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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46)/면류관/술 취함
제목 : 에브라임의 면류관이 밟히리라
성경 : 사 28:1~8
찬송 : 407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1214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28: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사 28: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사 28: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사 28: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사 28: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사 28: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사 28: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사 28: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이사야 13~27장은 이방과 온 세상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28장부터는 초점이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옮겨집니다. 여기서부터 히스기야 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즉 28~35장은 이사야서 안에서 세 번째 주요 단원을 형성하며, 여기에는 본문의 시작과 같이 ‘화있을진저’로 시작하는 일련의 시들이 이어집니다(28:1; 29:1,15; 30:1; 33:1).
내용적으로는 앞 단원의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던 주제인 ‘여호와를 신뢰함’에 대해서 이방, 특히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부패한 지도자들을 비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첫 단락(1~8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인 북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 시작합니다(1~4절). 북 이스라엘의 멸망은 유다에게도 큰 위협이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겠지만, 그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신다는 말씀은 큰 위로 소망이 될 것입니다(5~6절). 하지만 문제는 유다의 지도자들 역시 부패한 북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7~8절). 그들은 지혜와 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을 따르기보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방탕한 길로 가려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른 바와 같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6).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 것인지 영을 따라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방탕한 이스라엘
사 28: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히브리어 본문은 저주 혹은 슬픔을 표현하는 탄식의 소리 “화있을진저”(호이)로 시작합니다. 탄식의 대상은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입니다. 선지자는 사마리아를 ‘교만한 면류관’과 ‘쇠잔해 가는 꽃’에 비유합니다. 사마리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주위의 평지들 가운데서 ‘면류관’과 ‘꽃’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이제 땅에 내팽개쳐진 면류관, 시들어 가는 꽃처럼 국력이 쇠약해 질 것입니다.
특히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유력한 지파로서 남쪽에서는 유력한 유다지파와 대척점을 이룹니다. 그러기에 이 예언은 북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선지자가 이 예언을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방에 대한 경고를 예언할 때도 그것이 이방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향해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의 운명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청중들에게 어떤 교훈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술 취한 자들’과 ‘술에 빠진 자’는 단지 술에 취해 방탕한 자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분별력 없이 방황하거나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자들을 포함합니다(참조, 7절). 그래서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은 북 이스라엘의 타락한 백성, 특히 부패한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교만한 면류관’은 하반 절에서 ‘술에 빠진 자의 성’, ‘영화로운 관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으로 세세하게 묘사되었으므로,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마리아는 남쪽으로 아얄론 골짜기와 북쪽으로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에 있는 곳으로 원래 므낫세 지파의 땅인데,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가 왕이 되어(BC 885~874) 세멜이라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산을 사서 수도로 삼고 원주인의 이름을 따라서 그 이름을 ‘쇼메론’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이름이 후대에 헬라어와 라틴어 발음을 따라 사마리아가 되었습니다. 오므리 이후에도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중심지였으나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 더 정확히는 BC 722년에 앗수르 제국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내다보면서 그 성이 ‘쇠잔해 가는 꽃같이’ 몰락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사 28: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사 28: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사마리아와 북 이스라엘은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쳐서 몰락할 것인데, 그는 ‘주께 있는’(라도나이) 곧 주께 속한 자입니다. 이것은 그 몰락이 우연이나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에 의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강하고 힘 있는 앗수르를 사용하셔서 사마리아를 치게 하시고 북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굳이 그 나라가 앗수르라는 것을 밝히지 않습니다. 도구가 무엇인가보다 궁극적인 원인자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 위함인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당합니까?
무서운 재난이 임하게 되는데 곧 “쏟아지는 우박”, “파괴하는 광풍”, “큰물의 넘침”의 삼중 이미지를 사용해 강하고 힘 있는 자의 무서움과 하나님 심판의 엄중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침략자가 사마리아를 정복하는 것은 손으로 면류관을 땅에 던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머리에 씐 면류관이 땅에 내동댕이쳐져 짓밟히듯이 사마리아는 이방 군대에 정복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 28: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이 구절에 대한 개역개정판의 번역은 매끄럽지 못합니다. 첫 구절은 1절의 반복입니다.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는 쇠잔해 가는 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시절이 지나면 시들어 떨어지는 꽃같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마리아는 단순히 내부적으로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힘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파게라는 무화과)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즉 제철에 무르익기 전 따먹히는 무화과처럼 사마리아는 충분히 번영하기 전에 다른 나라에 약탈당하고 정복당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북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흉이 누구입니까? ‘술 취한 자들’, ‘술에 빠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권력을 탐하며 권세를 누리던 자들입니다.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술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북 이스라엘의 실상을 유다에 알리셨습니다. 유다 사회가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신 여호와
사 28: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술 취한 사마리아는 땅에 던져서 그 면류관이 밟히게 하시되 남은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백성의 남은 자’가 누구를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아름다운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세상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사마리아는 어느 한순간 된 서리를 만난 꽃처럼 형체도 없이 시들고 마는데, 남은 자는 하나님께서 면류관이 되어 주시고 아름다운 화관이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면류관이 되어 주시고 화관이 되어 주신다면, 이 사람들의 영광은 시들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복을 받을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멸망을 당할 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하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 망하지 않은 남쪽 유다 왕국을 말한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남은 자’는 사마리아가 망할 때 도망쳐서 산 사람도 아니고 지금의 유다 왕국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다 왕국도 사마리아와 똑 같이 술 취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남은 자’는 겉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공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화과 열매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즉,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금방 따먹히고 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남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아는 자를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말씀의 맛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심히 좋아하고, 온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랑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에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긴 채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그렇게 칠십 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시 이 세상에서 면류관을 쓰고 재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완전히 몰락해 버렸기 때문에 다시 성공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망한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자 다시 일어서게 되고 다시 유명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힘은 굉장히 미약합니다. 아마 강한 사람들이 이들을 치면 당장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약한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계속 살아남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화관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꽃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지키기 위해서 꽃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연약하지만 계속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물을 공급해 주시고 거센 바람이나 우박이 덮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 28: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앞에서 말한 사마리아는 겉으로는 면류관을 쓴 것처럼 찬란했지만, 실제로는 술 취한 주정뱅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성도들은 아주 지혜롭고 생각이 명석합니다. 이들은 재판을 할 때도 공명정대하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판결하는 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공명정대하게 재판하려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만에 빠진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마리아와 같이 재앙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성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많이 유명해지거나 높아지는 것은 오히려 재앙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닮은 유다
사 28: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하나님께서는 술 취한 백성을 너무나 싫어하시는데, 유다도 술에 취해 해롱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유다 백성이 취한 술도 단순히 마시는 술이 아니라 성공에 취한 자기도취의 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심각한 문제는 유다에서 가장 정신이 맑아야 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술에 취해서 옆걸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은 똑바로 걷는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삐딱하게 옆걸음을 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유다는 사마리아에 비해서 하나님을 바로 믿는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도 사마리아의 술 취한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신앙을 버렸습니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축복과 세상의 성공 신앙을 혼합시켰습니다. 그렇게 축복과 성공이 결합하여 굉장한 성공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사마리아는 성공에 도취되었고 술주정꾼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들만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훨씬 더 도취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우월감에 도취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보시니, 모두가 취해서 백성도 비틀거리고 선지자나 제사장들도 비틀거렸습니다. 그 결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엉터리로 해석하였으며, 재판장들은 바르지 않은 재판을 하였습니다.
사 28: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상을 보시니까 깨끗하게 정돈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술 마시고 토한 토사물만 가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유다 백성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실수를 했다는 의미도 죄지만, 아들이 바른 말씀에서 떠나니까 정말 더러운 말과 사상으로 온 사회가 오염되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유다 백성 안에는 항상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고 깨끗하게 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이 교만한 언어와 분노의 욕설을 너무나 토해 내는 바람에 하나님은 유다 사회를 견디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유다 백성이 이렇게 추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사마리아를 따라 성공하고 커지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너무 커지려고 하고 성공하려고 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인기나 칭찬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의 성공과 칭찬을 따라가게 되면 그때부터 술 취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면류관을 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면류관이 되어 주시는 인생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정성을 들여 상을 차릴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거기에 토한 것, 더러운 것뿐입니다(8절). 영화로운 면류관, 아름다운 화관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것이 우리의 존재를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구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