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대리석 피라미드·도축장 건물이 로마의 핫플레이스 된 이유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이탈리아 저널리스트·前 마이니치신문 기자
입력 2022.07.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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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극작가 존 헤이우드는 1546년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말대로 수천년에 걸쳐 이뤄진 도시 로마를 하루 만에 둘러볼 순 없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로마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를 찾는 전형적 관광 코스를 따를 것이다. 예를 들면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로마인의 광장),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중앙 분수를 설계한 나보나 광장,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조각상 ‘진실의 입’ 등이다.
기원전 18~12년경에 세워진 로마의 피라미드는 당시 유력 정치인 가이우스 세스티우스의 무덤이다. 높이 37m인 로마 피라미드는 하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위 사진은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몬테마티니 미술관. 발전소 흔적을 그대로 남기고 고대 조각상 등 예술 작품을 전시한다. 아래 사진은 도축장을 전시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테스타치오의 도축장(Mattatoio di Testaccio)’이다. /Mimmo Frassineti, Fabio Caricchi, courtesy of Soprintendenza Speciale di Roma, Claudio Raimondo, ⓒ 2022 Azienda Speciale Palaexpo
하지만 27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로마에는 이런 장소 외에도 숨겨진 보석 같은 명소가 수두룩하다. 그중에서 테스타치오(Testaccio) 지역의 명소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곳은 원래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로마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로 변했다.
로마의 테스타치오에 진짜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곳에는 기원전 18~12년경에 지어진 피라미드 세스티아(세스티우스의 피라미드)가 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유력 정치인 가이우스 세스티우스의 무덤이다.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진 이 피라미드는 하얀 대리석으로 덮여 있고 높이는 37m다. 기원전 30년 이집트를 정복한 로마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영향을 받아 건축한 것이다. 로마의 피라미드 내부에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방이 있다. 2015년 일본인의 후원으로 대대적 복원 작업을 거친 끝에 지금의 내부 모습을 갖추게 됐다.
피라미드에 성벽이 붙어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성벽은 피라미드가 들어선 뒤 약 300년 후에 세워진 것이다. 서기 271~275년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게르만족 등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로마를 둘러싸는 성벽을 쌓았다. 이때 성벽을 완성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기존에 있던 피라미드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방어벽을 만든 것이다.
피라미드 바로 옆에는 성 바울의 문(Porta San Paolo)이 있다. 이 문은 로마 제국 당시 오스티아 항구에서 오는 물건과 방문객이 로마를 오가는 출입구였다. 여기에는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 수천년의 역사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 자신이 역사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로마 피라미드의 그늘에 숨겨진 또 다른 보석이 있다. 로마 비(非)가톨릭 신자 공동묘지다. 로마 제국 당시 가톨릭교회는 교회나 성지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매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18세기 초 로마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로마 피라미드 근처의 묘지에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이후로 이 묘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남편 퍼시 비시 셸리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도축장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테스타치오의 도축장(Mattatoio di Testaccio)도 로마의 숨은 명소로 꼽힌다. 이곳은 1975년까지 도축장으로 사용된 건물인데 2010년에 문화·전시공간으로 바뀌어 문을 열었다. 예술과 건축, 도시 계획 관련 전시와 공연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고, 로마 트레 주립대 건축학과도 입주한 건물이다. 산업유적과 유물의 조사·연구·기록·보존 등을 보여주는 산업 고고학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몬테마티니 미술관이 있다. 원래 발전소였던 공간을 1997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보다 3년 빠른 때에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터빈 등 발전설비를 그대로 두고 고대 조각상들을 전시해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커다란 창문과 높은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내년 초까지 이곳에선 복원된 로마 모자이크에 관한 전시회와 부유한 로마 가정의 집을 보여주는 전시회 등이 열린다.
로마 테스타치오는 건축과 예술 같은 마음의 양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미식가의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로마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로마 전통 요리는 노동자들과 농부들을 위한 것으로 주로 농촌의 식자재와 선호되지 않았던 고기 부위를 쓴다. 고대 로마에선 고기를 도축하면 4등분해 가장 좋은 부위 순서대로 귀족, 성직자, 상인, 군인 등에게 팔았다. 팔지 못하고 도축업자들이 요리했던 부위가 내장과 소꼬리 등이다. 이렇게 외면받던 소꼬리로 만든 음식이 ‘코다 알라 바치나라’로 불리는 소꼬리 스튜다. 토마토 소스와 허브에 몇 시간 동안 푹 끓여 입안에서 살살 녹게 만든 음식이다. 이 밖에 베이컨, 달걀, 페코리노 치즈를 얹은 스파게티 알라 카르보나라, 펜네 알라 라비아타(매우 매운 파스타), 카치오 페페(양젖 치즈와 후추를 넣은 스파게티) 등이 있다. 로마 피라미드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한 식당에선 로마 스타일의 마르게리타 피자의 참맛을 만날 수 있다. 얇고 바삭한 반죽에 토마토 소스와 모차렐라 치즈를 얹은 피자로 재충전하고 나면, 로마 역사의 현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힘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