걸어가고 싶다.
사람들은 성급하게 결과를 기대한다. 밥도 서둘러서 빨리하면 설익는 법이다. 그러니 기다릴 줄 알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로움에 틀림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