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호남정맥-천황지맥의 고리봉(710.1m, 보련산, 골회봉,환봉)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암릉에 배를 매었던 연꽃과 송골매 형상
새만금일보 ㅣ 기사입력 2019/12/05 [19:50]
▲ 만학골.고리봉 안내판 © 새만금일보
고리봉은 풍요로운 금지평야와 호남의 젖줄 섬진강, 수려한 만학골 등을 품은 암릉으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설악산 용아장성을 방불케 한다. 산의 명칭 유래도 특이하다. 소금 배를 매거나 풍수지리상 행주행인 남원의 비보풍수로 배를 매는 쇠고리가 있는 고리봉, 천년의 다향을 품은 연꽃형상의 보련산, 송골매 형상의 골회봉 등의 수식어를 가졌다. 금지면 서매리 방향에서 보면 임실 강진의 백련산白蓮山처럼 영락없는 하얀 연꽃봉우리 형상이다.
▲02보련암 터 주변 야생차 군락지 ©새만금일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고리봉의 별칭인 연꽃형상의 보련산, 송골매 형상의 골회봉 등의 문헌을 발굴 조사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조선시대 남원에는 고리봉이 세 개나 있었다. 큰고리봉(1,305.0m)은 석기시대에 운봉이 호수였을 때 고깃배를 매었고,. 만복대 남쪽에 있는 작은 고리봉(1,248.0m)은 옛적에 홍수가 나면 배를 매었다. 금지면의 고리봉(701.1m)은 암릉에 소금 배를 매었던 산이다.
금지면의 고리봉은 이제 수심이 낮아져 배가 드나들 수 없다. 예전에는 소금을 실은 배가 경남 하동에서 구례와 곡성의 섬진강을 거쳐 남원성 동쪽 쌍교동의 십수정十樹亭(오수정, 참나무정)까지 올라가서 닻을 내리고 소금을 보급했다고 한다.
▲ 보련암 터에 있는 밀양박씨숙부인묘소 © 새만금일보
<<한국지명총람>>, <<남원지>>, <<남원의 마을 유래>>,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 등 대부분의 문헌과 지형도 등에는 하나같이 고리봉으로 나와 있다. 전국에 있는 등산객들에게도 고리봉으로 인식되어 있다. 따라서 공식명칭은 고리봉이고, 별칭은 보련산, 골회봉, 환봉 등으로 불러야 옳다.
송골매 형상의 골회봉?回峰이란 유래는 17세기 남원지방 향촌사회의 종합지인 <<용성지>>와 조선 말기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에 등장한다.
▲ 보련사터 주추돌 © 새만금일보
보련산寶蓮山은 매월당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 서거정의 <귀래정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암헌 신장 전기 巖軒 申檣 傳記>> 등에 나와 있다. 서예와 문학에 능통했던 고승 보련법주寶蓮法主가 후학을 가르쳤던 곳은 보련산에 위치한 보련사寶蓮寺였다고 한다. 남원의 차 문화는 고려시대부터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불교의 쇠락으로 남원의 차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었다. 최근오동섭 장인이 <만복사 저포기>의 저자인 매월당 김시습의 초암차 정신을 흡모해 고리봉(보련산) 보련사 터에 매월당을 지었다. 그리고 신선의 꿈이 깃든 고려시대의 단차형태인 고려단차를 재현해서 남원의 차 문화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동섭 장인과 순흥 안 씨 사제공 문중의 안상현 회장, 곡성의 향토를 연구하는 신규호 씨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매월당의 <만복사저포기>, 서거정의 <귀래정기>, <암헌공 신장 전기> 등의 기록을 감안해 볼 때 연꽃형상의 보련산은 고리봉이고, 고리봉 자락에 있었던 절터가 보련사지寶蓮寺址라고 말했다.
▲ 매촌위에서 본 고리봉 ©새만금일보
<<산경표>>와 <지형도>로 고찰해 본 삿갓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금남호남정맥에서 분기된 백운산에서 천황지맥은 남쪽으로 뻗어가며 장수군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에 비행기재, 개치, 개동산, 상서산, 상사바위, 만행산 천황봉, 연화산, 호치봉, 딋밤재봉, 왕묘산, 왕묘산 남봉(교룡분맥 분기), 노적봉, 풍악산, 응봉(매봉), 십자산, 비홍치, 비홍산성봉, 문덕봉, 고정봉, 송내봉, 그럭재, 두바리봉, 삿갓봉을 지나 고리봉을 일으킨다.
고리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섬진강 본류, 동쪽은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 서매리와 대강면 사석리와 경계다.
지리적으로 고리봉의 북쪽은 천황지맥의 삿갓봉, 두바리봉, 송내봉, 고정봉 너머로 문덕봉, 남쪽은 동악산이 다가온다. 남원시가지와 주생, 금지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운해에 감싸여 있는 지리연봉과 서쪽 섬진강 너머로 순창의 강천산과 담양의 추월산이 조망된다.
▲ 매화당서 본 고리봉(보련산) © 새만금일보
고리봉(보련산, 골회봉, 환봉)의 주변 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용성지>>에는 “골회봉?回峰은 일명 고리봉(環峰)이라고도 한다. 도선이 남원부의 지리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러 비보사찰과 함께 축천丑川에는 철우鐵牛를 만들었고, 골회봉에는 용담龍潭과 호산虎山에 철환鐵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원지>>에는 “ 고리봉은 일명 환봉이라 한다. 남원시의 형세가 풍수지리상 요천과 축천에 의해 둘러싸인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이에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게 매어 두어야 남원에 인재와 큰 부자가 나온다하여 요천 강변의 절벽에 고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 매화당서 본 교룡산(정면) ©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 총람>>에는 “천지개벽 때 봉우리에 박힌 고리에 배를 매었다.”고 나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보련산 부府의 서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거정의 <귀래정기>에는 “남원의 보련산과 곡성의 동지악(동악산)이 서로 공수拱手하고 읍揖하듯 마주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매월당 김시습은 <만복사 저포기>에 “부처님의 도움으로 노총각 양생과 죽은 여인의 혼백이 인연을 맺은 뒤, 보련산 보련사가는 길목에서 여인의 부모를 만나 왜구의 난 때 죽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평생을 홀로 약초를 캐고 살았다.”고 썼다.
<<암헌공 신장 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남원시 송동면 두신리에서 태어난 고령 신 씨 신포시申包翅는 경주 김 씨 수은공 김충한의 사위로 신숙주(3남)와 신말주(5남)을 낳은 암헌공巖軒公 신장申檣의 부친이다. 조선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암헌공은 총각시절 보련산(고리봉) 보련사에 있는 보련법주寶蓮法主에게 필법을 익혀 조선의 명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숭례문(남대문)의 편액을 쓴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신숙주 아우인 신말주는 세종 때 문신으로 <<십노계첩>>을 편찬하였다. 그의 10대 손인 신경준은 <<산경표>>와 <<운해 훈민정음>>을 집필한 실학자로 지리학의 선구자다.
<문화유적과 명소>
▲ 매월당 © 새만금일보
▲ 매월당 다문화체험 필자와 답사팀 © 새만금일보
[매월당]
매월당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인 보련산과 보련사가 금지면 서매리에 있는 고리봉과 옛 폐사지 절터(보련사)가 고려시대부터 자생했던 야생차군락지로 알려졌다. 최근 매월당 김시습의 초암차 정신을 흡모하는 오동섭 장인이 옛 보련사 절터에 억새로 엮은 매월당을 건립하였다. 남원의 차 문화를 재발견해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서매서 본 고리봉과 삿갓봉 © 새만금일보
<산행안내>
o 1코스 : 금지면 방촌-매월당-만학골-고리봉-만학골-금지면 방촌리. 서매리(6km, 3시간 )
o 2코스 : 대강면 석촌-약수암-고리봉-삿갓봉-두바리봉-석촌(12.0km, 5시간)
o 3코스 : 비홍치-비홍산성봉(할미성)-옥수봉-곰재-남원터널-문덕봉-고정봉-송내봉-두바리봉-삿갓봉-고리봉-천장군묘봉-상안성산봉-성안마을-상귀삼거리(15.0km, 7시간 소요)
<교통안내>
o 순천완주고속도로 북남원 IC-745번 도로-대곡삼거리-24번 국도-비홍치
o 순천완주고속도로 서남원 IC-730번 도로-상귀리 삼거리-3번 도로-택내리-방촌리-서매리/ 상귀리 삼거리-730번 도로-대강면 석촌삼거리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전라북도 도립공원 위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