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교동 (1)
강화도, 교동 (2)

강화도에 가면 꼭 한 번씩은 보는 고인돌. 높으신 분들의 무덤이었죠.
예전에는 저런 걸 만들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에는 저것도 일종의 갑질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고인돌은 많은 자금,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갑질의 상징이었지만, 일반인도 묻힐 수 있었습니다.
돈만 있다면야.
또한 제사, 의식에도 쓰이기도 했지요. 이런 고인돌은 저 가운데 있는 무덤방이 없습니다.
전등사

정족산성의 정문인 '종해루'가 보이네요. 오래된 건 아니고 무너진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이곳은
1. 여름에 선선합니다.
2. 겨울에는 특별히 춥습니다.
특히 2번은 중요합니다. 멋모르고 겨울에 잘못 올라오면 크게 고생합니다.
아래쪽에서 따듯하다고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멋모르고 올라갔다간 지옥같은 추위를 맛보게 됩니다.

물론 이 여행기를 만들던 시절은 여름입니다만....
올해는 코로나 19때문에 강화도 가는 것도 글렀네요...

전등사는 고구려의 사찰로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 아도화상(阿度和尙)이라는 승려에 의해서 창건되었습니다. 이후 고려때 수축되었지만 광해군때는 불에 타서 없어져버렸죠. 이때 다시 지었고 일제강점기때 중수 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좀 파란만장해보이지만, 사실 이 정도는 문화재 역사 중에선 흔하디 흔한 일이라...
원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습니다. 하지만 고려 때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로써 중하게 여기던 와중에 충렬왕의 왕비였던 정화궁주가 절에 대장경과 함께 옥으로 만든 법등을 기증하면서 진종사(眞宗寺)라는 절 이름을 전등사(傳燈寺)로 바꾸게 되었죠. 이후 광해군때 재건된 이후에는 정족산 사고를 짓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전등사의 주지는 이를 관리하는 도총섭(都摠攝)이라는 특별직함을 갖게 되죠.

한국전쟁때 생긴 총알 자국이 아직도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강화도는 만약 전쟁이 난다면 제일 먼저 전화에 휘말리는 곳이라고 하네요. 뭐 교동에선 북한이 육안으로 보이다 못해 헤엄쳐서 갈 수도 있는 곳이라고도 하니까요.
전등사는 유난히 전화와 인연이 깊습니다. 한국전쟁 뿐만이 아니라 1866년 병인양요 때도 피해를 봤죠. 그때 침략한 프랑스군이 불상, 법전을 약탈해 갔거든요.

조선후기의 명장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
병인양요때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전을 통해 승리한 대단한 장군이죠.
이 승리가 얼마나 대단했느냐, 그 공으로 한성 판윤(서울 시장)이 되고,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이어 어영대장이 되더니 1884년에는 형조 판서와 공조판서, 즉 재상까지 오릅니다. 무관을 천시하는 조선 분위기상 무과에 급제한 무관이 재상이 되는 일은 굉장히 드물죠.

대웅전 내부.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닌데 사람이 없는 게 정말 드물어서 찍어봤습니다.

그 유명한 범종이 있군요.

이게 특이한게 보물 제393호인데 중국의 종입니다.
보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국의 종으로 원래는 중국 허난 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었죠.
해방 후 인천의 군기창에서 발견되어 전등사로 옮겨지긴 했는데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멋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면 일본 제국주의 시절, 병기를 만들 철이 모자라서 숟가락까지 뺏어가는 통에 중국의 절에서 온 것이 인천항에 온게 아닌가 합니다. 이 절 특이하게도 철로 만들었거든요.
전등사에 옮겨진 계기도 독특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사찰의 종을 뜯어가는 판에 전등사의 범종도 공출당했는데 해방 후 주지스님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천항에서 종을 찾으혔다더군요. 그때 이 종을 만났다고 합니다. 어차피 그대로 두면 녹여서 재활용 될게 뻔했기 때문에 가져왔다고 하네요.

이런 여행 다니다보면 정말 일본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었는지 뼈저리게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쪽 역사문화답사 다니시는 분들 중에 일본의 역사, 문화재 좋아하시는 분은 있어도 일본 좋아하는 분은 보기 힘들어요.
심지어 일본인도 일본을 싫어합니다.
응?
제 지인중에 조선팔도의 문화재를 좋아해서 사진도 쓰고 책도 쓰는 일본인들이 있거든요.

아 경치 좋다.

어? 이건 뭐야?

정족산 사고로 가는 길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던 곳이지요.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현재는 당연히 실록이 보관되어있지 않습니다. 1909년 중앙정부로 이관되었기 때문이죠.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한 응급처치.
산 나무에 뭔 짓인가 싶긴 한데... 이렇게 뼈대만 심어주면 또 건강하게 산다나봐요.

사연이 있어보이는 항아리들. 깨진 것을 맞춘 흔적이 있죠?


자 다음 목적지로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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