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 하나님의 선물, 평강(학개2:9)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전의 참된 영광이 어디에 있느냐에 관해 새롭고 보다 영적인 개념을 갖게 되었다. 즉 그것은 높이의 웅장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장식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도 아니며, 비록 오빌의 금으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가구의 값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서 회개하며 자신을 낮추는 영혼평강의 교제를 나누신다는 데 있는 것이다.
①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평강(平康)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낙원이 거룩함의 거처였을 때 그것은 평강의 거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죄가 들어오고 불순종의 때가 입혀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는 평강이 전혀 없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평강은 비열한 두려움과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린아이의 심령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평강이 있을 때는 우리가 그 말미암아 생동하는 소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때이다.
② 우리가 이 평강을 기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디서 이 평강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평강이 우리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복음은 특별히 평강을 베푸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시다. 그리스도는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사 58:12)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문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약속하고 그 신봉자들만이 평강의 소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투성이의 종교들이 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 평강을 줄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의 평강은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 우리 속에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일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능력을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고통당하는 양심에 평강을 주는 가르침이며, 우리는 그것이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확신 있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Bishop Shirley).
출처: 『톰슨III 성경주석』, “학개서”.
첫댓글 학개서는 흔히 자주 보는 책은 아니지만 중요한 진리와 교리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내용도 그러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호크마 주석>
학개2:9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 '이곳에'는 성전을 의미한다(Von Orelli). 성전에 임할 '평강'은 궁극적으로 내적, 외적인 안녕과 번영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약속하신 평강은 종말에 있을 평강의 왕이신(사 9:6) 메시야의 시대, 메시야의 왕국에 이루어질 것이다(T.V.Moore).
역시 좋은 설명입니다.
<박윤선 주석>
학 2:8,9
이른바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라'함은, 하필 성전을 건축하는데 관계된 물자로서의 은금을 이름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로서 하나님의 영적 은혜의 풍부함을 가리킨다. 하나님께는 영적 은혜가 풍부하여 둘째 성전을 이루심에 있어서 메시야로 말미암은 영광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으실 것이다. 이렇게 메시야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영적 평강은 이 성전으로 말미암아 상징된다.
쉽게 다가오는 설명입니다. good!
<GODpia 성경주석: 아가페출판사>
- 평강=평안 -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육체·정신적으로 무사하고 안전한 상태. 공동체가 경험하는 '평안'은 경제적 번영(시 147:14, 참조. 37:11;학 2:9), 정치적 번영(왕하 20:19 ;대상 22:9;사 32:18)을 포함한다. 평안은 군사적 승리(삿 8:9; 왕상 22:27-28)와 항복(삼하 10:19;왕상 20:18)을 통하여 성취될지라도, 그 성경적 의미는 단순히 휴전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고전 헬라어 '에이레네'의 의미 이상을 내포한다. 전투에서 안전하게 돌아온 병사는 건강을 보존했으므로 '평안하였다'(수 10:21,왕상 22 : 17 ; 시 55:18).
'평안히 가라'란 말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여행자들에게 하는 일반적인 작별 인사였다(출4:18;삿 18:6).
모든 평안은 주권적인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사45:7, 참조. 민 6:26, 대상23:25·,시 147:14).
따라서 평안은 의, 순종, 정의를 통해서 경험이 가능하다(시 119:165;사32 : 17 ;48: 18;59 : 8).
언약은 '평안의 언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민 25 : 12 ;사 54:10 ;겔37:23;참조. 말 2:5, '생명과 평안의 언약').
종말론적 소망은 근본적으로 현시대에서는 경험되지 않는 평안이다(예. 시72:7;85 : 8, 10 ;사 55 : 12).
장차 오실 메시야는 '평안의 왕'으로 불리운다(사 9 : 6).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의 보내심은 종말론적 평안이 도래하는 것으로 해석된다(요 14:27; 16:33 ;행10:36,롬 8:6).
복음은 '평안의 복음'으로(엡 6:15), 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평안'이 유효하게 되며(롬 5 :1 ;참조. 고후5: 19), 하나님은 '평안의 하나님'으로 불리운다(롬 15 : 33.빌4:9;살전5:23;히 13:20;참조. 고후 13:11).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안' (참조. 요20:19, 21)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통해 적대적인 관계에서, 하나 되게 하는 새로운 관계로 바뀌게 함을 의미한다. (엡2: 14).
평안은 그리스도인과 동료 그리스도인, 교회 전체를 포함해(막 9 :50 ;고후 13 : 11 ;골 13:15 :살전 5:13),
모든 사람이(롬 12:18·,고전7:15 ;히 12:14) 함께 가져야 할 목표이다.
@장코뱅 친절한 설명의 첨부 감사합니다.
샬롬, 안녕하십니까?...이런 인사말이 평안을 말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평안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하고 기본적인 건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땅에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불안한 인간의 영혼을 달래주고 안심시키며 죄의 짐을 벗게 해서 가볍게 해주고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지...그리스도로 인한 평강의 힘이 아니고선 불가능하죠.
요즘 청년들 중에 공황장애를 겪는 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나면 그런 불안증도 해소되고, 남은 인생도 즐겁고 보람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실력이 없으면 옆에 주석을 두고 성경을 함께 보면서 묵상을 하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