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진리를 곡해하지 않고 사실대로 보는 길이다.
<존재에 대한 바른 견해>
진리 그 자체로서의 여래를 육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모든 형상이란 다 실체가 없이 허망한 것. 그 모든 현상들을 볼 때 이미 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진리인 여래를 볼 수 있으리라고 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형상 뿐이다. 진리의 모습 부처의 모습 이란 어디에 있는가. 실상의 모습이란 이 형상을 떠나서 달리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리를 펴고 앉아볼 일이다. 철저히 앉아 볼 일이다.
제5.여리실견분(여래의 참모습)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여래라고 볼 수 있는가?”
불야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 得見如來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여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체적 특징은 바로 신체적 특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佛告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체적 특징들은 모두 헛된 것이니 신체적 특징이 신체적 특징 아님을 본다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第五 如理實見分
제오 여리실견분
第五 如理實見分(一. 斷求佛行施住相疑)
제오 여리실견분 (攝跡斷疑 : 二十七 )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니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불 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은 6쪽에, 6페이지에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 5’,
32분 중에서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입니다.
第五 如理實見分
제오 여리실견분
제5. 그러한 이치를 사실대로 보다[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여리실견(如理實見)’이라,
같을·여(如)자 이치·이(理)자, 이치와 같이, 이치대로, 이치대로 실답게 본다. 사실대로 본다.
‘이치를 이치대로 그대로 본다.’ 요걸 이제 다른 말로 하면 ‘존재에 대한 바른 견해, 존재에 대한 바른 안목, 모든 존재, 존재에 대한 정견’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금강경의 4개의 사구게 중에서 제1사구게가 이제 등장을 합니다. 글은 아주 짧죠.
여리실견(如理實見), 모든 유형·무형의 존재를 사실대로 본다, 바르게 본다, 정견(正見), 이건 어디까지나 물론, 진리에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마는, 그러면서 또한 금강경에서 보는 정견이다, 이렇게도 또 볼 수가 있어요.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몸으로써, 이 육신이죠. 육신으로써 여래를 보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니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그랬어요.
‘신상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득(得)’자는 얻는다는 뜻 아닙니다. 볼 수, 가능성을 말하는 거죠.
‘볼 수 없습니다.’
‘여래(如來)’라고 하는데 대한 우리 관념이요, 참 다양하죠. 조금 불교를 아는 이들은 아, 이것은 진리 당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고, 또 우리 신앙적으로 부처님, 그 부처님이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됐든, 아니면 법신불이 됐든, 막연하게 우리에게 어떤 가피력을 주는 그런 부처님이 됐든 간에, 그런 여래로 생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죠.
그러나 금강경 입장에서는 이렇습니다.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여래가 말하는, 여기 이제 말씀하신 분도 여래예요, 사실은,
왜냐? 역사적인 부처님 아닙니다, 분명히, 금강경에서는.
그리고 뭐 우리가 빌면 복을 주고 죄를 소멸하게 해주는 그런 여래도, 그런 그 아주 신격적인, 신격화된 그런 부처님도 아니에요, 여기는.
그러면서 여기선 여래가 말하신 육신, 신상이라고 하는 것.
여래가 말씀하신 신상, 이렇게 여래가 말씀하신 신상이라고 하니까, 이게 이제 또 헷갈리는 거야. 아, 진리 당체인 것 같으며서도 무슨 진리 당체가 뭐 우리처럼 말하는 그런 경우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경전은요 우리 아함부 경전하고 전혀 달라가지고, 사람이면서 그 사람은 곧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 까닭에, 그 사람이 진리야, 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냥 그대로 진리야.
진리이면서 또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야. 이게 모든 걸 포함하고 있으면서 또는 어떤 역사적인 실존 인물처럼도 등장하기도 하고, 아니면 진리 자체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다 융합된 그런 존재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대승경전에 있어서의 부처님이라고 하든지, 여래라고 하든지, 세존이라고 하든지 그것이 아주 그 명확하게 선이 착착 이렇게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총 포함해서 폭 넓게 이해해야겠죠. 아무튼 진리를 깨달으신 그 어떤 인물은 곧 진리자체이면서 사람인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은, 신상이라고 하는 것,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즉비신상(卽非身相)’이다, 신상은 곧 신상은 아니다, 그랬어요.
여기 ‘즉비(卽非)’라고 하는 말이 금강경에서 제일 많이 나오고, 제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자 하는 낱말입니다.
‘즉비(卽非)’, 곧·즉(非)자, 아닐·비(非)
마이크는 곧 마이크가 아니다.
차는 곧 차가 아니다.
책은 곧 책이 아니다.
모든 이 세상 만물을, 그리고 심지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깨달음까지도, 부처님의 설법까지도, 먼지에서부터 삼천대천세계까지도, 중생, 부처, 모든 것을 저 뒤에 가면 그렇죠.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이다, 시명 중생이다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존재, 뭐 중생세간(衆生世間)이나, 기세간(器世間)이나, 깨달음의 세계,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주1)의 명제야.
모~든 것을 전부 금강경의 안목은 ‘즉비(卽非)’로 봅니다, ‘즉비(卽非)’!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아니다!’이게 ‘즉비’예요, ‘즉비’의 논리야.
그래 보이는 대로 그대로 이해하면은 속는다, 이거야.
귀에 들리는 대로 그대로 이해하면은 속는다. 그것이 곧 아니라고 하는 그런 그 안목을 가지고 봐야 된다. 그렇습니다.
안경을 하나 끼라는 거예요. 뭐 색안경을 끼라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투명안경, 모든 존재를 투시하는 투명안경이 ‘즉비’의 안경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투명안경! 투명안경이 있으면 근사하겠죠. 가끔 뭐 신문에 ... 그렇게 광고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마는 투명안경이 있다고 그렇게 하긴 합디다.
테러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 투시하는 그런 그 투시안경이 있었죠. 그래봐야 그 별로 투시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보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투시하는 투시는 못해. 이 ‘즉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를 정말 투시하는, 꿰뚫어 보는 그런 안경입니다. 이것 뿐이에요.
사실은 금강경에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마는 한 마디로 딱 표현하면 이 ‘즉비(卽非)’라고 하는 이 두 글자뿐이지 다른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즉비(卽非)’라고 하는 낱말이 제일 많고, 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먼지 하나에서부터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중생에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깨달음에서부터 부처님의 설법에 이르기까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지식은 다 등장시켜놓고 그것은 전부 즉비의 투시 안경으로 꿰뚫어봅니다.
이것은 깨버린다, 로도 볼 수가 있지만 깨버리는 것이 아니고 투시하는 거예요.
꿰뚫어보는 거예요.
아주 참 금강경은 내용이 다양하진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데, 명쾌해요. 아주 명쾌합니다.
이 투시안경을 하나 제대로 낄 수 있다면은 금강경을 통해서, 그럼 뭐 인생은 정말 행복하고 평화롭게 어떤 문제에도 우리가 걸리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아주 참, 경전이, 많은 경전이 있어서, 능엄경이라든지, 이런 것 참 아주 그 이야기가 다양하죠. 법화경도 또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주 금강경은 참 단순해요. 그래서 선사들이 좋아했습니다.
불교전반으로 볼 때 이걸 사실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볼 때 부적합하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불교라고 하는 것은 이건 참 대단한 그 종교인데, 요렇게 어떻게 즉비의 논리, 이것 하나만을 가르치는 이 금강경을 어떻게 소의경전으로 할 수 있나, 좀 부족하다는 그런 주장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해요. 그러나 우리에게 이 하나의 이치만이라도 철두철미하게 이해하라하는 이것만 이해하고 나면, 거기에 보살행도 나올 수가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의 열쇠도 있다, 이 뜻이에요. 그래서 이 ‘즉비(卽非)’를 우리가 눈여겨봐야 합니다.
계속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우리 육신이 육신이 아니다’, 일단 아닌 걸로 보자 이거예요. 그게 ‘정견(正見)’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 바르게 보는 안목이다 이거죠. 우리가 49재를 지낼 때, 으레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그 돌아가셔서 이제 마지막에 이제 이생을 하직하고, 다음 생을 맞이하는 그 사람에게 일러줄 수 있는 최고의 어떤 그 진리의 말씀, 아직도 이 육신의 생명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육신에 집착을 한 나머지 그 주변을 맴돕니다. 그래서 공동묘지에는 그 말하자면 귀신이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자기 몸이 거기 가 있으니까 자기가 아직도 살아있는 줄 알고 이미 썩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있는 거야.
육신에 대한 집착이 그래 강합니다. 왜냐? 사람이 사는 건 육신 뿐이니까. 그래서 금강경에서 이것이 나온 거야. ‘육신에 대한 집착하지 마라’라고. 그래 49재 때 읽어주는 건 아주 좋은 그런 제도예요.
안 그렇습니까? 만약 육신에 집착하고 있어가지고 시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 서성거리고 있다면 그게 무슨 꼴입니까? 지 갈 데로 얼른 가야지. 인연따라서 빨리 가야지. 그럴 때 이 아주 참, 촌철살인과 같은 무서운 독약이 되거든요, 이건. 그런 집착을 파괴해주는 아주 무서운 독약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그러니까 몸이 몸이 아니다 이거야.
육신이 육신이 아니다, ‘즉비신상(卽非身相)’이다. 그러고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불 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1사구게주2) 그러죠?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까지 그리고 즉견여래, 이렇게 네 구절로 된 게송, 그래서 경전마다 금강경 전체거나 아니면 사구게 만이라도, 이런 말이 종종 나오잖습니까? 그러고 우리가 시식할 때 시식문에 뭐 좋은 사구게들 다 모아놨죠. 처음에 금강경 사구게부터 나옵니다. 그러고 법화경 사구게, 화엄경 사구게 주욱 그냥 이 세상에 최고 좋은 법문, 고급법문만 다~ 들려주죠.
거기에 이제 이 사구게가 나오는데,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이 다 개시허망(皆是虛妄),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에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그게 정견이죠.
투시안경을 가지고 보라. 그 투시해서 봐란 말이야. 그냥 이렇게 가려진 안목으로 보니까 눈에 보이는 일차원적인 그런 것 밖에 안 보이잖냐, 좀 더 다른 차원으로 보라 이거지. 그 말입니다.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다.
곧 여래를 본다, 그랬어요. 여기서 ‘여래를 본다’라고 하는 말은 물론 ‘부처님’도 됩니다. ‘존재의 실상, 존재의 실상을 이해한다’, 이 뜻입니다.
유형· 무형, 유상· 무상,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존재의 실상을 볼 수가 있다.
그랬을 때, 부처님도 물론 그 속에 포함되고, 나 자신도 포함되고, 내 생명도 포함되고, 내 명예도 포함되고 그 속에는 모든 것이 전부 포함됩니다. 내 육신, 내 수명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즉견여래다, 실상을 제대로 보게 된다. 참, 이 사구게 이건 정말 뛰어난 법문이죠. 뭐 하루 종일 읊조려도 부족한 그런 그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