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독립생물이다. 물질대사에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한다. 동물은 식물의 종속생물이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키운 열매와 씨를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 식물은 동물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만 명이 사망하고 방사능과 열기로 지역이 초토화됐다. 이곳에 제일 먼저 소생한 것이 쑥과 약모밀(漁腥草)이었다. 약모밀은 생태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을 때 살아나며 번식력이 강한 식물로 약초로만 활용하고 있다.
쑥은 가장 흔한 야생초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국화과의 다년생 풀이다. 쑥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식물로 우리 토질과 기후에 맞춤이라 음지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한다. 논두렁, 밭두렁, 산기슭, 강둑, 평지 어느 곳을 가리지 않는다.
신라 때 대찰이던 사지(寺址)의 문화재 발굴 현장에 우연히 등산한 적이 있다. 생태학을 공부한 터라 발굴 후 원상 복귀가 되면 생태계의 천이(遷移)를 살피고 싶었다. 1년 후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2년 후 다시 갔을 때는 쑥이 우점종(優占種)이 되어 완전한 쑥밭으로 변했다. 왕성한 생명력과 번식력이 놀라웠다.
이른 봄 산야에 잔설이 있어도 양지바른 곳이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비집고 제일 먼저 뽀얗게 화장한 얼굴을 내미는 풀이 쑥이다. 너무 흔하면 소중함을 모른다. 쑥국은 봄에 입맛을 돋우고 기운을 솟게 한다. 사람마다 구미가 다르지만 봄 도다리쑥국은 일품 쑥국이다. 갓 돋은 쑥과 도다리로 끓인 국에 묵은지만 있으면 풍성한 건강밥상이 된다. 쑥차는 건강과 미용 음료로도 인기다. 요즈음은 밭이나 논의 잡초로 제초제 세례를 받기도 하지만 쑥은 전래의 우리 식품이자 약초이다.
빈곤했던 지난날 우리의 주산업은 농업이었다. 비료와 농약이 없고 변변한 관개시설도 없어 날이 가물거나 병충해가 심하면 소출이 줄었다. 어느 마을에는 아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제 강점기 때, 실농으로 양식이 부족해도 공출이라 하여 쌀을 강제로 수탈해 갔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순사와 면서기가 집을 뒤져 쌀을 가져갔다. 연명을 위해 인가에서 떨어진 산에다 단지를 묻고 쌀을 숨겼다. 캄캄한 밤에 등불도 없이 더듬더듬 찾아가 며칠 먹을 쌀만 퍼왔다.
흉년에는 쑥 쌀밥 해 먹었다. 5월쯤 뜯어 삶아 말린 쑥은 월동 양식이 되었다. 쑥밥 이외에도 무밥, 송기 밥, 취나물 밥, 엘레지 밥으로 흉년을 견뎠다. 엘레지는 백합과의 식물로 잎과 줄기, 뿌리까지 쪄서 먹었다. 감자, 고구마, 돼지감자(뚱단지)도 당시 구황식품이었지만 지금은 건강식품이 되었다.
늘 배가 고팠다. 비타민 결핍으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입가와 머리에 부스럼투성이였다. 감나무 밑에 떨어진 풋감을 세균이 득실거리는 무논 진흙에 묻어 삭혀서 논물에 슬슬 씻어 먹어도 식중독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우리 또래들이 만나면, 어릴 때 거칠게 먹은 덕분에 돌연변이로 장수 DNA가 생겨 망구(望九)를 넘어 백수까지 갈 거라고 허풍을 떨곤 한다.
쑥으로 병을 치료한 예가 많다. 현대 의술로 불치병 진단을 받고 시골로 이주하여 맑은 공기와 식이요법으로 완치한 사례가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쑥과 독이 없는 야생초를 체질에 맞게 먹거리로 하여 자연치유 된 경우다.
가까이에서 쑥의 효능을 경험했다. 아내가 담석증으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고집스럽게 수술을 거부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쑥으로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청정지역의 쑥을 채취하여 그늘에 말린 후 분말을 만들었다. 쑥 가루를 요구르트에 타서 3년간 마시며 한의원에서 쑥뜸을 병행했다. 이후 건강검진 결과, 담석증이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았다.
체질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쑥이 민간요법의 좋은 약초인 것만은 의심하지 않는다.
첫댓글 이정식 선생님의 수필에서는 항상 배움의 자세가 되어 한 대목 한 대목 깊이 새기며 읽게 된답니다.
선생님의 건강은 좀 어떠신지 몹시 궁금합니다. 늘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당당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부디 건강 다시 찾아 벌떡 일어서시길 기원드립니다.
쑥이 그렇게좋은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이 선생님의 글을 언제나 교육적인 문장들이 많습니다. 오랜동안 교육계에 몸을 담고 계셔서 그런가 봄니다.
저도 배움의 자세로 글을 대하고 있답니다.