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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주요명소
해남 간척지 담수호 주변 철새도래지
고천암호를 비롯해 영암호, 금호호 주변의 간척지가 겨울 철새들의 새로운 낙원으로 탈바꿈한 것은 지난 90년대 후반부터였다. 고천암 방조제, 금호 방조제, 영암방조제 등의 완공으로 바다와 개펄이 드넓은 농토로 바뀌고 대규모의 담수호가 조성되자 수 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해남군 화산면 , 마산면, 산이면 일대 간척지 담수호 주변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229
남해안(땅끝 가는 길)
전남 해남군 북평면~송지면 구간의 국도 77호선 구간은 일명 ‘땅끝 가는 길’로서 남해안의 수려한 해안경관을 보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6.8km가량의 해남의 대표적인 해안관광도로 연변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전망할 수 있는 다수의 소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해안을 따라 바라보는 다도해의 도서 경관과 낙조가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인 곳으로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한반도의 몇 안되는 장소이다.
인근에 송호해수욕장, 사구미 해수욕장, 드라마 ‘허준’ 촬영 세트장, 달마산, 땅끝전망대 등 볼거리가 다양하고, 국토 순례의 시발지로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 ~ 송지면 엄남삼거리(국도 77호선)
고산 윤선도 유적지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의 유적지(遺蹟地)이다. 선생의 자(字)는 약이(約而), 호(號)는 고산(孤山)또는 해옹(海翁)이다.
그 사이 효종(孝宗)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顯宗) 12년에 85세로 졸(卒)하였는데 숙종(肅宗)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종되고 시호를 충헌(忠憲)이라 하였다.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고산유적지관리사무소 061-530-5548
보해매실농원(매화꽃명소)
사군자의 으뜸인 매화는 그 고고한 자태와 은은한 향으로 수많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으며, 그 결실인 매실은 옛부터 귀중한 건강식품으로 다뤄져 왔다. 중국이 원산지인 매화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소교목으로 이른봄 추위가 가시기도 전에 꽃을 피운다. 청아한 향기와 우아한 모습때문에 관상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열매인 매실도 건강식품으로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혜택을 주고 있다.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 56-10 보해매실농원 061-532-4959
우항리공룡박물관
해남 우항리는 지난 1992년 한국자원연구소의 지질학 연구조사중 공룡발자국이 최초로 발견된 이래 해남군의 발굴노력에 의해 1996년 기초조사, 1997~1998 종합학술조사를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학술조사 내용을 토대로 하여 세계적인 공룡발자국 권위자인 미국의 마틴 록클리 교수, 세계척추고생물학회 회장 루이스 제이콥스 교수, 캐나다 티렐 박물관 필립 커리교수, 영국의 브리스톨 대학의 언윈교수, 스위스 솔로손 박물관 크리스찬 메이어 박사 등 세계적인 권위자를 군 자체적으로 초빙하여 공룡발자국과 익룡발자국에 대한 인증을 받았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2차에 걸친 국제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심포지움결과 우리지역 화석지의 중요성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총전시물 484점(박물관447, 야외전시물37)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191번지 우항리공룡박물관 061-532-7225
우수영관광지
해남군은 전남지방에서 면적이 가장 큰 군이며 산으로는 두륜산, 달마산 등이 솟아있고 바닷가에는 간척지가 많다. 진도나 완도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해남땅이다.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30km 지점에 위치한 문내면은 우수영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고 있는 진도대교의 북단에 위치한 우수영 국민관광지는 임진왜란 당시 3대 수군대첩지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1597. 9. 16)의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를 격파하는, 세계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11의 대승첩을 기록한 곳이다.
목포구 등대
목포구등대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1월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제국주의의 본격적인 대륙진출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세관공사부 등대국에서 관세수입으로 설치되었다. 목포구등대는 1897년 10월 개항한 목포항의 관문에 설치되어 화원반도와 달리도의 협수로(폭 600m)를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 등대 불을 밝히고 있다. 목포구등대는 건립당시 무인등대(높이 7.2m, 백원형콘크리트조)로 설치되었으나 1964년 12월 등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등대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로 변경하였으며, 2003년 12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목포구등대는 목포권 유인등대 중에서 유일하게 육지에 위치해 있으며, 등대를 가기 위해서는 차량을 이용, 목포에서 금호방조제를 지나 해남군 화원반도를 횡단해야하며 약 50분가량 소요된다. 중요하다.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696-1번지 목포구항로표지관리소 061-536-0434
표충사(해남)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를 모시는 사당이다. 현재 그의 제자인 유정과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다. 서산대사는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서울에 올라와 절에 기거하며 글과 무예를 익혔다.
그러던 중 영관대사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훗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명종 4년(1549)에는 승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유명한 산을 돌아다니며 후학들을 만나 친절히 지도해 주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돌려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하였다. 묘향산에서 1,500여명, 그의 제자인 유정은 금강산에서 700여명, 처영은 지리산에서 1,200여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순안, 평양 등지에서 왜구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 그는 승려로서 최고의 존칭과 정2품 당상관 작위를 받았으며 묘향산에서 선조 37년(1604) 입적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2년(1788)에 세웠으며 앞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16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226
명량대첩비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이곳은 옛 조선시대의 우수영(右水營)이며, 강 건너 바로 앞이 진도를 바라보는 해남의 남쪽 끝 해안지역이다. 일제시대에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1947년에 다시 옮겨 세웠다.
이 석비는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몸돌을 꽂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을 장식한 머릿돌을 얹은 형태이다. 비문에는 선조 30년(1597) 이순신장군이 진도 벽파정에 진을 설치하고 우수영과 진도 사이 바다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함대를 무찌른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비문은 1686년에 쓰여졌으나 비가 세워진 것은 2년 뒤인 1688년으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건립하였다.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186-7 문화재청 042-481-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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