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致命的)이라함은 '일의 흥망, 성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런 뜻이라고 사전은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잃을만큼의 타격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아담의 치명적인 실수가 그렇습니다. 그가 그의 아내인 하와의 행동에 동참함으로써 그는 하나님께 범죄하게 됩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딱 한가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명령하셨습니다.자기 스스로 옳고 그름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릇된 악을 스스로 행하지 않기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기 위한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요구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2:16,17)
이 명령은 아담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돕는 배필로 만드신 하와가 있기 전에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명령을 지켜내야 하는 전적인 책임은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와는 자기 남편인 아담과 함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와 있었습니다. 그녀의 보기에 그 실과가 매혹적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3:6)
뱀의 간교함을 이용한 사탄의 거짓된 미혹에 넘어간 하와가 드디어 자기 생각대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먹은 것입니다. 사탄은 따먹어도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따먹고 싶었던 그 욕구가 그 거짓말을 받아들이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담도 아내가 건네주는 그 과일을 그대로 받아 먹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의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아담은 하와가 그 나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말렸어야하지요. 갔더라도 사탄의 말을 듣지 못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 자리를 함께 벗어나야 했지요. 하와가 따먹는 것을 말리지 못했더라도 자기는 먹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담의 범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로마서5:14)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처음 사람인 아담에게 주도권을 주셨습니다. 잘못을 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의 주도권부터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일에도 아담이 주도권을 갖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자키게 하시고"(창세기2:15)
그런데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을 하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사명과 책임에 대한 그의 주도권을 아담은 스스로 잃어버렸습니다. 아담은 하와가 사탄의 꾀임, 즉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았어야 합니다. 유혹은 하와가 직접적으로 당했지만 그것을 막지 않아서 하나님께 죄를 짓게된 장본인은 아담이 된 것입니다.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디모데전서2:14)
그러나 사실적으로 죄를 주도한 인물은 하와인 것이지요. 단지 그 남편인 아담이 자기 아내를 다스리지 못한 결과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한 것입니다.
하와는 남편의 하는 일을 돕는 역할만 했어야 합니다. 남편이 앞장 서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가지 않으면 자기가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주도적으로 남편을 데리고 그곳에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이 돕기를 요청할 때, 곁에서 도와주면 됩니다. 일을 만들고 추진하는 역할은 남편인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올바른 결정을 해야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와는 남편이 하는대로 따라가며 도와주면 됩니다. 그 선을 넘게 되면 탈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것도 아담에게 적합한 아내의 역할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선을 넘어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도울 적합한 짝을 만들어 주겠다"하고 말씀하셨다"(창세기2:18)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적합한 짝'이라는 말이 '배필'을 의미하지요. 배필(配匹)이란 '부부로서의 짝'이라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무릇 아내는 누구의 아내이든 그 남편에게 적합한 짝이 되어야 하지요. 남편의 일에, 그리고 가정의 일에 적합해야지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영어 성경 NIV에서는 '남편을 돕는 일에 적합한 사람'(a helper suitable for him)이라고 나태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내들이 이와같이 남편을 돕는 일에 적합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가에 도움이 되고 가정에 유익한 그런 아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들이 제 역할을 해야지요. 바른 판단, 옳은 결정, 그리고 틀림없는 추진력, 이런 주도권 행사가 잘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5:22,23)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에베소서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